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78화 (78/374)

〈 78화 〉 78­ 고인물과 뉴비가 함께하는 노획단.

* * *

처음 루팅을 나오고 연달아 실수투성이였던 나니카.

김준은 그 상황에서도 느긋했다.

이미 이런 상황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고, 그동안 파트너를 정하고 다닐 때마다 많은 일을 겪어왔다.

옛날 같았으면 바로 한 소리 했겠지만, 오늘은 적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자~ 천천히 가 보자고.”

좀비를 처리한 다음에 길가에 있는 수많은 장애물과 시체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운전했다.

그리고 나니카는 연신 불안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봤고, 바깥 탐사의 고인물인 에밀리는 느긋한 얼굴로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경치가 좋을리는 없고 시체 안 보고 지나가면 다행일 바깥인데 말이다.

“휘유~”

“아, 저기….”

김준의 차가 소사벌 공설운동장을 지나갔을 때, 순간적으로 흠칫한 나니카.

그리고 오랜만에 ‘그 기억’이 떠오르는지 머리를 부여잡고 푹 숙이고 있었다.

김준 역시도 좋게는 안 보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인연을 만들어 그녀들을 데려왔지만, 눈 앞에서 생존자를 못 구하고 자살하는 경우를 직접 본 곳이기도 했다.

특히 저 안쪽으로 들어가 불에탄 승합차 흔적을 본다면 고통스러워서 못 버틸 것 같았다.

공설운동장을 지나 대로변으로 향했을 때, 김준은 길게 펼쳐진 길을 둘러봤다.

이곳 역시 수많은 차량이 불에 탄 채로 그 흔적만을 남겼고, 추수가 진작에 끝난 뒤에 짚단 롤이 만들어졌어야 할 논밭은 모두 휑했다.

저 멀리에서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좀비를 발견하고, 쏴 버릴까 생각했지만, 너무 멀어서 총알이 닿을지 모르겠다.

“자, 여기서 직진하면 주유소야.”

그리고 좀 더 달린다면 초반 그렇게 엮였던 ‘고가밑’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좀비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확실히 주변 일대를 한 번 쓸어낸 뒤로 드문드문 적어진 것이 느껴졌다.

김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유소에 도착했다.

“자, 도착했다.”

“주변에… 보이는 좀비는 없네?”

에밀리의 말에 김준 역시 주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니카가 이제부터 시작이라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김준은 돌입하기 전 마지막 테스트로 바로 클락션을 울렸다.

B­!!!!!!!

“!?”

나니카가 화들짝 놀라서 두 귀를 막았다.

그리고 클락션 소리 이후로 주변 반응을 살펴봤을 때, 다행히도 5분이 지날 때까지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됐어! 나가자.”

“우… 네.”

김준이 먼저 나오면서 엽총을 든 채로 주변을 둘러보고 천천히 나올 때, 나니카는 백팩과 더블백을 챙긴채 조용히 나왔다.

두 가방을 등에 메고, 자전거 안장 지팡이를 꼭 쥔채 아직도 긴장한 그녀였다.

그리고 뒷문에서 에밀리도 슬며시 나오면서 주변을 빈 석궁으로 겨냥하면서 느긋한 얼굴을 지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 볼게. 나니카!”

“네, 넷! 오빠!”

“뒤에 딱 붙어있어라.”

김준의 말에 나니카는 종종걸음으로 그의 등 뒤에 딱 붙어서 따라갔다.

그리고 에밀리가 후방을 살펴보면서 하나하나 살펴봤다.

“자~ 일단 기름부터 담고.”

“박스 꺼내올게.”

에밀리는 차 안에 있는 빈 통들을 가져왔고, 주유구를 눌러서 나오는지 확인했다.

에밀 리가 빈 통에 휘발유와 경유를 써진 대로 수동펌프로 채워낼 때, 김준은 창고로 달려갔다.

그리고 창고 안에 있는 등유와 각종 엔진오일, 새 말통에 담겨있는 기름들을 들었다.

“자, 이걸로 담아.”

“으읏!”

20L 석유통을 낑낑거리며 들어올린 나니카는 김준이 내민 카트에 하나하나 실었다.

