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68화 (68/374)

〈 68화 〉 68­ 좋은 친구들.

* * *

옥상에서 명국의 활시위와 김준의 엽총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바로 아래층에 있는 세 여자에게도 들렸다.

“어머?”

“시, 시작됐어요!”

명국의 부인은 머리를 감싸쥔 채 패닉에 빠져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리와 라나 역시 좀비가 다가온 다는 것에 대해 염려는 했으나 그러면서 그녀를 토닥이면서 침착하게 문단속을 했다.

누가 집주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이미 그 상황에 대해 많이 겪어본 자와 아닌 자의 차이였다.

라나가 문을 잠근 뒤로 마리는 차분하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안주인에게 손을 잡고 물었다.

“서로 통성명도 제대로 안 했죠? 강마리라고 합니다. 의사죠.”

“아… 진짜 의사셨군요.”

큰 안경 너머로 마리를 우러러보던 명국의 부인은 뒤늦게 자기 소개를 했다.

“한수영이라고 해요. 나이는 그… 스무살이고요.”

“어머! 나랑 동갑이네?”

라나는 알고 보니 동갑이었던 수영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녀가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라나의 얼굴을 천천히 보다가 아까부터 생각하던걸 물었다.

“저기, 그러고보니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은데….”

“흐응~ 그렇죠?”

화장 안한 쌩얼인데도 자신을 알아보는 수영의 말에 라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좀 더 자세히 보라고 얼굴을 내밀었다.

“아, TV에서 나오던 그 가수….”

“차나라에요!”

다행히 이런 분위기여서 좀비 위에 패닉이 빠진 상태에서도 셋은 멘탈을 잡을 수 있었다.

“자~ 위엣분들이 좀비 잡는 동안 우리 셋이서 천천히 기다리죠.”

라나의 말에 수영 역시도 손을 잡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천장을 보다가 넌지시 중얼거렸다.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

쉬이이이익­

팍!

힘차게 날아간 화살이 좀비의 미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탐조등으로 밝혀졌다 하더라도, 이 어둠 속에서 신기에 가까운 궁술 솜씨를 보이는 명국이었다.

“엄청나네.”

“…하나 더!”

다시 화살을 뽑고 바로 활시위를 당기자, 김준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적외선 스코프로 겨눠진 좀비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좀비 하나가 슬러그탄에 머리가 박살난 채 힘없이 고꾸라졌다.

그렇게 십수 마리의 좀비들이 일제히 신호를 받은 것처럼 달려들었으나 옥상에서 두 명의 생존자에 의해 전멸했다.

김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탐조등으로 마지막까지 수색을 한다음 살아있는 좀비가 단 한 마리도 없는 것을 확인한 명국이 전원을 내렸다.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보답으로 오늘 하루 묵고 갈 수 있어요?”

“얼마든지요.”

김준은 그 대답에 피식 웃었다.

생사의 상황에서 또 다른 생존자는 훌륭한 동료가 돼 주었다.

***

집 안으로 들어온 두 명의 남자를 보고 서로 안도하는 여자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불이 켜지면서 늦은 식사 자리가 있었다.

“와~ 반찬 봐~”

“어머나….”

수영과 명국이 나가서 차린 저녁상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갓 잡은 닭으로 만든 닭찜, 수북하게 쌓여있는 계란 프라이, 간장으로 담근 장조림과 통조림 햄, 마당에서 재배한 고추, 깻잎과 머슴밥으로 쌓인 밥이었다.

진짜 시골밥상이 뭔지 제대로 확인한 그들은 곧바로 수저를 들고 먹었다.

다같이 모여서 오순도순 먹는 자리에 명국 내외는 얼마만에 만나는 사람들이고 이렇게 다같이 모인것에 대해 행복해 했다.

“와, 계란보고 이렇게 감동한 거 처음이야!”

“많이 드세요!”

라나는 프라이 하나를 밥 위에 올려서 케찹을 발라 먹었고, 노른자가 톡 터지는 맛을 느끼면서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 저 사람이 그 연예인 차나라 맞대요.”

“진짜? 아까 슬쩍 봤을때도 그래 보였는데.”

“그럼 저도 누구인지 알까요?”

마리가 장난스럽게 묻자 수영은 못알아봤어도 유심히 살펴보던 명국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 분도 연예인 아니야?”

“의사라고 하던데요.”

“아니, 왜 있잖아! 지니어스 서전 드라마에 나왔던 여의사!”

“네~ 메딕이 왔어요~”

자신의 데뷔작이자 신인상을 받았던 그 작품의 명대사를 말해주자 명국 내외는 입을 막고 깜짝 놀랐다.

“어머, 어머머머!”

