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79화 (79/374)

〈 79화 〉 79­ 분주하게 움직이는 리더.

* * *

“바깥이 그런지 처음 알았어요.”

“음~ 음~ 그렇지.”

“몸 내밀고 새총 쏘려고 했다가… 빗나갔는데, 굳어서 숙이지도 못했고요.”

“언니도 그랬어. 심지어 총쏘는데 옆에서 비명까지 질렀지.”

생애 첫 바깥 루팅을 하고 온 나니카의 이야기를 가야나 마리 같은 언니들이 조용히 들어주며 달래주고 있었다.

그 외 다른 아이들도 늦은 저녁 개인 정비를 하고 있었다.

새 음식 물자를 가지고 정리하는 은지와 인아, 그리고 몸매관리 겸 전력 수급을 위해 런닝머신과 사이클을 뛰고 있는 도경과 라나.

그리고 샤워에 들어간 에밀리.

그녀들을 보면서 김준은 거실에서 테이블에 노트를 펼치고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흐으음.”

김준은 집 구조를 대략 그리면서, 창고를 구상했다.

‘컨테이너가 있으면 좋은데, 그걸 가져올 방법도 없고, 게다가 그걸 타고 좀비가 벽 넘어오면….’

현재 집이 담장으로 빙 둘러져있고, 앞부분에는 전기 철망까지 설치했다.

그런 상황에서 반쯤 파묻힌 빗물탱크를 생각한다면, 자리가 여의치 않았다.

‘아니면 지금까지 수급한 생수랑 관정을 믿고 빗물탱크 하나 창고로 써 버려?’

반쯤 파묻힌 상태로 콘크리트 공법을 한지라 아예 내부를 비운 다음 더 파내서 지하 창고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고, 물은 풍족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 계획 역시도 접었다.

덜컥­

마침 물을 한껏 쓰고 온 에밀리가 젖은 머리칼을 말리면서 샤워가운 한 장만 걸친 채 다이너마이트 바디를 자랑하고 있었다.

“뭐해?”

“흠?”

등 뒤에서 촉촉한 감촉과 바디워시향이 확 나서 돌아본 순간 눈 앞에 타월을 걸친 에밀리의 미소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제대로 안 닦아서 몸에서 흐르는 물방울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옷 좀 입어라.”

“팬티는 입고 있어.”

“아, 쫌!”

에밀리는 몸으로 감고 있는 타월에서 아래쪽을 슬쩍 올리자 검은 레이스의 팬티가 드러났다.

이미 숱하게 벗은 몸을 본 사이인데, 순간 얼굴이 벌게진 김준은 그녀를 밀치면서 방으로 보냈다.

만약 다른 애들이 안 봤다면 엉덩이라도 때려줬을 거다.

“으….”

그리고 그 모습을 주방에서 본 인아는 눈썹이 내려진 채로 질색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준이 에밀리를 방에 집어넣고 한숨을 쉴 때 그 표정의 인아와 마주쳤고, 머쓱해서 뺨을 긁적이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저 표정은 더럽다는 경멸이라기보다는 ‘징그럽다’라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아무튼 김준이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대화를 마친 다른 아이들이 슬며시 다가왔다.

“뭐 그리시는거에요?”

“기름 창고 도안.”

“흐으음.”

가야, 마리, 나니카는 김준이 그리는 그림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지금 공간에 창고를 만들데가 있을까요?”

“최대한 공간 짜내고 있는데, 애매해.”

“기름은 진짜 화재 때문에라도 어떻게 떼놓기는 해야 될텐데요.”

“그래서 말인데….”

김준은 현재 1층 창고에 있는 말통에 담긴 기름들을 두고서 한 가지 예시를 들었다.

“벽에 붙은 관정 파이프 있지?”

“아, 3층 물 끌어올리는 그거요?”

“응, 그 옆에다가 지붕을 설치하고 드럼통을 파밍해서 펌프랑 같이 바깥에 빼놓는게 어떨까 싶네.”

