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99 오염된 건 처리하자.
* * *
김준은 창고 안에 있는 쌀가마들을 죄다 꺼내 바깥으로 내놨다.
멀쩡한 쌀가마는 차 근처에 가져다 놓고 쥐가 다 뜯어먹어서 바닥에 질질 새는 것들은 마리가 펼쳐 놓은 장판에다가 널어놨다.
“안에 널브러진거 다 쓸어 담아라.”
“네!”
가야가 바깥에서 후배들 데리고 청소하다가 안으로 들어가 직접 쓰레받이로 껍질 안 깐 쌀들을 담아서 장판에 털어놨다.
“누가 가서 기름 창고 쪽에 있는 바케스 잔뜩 가져와 줘.”
“아, 제가 갈게요.”
그동안 바깥 작업하면서 웬만한 공구 심부름은 도맡아 했던 라나가 쪼르르 달려갔다.
잠시 후 뚜껑까지 갖춘 바케스를 두고서 김준은 장갑을 끼고, 쌀창고에 있던 소쿠리를 들고서 장판에 깔린 쌀들을 담았다.
그리고는 체 질을 하듯이 한번 탈탈탈 털어낸 다음 그것들을 바케스에 담고 단단히 밀봉시켰다.
“이 쌀들 어떻게 하실거에요?”
“사람은 못 먹어.”
“진짜 아까워서 어떡해….”
은지나 가야는 불과 몇 달전까지만 해도 햄 한조각, 라면 한 봉 가지고 먹을 거 문제로 예민한 상황에서 100kg가 넘는 양의 쌀을 다 폐기처분해야된다는 사실에 마음아파 했다.
하지만, 시궁쥐들에 의해 오염된 걸 사람이 처리할 방법은 없었고, 마리의 말대로 지금부터 창고를 방역해서 바이러스 감염에 대해서 대비해야 했다.
“뭐, 그래도 그냥 버리진 않을거야.”
“네?”
김준은 바케스에 차곡차곡 담은 쌀들의 처리 방식에 대해 말했다.
“우리 닭이랑 오리 수급하는데 있잖아?”
“아! 명국씨네.”
거길 다녀온 마리와 라나가 바로 맞추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이 못 먹지만, 닭이나 메추리라면 괜찮겠지. 일단 이건 전부 걔들 모이로나 넘겨야겠어.”
“그렇게 처리해서 교환할수 있다면 좋기야 한데….”
“그 집 가봐서 알잖아? 몇 십마리 키우면서 그거 사료 감당도 못 하고 있을걸?”
안 그래도 지난번 갔을 때, 사람 먹을 쌀이 없어서 밥 대신 소면을 주길래 몇십키로 주고 닭고기랑 감자랑 교환을 했었다.
“그리고 요것만 남긴다.”
그중에서 골라내 3층에 올려서 말리려고 하는 도정 안 된 쌀.
“이건 어디에 쓰시게요?”
“볍씨.”
“볍씨… 아!”
확실히 처리를 안한 쌀이니 심어서 바로 종자를 만들어낼 수는 있었다.
문제는 농사를 잘 모르는 아이돌들이라 하더라도 쌀을 심으려면 엄~~~청 넓은 땅, 그리고 물을 잔뜩 대는 논밭을 떠올릴텐데 이게 되겠냐는 얼굴이었다.
“볍씨 종자로 보관한다 해도 심을데가 없잖아요?”
“최악의 상황에서는 화분에서도 기를 수 있어.”
“그래도 얼마 안 나올 텐데….”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인거지. 혹시 모르니까 일단 가지고 있어야겠어.”
그리고 정 안된다면 정토사의 스님들이나, 명국네 시골집에다가 맡겨서 그 주변 밭에 뿌리기만 해도 잡초 치는게 번거롭겠지만, 그래도 남은 땅에 뭐든 해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야….”
준은 옥상에서 좀비들을 발견했던 옆집을 바라보고서 중얼거렸다.
“저기를 싹 밀어버리고, 흙을 뿌려서 밭으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 큰 집을 무너트린다고요?”
