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77화 (77/374)

〈 77화 〉 77­ 시간이 해결해 줄 것.

* * *

따캉!

“오우!”

김준은 손뼉을 치면서 가야의 곱슬거리는 미역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

자기 머리에 손의 감촉을 느끼다가 얼굴이 살짝 붉어진 가야는 조용히 물러나서 김준에게 석궁을 내밀었다.

“이제 잘하네?”

“감사합니다.”

김준은 계속되는 훈련 속에서 에밀리 이후로 가야부터 동생 순번들대로 석궁 연습을 시켰다.

그 중에서 새총때와 다르게 정밀하게 겨누는 석궁 사격에서는 가야, 은지, 에밀리, 도경 등이 집중력이 좋아 익숙하게 발사했다.

물론 좀비하고 싸울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정된 표적에 대해서는 확실히 맞출 수 있었다.

“자~ 오늘 할당량 다 쏘면 또 새로 만들어야지.”

연습용 석궁 화살을 일일이 뽑아서 사용하게 한 다음, 김준이 다른 쪽에서 낫으로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었다.

김준이 낫질을 하고 있을 때 도와주는건 라나하고 나니카였다.

“원래 이런 건 인아가 잘하는데.”

“인아 언니… 아직도 그래요?”

지난번 아침의 이야기로 인해 인아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음식을 하고, 가사 활동으로 서포트는 했지만, 김준과 묘하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특히 작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김준과는 떨어진 쪽에서 일했고, 지금도 은지와 뜨개질로 수세미를 만든다고 옥탑방에 있었다.

“제가… 말 해볼까요?”

나니카는 괜히 미안해서 어떻게 달래보는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김준은 고개를 돌렸다.

“됐어. 말한다면 내가 해야지.”

김준은 언제고 이런 일이 생길 걸 예상했고, 그동안 섹스했던 애들을 생각하면 늦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피할 게 은지인 줄 알았는데, 역으로 인아가 더 심각해 보였다.

“인아 언니는… 오빠가 마리 언니하고 사귄다고 생각했나 봐요.”

“아, 그거….”

그동안 서로 안 들키고 잘 지냈을 때, 인아가 나니카와 같은 방을 썼던 그때.

마리에게도 첫 경험이었고, 둘이 엄청나게 한 다음에 아침에 같이 나오는데 딱 눈이 마주쳤었다.

그때도 당황한 인아는 이후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김준과 대화를 틀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적어도 ‘한방에서 같이 나온 게 둘이 사귀나 보다.’라고 생각한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실 마리는 가야­라나­에밀리­나니카 다음의 순번이었었고, 이미 할거 다 한 사이의 톱스타가 다섯이 되었을 때 발견된 거니 말이다.

“뭐,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당분간 좀 어색할 뿐이지.”

김준의 말에 라나나 나니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준은 두 소녀를 보고 말했다.

“그렇게 낫질하면 손 다쳐. 이리 줘봐.”

“아 네.”

지난번 새총때도 그랬지만, 아직도 미숙한 낫질을 보고 두 소녀가 가진 낫과 칼을 수거한 김준.

그리고 자신이 깎은 나뭇대를 내밀었다.

“이거나 사포로 다듬으면 돼.”

“네, 오빠.”

두 소녀는 일은 어색해도 김준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앞서서 하려고 했다.

그래서인지 김준은 이것저것 가르쳐 주는 게 많았고, 얼마간은 그녀들과 같이 집안 작업을 했다.

***

얼마 후.

김준은 창고에 있는 물자들을 확인하고, 옥탑방과 2층에 남아있는 음식들의 양도 살폈다.

아직 넉넉한 양이었지만, 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고 슬슬 또 움직일 때가 되었다 생각해서 김준이 무기를 들었다.

“이번에 기름하고 물자좀 얻으러 나갈거야.”

저녁에 한 말에 8명의 톱스타들은 숙연해졌다.

“내일 가나요?”

“음.”

“그러면 이번에 나갈 아이가….”

