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88 본연의 임무
* * *
김준은 문 밖에서 날뛰다가 살려달라는 제일파 조폭들을 전부 무시했다.
그리고 담배를 다 태운 다음에 소리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철문 너머의 좀비 소리였다.
으어어 크어어어
으어어어어
쿵! 쿵! 쿵쿵쿵!
철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을 때, 김준은 만신창이의 몸 상태로도 엽총의 슬러그 탄을 채웠다.
이런 거대한 싸움을 연달아 준비하고 있는 김준을 보고 캠핑카의 불이 켜졌다.
“….”
아무래도 안에서 그냥 있을수 없었나보다.
캠핑카 창문이 슬쩍 열리고, 인아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피를 뒤집어쓴 김준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서 두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런 인아를 조용히 뒤로 보내고 가야 창을 열었을 때, 그녀 역시도 놀랐으나 입술을 짓씹으며 참아냈다.
김준은 애쓴다며 피식 웃고는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물 한 병하고, 기름병 가져와.”
“네, 넷….”
가야는 후다닥 달려가 캠핑카 냉장고 안에 차가운 생수병과 화염병 투척용으로 만든 드링크통에 담긴 기름을 건넸고, 김준은 물부터 벌컥벌컥 들이켜다가 머리에 부어 묻어난 피를 쫙 씻어냈다.
하지만 몸 여기저기에 칼을 맞은데다가 낮의 상처도 터져서 김준이 걸어 다닐 때마다 피가 계속 흘렀다.
이 상황에서 그냥 다 때려치우고 드러누워 자고 싶었지만, 밖에 있는 좀비들은 다 잡아야 했다.
“철컥!”
일단 공기총부터 장전한 다음 카센터의 뒷문을 찾기 시작했다.
셔터가 내려간 정문은 안전, 지금 짐을 잔뜩 쌓은 옆문 역시도 안전.
그다음으로 아까 자동차 부품을 찾다가 발견했던 다른 문의 존재를 가지고 그곳으로 향했다.
먼지와 기름이 가득 쌓인 방에서 손 한번 잘못 닿으면 파상풍이 직빵일 것 같은 더러운 공방을 지나가 여닫이 문을 짚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김준.
다행히 살짝 열었을 때, 그곳으로 좀비가 보이지 않았고, 불과 코너 하나를 두고서 그 놈들이 정신없이 제일파 시체를 뜯어먹는 소리가 들렸다.
아드득 까드득
촤아악 촤압!
뼈가 씹히고, 살이 뜯기는 소리는 제일파 깡패 셋을 잡아먹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저놈들도 감염된 좀비로 부활할 테니 그 전에 정신팔려있을 때 빨리 끝내야 한다.
“….”
김준은 드링크 병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땨가 잔뜩 묻은 보루를 보고 그것을 찢어 드링크통에 꽂았다.
그리고 라이타의 불을 붙인 순간 화르륵 타오를 때 주저없이 문을 열고 코너 안쪽으로 돌렸다.
“쨍그랑!”
화르르르르르륵
좁은 골목에 갑작스럽게 불길이 올랐고, 그것으로 주변이 밝혀 졌을 때, 앞에 보인 것은 말라붙은 논두렁이었다.
김준은 별안간 그곳에 엽총과 공기총을 던지고 눈 딱감고 그대로 달려 논바닥으로 뛰었다.
쿠당탕탕탕탕!
몸이 이리저리 구르면서 논 아래에 닿았고, 그 순간 눈 앞에서 인간의 반응을 보고 불길 속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좀비들이 보였다.
지지직 지직
으어어어 캬아아아악
천만다행인지 뛰는 좀비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김준은 양손에 HD등과 리볼버를 파지한 상태에서 누운채로 불길을 제치고 다가오려는 좀비를 향해 갈겼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알이 좀비들의 머리를 터트리고, 그중에서도 못 깨물게 주둥아리 쪽을 박살 내서 허공에 피와 깨진 이빨이 사방으로 튀다가 불길에 타들어 갔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두 건물 사이로 불붙은 좀비들을 전부 처리해 나갔다.
탕 탕 철컥!
여섯발의 리볼버가 전부 동났을 때, 침착하게 몸을 굴려서 공기총을 집어 누워쏴 대공사격 자세로 방아쇠를 당겼다.
띵
파각!
이 거리에서는 멧돼지도 마빡 맞으면 그 자리에서 골로 갈 위력이었다.
그렇게 좀비 하나를 쓰러트리고, 반대쪽 요대에서 공기권총을 꺼내 몇 발 남지 않은 연지탄까지 전부 소비했다.
그리고 다시 반대로 몸을 굴려 엽총을 집었을 때,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좀비의 반응은 없었다.
지금은 그저 불길이 계속 아래 잡초가 무성한 언덕으로 내려와 김준이 있는 논바닥까지 불이 붙을 것 같았다.
이대로 넘어가면 싸그리 불타서 화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김준은 그 상황에서 서서히 일어나 출혈에 염좌에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몸을 움직여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불길 속을 보면서 다시 공장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아까 먹다 남긴 생수통을 집어들고, 천천히 불길 속에 뿌려댔다.
치직 치이익
좀비가 타들어가면서 매캐한 시취 냄새, 거기에 물이 닿자 연기를 뿜으면서 불길이 점차 잡혔다.
“하아….”
그 상황에서 순간 눈이 감길뻔 했다가 겨우 정신차린 김준은 캠핑카로 걸어가 피에 젖은 손으로 창을 두들겼다.
