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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53화 (53/374)

〈 53화 〉 53­ 부대끼는데 일반 썸이라니?

* * *

루팅 이후로 간만에 푹 쉰 김준.

그 뒤로 요새 낮에는 톱스타들이 모여서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 끼우고 감으면 되는 거야.”

“오, 그렇구나.”

“코 잘못 늘리면 망하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야 해.”

“어렵다 이거.”

털실 뭉치와 옷감을 가져왔을 때, 예상대로 그것에 관심을 보이고 뜨개질을 할 줄 아는 것은 은지였다.

그녀는 차분한 성격에 맞게 아이들을 모아놓고서 뜨개질을 가르쳐 주고 있었고, 모두들 낑낑 거리면서도 각자의 옷과 양말 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 또 터졌다.”

“역시 힘쓰는 거 빼곤 못하네.”

“아씨! 진짜!”

도경이 뜨개질을 하다가 잘 안되는지 계속 틀리는걸 옆에서 에밀리가 이죽거렸다.

그 와중에 라나나 나니카는 상처에서 슬슬 딱쟁이가 올라와서 그 뒤로는 일단 멍이 빠질 때까지 천천히 운동을 시작했다.

“언니, 여기 가려워 죽겠어요.”

“긁지 말라니까! 알아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갈텐데 왜 그렇게 손이 가?”

두 소녀에게 매일같이 드레싱을 해주던 마리는 얌전한 나니카에 비해 여기저기 긁어대서 기어이 딱지에 피를 보는 라나를 보고 한마디 했다.

지나가다 그걸 본 김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웬만하면 의사 말 좀 들어, 너도 그러다가 봉와직염 온다.”

“알았어요. 빨랑 좀 나았으면 좋겠는데. 아야야­”

그래도 외상은 거의 다 나아간다는 것을 보고 안도했고, 특히 얼굴 다친곳에도 딱지가 앉아 흉터는 안 남겠다고 하는 마리의 말에 라나가 안도했다.

“저기… 밖에서 하는 뜨개질이요.”

“엉, 왜?”

“저도… 할수 있나요?”

나니카는 계속 누워만 있기에 좀이 쑤시는지 그 상황에서도 뭔가 하고 싶다는 말에 은지에게 말하라고 전해줬다.

그렇게 2층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고서 3층에 올라간 김준은 밖에서 담배 한 대를 태웠다.

“후우­”

요새 들어 정말 이곳이 하나의 마을이 되어간다는 걸 느꼈다.

애들의 멘탈 케어도 잘 되고 있고, 필요한 물건을 찾아가고, 나눠가며 부대끼고 살아가다가 가끔 눈맞으면 섹스도 하고, 그러면서 한 살림이 되었다.

김준은 낮이 되면 가끔씩 망원경을 들고서 옥상에서 주변을 바라봤다.

저 멀리 보이는 좀비들을 보고서 언젠가는 잡아야 할 녀석들이라고 여기고, 가까워지면 저격을 해서 쓰러트렸다.

그러면서 틈틈이 무기 손질도 하고, 지난번 망가진 총들도 어떻게 도구를 만들어 고쳐나갔다.

치익­ 치이이이익­

에어 컴프레셔를 돌리면서 공기총에 압축공기도 불어넣고, 엽총도 총구에 낀 먼지들을 청소하고, 권총도 한 번씩 분해해서 기름칠 한 번 해주고 손질을 마친다.

그렇게 총기수입 작업을 끝냈을 때, 씩씩거리며 나오는 여성이 있었다.

“아, 진짜! 저걸 팰 수도 없고!”

“?”

그러면서 나와서 신경질을 부리는 건 도경이었다.

김준은 총들을 챙기면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까까지 뜨개질 잘 하더니 또 왜그래?”

“아, 오빠.”

도경은 김준을 보고 흠칫! 놀라더니 이내 헛기침을 했다.

“벼, 별것 아니에요. 뜨개질 처음 하는데 에밀리 언니가 자꾸 깐죽거려서요.”

“니네 둘은 맨날 투닥투닥 거리더라?”

“분명 내가 데뷔는 선배인데!”

“여기선 나이순으로 정하기로 했잖아.”

도경은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씩씩 거렸고, 김준은 잠시 캠핑카를 열어줬다.

그냥 뒷문만 연게 아니라 옆문까지 개방해서 그 동안 캠핑장에서 써 봤지만, 여기서는 한 번도 안 해본 방식으로 펼쳐서 간이 쉼터를 만들었다.

“와아­”

자신들이 타고 다녔던 차지만, 새삼스럽게 이게 캠핑용 레저 차량이라는 것을 부각한 순간이었다.

김준은 캠핑카 옆 칸 침대를 조립해서 소파 형식으로 만들고 편하게 앉아 담배를 물었다.

