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90 회복하는 기간.
* * *
긴급 수술에 들어갔던 김준이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보이고, 팔을 들었을 때 엄청난 통증이 뒤늦게 몰려왔다.
“어우, 죽겠다.”
고개를 움직이는 것만 해도 욱신욱신했고, 오른손만 겨우 움직여서 좌반신을 만져 봤을 때, 전체적으로 감긴 붕대가 드러났다.
“후우”
다행히 팔이 완전히 망가지진 않았나보다.
김준은 몸을 일으켜서 붕대가 감긴 왼팔을 보고 손가락을 천천히 구부려 보고, 통증 속에서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어디 못 움직이는 곳이 없는 지 확인했다.
그때 아침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깨 있어.”
덜컥
“어머나?”
문이 열리면서 들어 온 마리는 깨어난 김준을 보고서 손에 들린 의료상자를 보였다.
“나 몇 시간이나 잤냐?”
“12시간 지났어요. 아침 8시요.”
“후우, 수술은 잘 된거야?”
오자마자 상처를 보이고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던 김준.
그 상황에서 긴급 수술에 들어갔는데, 마리의 얼굴이 보이니 일단 살아난 것 같다.
“손가락부터 팔에 자상 6개에 쇄골까지 찔렸어요. 신경 다친 줄 알고 조마조마해서 타이 했다고요.”
“직접 꿰맸어?”
“그래도 저 실습생 시절 개복이나 타이는 해봤거든요?”
전문의 자격증은 안 따도 일단 면허는 가지고 있는 의사이니 문제는 없을 거다.
“이거.... 낫는데 얼마나 걸려?”
“4주 정도는 안정을 취해야 돼요.”
“4주? 너무 오래 걸리잖아. 나 2주 안에 다시 나가야 해서.”
“지금 상처 너무 커요. 수혈도 했고, 감염 문제로 소독도 계속 해야 한다고요.”
“수혈? 그건 또 어떻게 했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수혈을 하냐고 물어보자 마리는 김준의 오른팔을 걷어서 주사바늘 자국 위에 붙은 반창고를 보였다.
“인아랑 나니카가 O형이거든요. 급한대로 걔들 거 뽑아서 수혈을 했어요.”
혈액팩도 없고, 지정헌혈 기계도 없는 상황에서 마리가 선택한 방법은 지난번에 병원과 의료기기점에서 잔뜩 챙긴 ‘주사기’였다.
주사기 여러 대를 가지고 두 소녀에게 채취를 한 다음에 그것을 모아서 김준의 몸에 주사했고, 덕분에 몸 안에 두 아이돌의 O형 혈액이 돌게 됐다.
“애들이 고생했네.”
“뭐, 걔들도 푹 쉬고 있어요. 곧 아침도 가져올게요.”
“됐어. 먹으러 갈게.”
김준은 어차피 팔과 어깨 등의 상처가 전부이니 문제 없다면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 순간 바로 통증이 올라와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크윽!”
“괘,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한 다니까...”
“진통제 좀….”
“하나 드릴게요.”
김준은 마리가 챙겨준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으며 다시 몸에 중심을 잡고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아, 오빠!”
쉬고 있는 인아를 대신해서 은지가 아침 식사 만드는 것을 도와주던 가야와 도경이 달려왔다.
“몸 괜찮으신 거예요?”
“아 아!”
그러면서 팔을 잡는 도경을 보고 반사적으로 움츠린 김준.
“어머, 죄송해요!”
“상처 손대지 말라니까.”
마리가 도경에게 한마디 하고,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피가 배어나지는 않았고 꿰맨 곳도 괜찮았다.
“그러니까 스플린트를 하지.”
식탁을 펼치던 에밀리가 행주를 들고 거실로 나와 손을 씻으며 말했다.
“스플린트는 무슨, 어디 부러졌어?”
“그래도 꿰맨 다음에는 갖다대야 하지 않나?”
에밀리 역시도 팔 상태를 보고서 한 번 보더니 넌지시 말했다.
“준 오빠, 내가 A형이어서 수혈이 안 됐어. 미안해~”
“그래, 나 B형이야.”
