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107 의식주의 중요성.
* * *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기대되는 저녁식사 시간.
루팅을 나갔다가 멧돼지를 만나서 은지랑 마리가 다쳤다는 말에 모두들 놀라 했지만, 이후 가져온 멧돼지 고기 요리가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었다.
치이익
좌아아아악
“와아아~”
프라이팬에 고기 구워지는 거 보고 감탄하는 미소녀들.
지금, 이 순간에는 마치 기적을 선보이는 수준이었다.
“이게 목살이고, 이게 모두가 좋아하는 삼겹살.”
“나 진짜 삼겹살 먹고 싶었는데!”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을 때, 에밀리의 두 눈에 하트가 생겼다.
“진짜 김준 오빠랑 은지 언니 아니었으면 큰일 났어.”
“근데 멧돼지는 어떻게 찾은 거야?”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옆문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새총 들고 슬쩍 봤는데 공장에 들어온 멧돼지가 들어왔단 말이야!”
“어머?!”
마리는 뺨에 거즈가 붙은 상태에서도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가장 핵심이었던 은지 역시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멧돼지 진짜 엄청 크더라. 자동차만 하던데?”
“에이 설마~ 멧돼지가 그렇게 커요?”
“진짜야. 나 무슨 곰인줄 알았어.”
“유튜브에 나오는게 그 사이즈가 맞구나…”
“보어 엄청 커! 그리즐리 만한 놈들도 있어.”
분명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좀비가 아니라 맹수를 잡은 거여서 오히려 평생의 무용담으로 알려질 거 같았다.
게다가 가장 위험한 일을 겪었던 은지가 자연스럽게 썰을 풀자 마리가 거들었다.
“멧돼지 피하려다가 나무토막 걸려서 굴렀는데, 김준 오빠가 멧돼지 보고 바로 총을 쏜 거야. 근데 안 죽어.”
“어머! 그래서?”
“은지 언니가 차에서 나오다가 발견하고 기름병 던지고 멧돼지한테 전기충격기를 했는데, 불이 확 올라오더라고!”
“그걸 진짜로 했어?!”
“죽을 뻔했지.”
“와우… 크리쳐 헌터!”
에밀리나 가야가 계속 물어보고, 다른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가 점점 흥미진진해질 때, 김준은 조용히 고기를 뒤집어서 익혔다.
그 와중에 밑에서 버섯하고, 풋고추, 깻잎과 상추 등의 각종 야채를 따온 인아가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쌈장을 만들기 위해 냉장고에서 고추장과 된장을 꺼내다가 풀었다.
“김준 오빠가 진짜 빡쳐서 도끼 들고서 멧돼지를 딱 세 방 내리쳤어.”
“오! 바바리안!”
“근데 그 멧돼지가 그러고도 살아있었어. 완전 좀비야. 좀비!”
그 순간 은지가 조용히 마리에게 말했다.
“우리 진짜 좀비도 잡았어.”
“…아!?”
순간 비유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마리가 뺨을 긁적이다가 상처에 만졌다.
“앗 따가!”
“그나저나 마리 어떡해? 하필 다쳐도 얼굴을…”
“괜찮아요. 그냥 까진 거예요.”
찰과상이었지만, 집에 항생제 구비에 드레싱까지 다 했으니 1주일 정도면 딱지가 떨어지고 아물 것이다.
“은지 언니는 괜찮아요? 멧돼지한테 물렸다면서요?”
“내가 아니라 옷이 물린 거지.”
은지는 뜯어진 스웨터를 가리키면서 별것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일 돼야 알아요. 식사 끝나고 아픈데 있으면 아이싱 할게요.”
“아냐, 차라리 준이 오빠한테 해줘.”
차 타고서 접촉사고만 조금 나도 욱신거리는 게 사람의 몸인데 멧돼지가 밟고 지나갔던 몸이다.
내일 일어났을 때 어디가 어떻게 쑤시고 아플지는 봐야 했다.
“김준 오빠도 발목 나갔고….”
“파스 붙였으니까 됐어.”
김준은 쿨하게 대답하고는 다 익은 고기를 집게로 잡아 가위로 잘라냈다.
치이익 치익
마지막으로 한번 구운 다음, 기름이 올라오는데 김치를 프라이팬에 담은 뒤로 볶아내고는 모두에게 말했다.
“자! 먹자!”
김준의 말에 모두가 젓가락을 들고 몇 달 만에 먹어보는 돼지고기 회식을 즐겼다.
“으으음~♥”
“훠어어 후웁! 뜨허어(뜨거워)!”
“고기 진짜 맛있다.”
각자의 취향에 맞춰 갓 씻어서 물기 촉촉한 깻잎이나 상추를 한 장 집고 김치에 버섯에 썰은 양파를 올려서 소금과 쌈장에 찍어서 쌈을 싸 먹는 순간 모두의 행복감이 최고조로 올라왔다.
이거저거 준비하느라고 가장 마지막에 앉은 인아를 두고 김준은 썰은 고기 몇 점을 접시에 담아 그녀 전용으로 줬다.
“자, 먹어봐.”
