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55 살 사람은 살아야지.
* * *
김준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집 안에서 엄청난 우울 바이러스가 주변에 맴돌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평소와 같이 은지와 인아가 내려가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고, 가야가 애들 불러서 상 차리고, 하나둘씩 나와서 하는 식사.
그 분위기 자체가 깨져 있었다.
하나같이 넋이 나가있는 상황.
김준은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뭐야, 오늘 아침 왜 이래?”
“….”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김준은 이 어색한 분위기에 얼굴을 긁적였고, 잠시 후 가야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이….”
“음, 오늘이 뭐? 또 누구 생일이었어?”
그 순간 그 말에 다시 한 번 목이 메여 있는 인아를 발견했다.
“오늘이 인아 할머니 생신이었대요.”
“어….”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그 뒤로 지금….”
그 동안 잘 넘어갔다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길어지는 이곳의 생존 이후로 갑자기 떠오른 모두의 가족에 관한 존재.
그러다 보니 이것이 모두에게 퍼진 것이었다.
“나도, 서울 집에 있는 엄마아빠랑, 동생들… 잘 있나 모르겠다.”
도경이 그 상황에서 말했을 때, 에밀리는 천장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부에나 파크는 괜찮으려나?”
“흑, 흑… 아, 죄송해요! 이러면 안 되는….”
하지만 결국 엎드려서 오열하는 라나.
갑자기 화목한 아침식사는 각자의 가족들을 생각하는 자리가 되어서 눈물콧물을 짜는 자리가 되었다.
김준은 손을 들어서 하나하나 위로해 주려다가 모두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고 손이 허공에서 멈추고는 착찹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칙 치익
담배 한 대를 물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을 때, 김준은 이런 경우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음식이 부족하다면, 농사를 짓거나 루팅을 해서 구해오면 된다.
전기가 부족하면, 준비한 발전기를 돌리고 태양광 집열판의 용량을 올리면 된다.
물이 부족하다면 주변 상가를 털면서 생수를 준비하고, 관정을 뚫어서 지하수를 캐내면 된다.
그런데 아이들의 정신이 아픈 경우에 대해서는 어째야 될까?
불과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눈 맞아서 술도 같이 먹고, 섹스도 하고 그랬는데 단 한 번의 계기 때문에 그동안 유지했던 텐션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준이 줄담배를 태우면서 한숨을 푹푹 쉬며, 고민하고 있을 때 조용히 2층에서 나와내려오는 이가 있었다.
“너무 여유로워서 그래요.”
“!”
고개를 돌아보니 몸 여기저기에 애들의 눈물자국이 가득한 은지가 있었다.
맏언니 가야와 더불어 둘째언니 은지의 달램으로 인해서 겨우 진정시키고 나온 것 같았다.
“그동안 좀비가 드글거리는 밖에 가면서 긴장도 했지만, 그러면서 가져오는 물건들로 인해서 애들 감정 기복이 심했었죠.”
“으음.”
“그런데 이후로 먹을게 풍족해주고, 전기나 물도 잘 쓰니까 다들 집 안에서 시간만 보냈죠. 전화나 인터넷도 없이.”
마치 옛날 군대 내무반과도 같은 상황, 김준 역시도 그것은 공감했다.
원래 바쁘지 않고 여유로울때는 잡생각이 많이 나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포칼립스의 세상이고, 거기에 대해서 당장에 생각나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있기는커녕 생사도 모른다.
그 상황이 되었다가 오늘 인아의 일로 스위치가 터져버렸다.
이 상황에서 해결책은 다시 한번 애들을 빡세게 굴려서 그런 생각이 안 나도록 해야 하나 생각하는 김준은 마지막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 말했다.
“오늘 회식좀 해야겠다.”
“좋은 생각이세요. 하지만, 얼마나 갈까요?”
술로 달래는 것도 한 두 번, 그것도 그냥 소주 마시다가 구해온 위스키나 탄산 등으로 바테이블까지 만들어서 잘 써먹었지만 오래 못가고 지금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김준은 그동안 넘치던 채소나 통조림 말고 다른 것을 생각했다.
“지금 당장 나갈 거야. 혹시 보조 가능해?”
“아, 뭐… 갑작스럽지만 준비하죠.”
은지는 김준의 루팅 제안에 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의 파트너로 고른 인물은 역시나 가야였다.
그렇게 연장자 두 명이 빠지고, 서로 장비를 준비할 때 김준은 마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떻게 애들 케어 되겠어?”
“제가 정신과 쪽은 잘 모르는데… 어떻게든 애들 상담은 다 해 줄게요.”
그나마 남은 이들 중에서 가장 차분한 마리가 남아있으니 김준은 안심하고 맡기기로 했다.
그때 밖으로 나가려는 김준을 보고서 에밀리가 다가왔다.
“준 오빠, 내가 갈게.”