도경은 그 상황에서 김준의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옆에 있는 냉장고를 열고 잔뜩 루팅했던 음료수 중 비타민 드링크를 두 개 꺼내 도경에게 하나 넘겨줬다.

“아, 고맙습니다.”

“머리 좀 식혀.”

김준은 드링크를 따고서 한 모금 마시면서 담배 한 대의 여유로 하늘을 바라봤다.

진짜 엄청나게 맑은 하늘을 보면서 전 세계가 이렇게 됐을 때, 순간적으로 ‘몇 명이나 살아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도 안 돌아갈 테고, 아예 문명이 리셋됐겠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은 할까?’

옛날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같은 거 보면 세계대전이나 좀비 사태 이후로 완전히 리셋된 문명에서 다시 복구하는 데 몇십 년 걸린다는데 정말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아니지, 요새 영화 보면 막 좀비랑 같이 살아가는 적응의 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잖아?’

김준은 어느 쪽으로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방향으로 행복회로를 돌리고 싶었다.

그때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도경이 입을 열었다.

“오빠.”

“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뭐, 그냥….”

담배 한 대에 멍하니 있는 김준을 보고서 도경은 자신도 진정되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 아기는 잘 있겠죠?”

“그러겠지.”

“스님들이 대접해준 국수 생각나네요. 그거 엄청 맛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못 먹었잖아. 너랑 에밀리가 그 맛은 못 잊을 거라던데.”

김준은 언젠가 또 그 사찰에 갈 일이 생기면 한 번 맛보기로 다짐했다.

그렇게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는 못하고, 침묵이 이어졌을 때 도경은 또 다시 슬금슬금 김준의 옆으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김준은 거기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담배를 다 피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오늘 저녁은 뭐려나?”

“아, 그… 글쎄요.”

도경은 앞서가는 김준을 붙잡으려고 하다가 이내 자기 손을 넌지시 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또 다시 기회가 될 뻔한 날이 생겼다.

“오랜만에 오픈한 은지의 바네.”

일상을 보내다가 마련된 은지의 바에서 각종 칵테일이 나왔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번 사찰 다녀온 1박 2일 루팅 이후의 도경과 에밀리였다.

그리고 은지까지 해서 총 네 명이 다같이 칵테일 한 잔의 조촐한 회식을 즐겼다.

“아직도 할 이야기거리가 많나봐?”

“진짜 스펙타클했으니까요. 완~전 영화야. 영화!”

은지는 에밀리의 말에 빙긋 웃으면서 새 칵테일을 준비했다.

그것을 들이키면서 알딸딸한 에밀리와 그 옆에서 오늘따라 많이 마시는 도경이다.

김준은 그들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은지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자리를 돋궈주는 은지가 필요하지.”

“저야 뭐… 하는 일만 하니까요.”

“스웨터 만드는거 멋지더라. 언제쯤 완성 돼?”

“한 달 조금 안 걸리죠.”

“오우­”

김준은 생각보다 엄청 정성들이는 시간에 은지를 향해 리스펙트했다.

그리고 에밀리는 자신도 뜨개질을 하면서 말했다.

“나, 그거 만들거야. 가슴트임 원피스. 등도 이렇게 파이고.”

원피스에서 가슴부분만 트임이 되있는 그 특유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겠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는 에밀리.

하지만 도경은 거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손만 바라봤다.

김준 역시 그 손을 보고는 아이돌이라 치기에는 상당히 투박하고 길다란 손가락을 보며 말했다.

“운동 오래했다고 했지?”

“네, 부상 없었으면 아마 무대가 아니라 올림픽을 뛰었을 지도요.”

“근데, 어떻게 배구에서 아이돌까지 갔어?”

김준의 순수한 질문에 도경은 조용히 그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부상을 좀 크게 당했어요. 수술까지 하니 반 시즌을 아예 날렸죠.”

“아, 미안.”

“아니요 벌써 몇 년 전인데. 그때 저희 학교가 예체능 특화인데 모델 일 한 번 해볼 생각 없냐고 하더라고요.”

“기럭지 크니까 어울리네?”

에밀리의 말에 도경이 살짝 눈을 흘겼지만, 그녀는 별 신경 안쓴다는 듯 안주로 온 땅콩과 바나나 과자를 으적거렸다.

“그러다가 모델 일만 하기엔 아깝다면서 소속사가 연락하더라고요. 데뷔조 바로 해줄테니 파워풀한 댄스 그룹으로 가자고.”

그것이 걸그룹 역사에서 최장신(177cm)의 댄서 센터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확실히 배구선수로 대성했어도 외모가 상당해서 아마 팬클럽 엄청 몰고 다녔을 도경의 비주얼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 하는거 보니까 확실히 파워풀하더라.”