가야는 그동안 파밍을 나갔던 동생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지난번에 계란과 고기를 가져왔을 때가 마리하고 라나였으니까 그다음은…

“일단 하나는 나겠네?”

에밀리가 밖으로 루팅 할 준비를 하겠다며 쿨하게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눈치를 보던 소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이제까지 가 본적이 없어요….”

김준은 나니카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일 루팅은 에밀리랑 나니카로 하자.”

“오케이!”

에밀리에게 있어서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바깥 루팅은 그저 나들이에 가까워 보였다.

문제는 이제껏 한 번도 못 가본 나니카였다.

‘이거… 많이 가르쳐야겠는데?’

그동안 돌아가면서 파트너를 정해 차를 타고 나갔을 때, 반응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특히 가야나 도경은 처음에는 좀 방해였고, 은지나 에밀리, 라나는 능숙하게 파트너를 해줬다.

김준은 그것을 위해 일단 저녁식사를 마친 다음에 둘을 캠핑카로 부르고 대략적인 모의 훈련을 준비하게 했다.

“흐으음.”

“죄, 죄송해요.”

“아니야.”

나니카가 연달아 고개숙여 사과를 하지만, 김준은 그럴 수 있다면서 넘어갔다.

“자리를 바꿔볼까?”

“음? 조수석으로 나니카가?”

에밀리의 눈이 커지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고 묻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나니카가 내 옆에 앉고, 에밀리 네가 뒤에서 경계를 하는거야.”

“그러면… 이거 못 쓰잖아?”

에밀리는 자신의 애착품으로 정하고 독점에 가깝게 누리고 있는 석궁을 보이면서 묻자 김준은 안절부절하는 나니카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출발할 때는 나니카가 조수석에서 새총으로 같이 있을거야. 그리고 돌아갈때는 자리 바꾸자고.”

“아~ 튜토리얼 같이 하는 거구나?”

에밀리는 납득해서 경험이 있는 자신이 뒷좌석에서 김준이 못 보는 사각을 경계하는 것에 수긍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리를 바꿔서 밤중에 모의 훈련이 계속됐고, 조명을 두고서 두 아이들은 김준과 같이 훈련을 끝까지 마쳤다.

***

[크어어어어­]

나가려고 하니 인사라도 하려는 건지 좀비가 집 근처에 있었다.

김준은 이전과 같이 캠핑카의 지붕 위로 올라가 조용히 공기총으로 좀비를 겨눴다.

“으으….”

나니카는 나가기도 전에 좀비를 먼저 잡아야 하는 상황에 겁이 나는지 떨고 있었다.

몸에 차고 있는 암가드와 두툼한 옷 너머로도 경련이 보이자 에밀 리가 조용히 그녀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같이 나온 가야나 은지도 나니카를 다독였다.

“너무 무서워 할 것 없어.”

“그래. 준 오빠 잘 따라다니면, 크게 위험하진 않아.”

경험자인 언니들의 말에 따라 나니카는 최대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했다.

띵­

철컥­

띵­

압축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두 발의 연지탄이 날아가 좀비들을 쓰러트렸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좀비들이 일어나는지를 스코프로 연신 확인했다.

그리고 상황이 확실히 정리된 것을 보고서 김준은 차에서 내려왔다.

“좋아. 가자!”

“네, 네엣!”

김준이 차에 타자, 나니카가 조수석, 에밀리가 캠핑카 뒷문에 타고 안에 있는 발전기와 빈 말통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집 안의 남은 톱스타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떠난 김준의 차는 좀비를 잡은 정 반대의 길로 향했다.

지난번 좀비 웨이브 이후로 확실히 주변 일대가 아주 조용했다.

인근에 돌아다니던 녀석들이 ‘어떤 상황’으로 집까지 한 곳에 몰린 지는 몰라도 덕분에 좀 더 수월하게 길을 갈 수 있었다.

물론 아까의 상황 같이 드문드문 보이는 좀비들은 있었다.