“멧돼지 구이… 진짜 어렸을 때 한번 먹어봤는데.”
“완전 맛있어! 조금 질기긴 해도!”
“이거 양념구이로 해도 맛있겠다.”
다른 아이들의 말에 인아도 한점 찍어 먹고는 그저 말없이 웃음을 보이는 게, 백퍼 맛있다는 뜻일거다.
비록 오늘 낮에 엄청난 일들을 겪었지만, 이후 냉장고에 쌓인 돼지고기들과 나무를 생각하면 그저 흡족했다.
“칡뿌리도 잔뜩 받아왔으니까 그것도 갈아서 말려야겠어.”
“그건 어디에 쓰는데요?”
“떡이나 냉면 만들 때.”
“와 냉면…”
냉면 이야기를 들은 라나는 고기 한 점을 먹으면서 넌지시 말했다.
“진짜 고기 먹은 다음에 후식 냉면이 최곤데!”
“아, 냉면 먹고 싶다!”
그러자 인아가 쌈 한 점 넉넉히 싸먹은다음 말했다.
“만들면 되죠. 슈퍼에서 가져온 냉면 있잖아요?”
“그래, 그러자!”
동생들이 먹고 있을 때 은지가 슬며시 일어나려고 할 때, 가야가 바로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 고생했는데, 면은 내가 삶을게.”
“가야 언니, 그거 풀어내려면 바로 삶으면 안 되고 미리….”
“응~ 알았으니까 고기 드시고 계세요.”
오늘의 히어로인 김준과 같이 갔던 은지와 마리가 앉아있고, 가야랑 인아가 같이 가서 후식 냉면을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 눈치가 보인 라나나 나니카도 슬슬 일어나서 언니들을 도우러 들어갔고, 도경은 부엌에 간 아이들이 올 때를 기다려 미리 고기를 구웠다.
“이러다 나중에 고기 떨어지면 또 잡으러 가는 건가?”
“야, 에밀리.”
“그땐 내가 갈게! 나도 할아버지 사냥 따라가 본 적 많아.”
만약 아까 있었던 게 에밀리였다면, 쟤도 은지와 다를 바 없이 무기 들고 대책없이 달려들었다가 다치는 상황이 팍 떠오른 김준이었다.
“멧돼지는 사람을 찢어.”
“나도 찢을 수 있어.”
도경이 굽던 멧돼지 고기를 집게 들어서 사정없이 썰어내는 에밀리를 보고 김준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김치냉장고 동치미 육수로 만든 후식 냉면이 나오자 김준은 소주 한 병을 꺼내 따고 잔을 돌렸다.
모두가 다 같이 먹고 웃으며 즐기는 자리로 오늘 밤은 모두가 행복하게 잠들 수 있었다.
***
“발은 좀 어떠세요?”
“난 거의 다 낫는데? 은지는?”
“계속 아이싱 중이에요.”
아침의 식사는 어제 먹다 남은 고기들을 넣은 김치찌개였다.
고기 들어간 찌개로 속을 달래던 김준은 몸이 낫는 대로 다음 루팅을 준비했다.
“다음에는 고물상을 한 번 찾아봐야지.”
“창고 만드시게요?”
마리의 물음에 김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쌀은 지금에 있는대로 놔두는 대신에 쥐틀을 좀 놔서 방역을 할 거야. 그리고 그 옆에다가 드럼통좀 루팅해다가 기름 창고를 만드려고.”
김준의 계획에 아이돌들은 대공사가 또 있을 거 같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마리랑 은지 다친것도 있으니까 집안일을 좀 해야겠는데.”
“그럼 오늘 아예 대청소를 할까요?”
“뭐?”
은지가 밥을 먹다가 조용히 제안했다.
“옥탑방 살면서 보니까 세탁실하고, 침구류 넣는 창고에 잡동사니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공구 창고도 널브러진게 많고요.”
“으흠~”
“이 참에 수납장으로 다 담아놓고 못쓰는 건 정리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어, 그러자!”
김준은 옥탑방은 자주 들리지 않았지만, 그곳이 과거 있었던 세입자가 그대로 놓고 간 물건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김준은 그다지 신경을 안썼고, 어차피 잠만 잘 공간을 쓰는 옥탑방 아이돌들 역시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새 창고 만들어야 하는데, 못쓸 잡동사니는 다 분류하자.”
“새해에 대청소네요.”
역시 새해에는 대청소로 시작하는 게 제격이었다.
***
“수납장 받아!”
김준이 자른 합판을 들고 옥탑방에 올라가 실시간으로 우드박스를 만들어 건네주자 도경이 그것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는 거는 저희가 다 치워도 되는 거예요?”
“어, 거기 내 물건 별로 없어.”
김준의 말에 세탁실과 이불 창고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모두 꺼내자 별별게 다 나왔다.
“부러진 장난감 자동차.”
“그 집에 옛날에 애 둘 키웠거든. 버려.”
“앨범인데, 아무것도 없네요? 곰팡이까지 슬었어.”
“버려버려.”
“이건 옷인데… 어우 냄새!”
