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98 우리는 너무 풍족하게 놀았어.
* * *
크리스마스 기념이라고 달라붙어서 엉망진창으로 섹스했던 밤.
그러면서 김준이 아침에 일어났을때, 두 미소녀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얘들 어디갔어?”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을 짚은 순간 후들거려서 자빠질 뻔했다.
이게 아이돌인지 서큐버스인지 새벽까지 물고빨고 하면서 쥐어쨔낸 다음에 다같이 침대에 잠들었는데, 눈뜨니 안 보인다.
김준은 욕실에서 씻은 다음 천천히 머리를 말렸고, 그때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열렸어!”
덜컥
문이 열리며 마리가 들어왔다.
“오빠, 메리 크리스마스~♥”
“어, 그래. 크리스마스야.”
오늘은 성스러운 크리스마스.
그 상황에서 집주인인 김준을 치료하러 온 마리는 안으로 들어오며서 얼굴이 발그레해진 상태였다.
“자~ 치료해드릴게요.”
“앗, 따가! 천천히…”
오자마자 붕대를 푸는데, 통증이 확 올라와서 순간 비명을 지른 김준.
마리는 붕대를 풀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음?!”
“왜 그래?”
붕대를 다 풀고, 하던 대로 드레싱이 아니라 별안간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리를 보고 김준이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 대신 김준의 팔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킁킁거리다가 뭔가 이게 아니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마리.
그리고는 뭔가 이상한 냄새를 찾고서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쓰레기통 앞에서 멈췄다.
“야, 뭐하냐?”
“흐으음.”
마리는 쓰레기통 앞에서 쪼그려 앉아 냄새를 맡다가 바로 뚜껑을 뽑아 코에 댔다.
그리고 쓰레기통 안에 가득 쌓여있는 휴지뭉치를 보고는 킁킁 거리다가 바로 뚜껑을 덮었다.
“흐으음.”
“….”
“역시 그랬구나?”
마리는 쓰레기통 앞에서 냄새를 맡은 다음 김준에게 다가와 치료를 했다.
주변의 냄새를 맡고서 조용히 할 일을 하는 마리를 보고서 김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찢어진 상처를 소독하고, 꿰맨곳을 빨간약 바르면서 새 거즈를 두르고 감쌀 때 그제야 마리가 입을 열었다.
“오빠, 이거 냄새가 왜 이러지?”
“무슨 냄새?”
“흐으응, 막 올라오는게 있는데요?”
들어오자마자 계속 킁킁거리고, 모르는 척 하니 노골적으로 말하는 아가씨….
김준은 그 상태에서 그냥 웃었고, 마리는 그 얼굴을 보고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라고… 그 몸으로 했어요?”
“어?”
“딱 봐도 누구랑 한거 같은데… ‘그거’ 냄새 확 나요.”
마리는 다 안다는 듯이 이야기 하면서도 김준의 좌반신 상처 드레싱을 꼼꼼히 했다.
그동안 한 두명과의 관계때는 몰라도 이제는 알 거 다 아는 애들이니 서로가 ‘나 말고 어떤 년하고 한 거지?’라는 미묘한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앞으로 1주일은 지나야 다시 팔 움직여요.”
“아, 그래. 그동안 안나갈게.”
“그 …크리스마스 오늘 지나고 1주일이면, 새해….”
“?!”
김준이 눈을 크게 뜨자 마리는 그것을 노렸다.
크리스마스의 밤은 누군지 모를 년이 김준의 방에 가서 거하게 섹스했지만, 새해만큼은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제스처를 보낸다.
이를테면 예고 섹스인데 아무래도 그날은 의무방어전이 될 것 같았다.
상처 드레싱을 다 끝내고, 밖에 나온 김준은 서성이는 아이들을 보고서 물었다.
“아침부터 다들 왜 그래?”
“오빠, 물이 안나와요.”
“그게 뭔 소리야? 아까까지 씻고 나왔는데.”
가야의 말에 김준은 바로 욕실로 가서 호스를 틀었으나 정말 깜깜 무소식이었다.
분명히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맑은 지하수가 나왔는데, 뭔가 이상했다.
“지금 밑으로 인아랑 도경이가 내려갔거든요?”