“그, 그래요?”

“쟤 몸 엄청 딴딴해. 배에 초콜릿 있고.”

에밀리의 말에 도경은 취기가 살짝 올랐을 때 내친김에 보여주겠다는 듯 자신의 티셔츠를 살짝 올렸다.

“어, 야?”

“어머나.”

은지는 그 모습을 지켜봤고, 에밀리는 저게 오늘 삘이 왔나 싶어서 제지하려 했다.

김준은 바로 옆에서 상의를 살짝 올린 도경의 몸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조각상 같은 탄탄한 복근에 그 위로 손으로 가렸지만 봉긋한 가슴에 스포츠브라가 살짝 보였다.

“한 번 만져볼래요?”

“그래도 돼?”

“네~”

김준의 손이 닿았고, 천천히 복부를 만질 때 부드럽지만 근육이 느껴지는 감촉이 좋았고, 도경 역시 부끄러워 하면서도 자신의 몸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김준은 쓰다듬던 복근에서 무심코 브라끈까지 손이 올라갔다.

이제껏 라나나 에밀리나 마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속옷은 입은 모습의 끈 만지는 감촉이 좋아서였다.

그때 도경의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뒤로 확 물러났고, 옷을 내렸다.

“아, 그… 위에는 좀.”

“앗, 미안! 정말 미안!”

김준 역시 순간적으로 선넘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숙이자 도경은 화가 난다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워서 연신 빨개진 얼굴을 진정하지 못했다.

“아주, 썸 나셨어.”

에밀리는 그 모습을 보고서 뭔 상황인지 다 안다는 듯이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은지는 바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위스키를 한 컵 가득 채워서 김준의 앞에 올려놨다.

“뭐, 뭐야?!”

“뭐긴요? 벌주지. 그거 원샷 때리시고 다시 한번 제대로 사과하세요. 김준 오빠?”

“….”

“아니, 굳이 안 그러셔도….”

도경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이면서, 루팅 이후 계속 신경썼던 김준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상황인데 괜히 자신이 빼서 상황 이상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김준은 40도 위스키를 보고서 그대로 들고 벌주로 쭉 들이켰고, 에밀리는 좋다고 박수를 친다.

“이것으로 오늘 은지바는 끝! 도경이는 같이 올라가야지?”

“아, 네.”

“미안해. 아까는 정말….”

“아니에요. 그… 만져보라고 옷 들춘건 저니까.”

도경은 김준과 눈을 못 마주치고 화끈거리는 얼굴로 은지와 3층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올라갈 때, 은지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언니.”

“왜? 내가 가서 모두에게 말할까?”

“그, 그런거 아니야. 그냥 저 상황에서는… 좀 더 이어지려면…그…래야 했나?”

어렸을때부터 운동과 연예계라는 곳에서 자라나서 남녀 연애라고는 전혀 모르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이미 처음 만났을 때 옷 다 벗고 알몸으로 보인적이 있었는데, 뭐가 부끄럽다고 그 분위기를 파토냈는지 자기 자신이 싫을 정도였다.

‘아씨! 그냥 손대라고 할… 아니야! 에밀리나 은지 언니가 또 뭐라 했으려나? 난 몰라! 갑자기 술김에 분위기 어쩔거야.’

그렇게 계속 이불킥 감을 생각하는 도경을 보고 은지는 조용히 물었다.

“파밍 다녀오고, 저 오빠한테 반했나보구나?”

“으, 으응?!”

“…그럴 수 있어. 성인남녀잖아? 연예인이고 뭐 이런 거 다 떼고서.”

은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용히 도경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올라가자고 했다.

도경은 그때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아예 둘만의 자리를 만들어서 확 잡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래도 첫 남자라는 건 부끄럽고, 그 사람이 모두 아는 언니, 동생들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데 자신이 자리를 잡는 것도 신경 쓰였다.

애석하게도 이 아가씨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본인이 한참 후순위라는 것을 연애경험이 없어서 모르는 거였지만 말이다.

***

“솔직히 말해봐. 따먹고 싶었지?”

“너 딱밤때린다?”

위스키 벌주 원샷으로 자신도 얼굴이 달아오른 김준은 맞은편에서 교태를 부리는 에밀리에게 완전히 리드되고 있었다.

“내가 근육녀라고 하면 싫어하는 애인데 자진해서 배 만져보라고 했잖아? 그게 신호가 아니면 뭔데?”

“됐어. 걔한테 미안해 죽겠다.”

“흐으응? 나는 미안한거 없는데?”

에밀리는 그 상황에서 자신도 살짝 상의를 올렸고, 풍만한 가슴이 출렁였다.

“나는 마음껏 만져도 되는데?”

에밀리는 이 상황에서 불여우 짓의 각을 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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