“그러니까 된 다면….”
물론 그 정도의 중장비를 어디서 구할 수도 없었고, 훗날의 문제도 있으니 일단은 그냥 지나가며 한 소리였다.
어쨌건 점심까지 쥐의 습격에서 남은 쌀들은 모두 3층 옥탑방으로 향했다.
연약한 아이돌들이 낑낑거리면서 옮겨냈고, 남은 쌀들 역시도 교환용으로 쥐가 못 파고들게 바케스 뚜껑을 닫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제 식량창고에 남은 것들은 소주 박스들, 그리고 발전기들이었다.
“이 썅놈의 쥐새끼들이 전선 다 갉아먹었으니 또 고쳐야 되는데….”
“안에 쥐 없으면… 제가….”
전기 다루는 것은 맨 처음 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부터 인아와 도경에게 시켰던 일이었다.
적어도 끊어진 전선 연결이나, 내부를 이어가는 것 정도는 김준이 가르쳐줬으니 뒤에서 조언만 해줘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일단 전기 작업하기 전에 안에 들어가서 소주 박스 다 빼낸다음에 락스 한 번 뿌리고 청소하자.”
김준의 말에 부들부들 떨면서 조용히 들어가는 인아와 가야, 은지 등이었다.
그 사이 김준은 시큰거리는 왼쪽 어깨를 부여잡고서 바닥에 널린 사라리를 타고 천천히 담벼락에 올라갔다.
도대체 쥐가 어디서 넘어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인데, 담벼락 너머를 봤을 때, 그는 옆집에서 못 볼 꼴을 봤다.
“….”
관리를 받지 못하고 앙상하게 비틀어진 나무 여기저기가 갉아져서 언제 쓰러질지 위태위태한 상황이었다.
나무 뿐만 아니라 그 앞의 빌라에서 가꾸던 각종 풀들 역시도 쥐들이 잔뜩 헤집어놨고, 곳곳에 구멍이 뚫린 것이 사람이 없는 주택가가 완전 쥐떼로 꼬여 있었다.
김준은 그 모습에 한 숨을 내쉬면서 품 안에 있는 드링크 병을 강하게 내던졌다.
쨍강 파앗!
유리병이 나무에 부딪혀 깨지고, 휘발유가 바닥에 스며들었다.
칙 치익!
김준은 사다리에 걸터앉고 위태위태한 자세로 담배 연기를 뿜다가 이내 기름이 뿌려진 나무에 던졌다.
틱 화르르르륵!
“어맛! 오빠, 뭐하시는거에요?”
가야는 깜짝 놀라 왜 옆집 화단에 불을 지르냐며 뒤로 물러났다.
마리나 라나등도 갑작스러운 행동에 담벼락 너머로 뜨거운 연기가 나는 사왕에서 뒷걸음질 치며 피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많은 아이돌들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은지는 조용히 장비를 하나 챙겨가지고 나왔다.
하나는 전기충격기에 쏠 때, 휘발유를 담아 뿌리는 분사기였는데, 내부의 기름 대신 물을 잔뜩 머금어서 즉석 소화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긴 막대기에 보루를 잔뜩감아 끝에 불을 붙이던 좀비 퇴치 지팡이에도 물을 잔뜩 적셔서 담벼락 너머로 불이 안들어오게 했다.
그렇게 대비한 상황에서 얼마 안있어 효과가 올라온다.
찌이이익!!! 찌이익!!!!
“엄맛!?”
찌익 찍찍!!!
담벼락 너머로 화단이고 나무고 다 타고 있을 때, 파묻힌 구멍 속에서 견디다 못한 쥐들이 뛰쳐나와 사방에서 날뛰고 있었다.
“후~ 저거 봐라 저거!”
김준은 불편한 몸 상태로도 오른팔에 공기권총을 뽑아서 능숙한 사격선수처럼 벽 너머 주택가에서 날뛰는 쥐들을 겨눴다.