“바깥에 기름통이 있으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걸 덮을 가설창고를 만들어야지. 강판 지붕도 위에 깔고. 소화전 위치도 만들고.”

김준이 말한 곳은 15년 전만 하더라도 LPG통을 놓고서 거기서 파이프로 연결했었다.

나중에 그거 해체하고 도시가스로 바꿀 때, 빈 통을 재활용한다고 해체하다가 터져서 동네 사람 여럿, 병원에 실려 갔던 기억도 났다.

“일단 기름은 확실히 한 곳에 모아서 안전하게 관리해야 될거 같네요.”

“혼유도 신경 쓰고 말이야.”

“…죄송해요. 오빠.”

나니카가 혼유 이야기에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지난번에 캠핑 발전기 여러 개를 놓고 돌릴 때, 디젤용 발전기에다가 나니카가 가솔린을 넣어서 하나 버리게 되었다.

다행히 고물상에서 추가 수급을 했길래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전력찾아 삼만리가 됐을거다.

“됐어. 다른 거 고장나면 부품 빼다 쓰지 뭐.”

발전기가 망가졌다고 버리지는 못하고, 아예 해체해내서 볼트에 엔진에 전부 해체해서 예비용 장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튼 그렇게 구상하면서 김준은 다른 쪽도 언급했다.

“다른 생존자 지역도 한 번 들러보긴 해야 할 텐데.”

“아, 어디부터 가시게요?”

“일단 계란 다 떨어져 가지? 그럼 부부네로 가야지.”

“절 쪽도 가면 뭐 또 있지 않을까요?”

언제나 기대 이상의 거래를 했던 정토사, 그리고 처음 가봤지만 안에서 오리, 닭, 메추리 등을 키워서 신선한 고기를 수급할 수 있는 명국 부부네.

김준은 내친김에 그곳들 한 번 둘러볼 계획을 짰다.

“사흘 뒤에 다시 가보자. 일단 둘 다 교환물품으로는 쌀이 제일이야.”

도정 안 된 쌀가마도 2호창고에 잔뜩 있는데, 추가로 편의점을 들를 때마다 각종 잡곡과 20kg짜리 쌀들이 가득했다.

이대로 놔뒀다간 몇 년이 지나도 못 먹을 양이고, 차라리 떡을 해 먹거나 막걸리라도 빚자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우리 쪽에서 교환할 거는 쌀, 그리고 비타민으로 쓸 주스 가루겠지?”

“뭐, 절이나 그쪽 부부네나 술이 필요하진 않겠죠.”

한쪽은 금주의 불교이고, 다른쪽은 임산부가 있는 곳이니 어느쪽이던 알코올이 필요하진 않을 거다.

“둘 다 기름도 필요하겠죠?”

“등유 담아야겠다.”

김준은 말 나온 김에 이제는 자신들 말고도 생존자가 사는 두 개의 쉘터 모두 챙기기로 했다.

어찌 됐건 살아있는 사람들과는 계속 교류를 해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여서 각자의 아이디어를 말하고, 김준이 그것들을 모두 적을 때 거실에서 지켜보던 인아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주저했고, 그 모습을 은지가 봤다.

***

다음날 김준은 오랜만에 은지의 바를 이용했다.

“오랜만이네요.”

“갑자기 칵테일 생각나서.”

안 자고 있던 은지는 바로 촛불을 켜고, 즉석에서 칵테일과 안주 거리 할만한 걸로 번데기탕을 만들었다.

“크~ 소주 안주로 이게 딱인데.”

“위스키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은지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언더락을 만들어 김준에게 건넸다.

김준은 그것을 마시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은지는 이참에 부탁할 것을 말했다.

“드릴 말씀이 좀 있어요.”

“애들 일이야?”

“뭐, 그럴 수도 있는데… 물건이 몇 개 필요해요.”

“뭐가 필요한데?”

김준은 자신이 구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가져다주겠다는 자신감으로 말했고, 은지는 차분하게 말했다.

“콩나물이랑 숙주나물 만들 시루가 필요해요.”

“흐음, 시루… 그건 모양만 알면 집에서 만들 수 있는데.”

