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52 가장 길었던 루팅.
* * *
중환자를 부축하며 천천히 절로 안내하는 큰스님.
그리고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 김준과 도경, 에밀리였다.
특히 에밀리는 품 안에서 움직이는 아기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용케도 살아가면서, 그동안 봐 온 포동포동한 아기가 아니라 뺨이 홀쭉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공갈꼭지를 쪽쪽 빨아대고 있었다.
그들은 10분을 걸어서 그 안에 있는 사찰에 도착했다.
물론 그때까지도 감염에 관련된 상황은 보이지 않았고, 이미 좀비화 될 시간을 지났으니 저 앞의 아기 엄마는 진짜로 빈사의 부상자이다.
안에는 전기 대신 호롱불로 된 조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큰스님을 기다렸던 다른 스님들이 다가왔다가 부상자와 이후에 온 일행을 보고 깜짝 놀랐다.
“큰스님! 그분들은?”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보살님을 불러주게.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은 환자야.”
두 스님들은 일단 부상자를 데리고 별당으로 데려갔으며, 피에 젖은 장삼을 툭툭 털면서 김준 일행이 쉴 곳도 만들어줬다.
잠시 후 승복을 입은 50대 초중반의 중년 부인이 황급히 들어오고는 아기 엄마를 보고서 빨리 치료하기 위해 구급상자와 더운 물을 준비하게 했다.
천천히 옷을 풀고 상처의 피고름을 닦아내고 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라 말했다.
“세상에! 어깨가 탈골된 상태가 아닙니까?”
그녀는 그 상태에서 오랫동안 뛰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는 팔을 못 쓸수도 있다며, 일단 뼈를 끼워맞추고 상처들을 치료했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넌지시 물었다.
“익숙하게 치료하시는군요?”
“속세에서 간호사를 했습니다.”
“!”
집에 있는 마리 이후로 이곳 절에도 의료인이 몇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아기 엄마를 어찌어찌 치료하고 뜨끈한 아랫목에서 이불을 덮어주고 수분을 위해 입가에 젖은 거즈를 물려줬다.
김준은 치료를 보면서 다른 방을 제공 받은 에밀리와 도경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챙겨오길 잘했지.”
“어, 먹는다! 먹어!”
몇 달간 용케 살아온 아이를 스님들이 더운물로 씻기고 면포로 급히 만든 기저귀를 채운채 데려오자, 에밀리와 도경은 이곳에 오면서 마트에서 챙겨온 우유 대용으로 마실 전지분유와 탈지분유를 가져다가 절에서 우물물을 제공받아 수저로 살살 개서 먹여봤다.
다행이도 그걸 먹으면서 방긋 웃는 아기를 보고 둘다 엄마미소로 돌보기 시작했다.
“근데 이 정도면 몇 개월쯤 된거지?”
“모르지. 애 낳아본 적이 없어서.”
“아, 미친! 그럼 누군 낳았나?”
투닥거리면서도 바닥에서 분유 먹고 아장아장 기어다니는 아기를 보고 둘 다 집중했다.
김준은 그들을 보고서 안도하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이곳에서 묵고 내일 다시 움직이자.”
“캠핑카 안 보다 훨씬 낫네. 여기 엄청 후끈후끈해.”
세트장도 아니고 진짜 절간에서 묵게된 두 아이돌은 스님들과 인사를 나눈다음 따뜻한 아랫목 방을 제공받아서 편하게 쉬고 있었다.
그리고 김준은 엽총을 멘채로 자진해서 주변에 경계를 서고 있었다.
정말 길었던 루팅의 하루인데 아직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새벽까지 홀로 절 주변의 경계를 설 때, 김준은 이 곳에 구조를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절의 규모는 김준의 집보다 배 이상으로 컸는데, 대규모로 숙식이 가능한 방에는 낡은 판넬로 [여름불교학교]라는 이름이 있어서 좀비가 출몰하기 이전까지는 대규모로 아이들을 데리고 불자 양성을 하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비닐하우스와 밭이 있었고, 전기는 없지만 물 수급은 수동펌프로 끌어서 쓰는 우물이 있었다.
철컥
김준은 엽총을 준비하고 도경에게 줬던 야간투시경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잠도 자지 않은 채 혹시라도 나타날지 모르는 좀비들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늦은 새벽, 모두가 잠들었을 때 김준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이가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스님은 지난번 비닐하우스에서 노스님과 같이 마주쳤던 인물이었다.
“아!”
“성정이라 합니다.”
자신의 법명을 밝힌 성정은 김준에게 인사하며 더운 차를 제공했다.
“괜찮아요. 따로 챙겼으니까.”
김준은 스님이 제공하는 차 대신 수통에 담아뒀던 자신의 보리차를 들이켰다.
“두 잔을 특별히 준비했습니다만.”
“스님께서 두 잔 드시지요.”
“그러지요.”