“이미 정해졌어.”
“가서 뭘 때려부수던지, 아니면 쇼핑이라도 잔뜩 해야겠어. 나 진짜… 여기 있다간 나도 까라앉아서 못 견디겠다.”
본인도 미국에 있는 가족 이야기를 떠올렸지만, 그렇다고 이 눈물 바다에서는 같이 있기 싫다는 모양새였다.
김준은 그런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도 조용히 말했다.
“우리 사랑하는 에밀리, 다른 애들 멘탈 케어 마리랑 같이 할 수 있겠지?”
“아~ 난 이런 쪽 아닌데.”
‘사랑하는 에밀리’라는 말에 어떻게든 이 집을 벗어나 차라리 좀비 잡는 곳으로 가겠다고 우기던 그녀가 조금 누그러졌다.
어떻게 다른 애들을 달래고, 아대와 암가드 등을 찬 채로 새총과 지팡이를 들고 준비하는 가야와 은지를 본 김준은 다른 아이들을 향해 엄지를 올리고 말했다.
“울어, 그래 마음껏 울어라! 그리고 오늘 돌아오면 회식 한 번 하자. 먹고 죽자고!”
“!!!”
김준은 오늘만큼은 정말 그동안 못 먹었던 특식을 준비하러 떠나겠다는 듯 나섰다.
그렇게 아이들 멘탈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김준이 하던대로 하는 것이다.
“오늘 고기 좀 먹자.”
“네?”
“소주 한 잔에 상추랑 깻잎도 있으니 구워먹자고, 까짓거 이런 날도 있어야지.”
조수석에 앉은 가야는 고기라는 말에 두 눈이 확 커졌다.
“어디서 구하죠? 이 날까지 아직 신선한 생고기가 있을까요?”
“구해야지.”
뒷좌석에서 김준에게 물은 은지는 시니컬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냥이라도 하나요?”
“어, 그럴 거야.”
“!?”
“어머!”
순간 둘 모두 깜짝 놀라서 두 눈이 커졌다.
어떤 상황이 될 지도 모르는데 야생동물을 잡겠다니, 김준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진심이에요?”
가야의 물음에 김준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살아있는 생존자, 그리고 밖에 나가면서 알게 된 정보. 전부 조합해서 확신했어. 바깥에 물 먹을 수 있어.”
“어, 어떻게 그걸 확신해요?”
그때 은지가 넌지시 뒤에서 말했다.
“내가 먼저 먹어봤거든. 야생 들개들이 물마시던 하천가서 컵으로 한 잔 떠서….”
“!?”
가야는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랐지만, 그 뒤로 김준이 말했다.
“지난번 경찰들도 그랬지. 못 구했지만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통조림 등을 파밍해서 먹거나, 아니면 야생동물도 잡아먹었다고.”
“진짜로요?”
“뭔 생각 하는지 알겠는데,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한 번쯤은 시도해볼만 해.”
물론 리스크가 굉장히 큰 건 사실이다.
당장 김준이 처음 좀비사태에서 집안에서 관련 영화나 보고 있었고, 애들도 본 작품 중에서는 까마귀나 들개 등이 좀비 시체를 뜯어먹다가 그 피로 인해 감염되는 내용을 보고 경악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김준이 말한 ‘먹고 죽자!’ 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진짜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마음속에 담아두는 가야였다.
“만약에… 먼저 시식을 해야 한다면 그건 내가 먼저 할게.”
“은지야!”
“괜찮아. 가야언니. 많이 해본 거니까.”
모든걸 내던진 것 같은 은지의 말에 가야가 뭐라 말하려 했지만, 김준은 확신했다.
“그럴 일 절대 없어. 나를 믿어. 내가 먼저 먹어볼테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가야는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사냥을 위해서 움직인 곳은 지난날 신도시 조성을 한다고 싹 밀었던 옛날 저수지 일대였다.
황량한 땅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기 시작했고, 버려진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옛날에 여기서 붕어낚시도 진짜 많이 했는데.”
김준은 과거의 추억을 살리고는 곧바로 총을 꺼냈다.
“일단 주변을 살펴야 하니까 좀비들이 한 번 보자고.”
김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일단 클락션을 확 눌렀다.
빠아아아아아아앙!!!!
연달아 누른 클락션.
그것이 신호가 되어서 주변에 과연 얼마나 많은 좀비들이 있을까 세 명이 모두 샅샅이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뒷좌석에 있던 은지가 조용히 말했다.
“뒷쪽에서 오빠 운전석 쪽으로 좀비 셋이요.”
“오케이!”
김준은 차를 슬슬 돌려서 창문을 살짝 열고서 바로 총구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느릿느릿 걷는 좀비를 빠르게 저격해서 쓰러트렸다.
“아앗, 반대쪽이요! 저기도 온다! 어머머! 쟤들 뛰어요!!!”
