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96화 (96/374)

〈 96화 〉 96­ 새해 준비.

* * *

집에 들어온 김준은 마리에게 한 소리 들으면서 다시 수술에 들어갓다.

“아~ 진짜….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아요?”

“아 됐어. 안 베였잖아.”

“겨우 꿰멘 건데 다 터졌어요. 게다가 위에 아대 작살난 거 보니까 진짜 위험했잖아요!”

마리의 말대로 그동안 튼튼하게 차고 다니던 아대가 제일파 조폭들이 휘두른 칼을 막겠다고 뻗었다가 두쪽으로 덜렁거렸다.

“시저랑 타이.”

“그냥 가위랑 실이라고 해.”

옆에서 마리 보조를 하는 은지가 소독약으로 세척한 수술 가위랑 의료용 실을 그녀에게 건넸다.

의사 마리에 간호사 은지로 왼팔에 수술을 받는 김준은 마취 없이 쓰린 상황에서 버티고 있었다.

“2주는 더 있어야 될 거에요.”

“그래.”

마리는 상처의 실을 다 뽑아내고 알코올로 소독해낸 다음, 다시 타이로 꿰맨 다음 붕대를 단단히 감았다.

“후~ 당분간은 쉬어야 겠다.”

“크리스마스도 곧 나오는데.”

“니네들끼리 먹어.”

“네?! 그런 게 어딨어요?”

마리는 자신이 치료하고서 김준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오빠!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여기서? 뭘 어떻게 하려고….”

“….”

김준을 연신 보면서 실망감이 가득해 하는 마리, 은지는 그 상황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날 내가 인아랑 같이 케이크라도 만들게. 오빠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아니 나는 뭐 딱히….”

김준은 지난번 은지 생일이나, 모두가 멘탈 나가서 사냥해서 꿩이랑 오리 잡아먹던 회식때 아니고서야 지금은 그냥 시큰둥했다.

분명 크리스마스는 좋은 날이지만, 몸상태에 지금의 바깥 상황을 생각하면 그다지 챙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김준의 그런 마인드에 실망한 게 마리 하나 뿐이 아니었다.

“노잼이겠네.”

“뭐, 얼마나 큰 파티를 하려고?”

“그래, 얘들아. 사실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그날 모여서 맛있는거 만들어 먹으면 돼!”

김준이 ‘크리스마스는 대충 제낀다.’ 라는 말에 실망한 것은 마리와 라나, 그리고 나니카, 도경 등이었다.

넷의 공통점은 김준하고 격하게 섹스 하는 사이이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기대는 애들이라는 것.

크리스마스라고 맛난 거 잔뜩 만들어서 먹고, 다같이 모여서 파티도 하고, 그날 밤에 김준의 안방에 들어가려고 하는 마음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겨우 나아가던 팔이 다시 상처가 터져서 아예 천으로 묶어 고정 시킨 김준의 몸상태를 보고서 그건 안 될 것 같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남친처럼 오붓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하고 싶다. 하고 싶어!’

‘아니야. 그때 되면 또 어떤 년이 먼저 선수 칠지 몰라!’

‘하아, 오빠….’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아이들의 시선을 눈치 못 챈 김준은 조용히 오른손으로 밥을 먹으면서 물었다.

“크리스마스 되면 그 전에 니들끼리 먹고 싶은거 있으면 만들어.”

“오빠는요?”

“난 괜찮아. 차라리 새해가 되면 그때 떡국이나 먹자.”

“아, 떡국!”

은지와 인아가 모두 손뼉을 쳤다.

“근데 그거 만들 수 있나?”

“쌀이 많이 있으니까 가능해요. 시간 좀 걸리겠지만.”

“그래, 뭐 못 만들면 저번처럼 만두 만들어서 그냥 국끓이지 뭐.”

김준의 오더를 받은 인아와 은지는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소사벌에서 황여사 일행을 이사보낸 뒤로 이제 집에서 뭐 할 것도 없으니 조용한 삶이 계속 됐다.

가끔 맛있는 냄새가 나면 식사 시간인 거고, 아닐 때는 바깥에 나가 담배 한 대 태우면서 창고와 돌아가는 기계들을 한 번씩 둘러봤다.

[웅­ 웅­ 우우웅­]

“후우­ 무소음으로 어떻게 안되려나?”

