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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06화 (106/374)

〈 106화 〉 106­ 내가 누구라고?

* * *

은지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창고 안에서 비명을 들었다.

설마 좀비가 창고에 쳐들어왔나? 싶어서 창대를 단 전기충격기를 꽉 쥐고서 나왔을 때,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검은 멧돼지였다.

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피하다가 이리저리 구르고, 김준이 정면에서 멧돼지 머리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데도 끄떡도 안 하면서 목깃 털을 사자처럼 빳빳이 세우면서 달려들었다.

거기에 김준도 받쳐서 멧돼지 등을 타고 굴렀을 때, 은지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야!!!”

소리를 들은 멧돼지가 돌아볼 때, 그녀는 품 안에 신나가 담긴 드링크 병을 집어던져 놈의 머리를 맞췄다.

파각­

머리를 맞고 깨져서 갈기 털에 흐르는 신나 냄새에 더욱 흥분한 멧돼지는 은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크윽!”

정면에서 달려드는 멧돼지의 돌진을 가까스로 피해냈지만, 놈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잔뜩 열받은 상태로 연신 피와 신나가 흘러내리는 멧돼지가 입을 쩌억 벌렸다.

“이익!!!”

은지는 그 상황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일격으로 전기충격기 스위치를 올리고 놈의 머리를 향해 지졌다.

지지지지직­

퍼엉!!!

신나가 잔뜩 뿌려진 멧돼지의 몸에 날린 전기충격기.

건장한 성인 남성도 한 방에 쓰러트릴 수 있는 화력에 기름 묻어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화르르르륵­

[꾸웨에에에엑! 꾸웩! 꾸웨에엑!!!]

쇳뭉치 같은 주둥아리에 날카로운 엄니, 빳빳하게 세운 갈기털까지 불길이 치솟으면서 멧돼지가 미쳐 날뛰었다.

“됐어!”

은지는 지난번 김준이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서 좀비 상대용으로 했던 기름 뿌리고 테이저 창으로 지져서 불길을 만들어 내는 것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이건 인간의 몸을 가진 좀비가 아니라 몇 배는 강력한 피지컬의 멧돼지라는 것을 간과했다.

[꽤애애애액!!!]

불이 붙은 상태에서도 멧돼지가 그대로 은지에게 달려들었고, 날카로운 엄니로 바닥에 쓰러진 은지의 몸을 물어뜯었다.

“와아앗?!”

멧돼지에 깔린 은지가 몸부림 치면서 전기충격기를 다시 가져다 대려고 할 때, 그 모습을 보고 김준이 다가왔다.

“후우… 후우….”

김준은 도저히 안 먹히는 권총을 다시 장전할 시간도 없이 주변을 둘러봐 목재 창고 안에 있는 대형 도끼를 보고 집어 들었다.

절룩거리면서 양손 도끼를 들고 달려간 김준은 은지를 덮친 멧돼지를 보고 크게 외 쳤다.

“야이 새끼야!!!”

[꾸륵­ 꾸우우우우우!!]

은지를 물어뜯는 불타는 멧돼지가 아랑곳하지 않을 때, 그 위에서 바로 추가 공격이 날아왔다.

쉬이이이이익­ 파악!!

[꾸웨에에에에!!!!]

“!?”

김준이 돌아보자 활을 들고서 다급하게 한 발 날린 명국이 있었다.

그는 침착하게 허릿춤의 화살 하나를 뽑아서 두 번째 일격은 놈의 심장을 정확히 뚫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크르르르­ 꾸이이이이익!!!]

화살을 맞은 멧돼지가 씩씩거리면서 은지를 뒤로 한 채 다시 달려들었다.

아직도 갈기가 타들어가면서 불붙은 상태로 달려드는데 이놈은 도무지가 쓰러질 기미가 없었다.

[꿰에에엑!!]

“형님 피해요!!!”

명국이 화살을 겨눌 때, 김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멧돼지를 보고는 두 손으로 든 도끼를 꽉 잡았다.

그리고는 달려드는 멧돼지 상대로 옆으로 슬쩍 빠지면서 놈의 목을 향해 풀스윙으로 내리찍었다.