그리고 김준이 카트의 손잡이를 나니카와 같이 잡고서 차로 향해 차곡차곡 담았다.

주유소 하나만 제대로 잡고 있어도 기름 부자가 된 것 같은 풍족함이었다.

“기름은 특히 조심해야 돼.”

“네, 오빠.”

“특히 스파크 튀면 바로 터진다.”

“히익!”

“그런 적 없지만.”

김준은 절연 장갑을 어루만지고, 나니카와 에밀리도 차고 있는 목장갑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때 펌프 손잡이를 돌리면서 기름을 천천히 채우던 에밀리가 외쳤다.

“준! 저기 좀비!”

“?!”

“으읏!”

좀비라는 말에 바로 총을 잡은 김준.

그리고 에밀리가 가리킨 곳에는 전방 50m 앞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좀비가 하나 있었다.

“한 놈이네.”

“잡아야지. 내가 할까?”

등에 찬 석궁을 꺼낸 에밀리를 보고 김준은 천천히 그녀를 불러 옆에서 시켜보기로 했다.

“천천히 준비해.”

엽총이나 권총을 썼다간 큰일 날 일이었고, 비 화약성 무기인 석궁과 공기총으로 잡아야 했다.

그리고 김준은 이 상황에서 거리를 가늠하고 밖에서 에밀리에게 좀비를 잡게 했다.

이미 도경과 마리가 한 번씩 새총으로 좀비를 잡은 뒤로 신무기인 석궁으로 잡게 하는 것이었다.

“좋아, 침착하게 화살을 장전하고….”

그렇게 자신만만했지만, 막상 바깥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좀비를 잡는 상황이 되자 긴장한 듯 중얼거리는 에밀리.

그리고 가늠쇠로 천천히 좀비의 머리를 겨눈 다음,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겨눌 때는 긴장돼도 일단 당기는 데는 침착하게!

피융!

에밀리의 손가락에서 방아쇠가 당겨졌고, 김준이 낫으로 날카롭게 깎은 화살이 엄청난 파워로 날아갔다.

그리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의 머리에 직격!

주유소로 다가오던 좀비가 머리에 화살이 박힌채로 비틀거리자, 김준은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 공기총을 들어서 확인사살을 했다.

띵!

단발 공기총이 발사되자 비틀거리던 좀비의 눈에 연지탄이 박히면서 풀썩 쓰러졌다.

“파괴력 개량좀 해야 되나?”

김준은 실전에서 두 번째로 쓴 석궁을 보고 거리가 멀어지니까 원샷 원킬이 안되는 것 같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새총보다 약한거야?”

“도경이나 마리가 잡았을땐 그래도 근거리였거든.”

“흐응~”

밖에 나와 여유롭게 이렇게 대화 할 수 있는것도 경험치가 쌓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김준은 그 뒤로 덜덜 떨던 나니카의 손을 잡고 기름 수급을 마친 다음 그 옆에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방이랑 카트 챙겨! 다음은 음식이다.”

“네, 넷!”

“자, 긴장 풀고~”

김준이 앞장서고 에밀리가 나니카를 다독여주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안에 들어가자마자 즉석식품 썩은 것 때문에 악취가 물씬 풍겼다.

특히 냉장칸에 있었던 샐러드나 도시락은 곰팡이가 슬어서 저 자체적으로 편의점 안을 뒤덮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은…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자~ 일단 하나하나 챙기자. 먼저 생수부터!”

지난번 차 안에 꽉꽉 들어찬 뒤로도 작은 생수들은 아직도 많았다.

500ml와 300ml짜리 작은 생수들을 나니카가 백팩에 하나하나 담았다.

“다음은 통조림.”

“내가 챙길게.”

에밀리는 안 챙겼던 골뱅이, 번데기, 깻잎 등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 먹고 있던 스팸 대신 남은 것은 런천미트와 다른 싸구려 프레스햄이었다.

“아~ 스팸 다 먹으니 이것만 남았네.”

그래도 유통기한은 오래오래 가니 살기 위해선 챙겨야 했다.

그 뒤로 커피, 라면, 소면 등의 남은 것들을 챙기고, 물티슈와 세안액, 각종 도구들도 있는대로 챙겼다.