“물 한 병 더 가져와.”
“네, 넷!”
가야가 한 통 더 가져오자 김준은 반쯤 마신다음 다시 뒷문으로 가서 아직 덜 잡힌 불씨를 향해 물을 뿌렸다.
그 덕분에 그 이상으로 번지지 못하고 좀비를 반쯤 태워버린 다음에 잡혀버린 불길.
김준은 담배 한 대 태우면서 그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문을 닫고서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캠핑카로 향했다.
그리고는 안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뒷바퀴 있는 곳에 몸을 기대면서 풀썩 주저앉았다.
스르르 미끄러질 때 피가 묻어났고, 그 상황에서 점점 눈이감기는 김준을 보고 천천히 뒷문이 열렸다.
“나오지 말라니까….”
화낼 기운도 없어서 나지막이 말했지만, 가야는 결심한 듯이 구급상자와 랜턴이 달린 하이바를 쓰고서 김준에게 다가왔다.
“오빠… 너무 다쳤어요.”
“마리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좀 볼게요!”
그래도 맏언니가 다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따로 배우면서 집 안에서 멀티롤로 수행해 나갔었다.
“이, 일단 응급처치가 상처 부위 덮고, 거기를 꽉 누르고….”
알콜통에 거즈를 적시고 꾹 누르자 순간적으로 통증이 엄청났다.
하지만 신음 한 마디 안 내면서 묵묵히 팔을 내밀었고, 슬쩍 걷어올리자 여기저기 칼맞은 흔적을 보며 놀랐지만, 하나하나 상처를 씻어내고 거즈와 메디폼을 댄다음 붕대로 다시 감아가는 가야.
얼마 안 있어 패닉에 빠져있던 인아도 조심스럽게 나와서 뭔가를 주섬주섬 들었다.
“언니 이거….”
그녀가 가져온 건 떠나기 전 마리가 따로 챙겨줬다는 약이었다.
“그게 뭐야?”
“그… 마리언니가 정말 크게 다치면 등쪽에 붙이고, 이거 먹으라고….”
김준에게 줄 거지만, 직접 말 못하고 가야를 통해서 전해주는 진통제.
그것을 확인해 보니 지난번 의료용품기기 회사에서 털어낸 물건이었다.
“이거… 외상성 패치 진통제라고 쓰여 있는데요?”
“아, 그거….”
김준은 몸을 일으켜서 가야에게 등을 보였다.
“네가 올리고 붙여.”
“네.”
김준이 웃옷을 벗고 안에 오토바이용 프로텍트도 서서히 풀렸다.
만약 이게 아니었다면, 아까 제일파 깡패하고 싸웠을 때 복부에 칼 맞아서 이겼다 하더라도 김준 역시 오래 못 가고 골로 갔을 것이다.
방호복 덕분에 어둠 속에서 사시미칼을 든 현직 조폭하고 싸워서 몸 여기저기 찔렸지만, 깊이 들어간 상처는 다행히 없었고, 팔다리 움직이는 것도 문제 없어 지혈만 하면 어떻게 견딜 것 같았다.
가야가 상처를 다 닦아내고 진통제를 먹고, 패치를 붙인 응급처치가 끝났을 때, 김준은 그녀들에게 말했다.
“다시 들어가 자.”
“아니요. 오빠가 들어가세요. 저희가 야간 경계를 설게요.”
“팍 씨….”
그 상황에서 손을 들면서 얼른 들어가라고 하자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것 까지 확인할라고 바라볼 때 가야와 인아는 모포를 꺼내다가 김준에게 건네줬다.
“됐어 안 잔다.”
“바깥… 추워요.”
김준은 그녀들이 건네주는 모포를 받아들고 몸에 걸친 상태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원래였다면 해야 했을 야간 경계에서… 순간적으로 새벽 34시까지는 어떻게 견뎠지만 그 뒤로 눈이 감겼다.
***
아침이 되어 해가 뜰 때 바로 일어난 두 명의 톱스타가 바로 나와서 바깥을 살폈다.
어제 어두운 밤에 조명으로만 봤던 카센타 안은 여기저기에 새까맣게 굳은 피가 흩뿌려져 있어서 공포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 산황에서 김준은 눈이 감긴 채로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에 입술도 점점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오빠!”
“기, 김준 오빠….”
설마 잘못됐나 싶어서 두 아이돌의 손이 김준의 몸이 닿았고, 차가운 몸이 만져질 때, 순간적으로 가야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설마… 아니죠?”
그녀의 눈물이 뺨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다.
자신들을 지켜준 슈퍼 히어로를 연신 흔들었다.
“응, 아니야.”
“!?”
차가운 시체처럼 굳어있던 김준이 우물거리면서 대답하자 화들짝 놀라는 가야와 인아다.
“후우우 물좀.”
“네, 넷!”
후다닥 안으로 들어간 인아가 건네준 생수병을 쭉 들이킨 김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넌 또 왜 울고 그러냐?”
“흑, 흐윽….”
그동안 동생들 앞에서 태연한 모습을 보였던 맏언니가 순간적으로 멘탈이 나가서 김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김준은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다가 그녀의 빳빳하고 곱슬거리는 머리칼과 그 너머의 옷 위에 느껴지는 브라끈 감촉을 느꼈다.
다 죽을뻔했던 상황에서 그렇게 꼼지락거리는 손을 중심으로 다시 피가 돌면서 다시 오늘 하루를 위해 움직이는 김준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