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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10화 (110/374)

〈 110화 〉 110­ 고물상 털이.

* * *

김준은 그대로 총을 쏘기 위해 준비했고, 조수석의 라나 역시도 창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김준의 캠핑카 위로 큰 충격이 있었다.

쿠우웅­ 쿵!

“엄맛?!”

창문 열려던 라나가 갑자기 위에서 올라온 충격에 깜짝 놀라 대시보드에 머리를 처박았다.

김준 역시 위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에 바로 외쳤다.

“도경아! 창문 열지마!”

드르르륵­

“?!”

“지, 지금 닫았어요!”

뒤에서 두려워 하는 도경의 목소리에 김준은 일단 자동차 기어를 후진으로 잡고 바로 빠졌다.

그 순간 쿠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 창문을 타고 데굴데굴 구르는 좀비가 보였다.

“꺄흡!?”

비명이 튀어나왔다가 바로 두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라나.

그 앞은 피바다였고, 후진을 하면서 그 정체가 드러났다.

[유치권 행사중.]

반쯤 찢어진 현수막 이 팔랑거리는 낡은 폐건물 위에서 떨어진 좀비였다.

그 좀비는 [투쟁]이라고 쓰인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고,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차를 돌린 김준이 바로 권총을 겨누고 당겼다.

탕!

머리 한 방을 맞고 쓰러진 좀비.

그 위로 혹시라도 다른 놈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준이 클락션을 울렸다.

[BBB­!!!!!!!!]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낸 순간 그 위에서 다른 좀비가 있을지 몰라 긴장한 상태로 권총 두 자루를 준비한 김준.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서서히 좀비들이 다가왔다.

[으어어­ 어어어­]

“오, 온다!”

상가를 넘어서 정면에서도 다가오는 좀비를 본 김준은 총을 준비했다.

“문 열지마! 내가 다 해결한다.”

“으으….”

두려워하는 라나와 도경이 잔뜩 움츠러 들어있었다.

이 상황에서는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었다.

은지나 에밀리처럼 자신이 각이 보인다고 생각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문 열고 돕겠다며 나서는 것보다는 차라리 움츠리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탕­ 탕­ 탕­ 탕­

보이는 대로 좀비를 쏴죽이면서, 권총 한 자루가 총알이 떨어지자, 바로 다음 총을 꺼내서 발사했다.

천만다행으로 뛰는 좀비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게 지금의 전투를 수월하게 했다.

철컥­

권총 두 자루의 총알을 소비한 다음 엽총을 꺼냈을 때, 남은 좀비는 서너마리 정도였다.

원샷 원킬로 쓰러트린 좀비들 속에서 김준은 엽총을 겨눴고, 그대로 발사했다.

철컥­ 탕!

네 마리의 좀비까지 쓰러트렸을 때, 김준은 그 자리에 멈춰서 혹시라도 움직이는 좀비가 있을지 살펴봤다.

“잠깐 앞에 좀 봐줘.”

“네. 오빠!”

김준은 바로 콘솔박스를 열어서 총알부터 확인했다.

“권총…너무 쓰면 안되는데….”

신릉면 파출소에서 구한 총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고 빈 총으로 가지고 다닐 수는 없어서 일단 총알은 장전하지만, 이러다간 공기총에 이어 권총도 못 쓸 것 같았다.

김준은 일단 리볼버 하나만 장전을 하고, 남은 총은 콘솔박스에 담았다.

그리고 엽총도 슬러그 탄을 확인하면서 일반 산탄도 장전했다.

이제는 무슨 총알을 좀비 상대 전용으로 쓸게 아니라 그냥 보이는대로 쏴야 했다.

총기류 장전이 끝난 김준은 와이퍼로 앞창문을 닦아내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조금만 더 가면 고물상이 나오니 일단 좀비 시체가 가득한 이곳을 빠져나간 다음에 차 상태를 확인해볼 셈이었다.

재래시장 후문 일대를 겨우 빠져나온 김준은 하천가 다리에 차를 멈추고서 말했다.

“잠깐 기다려. 차 바깥좀 봐야겠다.”

김준이 먼저 차에서 내렸고, 도경을 통해서 짐칸에 있는 분무기와 락스를 챙겼다.

그리고 김준이 차 위에 올라왔을 때, 루프박스 캐리어 가운데 좀비가 떨어진 핏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오…”

이 위에 좀비가 떨어진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생각 같아선 앞으로 저 위에다가 트랩처럼 칼이나 송곳이라도 깔아놔야 되나 생각했지만, 일단은 치워보고 집에 가서 결정해보기로 했다.

