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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76화 (76/374)

〈 76화 〉 76­ 특별할 것 없는 오피셜

* * *

라나는 조용히 김준과 마리가 앉아있는 소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다가와서 슬며시 물었다.

“일어나서 뭐 좀 드셨어요?”

“어, 마리가 주먹밥을 만들어줘서 말이지.”

“그것만 먹었나요?”

“물도 같이?”

“흐으음~?”

이미 다 안다는 듯이 김준의 몸에 코를 대면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킁­ 킁­ 뭔가 다른 걸 드신 것 같은데?”

“아, 뭔 소리야.”

“조금 전까지 마리 언니 따 먹…”

그 순간 김준의 옆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마리를 보고 라나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래도 당사자 언니 앞에 두고 그 이상은 말 못 하겠네요?”

한눈에 상황을 파악한 라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느긋하게 두 남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뒤이어 온 도경은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마시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이미 그녀 역시도 눈치를 챈 상황에서 마리와 김준을 보고 말했다.

“가야 언니나 에밀리 이후로 마리언니는 믿었는데….”

“으음, 저기 있지?”

마리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도경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상관 마요. 다 공범이니까.”

“으, 으응?”

도경은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면서 반대쪽 검지로 가져다 댔다.

“여기 다 해본 사람들이잖아?”

“…그렇네?”

라나, 도경, 마리 셋 모두 김준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

게다가 셋 중 둘은 첫 경험의 상대이기도 했다.

농사일과 뜨개질 도중에 온 두 소녀는 말 나온 김에 갑자기 자신들도 오랜만에 삘이 왔다.

“그래서 밤샘하고 일어나서 둘이 한 거죠?”

“저기, 그러니까….”

마리가 뭔가 말하려고 했다가 김준이 손을 들었다.

“그래, 엄청 하고 왔다.”

“그 이후로 난 찾아주지도 않고?”

“어… 그 이유?”

도경의 말에 캠핑카 안에서 불장난 이후로 다시 둘이 만날 일이 없었다.

게다가 라나 역시도 지난번 격한 쓰리썸 이후로 여전히 관심이 있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저기… 나는 씻고 다시 올라가야겠네?”

마리는 이 상황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욕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도경은 물병을 비우고는 조용히 김준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오늘 밤은?”

“좋아.”

김준은 달래주기 위해서 오늘 밤에 도경과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다시 1층에 농사일하러 간다며 힘차게 나갔다.

그리고 라나 한 명만 남았을 때, 그녀는 시계를 보더니 슬며시 일어났다.

“도경 언니가 오늘 밤 보재요?”

“어, 음.”

“그럼 저도 좀 씻어야겠네요.”

“방금 마리 들어갔잖아?”

“아니~ 2층에 욕실 하나 더 있잖아요?”

“…!”

김준은 순간 거실에서 자신의 안방을 쳐다봤고, 라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히 일어나 그녀의 가녀린 몸을 확 들어 올렸다.

“꺄아~”

김준에게 마네킹처럼 확 들려진 채로 안방으로 들어간 라나.

어깨에 들쳐졌을 때 김준의 눈에 레깅스가 달라붙은 탄탄한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마리가 이른 샤워를 하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나갔을 때, 안방에서는 갑작스럽게 2라운드가 이뤄지고 있었다.

***

그리고 그날 저녁 분위기는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그래도 여기 오면서 먹는거는 정말 잘 먹는다니까.”

에밀리는 달걀 프라이 노른자를 터트려 참기름에 밥을 비비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 아래층에서 재배한 알 배추로 만든 겉절이의 아삭거리는 소리까지 먹음직스러운 식사였다.

지난번의 좀비 웨이브 공방전만 없었다면, 자신들이 아포칼립스에 있는게 아니라 시골 한적한 팬션에서 장기 휴가를 즐기고 있는 거라 느낄 수도 있었다.

“다들 잘 해주고 있는데, 물은 좀 아껴쓰자.”

가야의 말에 모두가 그녀를 바라봤다.

“지난번 관정 펌프 준이 오빠가 뚫어진 이후로 우리 물 너무 막 쓰고 있는 거 같아.”

“아, 죄송해요. 오늘 갑자기 씻어서.”

가야의 말에 마리가 먼저 손을 들면서 사과했고, 은지 역시 가만히 있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처음 물 끊겼을 때, 샤워도 물 받아놓고 돌아가면서 사흘씩 쓰고 막 그랬잖아.”

“은지 언니는 씻는걸 못 봤어.”

에밀리가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을 때, 무뚝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은지.

확실히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은지가 샤워하고 나오는 건 김준도 못 보긴 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지저분한 건 아니고 오히려 지나치게 깔끔떠는 타입이었다.

언제나 로션과 바디워시향이 가득했고, 머릿결에는 윤기가 가득한데다가, 청소와 빨래도 자주하는 타입이다.

‘여자애들끼리 같이 씻는 것도 싫어하는 건가?’

김준은 그러면서 아이들의 상황을 지켜봤다.

확실히 관정 펌프는 지하수를 바로 끌어올려서 쓰는 농업용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식수용으로는 쓰지 않고, 빨래와 세면 정도지만 아껴서 안 좋을 건 없었다.

‘지하수가 좋기는 해도, 앞으로 언제곤 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김준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에 잠겼다.

“근데요. 만약에 지하수까지 떨어지면 저희 어떻게 되는거예요?”

나니카가 그 상황에서 조용히 물었을 때, 모두가 침묵에 잠긴 채 김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김준은 그 상황에서 생각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계속 생수 수급하고, 정 안되면 하천 강물이라도 퍼와야지.”

