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103 새해에도 언제나 바쁘게.
* * *
딸깍
쏴아아아아
캠핑카 샤워기를 누르자 시원한 물이 쏟아졌다.
“앗, 차가워!”
같이 들어갔던 마리는 샤워하려다가 생각보다 물 온도가 낮아서 김준을 끌어안았다.
김준은 물에 젖은 알몸의 여배우가 안기자, 그녀의 머리에다가 지난번 편의점에서 털어온 여행용 샴푸 팩을 뜯어서 부어줬다.
아무리 물이 차가워도 몸은 씻어야 했고, 좁은 캠핑카 샤워실 안에서 여기저기 샴푸 거품이 올라오며 두 남녀가 씻었다.
“후우”
김준은 나오자마자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면서 옷을 갖춰입었다.
마리 역시도 어제의 격렬했던 섹스 이후 속옷을 집어 팬티부터 입었다.
“으… 방에 가면 갈아입어야겠다.”
“그거 따로 빨아야겠다.”
“괜찮아요. 이번 주 빨래 담당 저니까 슬쩍 넣으면 돼요.”
브래지어 후크를 채우고 있는 그녀를 보고서 김준은 피식 웃었다.
“암튼 다음부터는 무조건 콘돔이야.”
“흐응, 다음부터요?”
어젯밤 장난이라기엔 도가 심했던 짓을 한 마리가 따라 웃었다.
새해 첫날 마지막까지 로맨틱할 줄 알았는데, 거기다 대고 임신공격 제스처라니… 덕분에 안전한 날이건, 피임약을 먹건 당분간은 섹스할 때 무조건 콘돔을 쓰기로 했다.
옷을 다 갖춰 입은 김준이 먼저 나가려고 할 때 마리는 속옷 차림으로 그의 등을 살며시 안았다.
“흐음~”
김준은 등 뒤에서 부비대는 마리의 손을 슬며시 잡아줬다.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마리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캠핑카를 나섰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집으로 올라가려 할 때, 타이밍 안 좋게 내려오는 인물과 눈을 마주쳤다.
“아!”
“어머, 일찍 일어나셨네요?”
은지였다.
손에 들린 바구니 안에 개인 칫솔과 비누, 샴푸, 린스, 타월 등이 들려있는게 캠핑카 샤워실을 이용하려고 나온 것 같았다.
“좋은 아침.”
“캠핑카에 누구 있나요?”
“아… 그게, 마리가 들어갔어. 금방 나올거야.”
“흐음~ 그렇군요.”
뭔가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은지는 이젠 익숙한 일이라는 듯이 조용히 김준을 뒤로한 채 내려갔다.
그리고 캠핑카 나올 때 손에 찢어진 스타킹과 구겨진 와이셔츠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치마를 입고 온 마리와 은지가 눈이 마주쳤다.
“아….”
누가 봐도 의심스러울 상황에서 마리가 머뭇거릴 때, 은지는 쿨하게 들어갔다.
“나 씻을 거야.”
“으, 으응. 언니! 나 먼저 갈게!”
김준이 안에 들어오자 맛있는 냄새가 확 풍겼다.
오늘의 아침은 새해라고 인아와 은지가 떡국을 끓여놨다.
믹서기로 쌀가루를 만들어서 직접 쪄내고, 파 썰고 양념 채워서 만든 것을 보니 정말 없는 상황에서도 먹는 거는 문제 없는 것 같았다.
“후룹 으어으~ 속이 확 풀린다.”
에밀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먹으면서 숙취를 달래자 옆에 있던 가야가 그녀를 노려봤다.
“야, 어제 술을 얼마나 처먹었으면 우리 방에 들어와서 뻗었냐?”
“아~ 미안, 물 마시러 왔다가 그냥 잠들었어.”
“미친년, 어제 니가 몇 번이나 걷어찬 줄 알아?”
“쏘리~ 다음엔 그 방 안 들어갈게.”
김준은 떡국을 먹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피식 웃었다.