성정은 쿨하게 김준의 옆에 앉아 차를 조용히 음미했다.
그리고는 야간 경계를 서는 김준과 짧은 대화를 가졌다.
“이곳도 원래는 스무명의 스님들이 계셨습니다.”
“그렇군요.”
“그 악귀들이 나타나 불자들을 구하려다가 희생당한 스님들을 두고… 이제 남은 자들은 저희들 뿐이지요.”
“으음.”
주지인 큰스님 밑으로 음식을 하거나 잡무를 보는 스님 셋이 남앗다고 한다. 거기에 보건소 간호사 출신으로 다급히 피난을 왔다는 보살과 그 아버지로 나이든 은퇴 치과의사가 있다고 한다.
그렇게 총 여섯명이 서로의 능력을 가지고 이 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지난번 보니 자급자족을 하시던 것 같은데, 입을 늘린 것 같아 죄송하군요.”
“개의치 마십시오. 어차피 저희가 다 먹지 못하면 내년을 위한 거름이 될 것입니다.”
“아기와 그 엄마는 오늘 처음만난 사람입니다.”
김준의 말에 성정은 조용히 합장을 하면서 말했다.
“이미 큰스님께서 그 어머니 보살과 아이를 모두 받아주신다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치료를 하고 아이 또한 저희가 키울 것입니다.”
“정말 자비로우신 분이군요. 큰 스님은.”
“저희 또한 그분처럼 되기 위해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준은 슬슬 새벽에 올라오는 피로에 담배를 물었다.
“스님들이 술이나 고기 못먹는건 아는데 담배도 못 태웁니까?”
“이 법당 안에서는 피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용히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연기를 뿜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말했다.
“좀비들이 이곳에 오지 못하게 대비책이 있습니까?”
“목책을 세우고 있지요. 하지만 직접적으로 살생은 피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을 몰아낼 선장 정도는 갖추고 있습니다만….”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곳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이곳저곳을 돌면서 구해온 생존물자가 좀 있는데, 필요한게 있다면 놓고 가지요.”
“글쎄요. 저희는 지난번 불과 쌀 이후로는 아직 부족한 게 없습니다.”
“앞 일은 모르는 법이죠.”
김준의 말에 성정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인사를 올리며 돌아갔다.
그리고 새벽까지 경계를 선 김준은 오랜만에 당직근무 서던 경험을 떠올리고는 새벽의 해가 뜰 때 천천히 일어났다.
***
“잘 먹겠습니다.”
절에서의 아침인 발우공양에서 스님들이 아침부터 끓인 소면과 채소로 우려낸 국수를 먹으면서 에밀리와 도경이 식사를 시작했다.
미모의 아이돌들이 추가되어 수저가 늘어났지만, 큰 스님을 포함해 안에 있는 불자들은 선뜻 음식을 내줬다.
식사를 마친 뒤로 큰스님은 에밀리에게 물었다.
“처자들과 같이 온 그 불자께서는 어디 계시오?”
“어제 이곳의 경계를 서신다 하시고 잠시 쉬고 계신답니다.”
“허허, 안 그러셔도 되는데.”
김준은 총을 든 채로 아랫목 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에밀리와 도경이 남았지만, 그녀들은 템플스테이를 하는 것처럼 불상 앞에서 100배를 드리는 법을 배우고, 조용히 마음을 달랬다.
그 와중에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서 놀고 휴대폰만 있었다면 운치 있는 이 절을 두고 사진을 남기고 싶어하는 두 아이돌들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받던 아기엄마가 서서히 눈을 떴다.
“으음, 으으음!”
밤새 고열에 땀으로 푹 젖은 몸을 천천히 닦아주면서 물수건을 몇 번이나 갈아준 여보살이 그녀를 간병하고 있었다.
“하, 하준아, 하준아…”
눈을 뜨자마자 아이를 찾은 아기 엄마를 보고 보살은 인자한 얼굴로 인사하며 말했다.
“안심하세요. 아이는 잘 있습니다.”
덜컥
“어머? 깨어났어요?”
아기를 안고 있던 에밀리를 보자 황급히 다가와 아기를 안으려 일어나는 엄마를 향해 그녀가 조용히 옆에 내려놨다.
“바아~”
아기가 아장아장 기어다니며 엄마에게 다가왔고, 감격의 모자상봉 속에서 에밀리는 얼굴을 긁적였다.
“그… 처음봤을 때, 사정을 말하셨으면 더 수월했을텐데.”
“!”
그녀는 에밀리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위협하다가 역습으로 당했던 그녀라는 것을 알고 놀랬지만, 이내 아기를 보고 안도했다.
“애 몇 살이에요? 탈지분유 풀어서 줬는데 잘 먹던데.”
“13개월….”
“아기 계속 안아봐도 되죠?”
“네. 우리 하준이 많이 얌전해요.”