원한다면 피뿐만이 아니라 뭐든 지 다 줄 수 있다는 식으로 김준의 품에 붙은 에밀리.
그리고 도경이 저년 또 꼬리친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아침 미역국인데 괜찮으시죠?”
어떻게든 자극적이지 않고 철분 보충을 할 수 있는 식단을 준비했고, 시금치, 땅콩조림, 감자볶음에, 달걀 등으로 알차게 만들었다.
식사 준비가 됐을 때, 어제 주사기를 돌아가면서 연달아 혈관을 찔러서 헌혈했던 인아와 나니카가 천천히 나왔고, 모두가 모여서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나마 오른 팔은 멀쩡해서 식사나 움직이는데 문제는 없는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보면서 김준의 왼쪽에 있던 라나나 에밀리는 그를 보고서 넌지시 물었다.
“여기 반찬 멀면 집어 드릴까요?”
“괜찮아.”
“그러지 말고~ 먹여줄게. 아~ 해봐.”
에밀리가 포크로 삶은 달걀 장조림을 꽂아 김준에게 건넸을 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일단 입을 벌려 떠주는 걸 받아 먹었다.
그 순간 눈치를 본 도경이 조용히 물을 떠서 김준에게 가져다 줬다.
“오빠~ 여기 물요.”
순간 수라상에 후궁들이 떠 먹여주는 황제의 사극이 떠 오른 김준이었다.
성가시긴 해도, 싫지만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그 모습을 보고서 묵묵히 밥을 먹는건 은지와 인아 정도였다.
마침 김준이 식사를 떠 먹다가 은지의 앞에 있는 꽁치 튀김을 보고 손을 뻗으려 했을 때 은지가 그릇을 들어 김준의 젓가락 앞에 대령했다.
“….”
“떠 드릴까요?”
“아냐.”
“제가 할게요!”
옆자리에 있던 도경이 잽싸게 집어서 가시까지 싹 발라내고 김준의 밥 위에 올려줬다.
식사를 마친 뒤로 김준은 팔을 움직이면서 직접 살펴봤다.
프로텍터가 아니었으면 아예 팔을 못 쓰거나 다른 곳을 찔려서 끝장났을 몸,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할 일은 해야 했다.
김준은 어제 챙겨온 물건들을두고 그 중에서도 무기와 같이 가져온 경찰복과 방검복들을 모두 꺼내고 은지에게 요청했다.
“이거 말이야. 어깨에 붙은 견장하고, 이름표 다 떼고, 경찰 붙은 것도 좀 손질할 수 있을까?”
“네, 재봉틀에 칼도 있겠다. 다 뜯어내고 수선할게요.”
어차피 이 자리에서 경찰 사칭을 할 일도 없겠지만, 일단 손질을 해서 리폼해서 입고 다닐 옷으로 만들 셈이었다.
그리고 방검복은 자신 뿐만 아니라 이제 앞으로 루팅하고 다닐 애들이 입을 수 있게 조금 줄여서 쓸 얘정이었다.
그리고 총을 제외하고 얻은 무기들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걸로 ‘대 좀비겸 인간’상대 용으로 개량할 셈이었다.
“오우~ 스턴 건!”
에밀리는 눈을 반짝이면서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봤고, 김준은 바로 제지했다.
“위험해. 이거 경찰용이라고.”
“성능 확실하겠네?”
“그러니까 얌전히 가져와.”
김준에게 한 소리 들은 에밀 리가 전기충격기를 건네주자 그는 바로 배터리부터 뽑았다.
그리고 노트를 통해서 전기충격기와 봉을 결합해서 창과 같은 식으로 무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일단 기름을 뿌리고, 이걸 지지면….”
“퍼~엉~!!”
에밀리가 두 손을 올리면서 폭발의 시츄를 올리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은 하지.”
“예전에 게임 할 때 해 본건데, 기름이나 알코올을 뿌린 다음에 거기다가 전기충격기 가져다 대면 그대로 휴먼 토치!”
실제로 경찰에서 절대 금기시 하는게 인화성 물질이 묻은 상태에서 테이저건이나 전기충격기를 쓰는 것이었다.