정말로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어디로 튀는 놈들 중에 쩔쩔매던 쥐 하나를 겨누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띠잉
팍!
제대로 명중.
찌이익 찍찍!!!
띵!
날뛰는 쥐들을 보이는 대로 쏴 댔고, 꿩이나 까치보다도 잡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몇 마리 잡아서 싹 다 불에 태워버렸다.
“후우”
김준이 사다리에서 내려오자 은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담벼락 위에 날카로운 유리조각과 철제 가시가 달린 곳으로 물을 차근차근 뿌려 콘크리트 벽을 적셨다.
적어도 이것만으로도 불길이 이 집까지 퍼지는 건 막을 수 있을거다.
“오, 은지 나이스~”
그동안 멋대로 판단해서 나선다고 혼내기도 많이 혼냈지만, 이 경우는 진짜로 필요해서 하는 일이니 칭찬해주기로 했다.
일단 1차 작업은 이렇게 끝냈고, 점심을 앞두고 2차를 준비해야 됐다.
“점심 먹고 하자.”
“네, 바로 올라가서 준비할게요.”
쥐 방역에 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일했지만, 밥 만드는 사람은 그래도 씻어야 한다.
그래서 인아와 은지가 어제 욕실에 받아놓은 물로 가볍게 씻기로 했고, 나머지 애들은 갉아 먹힌 전선 교체한 이후로 쓰기로 했다.
***
“생수로 밥을 쓰네요.”
“다음에 생수도 많이 챙길게.”
인아와 은지는 아침의 라면 이후로 급히 밥을 차렸고 모두가 모여 오순도순한 점심이 되었다.
아침에 아까운 쌀 네 가마니를 날렸는데, 그래도 밥은 제법 나왔다.
먼저 메인으로는 인아가 자주 끓이는 콩나물 국.
그다음으로 1층과 옥탑방 실내 재배로 가꿔낸 팽이버섯 조림, 콩 조림, 깻잎무침, 시금치나물, 참치김치볶음, 소세지 부침 등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생존자 중에선 제일 잘 먹을 거야.”
“뭐, 풀때기가 많긴 하지만… 우리가 다 재배한 거니 맛나게 먹어줘야지~”
에밀리는 풀떼기 반찬이라고 하면서, 연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사실상 이제 고기라고는 명국 내외에서 교환할 수 있는 오리와 생닭, 간간히 구할 수 있는 참치나 꽁치, 햄 통조림, 술안주용 해산물 건어물, 그리고 정말 필요할 때 쓸수 있는 사냥이었다.
“삼겹살 땡겨….”
“그만해 언니.”
옆에있던 라나가 한 마디 하자, 김준 역시도 고기 생각이 나는지 무심코 말했다.
“나가서 사슴이라도 잡아야 하나?”
“사슴이… 있어요?”
“고라니 정도는.”
“그거 못 먹는 거 아닌가?”
고라니라는 말에 설마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그 이빨 엄청 큰 노루 비스무리한 거 말하는 거냐고 하는 소녀들.
김준은 그 상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먹을 수는 있어. 나 군대 있을 때도 도축 잘하시는 동네 아저씨 분 계셔서 고기 먹어봤지.”
“으윽 그래도 고라니를요?”
“그럼 다른 걸 사냥할 수도 있고.”
“뭐요?”
“토끼.”
“토끼고기….”
뭔가 그녀들의 머릿속에서는 작고 귀여운 깡충깡충 토끼였지만, 김준에게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일 것이다.
어차피 좀비가 퍼진 세계에서도 지난번 꿩이랑 야생 청둥오리 잡아서 피 다 빼낸다음에 구워먹었을 때, 아무 문제 없었으니 시도할만 했다.
“뭐, 몸 상태 나아지면 해볼 일이고. 일단은 밥 먹고 팀 나눠야 겠다.”
“네~ 이번에도 팀을 나누는군요.”
김준은 먼저 가야를 가리켰다.