둘 다 미디어에서 자주 봤던 톱스타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감탄하는 명국 내외였다.

만약 이 상황이 좀비 사태가 아니었다면, 사진도 같이 찍으면서 SNS에 올릴 수 있었다.

“아니 어떻게 연예인 두 분이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맞아. 그런 분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뭐… 이런저런 사정이 있지만, 이 동네에서 잘 살고 있죠.”

라나는 김준을 보면서 눈을 찡긋 했고, 그는 묵묵히 식사를 하면서 피식 웃었다.

“이따가 밥 먹고 싸인 되나요?”

“네~ 얼마든지요.”

이 정도의 환대를 받았는데, 싸인이야 몇백 장이라도 해 줄 수 있었다.

식사 이후로 디저트로 커피가 오자 오붓한 자리 속에서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니까… 그 상황이 터지고 둘이서 살아오신 거예요?”

“셋이었어요.”

“….”

명국은 한숨을 내쉬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아버지도 계셨지만, 지병이 있으신 상태에서 병원에도 못 가시고 돌아가셨어요.”

“어머…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명국은 이 상황에서는 그냥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커피를 조용히 마셨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원래 동네에서 알고 지내온 남매같이 지낸 둘은 초, 중,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온 사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가 붙은 재단 학교에서 운동특채로 체육대학 양궁부로 간 명국이 잠시 고향에 왔을 때 터져버린 좀비 사태...

평소 이웃집이었던 곳에서 수영을 구해줬지만, 같이 살던 부모님은 좀비의 습격으로 죽었고 그녀만 살아남았다.

그렇게 고향 오빠와 동생은 이 사태에서 모두 가족을 잃고 둘만이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생긴지도 모르고….”

“이 사태가 끝난다면, 정식으로 식을 올릴거에요.”

“어머, 그런 상황이었다면….”

라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서 따로 꼬불쳐 뒀던 반지 몇 개를 꺼내서 금반지 하나를 수영에게 건네줬다.

“이것도 인연인데 받으세요.”

“네, 넷?!”

“두 분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요.”

김준은 그 상황에서 라나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그녀가 챙긴거였고, 하나쯤 준다고 해도 이 상황에서 그렇게 금붙이가 필요할데가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이 사태가 모두 끝나서 다시 한 번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모를까, 지금은 그냥 예쁜 광물 중에 하나이다.

“정말 고마워요.”

“네~ 밥값이에요.”

그러는 사이 명국은 김준에게 넌지시 말했다.

“오늘 이곳에서 묵고 가신다면, 내일 사육장 수리하시는 것만 마무리 짓고, 닭이랑 오리 좀 몇 마리 드리겠습니다.”

“어머~ 그럼 우리도 이제 계란 계속 먹는건가?”

아까 저녁에 프라이만 다섯 개를 먹었던 라나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지만, 김준은 고개를 저었다.

“산 거 말고 잡아서 주시죠. 고기로 가져가겠습니다.”

“네?”

“산 닭은 아직 안 돼요.”

“오빠, 왜요!?”

라나가 묻자 김준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말했다.

“아침마다 닭이 울 때 그게 우리 동네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까?”

“…아?”

여기야 비탈길 가득한 비포장 도로 위주의 시골 한적한 집이지만, 김준과 여덟 톱스타가 거주하는 곳은 자그마한 소리에도 좀비들이 다니는 주택가, 게다가 이미 한 번 습격의 공포를 느낀 곳이었다.

그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이 [꼬끼오~]를 외치는 순간 그게 스위치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준다고 하는 것을 마다할 생각은 없고 가져간다면 다 잡아서 고기로 먹는게 낫다고 판단한 김준이다.

그리고 가만히 듣고 있던 마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앞으로 이곳과 물물 교환을 하면서 서로 물자를 교환하자고요. 달걀이나 고기 등이 필요할때요.”

“아,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명국의 물음에 김준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아까 보니 탐조등에 여기 조명과 가전제품까지 해서 태양광 하나로는 부족해 보이던데, 차에 있는 발전기 하나 드리죠.”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물포에서 털어온 벽지나 장판 등이 있는데, 그거랑 고기&달걀이랑 교환을 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즉석에서 내일 서로의 생존물자에 대한 물물교환이 약속됐다.

지난번 절도 그렇고 맘씨 좋은 생존자들이 남아서 앞으로 루팅 이후 필요없는 물자에 대한 교환 역시도 이뤄질 수 있어서 확실히 생존에 대해 좀 더 용이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그리고 말이죠.”

“네.”

“두 분이서 계속 여기서 사셨다고 했죠?”

“어, 그런데요?”

명국은 갑자기 추궁하듯 묻는 마리를 보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어리둥절했다.