“관정에 문제 생겼나?”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꺄아아악!”
“이, 이쪽으로 오지마! 꺄아아악!!!”
“!?”
김준은 집 안까지 울리는 두 아이돌의 비명에 반사적으로 장롱으로 가 무기를 꺼냈다.
다른 애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잔뜩 긴장한 상태로 쩔쩔 맸고, 은지가 먼저 문을 열어 바깥을 살펴봤다.
“뭐야?”
“어, 언니! 여기!!! 꺄아아아!!!”
그 순간 바로 김준이 뛰쳐나갔고, 은지와 가야, 에밀리 등이 황급히 따라나갔다.
두 소녀가 패닉 상태로 발을 동동 구르며 나왔다가 김준을 보고 와락 안겼다.
주변을 봐도 좀비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었는데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이 뭔가 못 볼 걸 본 거 같았다.
“아니, 대체 뭔데 다들 이래?”
“차, 창고안에… 창고에…!!!”
도경이 그 큰 덩치로도 덜덜 떨면서 말을 못 잇자 김준은 뭔가 싶어 문을 열었다.
“오빠! 쥐….”
“뭐?”
“쥐, 쥐쥐쥐!!!!”
“…안에 쥐가 있어?”
쥐라는 말에 다른 아이들도 흠칫하면서 놀라했다.
이 중에서는 좀비를 석궁이나 새총으로 쏴서 대가리를 깬 애들도 있는데, 쥐라는 말에도 어쩔 줄을 몰라하는게 뭔가 웃기면서도 심각했다.
김준이 일단 도끼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캠핑카 발전기 전선하고, 관정 펌프 쪽이 망가져 있었다.
“아, 씨발….”
쥐가 전선을 갉아먹은 것도 모자라 쌀가마니가 가득 쌓여있는 상황에서 바닥에 쥐똥이 보였다.
하필이면 먹는 게 가득한 곳에서 오염이 된 상황에 김준이 안을 뒤적거린 순간 그의 몸에 쌀이 쏟아졌다.
좌르르르륵
“!”
도정처리가 안된 껍데기 쌓인 쌀들이 와르르 쏟아지고, 쌀가마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있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이건 조졌다고 생각했다.
“개 씨발!”
쾅!
김준이 열받아서 벽을 친 순간 쥐 한 마리가 빠져나갔다.
쾅 쾅
찌익 찍찍
밖에서는 김준이 욕을 하면서 쥐 우는 소리가 들리자 도경과 인아는 직감적으로 피했다.
“엄맛, 쥐! 쥐!”
“뭘 그렇게 무서워하고….”
그 상황에서 은지가 차분하게 근처에 있는 쇠파이프를 하나 들고서 이리로 빠져나오면 잡으려고 준비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도끼에 피가 잔뜩 묻어있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기겁했다.
“후우, 하나 잡았다.”
“엄맛! 이쪽으로 오지 마요!”
김준은 락스 가져오라고 한다음에 도끼를 씻어내고 집게로 쥐 시체를 건져다가 그대로 담벼락 너머에 던졌다.
아침부터 이런 상황에 멘탈이 나갈 법한 일이었고, 결국 그날 아침은 생수 가지고 라면이나 끓여먹으면서 모두가 씻는 걸 보류했다.
“밥 먹고 안에 살펴봐야 되는데… 후우….”
“쥐가 얼마나 파먹은 거에요?”
아침의 소란을 뒤늦게 들은 라나나 마리 등이 물었을 때, 김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은지가 안을 살펴봐서 상황을 말해줬다.
“쥐가 전선 다 갉아먹었어. 그리고 우리가 먹는 쌀도… 다 버렸어.”
“어머, 어떡해?”
그동안 창고에 음식을 푸짐하게 쌓아놨었는데, 잘못하면 그걸 다 버리게 생긴 일이었다.
“쥐 파먹은거… 그래도 좀 씻어서 쓰면 되지 않나?”
에밀리가 물었을 때, 다른 애들은 정색하면서 그녀를 노려봤고, 찜찜함 속에서 마리가 설명했다.
“그러다 큰일 나! 백신도 없는데 페스트나 유행성 출혈열 어떻게 할 거야?”
“그렇게 위험해? 끓이면 바이러스 사라지지 않나?”