새해가 지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제의 회식 이후로 새해가 됐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김준이 무슨 일을 시키냐에 따라서 각자 움직일 준비를 하는 여덟 톱스타들이었다.
그리고 김준은 오늘 할 일을 그녀들에게 말해줬다.
“저번에 창고에 쥐 있어가지고 싹 빼냈잖아? 거기 청소하자.”
“으으~ 또 쥐가 나오진 않겠죠?”
“그러니까 관리 잘 해야지.”
쥐라는 말에 질색하는 도경과 라나. 그리고 다른 애들 대신 자신이 나서겠다고 나서는 은지와 에밀리.
그렇게 네 명을 데리고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갈 루팅 때문인데 석궁 화살을 좀 만들어야 하는데, 인아가 할래?”
“네. 낫만 있으면 깎을 수 있어요.”
“어, 그래. 그러면 나니카랑 가야랑 같이 화살 좀 만들어놓자. 그리고 마리는….”
“오빠, 저 오늘 집안일 담당.”
아까 캠핑카에서 말했듯이 빨래랑 청소는 순번제로 돌아갔는데, 오늘은 그녀의 차례라고 했다.
“그래, 그럼 오늘 하루도 안전하게 일하자고.”
기분 좋은 식사.
그리고 끽연의 시간을 가지면서 오늘의 일과 시작이다.
***
“으으으~”
“괜찮아~ 안에 아무것도 없어.”
창고에 쉽게 못 들어가는 라나와 도경을 보고, 김준이 자신만만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싹 비워낸 뒤로 텅 빈 창고를 두고 김준은 애들에게 마스크를 씌운 채, 락스 말통을 가져오게 했다.
“자, 한번 쭉 뿌리고 바닥을 솔로 밀어내면 돼.”
창문을 열어놓은 채로 말통에 담긴 락스를 전부 뿌린 김준의 뒤로 에밀리와 은지가 들어와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라나와 도경 역시 마지못해 장갑을 끼고 청소도구로 안을 싹싹 닦아냈다.
무대 위의 아이돌들이 졸지에 극한직업을 찍으면서 청소를 하고 있을 때, 김준은 그녀들을 두고 밖으로 나와 준비해둔 공구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그리고 창고 근처에 지난번 애들 시켜서 싹 청소하고, 돌 틈 등의 구멍을 막은 것을 확인한 다음 내부도 그렇게 처리하려 했다.
“락스 냄새 빠질때까지 다들 나와.”
내부를 완전히 청소한 뒤로 다들 모여서 기다렸다.
김준은 담배 한 대를 물고는 차 근처에서 나무를 깎는 아이돌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잘하네?”
“저번에 인아 언니 낫질하는거 봤는데, 어우… 무슨 자연인인 줄 알았어요.”
라나의 말대로 정말 아이돌이 자연인을 방불케 할 정도로 능숙하게 낫질로 나무를 깎아냈다.
그 옆에서 가야가 사포로 깎은 나무 화살을 사포로 다듬고, 마스크를 쓴 나니카가 니스칠을 했다.
셋이 딱 할 일을 맞춰서 하는 상황에 잘하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휴식이 끝난 뒤로 김준도 움직였다.
“여기를 이렇게 실리콘으로 바르면 돼.”
“한 번 해볼게요.”
은지가 나서서 김준이 알려준 대로 창가 떨어진 곳에 실리콘을 발라 굳혔다.
이후 손가락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틈을 만들어서 거기다가 드릴로 피스를 박아 최소한의 공기만 통하고, 쥐는커녕 바퀴벌레도 끼일 정도로 좁은 창문틈을 만들었다.
“방충망만 달면 딱인데.”
어디 고물상 가서 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없으니 아쉬운 대로 이렇게 만들어야 했다.
그 뒤로 락스냄새가 다 빠진 창고가 깔끔해지자, 이번엔 빗물 탱크를 열게 했다.
밸브 렌치 하나 가지고 에밀리와 도경이 익숙하게 열어내고, 은지가 물을 떠내자 라나가 치약을 가져와 풀었다.