좀비의 흔적을 락스를 뿌려 지워낸 다음 위에서 내려온 김준은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다리밑 하천을 바라봤다.

지난번 은지가 저 물을 마셨다가 난리가 났지만, 이후로 신릉면 등의 생존자들을 보면 살기 위해서 이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김준은 상황이라도 나아지면, 저기다가 통발하고 낚싯대를 올려서 물고기라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도 정말 상황이 급박할 때나 쓸 테지만 말이다.

“후우­ 가자.”

김준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한바탕 좀비들을 쓸어낸 뒤로 가는 길은 다행히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좀비 한두마리 빼고는 조용했다.

라나와 도경 역시 뒤늦게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기다렸고, 김준이 가는 골목진 비탈길에 차가 덜컹거릴 때, 손잡이를 잡으면서 빨리 나가서 뭐라도 루팅할 것을 찾고 싶었다.

15분 정도 들어가서 차가 멈췄을 때, 그 앞에는 거대한 고철의 산이 있었다.

“와~”

“이런데가 다 있네?”

일방통행 비탈길을 따라 안에 들어가니 울창한 숲 한곳에 있는 고물상, 그리고 그 옆에는 각종 물건을 파는 만물상 트럭과 전파상이 있었다.

말이 전파상이지 폐품 중고가전이 가득해서 못 쓰는 브라운관 TV나 구형 냉장고가 바깥에 가득 쌓여있었다.

김준은 이 상황에서 FM대로 움직였다.

먼저 루팅을 하기 전에 차에서 멈춰 클락션을 울리고 담배 한 대 태울 시간의 여유를 가진 다음 천천히 차에서 나온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가게들을 한 번씩 돌아본 다음 이상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둘을 내리게 했다.

“라나는 주변 경계하고, 도경이는 나랑 고물상 물건좀 챙기자.”

“네, 오빠!”

라나가 석궁을 들고 주변 경계를 섰고, 고물상과 같이 들어온 김준과 도경은 주변을 살펴봤다.

슬레이트, 곰팡이 가득한 폐의류, 불어터진채 쌓여있는 폐지, 살짝만 긁혀도 파상풍 그냥 올 것 같은 똥철들이 가득한 곳.

김준은 그 안에서 뭔가 쓸만한 것을 찾다가 일단 고물상 입구에 있는 철망을 한번 잡았다.

오랜 기간이 지나도 아직 튼튼했고, PVC 코팅이 되어 있어서 내부 상태도 양호했다.

“도경아. 이거 잘라다가 가져가자.”

“네? 아… 이걸요?”

“니퍼 줘봐.”

도경이 허릿춤에서 김준이 챙기라고 했던 공구들을 꺼냈고, 닛퍼 두 개를 가지고 잘라내려 했지만, 너무 두꺼웠다.

“아~ 젠장. 볼트 커터로 써야 되나?”

힘을 줘서 겨우 잘라내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한나절.

결국 고물상 안에서 다른 물건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빠, 이건 어때요?”

“챙겨.”

도경이 피스와 못이 가득한 바구니를 보고 그것들을 가져가기로 했다.

이후 자루가 빠진 도끼나 망치등의 쇠붙이를 보고 이것도 집에 가서 공구로 만들 수 있어 챙긴다.

“드럼통이 저렇게 많은데 자키가… 있다!”

김준은 그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바깥에 있는 라나와 도경을 두고 자키 사용법을 가르쳐 줬다.

“자 봐바. 이걸 이렇게 굴려서 앞에다가 드럼통을 대.”

“으음?”

“그리고 여기 걸쇠 있지? 위에 있는 이걸로 드럼통 끝부분을 물린다음에 발로 여기를 밟으면….”

끼이이이익­

리프트로 올려 드럼통이 고정되자 그것을 천천히 끌어 차까지 가져갔다.

“이렇게 쓰는 물건이야.”

“오오….”

“해봐.”

“네, 오빠!”

김준이 빈 드럼통을 찾을 때, 도경은 자키를 써서 하나하나 그것들을 날랐다.

안에 있는 것들은 전부 비어있는 폐드럼통이었고, 훗날 뚜껑을 잘라 쓰거나, 아니면 수도꼭지를 달아 쓸 수도 있었다.