빠악­!!!

불붙은 갑옷 같은 멧돼지의 외피에 도끼가 들어갔지만, 이내 놈이 머리를 몇 번 흔드는 것으로 뿌리쳐냈다.

하지만 김준은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들어서 도끼로 멧돼지 머리를 내리쳤다.

쩍­

이번엔 확실하게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고,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멧돼지가 비틀거리다가 자기가 흘린 피에 미끄러졌다.

그 상황에서 김준을 뒤로 한 채 쌓인 합판과 지금까지 썰어서 땅에 떨어트린 각목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어 있는대로 헤집어 놨다.

[꾸웩­ 꾸웨에에엑!!!]

“이 새끼!!!”

김준은 그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멧돼지를 뒤쫓아가 마지막으로 한 방 내리쳤다.

빠각!!!!

그렇게 날뛰던 멧돼지가 세 번째 도끼를 얻어맞은 뒤로 비틀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멈출 새도 없이 품 안의 수통을 꺼내 몸에 불이 붙은 멧돼지에게 뿌려대고 겨우 상황을 정리 할 수 있었다.

“형님! 잡았어요!!!”

명국은 확인 사살을 하기 위해 내려와서 화살촉을 들고 멧돼지의 멱을 따기 위해 다가왔다.

“괜찮아요? 아까 멧돼지에 받혔는…”

“잠깐만! 여기 좀 지켜봐!”

김준은 뒤늦게 올라오는 발의 통증을 무시하고 피에 젖은 도끼를 내던졌다.

“은지야! 은지야!!!”

“은지 언니!!”

김준이 은지를 부르면서 그녀에게 달려갔고, 마리도 따라왔다.

그녀 또한 멧돼지를 처음 보고 피하다가 넘어지고 굴러서 얼굴이나 손에 까진 상처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위험한 은지가 더 중요했다.

“은지야!”

“언니!”

“으, 으음….”

그녀가 입고 있던 자켓이 멧돼지 습격에 이리저리 찢겨 있었고, 배를 물려서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김준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몸을 안아 일으켰을 때, 은지는 천천히 눈을 뜨고는 그를 보고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우­ 살았네요.”

“너는 진짜….”

은지는 조용히 찢어진 자켓 너머의 스웨터를 어루만졌다.

자신이 방검복 전용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처음으로 써먹어봤는데, 멧돼지의 엄니에도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안의 보호판이 삐져나왔지만, 덕분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 있는 상처는 멧돼지 힘에 밀려서 땅바닥을 구르다 긁힌 게 전부였다.

“그래도 잘 써 먹었… 으읍!?”

“너 죽는 줄 알았다!”

김준이 은지를 와락 끌어안자, 그녀는 평소처럼 스킨십을 거부하며 떼어내려 했지만, 부들부들 떨면서 안도하는 김준을 보고서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언니, 잠깐 볼게요.”

“마리 너 얼굴 봐바! 뺨에 상처 어떡해?”

“아….”

얼굴에 손을 대보자 빨갛게 피가 묻어난 것을 본 마리는 은지와 같이 캠핑카 안으로 들어가 구급상자를 꺼냈다.

“오빠도 다치셨잖아요! 치료해드릴게요.”

“됐어! 저거 처리하고….”

김준은 캠핑카 안에서 밧줄이랑 식칼을 가지고 조용히 목재창고로 들어갔다.

“후우, 형님. 고생하셨어요.”

“됐어. 이거 싯고 오늘 일 시마이 하자.”

“아, 네.”

“집에 식칼하고 숫돌 있는대로 가져와.”

“멧돼지… 손질할줄 아세요?”

“어, 해봤어.”

김준은 합판 하나를 깔고서 쓰러져있는 거대한 멧돼지에게 다가가 앞발과 뒷발을 각각 밧줄로 묶었다.

[꾸익­ 꾸이익!]

“미친! 이놈이 아직도 살아있네?”

피를 철철 흘리면서, 몸에 총알에 화살에 도끼까지 맞았는데도 아직도 버르적거리는 녀석을 보고서 정말 질긴 생명력이라며 경악하는 명국.