“근데 소독약도 아니고 치약 푼 물 가지고 뭐 방역이 되요?”
“완전 잘 돼지.”
“흐음~”
라나는 원리는 몰라도 김준이 ‘주변에 치약 푼 물을 뿌리면 벌레가 안 꼬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분무기에 가득 담았다.
“다 됐어요.”
“그럼 바닥 주변에 뿌리고, 특히 유리조각 있는 담벼락 천장에도 조금씩 부어.”
김준의 말에 라나가 치약물을 여기저기에 풀었다.
그렇게 한쪽은 무기만들기, 다른쪽은 창고 정리 등으로 각자의 일이 끝나갈 때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저녁을 먹기 전 김준은 옥탑방으로 올라가 잔뜩 쌓여있는 쌀가마를 보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일단 다시 넣기는 해야겠는데….”
쥐랑 벌레 방역은 앞으로 이렇게 하면 해결이 되겠지만, 다시 넣을게 문제였다.
김준의 머릿속에는 차라리 지금 쌀과 같이 공간 부족해서 바깥에 있는 다른 도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야, 오히려 그러면….”
김준은 담배를 물고 중얼거리다가 혼자 생각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집으로 들어갔다.
***
“창고를 하나 더 만드려고 하거든?”
“네? 창고요?”
“필요하긴 하죠. 바깥에서 가져온 물건 쌓인 만큼요.”
은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을 때, 다른 아이들은 자신들이 뭘 어떻게 해야 될지 갸웃 거렸다.
“오늘 보니까 인아가 낫질을 잘하고, 은지나 라나도 어느정도 공구 잘 다루고….”
“나 톱질할래!”
“어, 그래. 에밀리도 이제는 그라인더 잘 쓰지?”
반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스킬들을 터득한 아이돌들을 보니까 보조를 한 다면 못할게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에 나갈때는 철망, 그리고 목재가 필요해. 그걸로 옥탑방 쪽에 하나 만드려고 한다.”
“쌀 쌓여있는데요?”
“엉.”
“그럼 앞으로 거기서 쌀을 보관하나요?”
“그럴 생각이긴 한데….”
김준이 그 상황에서 애매해 하자 인아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어, 왜?”
“그러면 큰일나요.”
“역시 그렇지?”
인아의 말에 다른 아이들이 무슨 소리냐고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무에다가 철망 식의 창고요? 그렇게 만들면 거기도 쥐 꼬여요.”
“에이~ 언니, 말도 안 돼~ 어떻게 3층까지 쥐가 올라와?”
“뭐, 계단이라도 타고 올라오나?”
이해를 못 한 에밀리와 라나가 키득거리지만, 인아는 시골 출신 짬밥을 유감없이 보였다.
“쥐 한 번 나오는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계단? 수도 파이프에 전선 가느다란것만 있어도 그거 타고 올라와.”
“…진짜야?”
가야나 마리같은 언니들도 처음 듣는 말이라 눈이 커졌고, 인아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창고만드는 철망이라면, 분명 능형망일텐데 그건 쥐가 들락날락하기 최적화라고.”
“능형망이 뭐야?”
“그 있잖아~ 이렇게 마름모 모양으로 된 철조망.”
전문 용어까지 나오는 인아의 말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3층에 있는 쌀을 다시 청소한 원래 창고에 넣어야 겠다.”
“그럼 옥탑방에 창고 만든다는건요?”
“기름.”
“…아!”
안 그래도 바깥에 있는 기름들이 문제였는데, 그것들을 보관할 창고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목재랑 철망 구하러 가야 하는데 마침 약속한 곳이 있었어.”
“아~ 그 아쳐 커플?”
활로 좀비를 잡는 시골집 부부.
그 중에서도 남편인 명국이 김준에게 한 말이 있었다.
‘인근에 목공소가 있어요. 혼자는 못 가지만 필요하시다면 같이 가서 재료를 구하러 가시죠?’
“갈 때가 되긴 했지….”
때 마침 물물교환할 장비도 딱 준비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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