지난 날 두 차례의 좀비무리 습격 이후로 캠핑 발전기가 문제라고 추정한 김준은 돌아가는 발전기들을 위해 전부 방음 박스를 만들어서 덮어놨다.

덕분에 발전기와 집열판을 풀로 돌리면서 그 옆에 쿨러를 달아서 핫 박스를 식히고 있었다.

“여긴 괜찮고, 물도 잘 나오고, 다음은….”

지난번 루팅 다녀온 뒤로 기름이 너무 쌓여서 드럼통을 몇 개 가져와서 바깥에 추가로 기름 창고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도 몸이 다 나아야 가능했다.

뒤꼍을 한 번 돌고 1층 상가 안으로 들어가 안에서 히터로 봄 날씨를 만들어 실내 재배로 자라고 있는 야채들이 보였다.

김준은 물뿌리개를 들고서 주변 화분에 하나하나 뿌려줬고, 밖으로 나와 캠핑카를 열고 앉았다.

품 안을 뒤적거려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햇빛 따사로운 한가한 날의 담배 한 대의 여유를 가지는 김준.

그러고보면 크리스마스가 되가는데 날씨 자체가 참 이상했다.

겨울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고, 좀비 사태가 일어난 이 날씨에 눈이라고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가을 정도의 날씨로, 체감 온도는 3~4도 정도였다.

보통 물린 인간이 좀비가 될 때 영화나 만화를 보더라도 날이 추워지고 눈이 쌓이게 되면 느릿느릿하던 놈들이 얼어죽을 줄 알았는데, 그런 상황이 없어졌다.

“진짜 이상기온인가?”

바깥의 물자들은 썩어들어가고, 처리한 좀비들도 시간이 지나면 녹아내려 사라진다.

그 상황에서 날씨도 정상이 아니어서 매일이 봄이나 가을같았다.

그 덕분에 좀비는 계속 움직일 수 있고, 저들이 어떻게 나온지도 전혀 몰랐다.

예전에 좀비가 터지기 전에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서 ‘혹시 사전에 이상한게 있었냐?’ 라고 물어봤을때도 다들 아는게 없었다.

다만, 나니카가 ‘이상할 정도로 해일이나 지진, 태풍등의 자연재해가 많았었다.’라는 말이 하나였을뿐.

“진짜 무슨 환경 이상으로 생긴 재앙인가?”

홀로 중얼거리며 추론을 했지만, 기계 머리는 있어도 과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김준이다.

그리고 환경이상하고 죽은 시체가 좀비가 되어서 깨어나 인간을 습격하는거하고 무슨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김준은 줄담배를 태우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일어났고, 캠핑카 안을 한 번 손 보면서 오물을 비우고 물을 채워 넣었다.

***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던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을 때, 김준은 평범했던 아침과 점심과 다르게 엄청난 진수성산이 펼쳐졌다.

“와….”

“그레잇!”

“미친! 완전 대박!!!”

식탁 펼치고, 음식 세팅하면서도 연신 대박을 외치는 라나와 에밀리, 도경 삼인방.

인아와 은지가 같이 만들고 마리나 가야 등이 보조했던 음식들이 하나하나 드러났다.

먼저 인아가 코코아와 탈지분유로 만든 초콜릿 크림 케이크.

지난번 은지 생일 때 가져온 유회제로 식용유와 같이 만든 모조치즈에 버섯, 깻잎, 올리브 통조림, 감자, 케찹, 햄 등으로 만든 피자.

그리고 명국네서 가져온 닭고기 남은걸로 깐풍기에, 빵까지 잔뜩 구워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렸다.

“마지막으로…”

뻥­

코르크 마개를 낑낑거리며 돌려 뺀 가야가 와인을 열고 김준에게 먼저 한 잔 따라줬다.

부상당한 몸이어도 이런 날은 빠질 수 없었고, 한 잔 들어올리자 모두가 잔을 채우고 들어올렸다.

“다들, 이곳에 살면서 잘 지내왔어.”

“….”

“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건배를 나누고서 각자가 와인을 곁들이며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그동안 잘 안 쓰던 TV를 켜고서 DVD 목록 중에서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영화를 틀었다.

“어머, 저거?”

“그렇지! 크리스마스에는 케빈이지!”

옛날에 길거리 노점상에서 1+2 합본 4천원 주고 샀던 [나 홀로 집에 시리즈].

오랜만에 틀어진 TV에서 영화가 나오고 모두들 음식을 먹으면서 영화에 빠졌다.