“야! 쥐 파먹은걸 사람이 먹다가 다 주저앉아!”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의료 인프라고 뭐고 죄다 주저앉은 지금에서는 안에 있는 쌀들은 죄다 오염된 거였다.
게다가 쌀도 쌀이지만, 전선 갉아먹은 것들 복구하려면 진짜 쉴래야 쉴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식사 끝나고 다들 모여. 오늘은 8명 전부 다 일해야 돼.”
“으으, 쥐가 또 있는 거 아니겠죠?”
“아까 준이 오빠가 잡았어.”
“그거 한 마리잖아!”
그동안 전선 설치나 배선등을 가르쳤던 애가 인아랑 도경인데, 하필 둘이 쥐를 정말 무서워해서 안에 들어가기도 꺼려했다.
“미친, 좀비도 잡았으면서 뭐 쥐 가지고….”
에밀리가 정 그러면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말했고, 은지 역시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제가 도울게요.”
“어, 그래.”
***
그렇게 모두가 모여서 창고 앞에 갔을 때, 김준은 마스크와 장갑을 단단히 차고서 일단 지난번 가져온 소화기 개조시킨 분사기를 인아에게 채웠다.
“정 안에 못 들어가겠으면, 바깥 주변 한번 쫙 뿌려.”
락스를 가득 채운 분사기로 주변을 청소하라고 말한 김준은 가야에게 바깥을 맡겼다.
“은야가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싹 치워. 그리고 나라랑 나니카도 빗자루 들고.”
“아, 네! 다들 모여. 바깥쪽 씻자.”
그리고 힘을 쓰는 용도로 도경과 에밀리를 부르고 말했다.
“지금부터 멀쩡한 쌀은 다 빼내야 하니까 내가 꺼낸 것들 날라서 차 옆에 갖다 놔.”
“오케이!”
“네, 그럴게요.”
“마리는 2호 창고 안에 보면 지난번에 지물포에서 가져온 장판 있어. 그거 가져다가 여기 펼쳐놔.”
“아, 네!”
하나하나 일을 시킨 다음 김준이 은지와 같이 들어갔다.
적막이 가득한 창고 안에서 김준은 일단 쥐가 안 파먹은 쌀가마니들을 분류해서 그걸 꺼냈고, 에밀리와 도경이 낑낑거리면서 쌀을 옮겼다.
그렇게 아이돌들이 노가다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김준도 창고를 전체적으로 청소하려 했다.
“어머, 이것도….”
“아, 씨발 진짜….”
쥐새끼들이 얍살하게도 안쪽에 있는 쌀들을 골라 파먹었다.
덕분에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다 빼내야 했고, 안에 있는 모든 쌀들을 전부 빼내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풍족하게 살아온 물자의 바탕인데, 이런 식으로 아까운 쌀들을 죄 버리게 될지는 몰랐다.
‘그동안 신경 안쓴것도 있지….’
쥐가 파먹은 쌀은 총 네 가마였고, 다 합치면 100kg도 넘는 양이었다.
에밀리 말대로 적당히 씻어서 그냥 먹기에는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엔 피같은 물자였다.
“마리야!”
“네, 오빠! 장판 다 깔았어요.”
“이거 바로 뿌려!”
“네?”
김준은 쥐가 파먹어 쌀이 줄줄 떨어지는 가마니를 질질 끌어 마리가 펼친 장판에 올려놓게 했다.
그리고 안에서 또 다시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찌직 찍!
“어머, 저기!”
안에서 또 쥐 소리가 들릴 때, 김준이 바로 잡으려는 순간 은지가 먼저 달려들어 쇠파이프로 두들겨 댔다.
쾅 쾅
“저깄다! 저기!”
은지가 휘두르지만 재빠르게 도망치던 쥐가 바로 창문의 전선을 타고 올라가 밖으로 빠져나갔고, 약을 치던 인아의 비명이 울렸다.
“후우”
당분간은 진짜 좀비가 아니라 쥐와의 전쟁을 해야 될 것 같았다.
지금은 쥐 하나지만, 이러다가 바퀴벌레나 쌀벌레나방 등이 꼬여서 소중한 식량을 죄다 작살내기 전에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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