1층 상가에서 실내 농사를 짓고, 특히 콩을 많이 재배하다 보니 밥반찬으로 많이 나오긴 했다.

“믹서기도 새 거 필요해요. 스테인레스 틀 하고요.”

“뭐 만드려고?”

“두부요.”

“…아!”

이제는 진짜로 장기 생존 대비를 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김준은 그것들을 머릿속에 담아놓고 이번에 나갈 때 꼭 구해오겠다고 약속했다.

은지는 그런 김준에게 추가로 칵테일을 만들어줬고, 그걸 마시던 중 다시 이야기가 나왔다.

“요새 다른 애들은 별일 없나?”

“네, 다들 잘 지내죠. 인아 빼고.”

“흐으음.”

요새 인아가 자신을 피한다는 게 김준에게도 딱 보였다.

“뭐, 시간 지나다 보면 풀리지 않을까?”

“그럴 수 있죠.”

은지 역시도 인아와 더불어 김준하고는 한 번도 몸을 섞은 적이 없었지만, 초반의 가시 돋힌 상황에 비해서는 조용히 넘어가 동료로써 생각했다.

“아침에만 안 걸리면 되지 않을까요?”

“노력해볼게.”

은지는 김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새 칵테일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걸 마시던 김준은 오랜만에 은지랑 많은 대화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끈적거리는 거 없이 쿨하게 끝난 자리였고, 은지는 자리를 정리하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내가 대신 말해줘야 하니….”

오늘 은지의 필요사항 리스트는 전부 인아가 말해준건데, 도저히 따로 못 말하겠다고 해서 대신 전해준 거였다.

***

그리고 다음날.

“자, 오늘은 좀 코스가 빡셀거야.”

“네, 오빠!”

두 번째 루팅에 나선 나니카와 에밀리는 먼저 많은 생존자가 있는 정토사 쪽으로 향했다.

덕원산 길을 가는 길에 길가는 좀비를 몇 마리 잡고, 그러면서 주변 경계를 하고, 산길을 타기 전에 주변을 둘러봤다.

“와~ 여기도 싹 쓸려나갔네?”

에밀리가 밖을 보고 말할 때 나니카가 물었다.

“쓸리다니요?”

“저번에 나랑 발리볼 걸이랑 같이 새총이랑 지팡이로 갈겼거든. 한 열 마리 잡았나?”

“히익!”

그 말을 듣고 나니카가 다시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다행히 그때 이후로 좀비가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자, 그럼 올라간다.”

비탈길을 그대로 올라가는 캠핑카.

그리고 산 중턱에 도달했을 때, 조용히 대기하면서 산 속을 바라보는 김준.

“어우~ 많이 추워졌다.”

눈은 아직 안 왔지만, 이제는 완연히 겨울이었고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지나 이 사태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김준은 그 상황을 알고서 머리를 긁적이며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오갔던 거리를 생각하며 능숙하게 길을 갔을 때, 때마침 밖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수확을 하고 있는 스님들이 있었다.

“아! 시주들은….”

“오랜만입니다. 성정 스님.”

지난번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성정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작은 체구의 스님에게 김준 일행을 소개했다.

“스님, 지난 번 불쌍한 보살과 아이를 구해주신 그 분입니다.”

“아~ 그렇군요. 이제 보니 알겠습니다. 명진이라고 합니다.”

합장을 하며 인사했을 때 뒤에서 싱글거리는 에밀리와 나니카 역시 스님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법당 안으로 안내했을 때, 노스님은 김준을 반갑게 맞이했다.

“허허허, 부처님께서 귀한 손님을 또 보내주셨군요.”

오면서 산이 많이 쌀쌀해 진거 같아서 기름이랑 쌀 좀 가져왔습니다.

“아이고, 저희 또한 충분한데 이렇게 기증하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그러면서 김준 일행에게 더운 차를 대접한 노스님은 천천히 그들에게 절 안을 보였다.

“이곳은 다들 잘 지냅니다. 부처님의 가호인지 악귀들이 더 이상 오지 않고 있습니다.”