개봉한지 2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모두가 배꼽빠지게 웃고, 눈물을 뽑아내면서 나름대로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는 순간이었다.

특히 김준의 양 옆에 앉은 이들은 라나와 에밀리.

그들은 김준의 몸에 착 달라붙어있었다.

에밀리가 잽싸게 김준의 오른팔에 붙어서 연인처럼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고, 계속 가슴이 닿고 있는데 즐기듯이 팔을 슬며시 안으로 당겼다.

그리고 왼팔에 기댈수는 없고 다른 자리를 찾던 라나는 슬며시 누워서 김준의 무릎에 누웠다.

김준은 핫팬츠 차림에 올림머리 소녀를 보면서 귀를 가리는 옆머리를손가락으로 꼬거나 뺨을 만지면서 영화를 봤다.

그 상황을 질투하는 마리나 도경 등이 있었지만, 그녀들은 한 번 잡은 자리를 절대 떠날 생각이 없나보다.

“자~ 추가로 드세요”

은지는 다른 아이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계속 주방을 오가면서 갓 만든 감자튀김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은지야, 너도 앉아서 이제 먹어.”

“네~ 만들던건 다 만들고요.”

“안 그래도 되는데.”

은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스킨십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것과 다르게 음식만 묵묵히 만들었다.

그리고는 잠깐 옥탑방에 올라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을 가져왔다.

“다들 이거 받아.”

“어머! 이거 뭐야?”

“와, 예쁘다.”

그동안 은지가 집 안에서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만들어냈던 물건들.

빨간색 털실로 뜨개질을 해서 만든 산타모자 여러벌, 조끼, 장갑, 목도리 등이었다.

“우와~ 이거 직접 만든거에요?”

“어우, 부드럽다. 은지 고생했겠다.”

“언니, 진짜 고마워요!”

은지는 다른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선물을 주고 김준을 향해서도 건넸다.

“지난번에 인아가 힘들게 만들었는데 찢어진거… 버릴 순 없잖아요?”

“음?”

은지는 칼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스웨터의 소매 부분을 잘라내고 가운데를 잘라 단추를 달아서 조끼로 개량해서 김준에게 건네줬다.

“어, 고맙다.”

“인아가 만든건데요. 뭐, 저는 수선만 했지.”

“저기, 너도 한 번 써봐!”

테이블에 올라온 산타 모자 하나를 가지고 은지의 머리에 씌워주자 그녀는 자신이 만들고도 한 번 어루만지다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오빠.”

“고맙긴, 네가 고생했지.”

그러면서 그녀의 하얀 두 손을 잡으려고 했을 때, 무심코 몸을 빼낸 은지는 다시 음식 만들러 간다고 거실로 갔다,

순간 무안해진 손을 두고 에밀리와 라나가 잡아줬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와 모두가 사진을 찍고, 이 날은 절대 잊을 수 없다면서 나오는 것들을 사인펜으로 날짜를 적어 벽 여기저기에 붙이는 은지였다.

다른 애들이 김준하고 어울리는 건 몰라도 이 자리에 모두가 모여서 찍힌 사진을 더 좋아하는 그녀였다.

***

그날 밤은 모두가 위스키다 와인이다 소주다 잔뜩 마시고 들어갔다.

남은 그릇들을 정리하고, 겨우 청소가 끝나서 올라가는 은지와 인아.

그리고 취해서 먼저 올라간 도경이나 가야.

김준도 이제 자기 전에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생수를 꺼내 들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확 끌어안았다.

“!?”

“흐응~”

등에서 느껴지는 풍만한 감촉, 그러면서 와인향이 나는 입김이 귀를 간질긴다.

“이 가슴은… 에밀리!”

“Yes I am….”

뒤에서 안고 등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바로 그녀를 알아본 김준.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성스러운 밤을 생각하는 것 같아서 냉장고를 닫고 일어난 순간 그 앞으로 누군가 달려와 확 안겼다.

“오빠~”

이번에는 라나였다.

산타모자에 핫팬츠, 거기에 탱크탑 차림으로 향수 냄새를 풍기는 라나의 품에 앞뒤로 톱 아이돌들이 부비대는 행복이 느껴졌다.

김준은 그녀들을 안으면서 피식 웃고는 조용히 물었다.

“크리스 마스 몇 분 남았지?”

아무래도 남은 시간은 성스러운 밤으로 끝내줘야 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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