인간은 손세정제 수준의 알코올만 몸에 묻어나도 전기에 닿는 순간 곧바로 발화가 일어난다.
문제는 이전의 소화기 같은 걸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이었다.
“물총 같은게 있으면 딱 좋을텐데.”
김준은 지금 가진 물건 중에서 주사기나 대나무통 같은걸로 만들 물총을 구상했고 그 안에 소량의 기름을 담은다음 좀비에게 뿌리고 그 다음 이어질 테이저건과 전기충격기를 닿게 해 좀비를 잡을 초강력 근접 무기를 구상했다.
테이저건이야 카트리지가 한정되어 있으니 다음에 또 경찰서나 파출소 등을 털어야 하겠지만, 충전식으로 쓰는 스턴건은 계속 쓸 수 있을 거다.
김준은 그것들을 계속 구상하면서, 무기 디자인을 하다가, 식사 이후에는 잠시 밖에 나왔다.
“이걸… 빨리 손 봐야 하는데.”
팔 상태만 아니었어도 당장에 애들 불러서 박살난 범퍼와 헤드라이트를 교체하고, 구겨진 본닛도 핀 다음 유리창도 새 걸로 갈아끼웠을거다.
하필 좀비 상대 용으로 이것저것 같다 붙여서 저걸 다 해체하려면 용접기에 그라인더로 잘라낸 다음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2주안에 다 해결해야 됐다.
“하, 진짜 촉박해 죽겠네.”
괜히 2주라고 했나 싶어서 혀를 찼지만, 더 길게 끌었다간 신릉면 일대에서 제일파가 또 움직일 수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신경을 써야 했다.
“게다가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인데….”
다행인 점은 좀비 사태 이후 이상기온이라도 온 건지 약간 쌀쌀한 수준의 날씨가 계속 이어졌고, 눈이 내리거나 영하권 기온이 되지 않아 물이 얼어 동파가 되거나 열선 설치를 할 일은 없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어떻게든 해 봐야지.”
김준은 담배 한 대를 태우며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들어갔다.
***
“앗, 따거….”
“따끔한 정도가 아닐텐데요.”
그날 밤 붕대를 풀고서 드레싱을 할 때 직접 상처를 확인한 김준은 입이 벌어졌다.
쇄골부터 어깨 이곳저곳에 꿰맨 상처의 흔적, 그리고 누런 고름이 나오는 것을 마리가 긁어내고 소독한다음 항생제를 줬다.
“상처가 파래지면 안 돼요. 그땐 진짜 답 없어.”
“나 파상풍 주사 맞았어.”
“파상풍이 아니에요. 녹농균이라고….”
“녹농균?”
마리는 드레싱을 하면서 천천히 설명했다.
“항생제가 잘 안먹히는 균인데, 보통 위생 문제에서 감염될 수 있어요. 상처에 초록색 고름이 올라오는건데 걸리는 순간 패혈증이에요.”
“어우… 걸리면 답 없겠네.”
“하나 있긴 있어요. 메스로 감염된 곳을 도려내고 다시 살이 찰때까지 계속 소독하는거요.”
마리는 소독을 마친다음 새 거즈를 붙이고 붕대를 감아서 확실하게 위생을 신경썼다.
뿐만 아니라 김준이 자는 침대에도 새로 빨아낸 다음 알코올 스프레이를 뿌려서 감염을 막았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팔에 붕대를 새로 감고서 일어난 마리의 허리를 오른팔로 살짝 감았다.
“읏!?”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이렇게 볼 수 있지.”
“네~ 팔 다 나으시면 얼마든지 할 테니까 지금은 아끼세요.”
중환자하고 섹스 하는 의사는 없다면서 천천히 피고름이 묻은 거즈를 챙기고서 조용히 나갔다.
그리고 혼자 남은 김준은 앞으로 며칠 가겠다면서 그대로 누웠다.
부디 2주 안에 움직일 정도가 되 주고, 그 다음 새 쉘터로 옮겨준 다음에는 크리스마스나 준비하고 새해를 준비해야 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