“됐어! 니네 집 가서 확실히 멱 딸거니까. 일단 들자!”

“끄으응! 어우! 이 새끼 이백 키로는 넘겠는데요?”

2m에 200kg가 넘는 엄청난 크기의 멧돼지를 둘이서 밧줄에 묶어 질질 끌고 간다음 합판에 올렸다.

그리고는 차 뒤에다가 견인용 쇠사슬을 매달고 끝의 합판에 달아서 썰매처럼 멧돼지를 끌고 갔다.

정말 위험했고, 잘못하면 좀비 대신 맹수에게 사람이 죽을 뻔한 위기였지만, 그래도 모두 살아남았고 엄청난 수확을 얻어냈다.

***

“저기, 수영아? 절대 나오면 안 된다니까.”

“오빠, 대체 뭔대 그래요? 혹시 누가….”

“그게 아니라 저기… 목재 공장에서 나무 나르다가 멧돼지를 보고 잡았거든? 근데 그거 손질하느라 마당이 온통 피바다야. 놀랄 수 있으니까 안 보는게 나아!”

“…많이 끔찍해요?”

“미안해. 이따가 다 씻어내면 오늘은 돼지고기 먹을 수 있을거야.”

명국이 안에서 부인이 놀랄까봐 나오지 말라고 하면서 달래고, 캠핑카 안에서 상처를 씻어내고 응급처치를 끝낸 김준은 일행은 멧돼지 손질을 준비했다.

“형님, 이게 집에서 닭 목 칠 때 쓰는 칼이거든요?”

명국은 제법 크고 잘 벼린 식칼을 건네주자 김준은 한 번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상하면, 다른 칼 하나 줄게.”

김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멧돼지 손질에 들어갔다.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에 지나갔지만, 김준의 직업은 엄연히 사냥꾼이었다.

이전에 멧돼지가 출몰하면 도로공단 연락받아서 사냥을 나갔고, 거기서 담당 엽사들에게 손질법을 배웠었다.

“다라이 하나만.”

“여기요.”

큰 고무대야를 뒤집어서 멧돼지 뒷다리를 들어 비스듬히 눕히자 놈이 아직도 발버둥친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벼려진 식칼을 들고 멧돼지의 머리를 천으로 감싼다음 그대로 목을 찔렀다.

푹­

그리고는 한바퀴 돌려서 확실하게 숨통을 끊었고, 그걸 본 마리가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고, 은지는 그 상황에서 조용히 김준에게 물었다.

“오빠, 도울거 있….”

“소주, 소주!”

“네.”

은지가 차 안으로 들어가 아까 루팅한 소주 한 병을 가져오자 김준은 그것을 뜯어내고 멱줄을 따서 새카만 피가 콸콸 쏟아지는 곳에 부었다.

역한 냄새가 가득했지만, 손질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피는 죄다 뽑아내야 하고 창자 뽑아내야 돼.”

“우욱­ 진짜 지독하네요.”

“숫놈이라 그래, 웅취 때문에라도 멧돼지는 선지나 순대 같은 거 못 해 먹는다.”

이게 정말 생물에서 나는 냄새가 맞는지 모를 정도로 역한 누린내가 났지만, 김준은 그것을 잡기 위해 손질을 계속했다.

대야로 몸을 기울여서 피를 전부 뽑아내고, 소주로 주변을 씻어낸 김준은 칼로 목부터 배를 천천히 갈라갔다.

얼마나 가죽이 억센지 칼질을 할 때마다 우두둑거리는 뼈랑 힘줄 끊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배를 갈라내자 안에서 는 더욱 심한 악취에 다들 슬금슬금 물러났다.

“대야 하나 더 가져와.”

“네, 형님.”

명국이 달려가서 고무 대야 하나를 구해오자 김준은 허릿춤에 도끼랑 칼로 내장을 잘라낸 다음 못 먹는 창자를 뽑아내고, 위장과 생식기도 잘라서 올려놨다.

“멀리 가져다 파묻어. 안 그러면 냄새 맡고 다른 동물들 꼬인다.”