“여기 올 때 아내가 아프다고 해서 왔는데, 진찰을 이것저것 해 봤거든요. 비타민하고 철분 영양제도 꺼내서 드렸고요.”

“혹시… 수영이 몸에 무슨 병이 있는 건가요?”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져서 진중하게 묻는 명국을 보고 마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얼굴을 긁적이다가 그냥 털어놓기로 했다.

“두분이 오래 계시면서… 잠 자리 얼마나 했어요?”

“…네?”

“섹스요. 주당 얼마나 하셨어요?”

“어머!?”

“야!”

순간 수영을 보는 라나와 뭔 소리 하는 거냐면서 만류하려던 김준.

그때 수영이나 명국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당황한 그녀가 바로 남편의 등 뒤에 숨어서 커다란 안경 너머로 두 눈을 굴리며 머뭇거렸다.

수수한 외모의 두 커플은 갑작스런 질문에 답을 쉽게 못했다.

“저기 그… 그런 건 세어보진 않았는데….”

“엄청 하셨을거 같은데요?”

“야, 강마리!”

김준이 외치자 손을 뻗어서 제지하는 마리다.

그리고 자신은 단순 희롱이 아니라 의사로서 판단을 내려 둘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하지 마세요. 안정기도 안 된거 같은데, 격한 성행위에 입덧만 더 심해진 거예요.”

“네, 넷?!”

“그러니까 댁 와이프분, 임신했다고요.”

“!!!!”

마리는 자신이 청진기로 진단하고, 영양제를 가져다 놓은 이유를 확실히 말해줬다.

그리고 아까 옥상에서 두 남자가 좀비를 잡을 때 ‘방 안에 여자 셋’이 아니라 ‘넷이다.’라고 정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말했다.

“바깥에 차에 임테기 있어요. 의심되시면 지금 당장 꺼내서 확인할수 있죠.”

마리는 그러면서 김준과 같이 나가서 임테기를 가져왔고, 잠시 후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선명한 빨간색 두 줄을 보이며 울먹거리는 수영이 있었다.

“지, 진짜….”

“…오빠.”

두 커플은 와락 끌어안으며 오열했고, 김준이나 라나, 마리는 조용히 박수를 쳐 줬다.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도 확실히 새 생명은 생긴다.

***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첫닭 우는 소리에 깬 김준과 명국은 일어나서 바로 사육장 개보수에 들어갔다.

캠핑카 안에서 챙긴 공구들과 철조망을 약간 빌려서 그동안 여러마리 탈출해서 야생화 됐을거라는 닭과 오리들이 다시는 못 나가게 확실히 막았다.

그리고 안에서 유정란에서 부화한 병아리와 새끼 오리들이 관정펌프에서 나온 물을 마시고 잡초와 벌레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서, 앞으로 이 집의 식량 수급은 문제 없을 것 같다며 피식 웃는 김준이었다.

“여기요.”

“어이구, 많이도 잡았네.”

닭 다섯 마리에 오리 세 마리의 목을 비틀어서 바로 피를 빼고 고기로 건네준 명국.

거기에 옛날 시골에서나 봤던 지푸라기로 꼬아서 만든 달걀 두 판에 오리알 한 판, 고추나 애호박등의 야채들을 추가로 받았다.

그 답례로 김준은 장판과, 못 한 박스, 그리고 의료점에서 챙긴 기저귀와 영양제를 건네는 교환식이 이뤄졌다.

“이 다음에 뵙죠.”

“만약 오실때는 근처에서 클락션을 세 번 울려주세요. 그러면 제가 탐조등을 켜지요.”

자신의 부재시 수영에게 말하겠다면서 확실히 연락책을 만든 김준 쉘터와 명국의 쉘터.

그렇게 교환식 이후 정말 오랜만에 1박2일로 제대로 된 물자 수급이 이뤄져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차 안에서 라나는 그들과 이야기 한 내용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랑 동갑인 친구가 아기 엄마라니. 어우~ 상상도 못하겠네요.”

“뭐, 그렇지.”

“이 상황에서도 확실히 애는 태어나나봐요.”

라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김준이다.

라나는 그동안 김준을 유혹해서 몇 번의 섹스를 했지만, 자신은 절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면서 앞으로 피임의 중요성을 다시금 숙지했다.

그리고 조수석에 있던 마리 역시 슬그머니 김준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만약 이 상황이 1년을 넘는다면….”

“그렇게까진 안 갈거다.”

“그러니 만약이죠. 정말 그런 상황이면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뭐가?”

“오빠 아이 갖는거요.”

“….”

순간 엑셀과 브레이크를 바꿔 밟을 뻔한 김준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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