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91 좀이 너무 쑤셨어.
* * *
수술 이후 사흘 정도 지났을 때 김준의 몸 상태는 지옥과 더 큰 불지옥을 오갔다.
처음 잠들었다가 일어난 순간 고열에 시달리고, 마리가 확인하자 수술 이후 상처 때문에 열이 오르는 거라고 항생제와 해열제를 같이 처방해줬다.
그리고 이틀 동안 죽만 먹으면서 끙끙 앓다가 겨우 나아지니 이번엔 상처 부위가 가려워서 긁다가 터진 곳에서 피가 계속 배어 나왔다.
연달아 드레싱 하면서 긁지 말라고 해도 도저히 못 참을 정도라 이 상황에서 덧나지 않을까 다른 아이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똑똑
“들어와.”
철컥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리자 들어오라고 한 김준.
그리고 구급상자를 들고 은지가 조용히 들어온 것을 보고 김준의 눈이 커졌다.
“음?”
“오빠,아침에 상처 드레싱 하러 왔어요.”
“마리가 아니라... 은지 네가 하려고?”
“한번씩 해 보기로 했어요. 응급처치 배운 것도 있고.”
지난번 가야가 말한 것도 그렇고, 마리가 다른 톱스타들에게 하나씩 가르쳐 주는거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때 할 CPR, 찢어지거나 갈린 찰과상과 자상에 대비할 지혈법, 그리고 상처에 대해 소독하는 드레싱법, 골절 등에 부목을 대고 고정하는 압박법.
그것을 가르쳐 주면서 김준의 몸을 치료할 때마다 다른 아이들을 불러 가르쳐 주더니 하나씩 시키려는 것 같았다.
어쨌건 마리 대신 은지가 나와서 붕대에 붙은 반창고를 떼면서 천천히 풀었고, 피와 고름이 가득 묻어나얼룩이 가득한 거즈를 하나하나 뜯어냈다.
“아, 오빠. 참고로 저 손 소독약으로 씻었어요.”
“어쩐지 소독약 냄새가 확 나네.”
소독까지 철저히 한, 은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쓴 내가 확 나고 있었다.
은지는 김준 몸의 상처를 한 번씩 약솜으로 찍어본 다음 코에 대고 킁킁 거렸다.
“뭐 해? 그걸 왜 맡아?”
“상처 주변 누렇게 올라오고 비린내 나면 바로 말하래요.”
“야,내가 무슨 생선이냐?”
“상처 덧나면 그런 냄새 나요.”
은지는 마리가 알려준 대로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상태를 체크하고, 구급 상자에서 알콜 솜을 핀셋으로 집어 꿰맨 부분을 소독했다.
처음에는 수술 이후로 정말 쓰라려 죽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견딜만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왼팔을 움직이는 것도 아직까지 통증이 있었지만, 상처가 나아 간다는 것은 느껴지고 있었다.
은지는 알콜 솜으로 씻어낸 다음 아이오딘을 꺼내 천천히 상처 주변을 발랐고, 그 위로 새 거즈를 올려서 드레싱을 끝낸 은지는 사용한 붕대와 거즈를 치우고 조용히 일어났다.
“오늘 아침은 뭐야?”
“볶음밥이요.”
“오~”
김준은 드레싱이 끝난 팔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식사 준비를 했다.
이후로 김준은 상처를 치료하면서 작업을 하나하나 맡기 시작했다.
나흘 째가 됐을 때, 드레싱하러 온 것은 에밀리였고, 닷새 째가 되어서는 라나가 치료를 해 주면서 점점 꿰맨 곳이 붙고, 살이 올라오는 것을 확인한 김준은 이제 슬슬 움직일때가 됐다고 확신했다.
처음에는 손가락 움직이는 거 빼고는 팔을 흔들거나 굽히는 것도 안 될 정도였지만,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러버를 창문 틀에 매달아 길게 당기면서 천천히 재활 준비를 했다.
“오빠, 그거 지금 하면 안 돼요!”
“뭔 소리야?움직여야 빨리 낫지.”
“아직 1주일밖에 안 됐어요! 며칠 더 지나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요!”
마리가 기겁하면서 말리자 김준은 좀 더 움직여 보려고 했다가 흔들거리는 왼팔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계속 지날수록 움직이는 것은 점점 익숙해졌고, 달력을 본 다음 약속한 2주 안에 떠나는 건 문제 될게 없었다.
“그 전에 차 좀 고쳐야 되는데.”
“그 팔로요? 큰일나요! 잘못해서 범퍼에 좀비 피나 기름때 같은게 상처에 닿으면...”
마리가 다시 한번 말리자 김준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안에서 운동을 하는 도경과 라나를 보고서 생각하다 말했다.
“야, 니네들.”
“?”
사이클과 런닝머신을 뛰던 아이들이 땀을 닦으면서 김준의 부름에 내려왔다.
“잠깐만 다들 나와 봐.”
“네?”
***
“그렇지! 거기 부분을 당겨! 양쪽! 양쪽!”
“끄으으윽!”
끼기기긱 끼릭 끼릭
도경이 낑낑 거리다가 내리자 찌그러진 범퍼 안쪽의 너트가 풀리면서 한쪽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김준의 말대로 양쪽을 다 풀라는 말에 반대로 달려가서 똑같이 안쪽에 렌치 스패너를 꽂고 그대로 힘줘서 당겨냈다.