“어우, 그렇겠네요.”

이 인근에서 발견한 멧돼지라면 분명 다른 야생동물들도 나올 것이다.

그 뒤로 김준은 간을 소주로 씻어낸 다음에 핏물을 다 빼고 소금을 뿌렸다.

“소금 절여서 잘 삶아.”

“저희 주시는거에요?”

“같이 잡았잖아?”

김준은 그 뒤로 가죽과 배 사이에 있는 줄을 잡아 천천히 껍데기를 벗겨냈다.

“후우­ 은지야. 우리꺼 칼!”

“네. 여기요.”

은지가 새 식칼을 주자 바로 뽑아낸 김준은 피에 젖어 날이 상한 명국의 칼을 넘겨줬다.

명국이 칼에 핏물을 씻어내면서 숫돌에 가는 동안, 새 칼로 김준이 가죽을 벗겨내자 새하얀 지방과 핑크빛 순살이 드러났다.

멱을 따낸 뒤로 돌아선 마리도 해부학적으로 멧돼지 해체를 바라봤고, 200kg가 넘는 녀석이 절반쯤 되는 고기가 나왔다.

딱­ 딱­ 콰드득!

도끼로 다리를 잘라내고 엄청난 크기의 넢적다리가 나오자 그것도 명국에게 건넸다.

“이것도 가져갈래?”

“아, 아닙니다!”

“같이 잡았잖아? 반은 너희 집 거야.”

“그… 정 주시겠다면 다리는 괜찮으니 살을 좀…”

“잠깐만.”

김준은 살코기 부위를 썰어낸 다음 하나하나 담아내서 명국에게 건넸다.

“핏물 씻어내고 무조건 냉동시켜. 그리고 빨리 먹는게 좋아.”

“네, 형님. 정말 감사합니다.”

김준은 몇 시간이 걸려서 멧돼지를 전부 해체하고 명국이 준 아이스 박스에 얼음을 깔고서 차곡차곡 담았다.

100근은 넘어 보이는 돼지고기에 다리 네 개까지 전부 가져간 김준은 잘려나간 멧돼지의 머리와 내장 더미를 보고서 손을 씻어낸 다음에 차에 탔다.

그날 명국의 집은 멧돼지 외에 같이 캐낸 목재, 그리고 원래 교환하려고 한 모이용 쌀과, 생필품과 라면을 건네주고, 답례로 짚단에 싼 계란과 메추리알, 그리고 메추리 고기들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뒤늦게 긴장이 풀린건지 아까 돌아간 발목이고, 허리고 안 아픈데가 없었다.

“어우… 집에 가면 샤워부터 해야지.”

차 안에 퀴퀴한 피 냄새와 멧돼지 웅취가 아직도 배어있는 것 같았다.

“도착하면 차는 제가 청소할게요.”

은지의 말에 김준은 바로 손사래쳤다.

“됐어. 쉬어쉬어쉬어! 오늘은 둘 다 조용히 몸 챙겨라.”

“….”

“맞아요. 언니 진짜 위험했다고요.”

뺨에 상처를 소독하고 거즈를 붙여서 지혈한 마리는 이거 말고도 다른 상처들도 하나하나 치료하기로 했다.

“오늘 진짜 위험했는데, 다음엔 이런 일 없게 하자.”

“죄송해요….”

마리가 먼저 사과하자 김준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멧돼지 발견한 게 죄송할 건 아니지… 근데 은지는….”

“…네, 제가 너무 무모했어요. 죄송합니다.”

조수석에 앉아서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인 그녀를 보고서 김준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부탁인데 다들 몸 좀 사리자. 들이받쳐서 어디 부러졌으면 답도 없어.”

“네.”

김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뒤에 넉넉히 담긴 멧돼지 잔해를 보면서 말했다.

“오늘은 고기 먹자! 멧돼지로 삼겹살 굽는 거 보여줄게.”

“아, 네!”

“고기….”

몇 달 만에 생긴 돼지고기.

그리고 이걸로 회식을 하면서 오늘 애들을 좀 달래자고 생각한 김준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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