“어! 그거 한 곳에 담아! 나중에 동파 방지 덮개로 써야겠다.”
“네, 라나랑 도경이가 폐의류는 여기다 담아. 그리고 가야 언니는 플라스틱 제품들.”
“오케이!”
은지가 지휘하면서 대청소가 수월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김준은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합판을 맞추고 못질을 해서 우드박스를 만드는 대로 넘겨줬다.
3층 옥탑방의 잡동사니들은 그렇게, 정리되고, 밑에 층 역시도 다른 마리와 인아 에밀리 등이 각자의 방을 치우고, 물건들을 치웠다.
어디에도 쓸수 없는 잡동사니는 플라스릭과 금속 조각들이었다.
“이건 어디 분리수거도 못하고 어떡하죠?”
“이렇게 해야지.”
“!?”
잡동사니들 가져온 가야와 도경이 궁금해하는 순간 김준은 토치에 불을 붙여서 그것들을 태웠다.
플라스틱이 불타면서 새카만 연기가 나왔지만, 그것들이 작은 볼트나 너트, 유리 조각들이 한데 어우러지고 있었다.
김준은 그것들을 녹은 엿처럼 헤라와 장도리로 버무린 다음 토막토막 냈다.
“나중에 여기다가 철사로 감아서 새총으로 쓰면 돼지.”
“오~ 이게 돼요?”
“다 굳으면 테스트 보여줄게.”
김준은 각종 작업을 하면서 바깥에서 서포트했고, 8명의 아이들이 대청소를 끝낸 시간은 저녁이 되어서였다.
그날의 저녁도 돼지고기, 그리고 메추라기를 손질해서 카라에게 식 튀김을 만들어 먹었다.
새해부터 고기가 가득한 삶을 살면서 풍족한 나날이었다.
***
“새해 바는 오랜만이네?”
“갑자기 칵테일이 드시고 싶으시다고요.”
김준은 오랜만에 거실의 바테이블을 조립해서 은지의 바를 만들었다.
피곤해서 쉬겠다고 하는 그녀는 김준의 요청에 조용히 술을 셋팅했다가 문득 창고에 있는 담금주를 가져왔다.
“이거 까볼까요?”
“오~”
지난날 인아랑 같이 덕원산 인근을 다니면서 받아온 대추와 은행, 도토리, 밤.
거기서 대추만 골라내서 담금주를 만들었는데, 그동안 개봉을 안 했었다.
“이것도 나름 새해 기념이죠.”
“오케이! 마시자!”
은지가 밀봉을 벗겨내고 와인 잔에 따라주자, 김준은 그녀도 마시라면서 건넸다.
“맛있네?”
“음~ 잘 익었네요.”
한잔이 두 잔되고, 두 잔이 세잔 되면서 은은한 대추향의 술자리였다.
거기에 간장에 볶은 멧돼지고기 구이 역시도 상당히 맛있었다.
술자리가 계속 되면서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너무 위험하게 움직였어.”
“그 상황은 제 판단이었어요. 미안해요.”
“아니야. 뭐, 그렇게 안했으면 내가 들이받쳤겠지.”
멧돼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알아갔다.
“요새는 다른 애들이랑도 잘 지내더라?”
“아, 뭐… 제가 좀 낯을 가리긴 했죠.”
“근데 그 옷 불편하지 않아?”
그렇게 추운 날도 아닌데 집 안에서도 긴팔을 연달아 껴 입는 은지를 보고서 넌지시 물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프라이버시에요.”
“음~ 전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글쎄요. 별로 큰 의미는 아닌데.”
“….”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취기가 오를 때, 김준은 벌게진 얼굴로 은지에게 말했다.
“이런 자리도 좋네? 히끅”
순간 딸꾹질을 하는 김준을 보고 은지가 조용히 일어나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왔다.
“저번에 그 칡뿌리. 인아가 달여서 차로 만들었더라고요.”
“오~ 땡큐.”
김준은 차게 식힌 칡차를 쭉 들이켜면서 속을 달랬다.
“이제 정리하죠.”
은지 역시도 취기가 오르는지 숨을 길게 내쉬면서 칡차를 마시고 천천히 그릇들을 정리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뒷정리까지 혼자 하는 은지의 뒷태를 보고서 피식 웃은 김준은 순간 중심을 잃고 주저앉은 그녀를 붙잡았다.
“으읏!?”
뒤에서 김준이 안은 순간, 은지는 취기와 더불어 얼굴이 벌게진 몸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좀 쉬었다 갈까?”
“!”
집 안에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두고 그 의미를 알아차린 은지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양아치….”
“응?”
“하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아니, 뭐….”
은지는 김준의 부축을 받은 상태에서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신의 땋은 머리를 만지며 꼼지락거렸다.
그동안 시간 지나며 슬슬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또 정색하는 은지를 보고서 다시 거리가 벌어진 것 같아 뻘쭘한 김준이었다.
그때 은지는 조용히 김준의 귓가에 대고 딱 한마디를 했다.
“!”
은지는 뺨이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
“오케이?”
그 순간 김준의 심장이 요동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