“오빠, 저, 저기!”

“저건 지나가도 돼.”

대놓고 길을 막거나, 이쪽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좀비가 아니라면 국도에서 그냥 지나치던 김준이었다.

나니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가리킨 것도 단층 상가 옥상에서 걸어다니는 좀비였다.

저런 건 쏴 죽이기도 애매한게, 잘못 맞춰서 역으로 길가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니카는 다른 아이들 중에서도 좀비들 가장 무서워 하는 여린 소녀.

김준의 집 반대편 옥상에서 좀비랑 마주쳐서 거품물고 쓰러졌다가 김준의 품 안에서 실례를 한 적도 있었다.

“헤이~ 저페니스~ 너무 긴장하지마. 아직 차 안이야.”

에밀리가 뒤에서 노크하며 나니카를 진정시켜주자 그녀는 다시 용기를 내려 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이 합쳐진 다국적 조합이었다.

김준은 그녀들을 데리고서 어제부터 준비했던 모의 훈련과 갈 길을 한 번에 정했다.

“운동장쪽 주유소로 갈거야.”

“거기 많이 갔는데, 아직 남아있어?”

“그 옆에 편의점도 그렇고, 안에 쌓인거 많다.”

“흐응~ 진짜 튜토리얼이네?”

오늘은 처음 루팅을 시도하는 소녀도 있으니 가장 자주 간 곳이고, 안정적인 루트를 선택해서 가기로 했다.

나니카가 밖에 나와 물자를 챙길 동안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쉽게 익숙한 필드가 좋을 것이다.

김준은 그렇게 소사벌 공설운동장 쪽 길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좀비들이 드문드문 보일 때, 나니카가 다시 외쳤다.

“오, 오빳!”

“어 그래, 저건 잡아야겠다.”

여기저기 박살나고 불타버린 차들 앞에서 서서히 걸어다니는 좀비들.

김준은 일단 공기총과 엽총을 장전하고 에밀리가 있는 뒤쪽을 두들겼다.

똑­똑­

“응~ 후방에 아무도 없고, 사이드에서도 갑자기 튀어나올 좀비는 없을 것 같아.”

그러면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석궁을 들고 있는 에밀리였다.

김준은 후방이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서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백미러 위로 총구를 받친 채 조용히 스코프를 겨누고 당겼다.

띵­

압축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 하나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때 나니카 역시도 결심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자신도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새총을 꺼내 너트를 장전하고 힘껏 당겼다.

하지만, 타이밍이 안 맞았다.

[캬아­ 캬아아아아아­]

한 놈 맞추니 그 옆에가 뛰는 좀비였다.

그 상황에서 나니카를 향해 달려오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기던 손을 놓쳤다.

“힉!?”

빠캉­

따악­ 쿵­쿵­쿵…

놀라서 손이 미끄러져 날아간 너트가 좀비 앞에서 콘크리트를 때리고 위로 힘껏 튕겨나가 바닥에 굴렀다.

그 상황에서 다시 장전하려는 찰나 김준의 엽총이 더 빨랐다.

탕!

콰직!

뛰는 좀비가 순식간에 머리가 터지면서 주변에 피를 흩뿌리다가 고꾸라졌다.

그리고는 아직도 상반신을 내민채 굳어있는 나니카를 향해 외쳤다.

“들어와!”

“네… 아, 네!”

바로 김준의 말을 듣고 조수석에 앉은 나니카를 보고 김준이 다시 말했다.

“창문은 닫고!”

“네, 창문… 아앗! 죄송해요!”

나니카가 황급히 창문을 닫아 좀비 습격을 막아낼 때, 김준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후우­”

“예상했지?”

뒤에서 에밀리의 장난스러운 물음에 김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불을 붙였다.

처음 시도하는 파밍에서 저럴 수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김준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가야가 그랬고, 도경이도 그랬고… 마리는….’

김준은 이 또한 지금부터 경험을 들여놔야 한다고 생각하며 크게 다그치지 않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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