“엥, 여긴 웨이브가 없었어요?”

에밀리는 노스님의 말에 눈을 크게 떴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

바리케이트라고 해야 스님들이 직접 만든 목책 정도에 어느 방향에서 쳐들어올지 모르는 산 속인데, 신기하게도 이 곳에는 대규모 침입이 없었다고 한다.

“상황이 달라서 그런건가?”

김준은 지나칠 정도로 평온하면서 정말 성지 취급을 받는 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절 아궁이에서 나온 법복의 여인이 김준을 보고 놀랐다.

“아! 당신은….”

“어머, 그 마미였네?”

에밀리가 먼저 발견하고 인사를 하자 당황해 하면서도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합장을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네, 건강해 보이시네요.”

하준엄마였다.

“아기 어딨어요? 보러가고 싶은데.”

“저, 저기….”

법당의 별채 한 곳에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 출신이라는 보살이 아기를 돌보고 있었다.

에밀리는 눈에 하트가 들어와 반갑게 그 하준이를 안았고, 나니카 역시도 오랜만에 보는 아기를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자를 제공하고 즉석으로 치료를 받을 자리가 생겼다.

“아­ 으아아!”

“조금 아플거에요. 전동기계가 있으면 금방인데….”

끽­ 끼익­

뾰족한 도구가 에밀리와 나니카의 입 안을 사정없이 쑤셔댔다.

은퇴한 치과의사가 이 안에 있었고, 내친김에 이 상태를 봤는데, 에밀리와 나니카는 수동으로 스케일링을 받고 어금니에 생긴 작은 충치를 긁어냈다.

전동드릴을 쓰면 10분이면 될 것을 탐침과 익스플로러 등으로 하나하나 긁어내고, 피를 볼 정도로 잇몸을 쑤셔냈지만, 그 안에서 나오는 검은 치석이 떨어져 나오자 김준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양치를 그렇게 시켰는데도 저렇게 나오네.’

“자, 이것만 바르면 마지막이에요.”

다행히 구비한 물건 중에 임시충전재가 있어서 직접 긁어낸 치아에다가 바르고, 이를 딱딱 물게 했다.

“오늘 하루는 이쪽으로 음식 씹으면 안 돼요. 금방 떨어져 나가요.”

“우, 네.”

“나중에 심하게 때워야 할 부분이 있다면 금붙이나 은을 가져오세요. 그걸 녹여서 붙일 수 있어요.”

나니카는 얼굴을 부여잡으면서 인상을 찌푸렸고, 에밀리는 거울로 연신 피가 흐르는 잇몸을 보면서 가글로 씻어냈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받은 치과 치료.

이건 아주 큰 도움이었다.

김준 역시 다음에는 마리를 데리고 와서 여기 분들 건강검진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스님들에게 도구 이야기를 할 때 뜻밖의 물건을 받았다.

“가져가시지요.”

“아니, 그러면 여기는….”

“하하하, 이런건 많이 있습니다. 채소도 좀 더 드릴까요?”

절에서 자급자족을 위해 만든 콩나물과 숙주나물 시루를 받은 김준은 도자기로 된 그 제품을 바라봤다.

그렇게 김준 일행은 기름과 쌀, 절에서는 감자와 세 명 일행에 대한 치과 치료와 콩나물 시루를 받게 되었다.

명국 내외에 이어 두 번째 생존자들끼리의 물물교환이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가호가 불자들에게 함께 하시길.”

큰 스님과 다른 일행들의 인사를 받으며 차에 탄 세 명.

김준은 차에 시동을 걸고 내려오면서 나니카를 보고 말했다.

“어때?”

“저희 말고 살아있는 분들… 처음 봤어요.”

“아~ 나 저 아기 너무 귀여워.”

“아기 좋아하는구나.”

“천사같잖아~ 뭐, 내가 생기는건 그렇지만.”

김준은 간만에 사람을 만난 뒤에 바로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둘은 처음 가보겠지? 고기 교환을 갈거야.”

“가보고 싶어!”

김준은 도로로 내려와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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