“가야가 애들 데리고 1층에 천막 가져다가 아까 옥탑방에 쌓은 쌀들 전부 감싸서 고정시켜, 밑에 밭줄로 묵고 아무것도 못들어가게 벽돌도 깔고.”
“아, 네! 저희가 처리할게요.”
그 다음으로 쥐에 대해 질색했던 도경을 보고 말했다.
“일단 전기선 이어붙이는 건 도경이하고 인아가 있어야 되는데, 창고 싹 비웠으니 같이 가서 수리 좀 하자.”
“우… 네.”
쥐 나온 것 때문에 아직도 겁이나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그리고 은지랑 에밀리, 나니카 같은 경우는 아까 바깥 청소하면서 구석구석 살펴서 쥐가 들어올수 있는 벽의 돌틈이나 지지대 같은게 있는지 확인하고, 보이는 즉시 다 틀어막아!”
“그걸 저희가요?”
“보루 쑤셔넣고 철판 실리콘으로 덧대면 될거야.”
그렇게 가야팀, 인아팀, 은지팀으로 식량을 노리는 야생동물과의 싸움이 준비됐다.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하고, 여기서 틀어막지 못하면 또 다시 쥐떼가 뭘 뜯어먹어 지금의 삶을 개박살낼지 모른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왼팔에 갑갑한 붕대를 풀려고 했지만, 마리가 기를 쓰고 말렸다.
안 그래도 쥐 방역을 하는데, 쥐똥이나 털이 상처에 묻는 순간 뭔 상황이 벌어질지 장담 못 한다고 했다.
그렇게 각자가 하는 일을 돌아가면서 지켜볼 때, 김준이 보조를 해줬다.
“전선 이걸로 써.”
“어머, 엄청 많네요?”
“예전에 은지랑 다녀올 때 가져온 거.”
“…아!”
미용실 털어서 거기 도구들 챙긴 다음에 보일러 뜯고 전선 죄 잘라다가 가져왔었는데, 그게 유용하게 쓰이게 됐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대 전선 설치는 스태프들이 해주고, 그녀들은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받으면서 공연 무대를 기다렸다.
근데 지금은 자신들이 그 스태프들처럼 전선을 새로 설치하고, 테이프를 감으면서 수리까지 직접 하고 있다.
김준은 그 상태를 지켜 보면서 조용히 보조 장비를 건네줬다.
“이걸로 고정시켜서 못 뜯게 하자.”
PVC 파이프 안에 전선을 모두 담으라고 한 다음 끝에 빠져나온 선들도 청테이프로 감싸서 다시는 쥐가 못 갉아먹게 막아놨다.
“후우”
“다들 물러나 있어. 내가 켜 볼게.”
아이들이 얼마나 잘 만들었을지 테스트를 위해서 스위치를 올린 순간, 잠잠하다가 바로 발전기가 움직였다.
위이이잉 이이이이잉
“아, 돌아간다!”
“됐다! 됐어!”
도경과 인아는 자신들이 직접 고쳐본 발전기를 보고서 서로를 안고 방방 뛰었다.
김준 역시 엄지를 올리고는 방음 박스를 덮고, 끊어진 전선을 이은 관정 펌프까지 돌렸다.
위이이이이잉
관정펌프가 다시 돌기 시작하면서 물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김준은 다들 고생했다면서 칭찬해 주고, 소주 한 병을 꺼내 창고 근처에 뿌려 청소한 곳을 마지막으로 세척했다.
“됐다!”
“어휴~ 이제 좀 씻을 수 있겠다.”
밥은 적게 먹어도 씻는 것이 더 우선순위인 여자애들이었고, 바로 2층과 3층 옥탑방으로 올라가 샤워를 하려고 향했다.
김준은 남은 자리에서 피식 웃으며 밖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태웠다.
“나무 좀 잔뜩 구해야겠다. 정미소도 찾아봐야 하고.”
김준은 다음 루팅 리스트로 목재, 도정기, 쌀통, 그리고 쥐?을 만들 철사틀 등의 각종 장비를 찾아보기로 했다.
일단 재료만 있으면 어떻게든 만들 수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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