가야가 다급하게 외치자, 이번에는 바로 차를 돌려서 뛰어오는 좀비 둘을 보고 김준이 총을 바꿨다.
지난번의 경찰들의 은혜로 얻은 총탄을 가득채운 리볼버.
김준은 달려오는 좀비들을 보고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권총 사격으로도 아주 우수하게 뛰는 좀비들을 쓰러트렸을 때, 그 뒤로 여섯 개의 눈이 이곳저곳을 살피면서 주변의 좀비들을 하나하나 잡아갔다.
30분간 살펴본 뒤로 더 이상 좀비가 보이지 않을 때 김준은 바로 핸들을 고쳐 잡고서 저수지 일대를 돌았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잡은 좀비들을 두고서 확실히 숨이 끊어졌는지 확인을 한 다음 천천히 주변 일대를 돌았다.
한 번 불도저로 밀어버린 다음에 잡초가 무성한 오프로드로 된 길을 돌 때, 과연 이런 곳에서 뭐 사냥을 할 수 있는게 있을지 궁금해 하는 가야와 은지였다.
저수지를 지나 언덕 풀숲과 일대를 따졌을 때 김준은 그곳을 보고 말했다.
“여기도 원래 산소인데… 아파트 지어졌으면 바로 보이는 것 때문에 난리였을거다.”
문명과 시간이 사라진 뒤로 쓸쓸한 분위기 속에서 김준은 조용히 뭔가를 보고 총을 들었다.
철컥
“잘 들어. 지금부터 숨소리 하나 내지마.”
“뭐가 있… 어머!?”
“언니!”
가야도 조수석에서 망원경으로 그걸 확인했다.
아름드리 자란 나무에서 내려와 산소 일대를 돌아다니는 새를 발견한 것이다.
김준은 좀비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질리도록 봤던 꿩을 보고서 바로 겨눴다.
하필이면 수컷인 장끼도 아니고 암컷인 까투리.
저건 수렵기간이었어도 잡았다간 벌금이지만, 지금은 그런거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중에 딱지 끊을 경찰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김준은 침착하게 겨누고 공기총을 본래의 의도로 사용했다.
띵
푸드드득
원샷 원킬로 맞추자 곧바로 머리에 피를 뿜으면서 바닥에서 날갯짓을 하다가 순식간에 굳어버린 암꿩.
김준은 그것을 가져오기 위해 차를 슬슬 움직였고, 나가려는 순간 은지가 말했다.
“내가 갔다 올게요.”
“됐어. 위험해!”
“고깃값은 해야죠.”
“야, 야!”
김준은 바로 뒷문을 열고 후다닥 달려온 은지.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피투성이로 죽은 꿩을 잡고서 그대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잡은 꿩의 시체를 보였다.
“제대로 맞췄네요.”
“위험하다니까, 말 진짜 안 들어!”
“오빠가 조준만 해요. 가져오는겐 제가 할테니.”
은지는 자신이 사냥개가 된 것처럼 말했고, 김준은 한숨을 쉬면서 룰을 정했다.
망원경을 두고서 가야가 사냥감을 발견하고, 김준이 총을 겨눠서 잡는다.
그리고 근거리에 오면 주변을 살핀다음 빠르게 은지가 달려와서 잡은 사냥감을 집어온다.
김준은 그 뒤로 까투리 말고 장끼도 있을 거라면서 시동을 끈채로 주변을 계속 살폈다.
그리고 정말 얼마 안 있어 푸른 머리의 장끼가 나무 위에서 날갯짓 하는 것을 발견한 순간, 김준은 바로 방아쇠를 당겨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꿩 두 마리라는 쏠쏠한 사냥감.
그 와중에 김준은 저수지를 돌면서 진짜 찾았던 존재들을 살폈다.
주변 좀비들부터 잡고서 저수지를 타고 쭉 가는 길.
그리고 정말로 김준이 찾았던 사냥감을 발견했다.
“브라보!”
“?”
“가야야, 은지야. 저기 한 번 봐라.”
김준은 물이 아닌 저 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들은 해가 슬슬 떨어지는 운치있는 자리에서 V자로 날아가는 세때를 발견했다.
“어머!”
“와아아….”
오리때가 날아간다.
흔히 청둥오리라 불리는 TV에서 자주 볼수 있는 야생동물이자 철새.
그리고 누구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맛은 굉장히 안정적이다.
“오늘 저거 꼭 잡는다. 다들 준비해!”
김준은 오리떼가 날아가는 곳을 향해서 천천히 서행으로 다가간다음 쏘아서 떨어지는 곳이 물이 아닌 평지가 있는 곳을 향해 타이밍을 쟀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좀비를 잡는 생존자 김준이 아닌 진짜 사냥꾼 김준으로 빙의해서 공기총을 꺼냈다.
철컥
띵!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