그동안 아이돌들 두고 일을 시켰던게 화분 가꾸기나, 나무 베기, 파이프 설치 등을 맡기면서 별별 작업을 다 시켰었는데, 이젠 자동차 정비까지 가리켰다.
“안에 다 풀렸으면 덜렁거리는거 그냥 빼 내면 돼.”
“잠깐만요, 끄응 이걸 잡아서.”
“야, 그거 혼자 하면 안 돼!”
김준이 바로 가서 도경의 옆에 오른팔로 받쳐줬고, 다른쪽을 손보던 마리와 라나도 달려와 네 명이서 차량 범퍼를 붙잡고 그대로 당겼다.
“읏 차!”
끼긱 끼기긱
안쪽에 박살 나서 덜렁거리던 프론트 범퍼가 힘으로 당겨지면서 쑥 뽑혀 나왔고,
금이 가고 깨진 부분이 분리되자 그대로 보였다.
“이것도 그냥 버리지 말고 재활용을 해야 되나?”
갈라진 부분은 실리콘으로 붙이고, 찌그러진건 두드려 펴낸 다음 앞에 붙어있던 금속 외부 범퍼는 잘라내서 새 부품에 붙일 생각이었다.
“전면 유리도 끼워야 되는데 안에 싹 긁어내야 돼.”
“저걸… 저희가요?”
“안쪽에서 내가 할게.”
내부의 유리조각 제거나 실란트를 긁어내고 캠핑카 안에 있는 새 유리를 가져다가 붙이면 될 일이었다.
김준이 몸만 멀쩡했다면 애들 데리고 기계 붙여서 몇 시간이면 끝날 일이었는데,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하려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
“후우”
김준은 샤워를 마치고 좌반신을 칭칭 감았던 우비를 풀어냈다.
상처에 뭐라도 묻으면 큰일나니 나름대로 만들어낸 자구책이었다.
오늘의 밤도 집 안에서 이것저것 작업을 하다가 아이들 시켜서 어떻게 앞유리까지는 붙여서 교체를 끝냈다.
내일이면 확실히 옆 유리 교체하고, 제일파의 오토바이 습격 같은 것을 대비하기 위해 차량 외부에 추가 무장을 구상했다.
지난번 마리때도 그랬지만, 몸 조금 다쳤다고 누워있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1주일 동안 이리 앓고, 저리 앓는 상황에도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서 상처는 점점 낫고 있었다.
“아이고~ 피곤해라.”
일을 하면서도 점점 좀이 쑤셨고, 샤워를 마친뒤로 침대 옆 의자에 앉아서 캔맥주나 하나 때리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맥주 못 본 지도 오래됐고, 나중에 이 삶이 끝난다면 정말 시원한 생맥주에다가 삼겹살 구워서 한 쌈 싸서 입에 넣고 쭉 들이키고 싶었다.
“후우”
드러눕고 있으니 나는 건 술 생각이라고, 금주까지 하고 있으니 좀이 쑤셔 미칠 지경이었다.
늦은 밤 방 안에서 담배나 한 대 태우려고 뒤적거린 순간, 노크가 있었다.
똑똑
“아, 들어와.”
오늘 밤에도 자기 전에 드레싱 할때가 돼서 찾아오는 아이돌이 있었고,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건…
“오늘은 제가 치료 하게 됐어요.”
“아, 그래. 은야야.”
가야가 구급상자를 들고와서 의자에 앉아있는 김준을 보고 슬며시 그 옆 침대에 앉아서 치료 준비를 했다.
김준은 직접 붕대를 뜯고, 상처를 보였다.
이제는 고름도 많이 빠졌고, 유리조각에 찔린 상처에는 딱쟁이가 슬슬 올라와 자상 꿰맨 곳만 살이 붙으면 실밥을 뜯어내고 팔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가야는 구급상자를 열고 마리가 가르쳐준대로 드레싱을 시작했다.
그때 가야의 옆 모습을 보고 김준이 몸을 틀어서 슬며시 그녀의 찰랑이는 곱슬머리를 쓰다듬었다.
“!”
“머리 감촉 좋아.”
“잠깐만요. 이거 거즈 갈고요.”
옆에서 계속 만지작거리는 김준의 손길에 가야는 익숙한 일이라면서 붕대를 다 감아내고 피와 고름이 묻어난 거즈를 쓰레기 통에 버렸다.
“근데 오빠 팔이 그래서….”
“그냥 앉아봐.”
“….”
가야는 말없이 문을 잠그고 조용히 김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김준이 의자를 살짝 빼서 그녀를 무릎에 앉혔고 오른팔로 살며시 그녀를 안았다.
무릎에 앉은 채 품에 안긴 가야의 머리칼을 조용히 쓰다듬는 김준.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집 안에서 돌아다니는 아름다운 톱스타들을 보면서 안고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됐다.
가야도 갓 샤워를 마쳤는지 말린 머리에서 은은한 샴푸 향이 코를 간질겼다.
김준은 가야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등까지 손이 닿고 그 터치에 익숙해진 그녀는 김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조용히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있으니까 좋네.”
“…흐응, 네.”
싫은 상황은 아니었고, 가슴에서 숨소리가 작게 느껴질 때 김준은 슬슬 삘이 왔다.
“계속 이렇게 있을까?”
“네. 그래요.”
품 안에 안긴 상태로 가만히 있는 아이돌을 두고서 김준은 오늘 밤의 말상대로 그녀를 안으며 자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