에밀리와 나니카가 물건을 쓸어담는 동안 김준은 공기총을 장전하고 카운터로 향했다.

줘도 안피던 멘솔 담배나 충전식에 안 써본 전자담배도 챙겨보기로 했다.

그리고 카운터 안에서 담겨 있는 피묻은 지폐를 본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것들도 담았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그저 종이조각과 니켈&구리 덩어리들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쓰일 일이 있을 거다.

“준! 이거 봐!”

“?”

에밀리가 뭔가를 발견하고서 자랑스럽게 흔드는 것은… 콘돔 박스였다.

“돌기형이야! 사이즈도 XL이고!”

“아, 치워….”

“딸기향도 있는데?”

“….”

이미 알 거 다 아는 사이인데도 나니카는 얼굴이 화끈거렸고, 손에 잡히는 것들만 챙기면서 백팩과 더블백을 채워갔다.

그리고 에밀리는 이번에 꼭 써 보겠다면서 느낌이 거의 없다는 초박형과 딸기향, 그리고 그 돌기형 콘돔도 모두 쓸어 담았다.

김준, 에밀리, 나니카가 각각 필요한 물건들을 알차게 담았지만 아직도 편의점의 물자는 많았다.

“한 두어번 더 오면 쓸만한건 다 쓰겠다.”

마치 광산을 두고서 계속 광물을 캐다가 고갈되는 현장을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오늘도 넉넉한 짐을 챙기고서 각자 수확물을 확인한채 차곡차곡 차 안에 담았다.

“자, 가자.”

“네. 오빠.”

김준이 두 여성을 데리고 차에 타려고 할 때 이번엔 위치를 바꿨다.

캠핑카 창고 안에 가득 담겨 있는 물자를 두고서 그것을 지키는 나니카.

그리고 조수석에 앉아서 석궁을 어루만진 채, 루팅의 베테랑이 된 에밀리.

김준은 둘을 확인하고 시동을 걸었다.

나니카는 창문 너머로 바깥을 보면서 완전히 황폐화된 세상에 입이 벌어졌다.

‘진짜… 완전히 무너졌구나.’

영화에서나 보던 아포칼립스의 세상이었고, 그동안 온실속 화초처럼 김준의 집에서 편하게 빨래나 청소를 하면서 지내왔던 자신이 초라해보였다.

이미 언니들, 그리고 라나 같은 동생까지도 이런 상황을 다 봐가면서 견뎌온 것일거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그렁그렁했지만, 운전석과 조수석에 있던 남녀는 태연했다.

“이렇게 조용하게 끝낸 루팅도 괜찮네?”

에밀리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김준은 천천히 대로변의 잔해들을 피해가면서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들어가서 오늘 일 복기 하고, 할게 많을 거야.”

“흐응~ 그 할 거 중에 섹스도 있어?”

“…안 쓴다. 딸기향.”

“메론향도 있어.”

“치워….”

에밀리는 아크릴 벽 너머로 운전하는 김준을 보고 입맛을 계속 다시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전기를 통해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있었다.

모두들 안에서 기름은 창고로, 먹을 것은 2층과 3층에 있는 냉장고와 찬장으로 향했다.

“런천미트를 가져왔네?”

“스팸 다 털어서 그거밖에 없었다.”

“아, 번데기… 어릴 때 한 번 먹어봤는데.”

“그거 벌레 아니야? 으… 극혐!”

“골뱅이도 있네? 비빔면 땡긴다.”

하루동안 넉넉하게 챙겨오고서 다들 익숙해 하는 톱스타들.

나니카는 그 속에서 머뭇거리다가 자신도 손을 거들어서 기름이 가득찬 말통 하나를 들고 낑낑거리며 창고로 향했다.

그녀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일’을 해 봤다는 성취감이 있었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안 좋아서 다음에 나간다면 그럴 일 없을거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김준은 쌓여있는 기름들을 보며 조만간 드럼통을 노획해서 한 곳에 채우고 기름실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공간 마련해서 3호 창고도 만들어야 겠어.’

재료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탱크도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의 김준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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