“그거… 먹을 수 있겠죠?”

아까 낮에 의무방어전 이후로 차분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라나의 질문.

그리고 마리도 거들었다.

“일단 한 번 끓이고, 정수를 한다면 음용은….”

“먹을 수 있어. 내가 떠 먹어봤으니까.”

은지의 말에 순간 숙연해졌지만, 김준이 거들었다.

“나중에 좀비가 빠져 죽어 섞이면 답 없지.”

“그걸 감안하고 마셔본거에요.”

은지의 말에 김준은 조용히 그릇을 비우고 말했다.

“어차피 말 나온김에 물은 좀 아끼자고. 물론 기본적으로 씻는것과 먹는거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말이지.”

김준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그리고 그걸 듣고 있던 톱스타 중 한 명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물수건 준비해야 되나?’

그날 밤.

새벽에 캠핑카에서 김준과 만난 소녀는 몸을 바디워시 풀은 물수건으로 몸을 씻은채 찾아왔고, 덕분에 바디워시 향이 확 났다.

***

다음날 하루 세 명하고 돌아가면서 한 뒤로 몸에 수분이 쪽 빠졌던 김준은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할 때였다.

“죄송한데, 저 불편한게 하나 있어요.”

이제껏 아무 탈 없이 무던한 성격의 인아가 아침부터 짜증스럽게 말했다.

“왜 그래 인아야?”

“화장실이요. 새벽부터 배아파서 엄청 끙끙거렸다고요.”

“캠핑카 거 쓰라고 했잖아?”

“거기도 아침부터 에밀리 언니가 샤워하고 있었다고.”

인아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겨우 캠핑카에 있는 화장실을 해결했지만, 불편한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화장실은 어떻게 만들수가 없어.”

김준이 작정하면 어떻게 푸세식의 재래식 화장실은 만든다 하더라도 그 위생 문제에다가 처리 방법까지 오히려 더욱 쉘터를 오염시킬거다.

결국 아침마다 화장실은 알아서 일찍 일어나 먼저 쓰는 순번제로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거기서 인아가 하나 더 폭탄을 터트렸다.

“게다가 요새 청소가 잘 안되나봐요.”

“음?”

“차 안에서 계속 쿰쿰한 냄새가 나는게….”

“….”

딸그락­

“쿨럭! 쿨럭!”

갑자기 사레가 든 도경이 뒤로 돌아 기침을 했고, 인아랑 같이 캠핑카 욕실을 쓴 에밀리는 자신도 느꼈던 ‘그 냄새’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게. 누가 교미를 했나?”

“푸웃­”

다른 표현도 아니고, 교미라고 하니까 순간 뿜은 마리와 가야, 겨우 음식 삼켰지만, 얼굴이 새빨개진 나니카.

김준은 공범인 주제에 노골적으로 말하는 에밀리를 가리켰다.

“거 말 좀 가려서 해라.”

“그래서 어제도 했지?”

“….”

“뭐, 뭘 했는데요?”

인아가 정색하면서 언니들을 한 번씩 바라보는 상황.

그렇게 여덟 톱스타들은 김준과 한쪽 vs 안 한 쪽으로 나뉘는 파가 생길 것 같았다.

원래였다면 이 상황에서는 맏언니인 가야가 바로 진정을 시켜야 했는데, 그녀도 그거에 대해서는 말을 못했다.

다른 경우도 아니고, 자신이 맨 먼저 김준하고 했던 파트너였으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다른 애들이 어떻게든 에밀리의 저 시한폭탄 입을 막아야 된다고 할 때 조용히 물을 마시던 은지가 말했다.

“신경 쓸 거 없어.”

그리고 김준을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도 숨길거 없고요.”

“후우~”

“언젠간 모두가 알 일인데요, 뭘.”

은지의 말에 김준은 일단 인아에게 사과했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미안해. 내가 뒷정리를 안 해서.”

“아, 그… 그러니까 그 냄새가, 그 냄새가 맞다는 거죠?”

이미 그녀 역시도 아침 차리러 왔다가 한 방에서 마리랑 김준이 나온 것을 본 뒤였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은지나 가야, 마리 등의 세 언니의 반응을 보고 인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마리 언니하고 준이 오빠가…음, 그래요.”

“딴 애일수도 있고.”

에밀리가 거기서 또 불을 붙였다.

“네? 설마 마리 언니 말고도 또…?”

인아가 한 명씩 둘러봤을 때, 시선을 피하는 셋이 있었다.

“가야 언니, 마리 언니… 그리고 나니카?”

한두명도 아니고, 여러명이 자신과 눈을 피하는 것을 보고 인아는 다시 한 번 정색했다.

경멸과 착잡이 섞인 얼굴에서 그녀는 조용히 일어났다.

“다 드신 분들 설거지하게 그릇 주세요.”

“아, 저기 인아야?”

“네~ 나중에 이야기할게요.”

빈그릇을 가져간 뒤로 후다닥 거실로 들어가는 인아.

그러면서 화끈거리는 얼굴과 가슴을 진정할수 없었다.

‘미친… 일본 야동이야? 한집 살면서 여러 명하고 돌아가면서?’

남녀간의 커플이야 이해는 한다지만, 그게 한둘이 아니라는 말에 더 그녀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나야 뭐 신경 안 쓰지만….”

그 상황에서 은지는 차분하게 식사를 마치고, 행주를 들었다.

암암리에 서로 눈치싸움만 하던 일은 이제 모두 드러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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