김준이 도경을 통해 드럼통을 하나하나 꺼내고, 라나는 그 옆에서 전파상에 있는 물건들을 찾았다.

그 순간 그녀가 안에 있는 물건 중 괜찮아 보이는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들었을 때, 갑자기 그 안에 번득이는게 있었다.

“엄맛!!!!!”

“!?”

철컥!

전파상 안에서 들린 비명에 김준이 황급히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 김준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달려와 그를 제치고 도망쳤다.

“꺄악?!”

“시발! 저거 뭐… 아아~”

전파상 속에 숨어있다가 라나 앞에 뛰쳐나오고 김준까지 제치고 나온 괴짐승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으릉­ 으릉­!!!

“후우…”

너구리였다.

다행히도 라나를 물거나 할퀴지는 않았는지 이빨과 발톱이 깨끗했고, 위협적으로 짖어대기만 하다가 김준이 엽총을 휘두르려고 하자 후다닥 도망쳐 눈 앞에서 사라졌다.

“어흐… 방금 그거 뭐였어요? 개?”

“너구리야. 안 물렸지?”

“아, 네. 확 달려들었는데, 안 긁혔어요.”

라나는 그래도 찝찝한지 놈이 타고 간 옷을 연신 당기면서 손세정제 스프레이를 그 부위에 뿌려댔다.

“안에서 뭐 찾은거 있어?”

“이거… 가져가도 돼요?”

라나가 가져온건 휴대용 DVD플레이어였다.

옛날에 어른들이 낚시하러가거나, 캠핑장 같은데서 쓰긴 했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나온 뒤로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계륵같은 물건이었다.

“그것만 가져봤자.”

“안에 박스로 영화 잔뜩 있더라고요.”

“그럼 챙겨.”

“넵!”

그 외에 라나와 김준은 알차게 전파상을 털었다.

커피포트, 전기그릴, 밥솥, 전자렌지, 온장고 등등 집에도 있지만 혹시 몰라 챙길 수 있는 사이즈의 물건들은 전부 캠핑카 안으로 들어갔다.

부피가 큰 물건들이 가득해 조금만 챙겨도 차가 가득찼을 때, 도경이 자키 말고 다른 것을 찾았다.

“오빠! 이거.”

“어? 이거 어디서 찾았어?”

도경은 녹이 좀 슬었지만, 작동은 문제 없는 볼트 커터를 가지고 왔다.

“드럼통 있는데 있더라고요.”

“잘됐다. 이걸로 저기 철망 잘라가자.”

“넷!”

김준은 마지막으로 볼트 커터를 가지고 고물상의 펜스를 잘라내 말아서 캐리어 박스에 담아 오늘의 루팅을 끝냈다.

***

집에 돌아온 뒤로 김준은 물건들을 밖에 빼 놓고, 새로 가져온 DVD 제품들을 두고 아이들의 영화 감상이 이어졌다.

“오~ 이게 시리즈로 다 있네?”

“미친, 이거 언젯적 영화야?”

“어, 이게 있어? 나 보고 싶었는데.”

OTT 사이트에서 원클릭 하면 볼수 있는 영화들인데 아날로그 감성으로 하나하나 돌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그날 밤은 전기를 써서 영화를 보는데 모두가 몰두해 있었고, 김준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총기 손질부터 이것저것 손을 보고 개인정비의 시간을 가졌을 때, 오늘의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어서 슬슬 자려고 할 때, 그래도 자기 전 소주나 한 잔 하려고 조용히 밖으로 나올때였다.

“!”

어두운 밤에 불빛이 있어서 가 보니 라나가 있었다.

“안 자?”

“쉿!”

다른 애들은 보다가 자러 갔는데, 라나 혼자서 충전해둔 휴대용 DVD 플레이어를 두고 영화를 틀고 있었다.

“이거 2편 다음에 3편을….”

수십 편이 나온 프랜차이즈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는데 몰두한 라나를 보고 김준은 주방 냉장고를 열고 소주하고 안줏거리를 찾았다.

그때 라나는 어두컴컴한 곳에서 반딧불이처럼 영화를 보려다가 슬며시 김준에게 다가왔다.

“오빠 저기….”

“?”

“안에서 같이 봐도 돼요?”

“….”

“술안주 제가 챙길게요.”

라나의 제안에 김준은 자신도 오랜만에 슈퍼히어로 영화나 봐 볼까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라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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