“이름이 하준이었구나, 어울리네. 남자애죠?”
에밀리는 하마터면 자신이 지팡이로 내리치려 했던 아이를 계속 안으면서 사과하듯이 그 아이를 쓰다듬어줬다.
***
한 시간 정도 잠들다가 눈을 뜨고 아침 끽연을 하는 김준을 향해 도경이 조용히 다가왔다.
“후우, 진짜 어제 일을 생각하면 식겁한 일이 많았어요.”
“못 볼꼴 많이 봤지.”
김준은 담배를 태우고 아직도 뻐근한 몸을 두들기며 수통에 물을 들이켰다.
“그동안 계속 이렇게 싸워왔던 거죠?”
“그렇지 뭐.”
“진짜 슈퍼히어로가 여기 있었네. 덕분에 모두 살았어요.”
존경의 눈빛이 가득 담긴 얼굴로 김준을 우러러 보는 도경을 보고 그는 피식 웃었다.
“다 살자고 하는 거잖아?”
“솔직히 그 아기엄마였다는 거 알고 살리려고 달려갔을 때, 엄청 감동했어요.”
“나도 반반이었어.”
만약 거기에서 정말로 아기엄마가 감염자였다면, 김준은 플랜대로 아크릴판의 총구를 향해 즉시 제압했겠지만,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비극을 눈앞에서 만들었을거다.
다행히 그 이후로 생존자를 둘이나 구하고, 하루 쉴수 있는 또 다른 쉘터를 방문하게 됐다.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
“그전에 여기다가 물자 좀 놓자.”
“네?”
“우린 또 어제 갔던 그 마트에서 다시 채워가면 되니까.”
“아… 네, 뭐 그러죠!”
그렇게 김준과 도경은 밤길을 기억하고 차가 있던 곳으로 향해서 잘 주차되있는 캠핑카로 돌아왔다.
그리고 뒷문을 열고 한가득 쌓여있는 물자 중에서 쌀하고 각종 전분류를 꺼냈다.
“분유는 여기 두는게 좋을 거 같아요. 아기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
“통조림은… 못 드시겠지.”
“고기 아닌것도 있잖아.”
골뱅이와 꽁치 통조림을 보던 도경은 김준의 말을 듣고 깻잎이나 옥수수, 파인애플 등의 통조림을 챙겼다.
추가로 어제 큰스님의 피에 젖은 장삼을 보고서 세제하고, 섬유유연제와 각종 비누와 알콜 세정제, 마트에서 팔던 상비약 등도 얼추 챙겼다.
그렇게 한가득 채워서 식량과 생존물품을 타 생존자들에게 나눠주는데도 김준은 전혀 아까움이 없었다.
“허어, 이게 다 뭡니까?”
큰스님 외 세 명의 스님들은 김준과 도경이 가져온 물건들을 보고서 놀라했다.
에밀리 역시도 어제 힘들게 챙겨온 것들을 저렇게나 나눠주냐면서 눈이 확 커져 있었다.
“어제의 숙박비라 생각하시죠.”
“허어, 그러기엔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추후 또 신세를 질 일이 있을 것 같으니까요.”
스님들 뿐만 아니라 불자들 역시 그것을 보고 바로 김준에게 인사했다.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치과의사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은퇴한지 5년은 됐소이다. 여기 이 딸아이는 보건소 간호사이고요. 천운이 닿아 아직 살아있군요.”
“나중에 이 아플 때 있으면 찾아오죠.”
“허허, 수동 도구 밖에 없어서 많이 아플 수 있습니다?”
“완전 썩는 것 보단 낫겠죠.”
김준은 이제 인사를 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법당 한 곳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붕대로 칭칭 감긴채로 자기 아들을 안고 있던 아이 엄마는 김준의 모습을 보고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저, 저기….”
“!”
“고맙… 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연신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떨구고 인사하는 아기 엄마를 보고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엄지를 올렸다.
“항상 부처님에게 감사하세요. 아, 나는 불교는 아니지만.”
그 말에 스님들이 껄껄 웃으면서도 모두 기분 좋게 작별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것을 받았는데, 그냥 보낼 수야 없지. 성정 스님은 그것을 가져오게나.”
“아, 네!”
건장한 체구의 성정이 달려가더니 잠시 후 뭔가 구르마에 실린 엄청난 박스들을 가져왔다.
“저건 또 뭡니까?”
“혹시 그곳의 생존지에 옷이 필요하실까 싶어서 말입니다.”
“승복은 좀….”
“허허, 그럼 직접 만들어입으시지요.”
“?”
성정이 가져온 박스에는 면으로 된 털실이 한가득이었다.
“어머, 이거 그거잖아? 뜨개질 실. 세상에 면포랑 단추도 있네?”
에밀리가 그것들을 보고는 고양이처럼 하나 꺼내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놀기 시작했다.
박스에 바늘하고, 털실이 가득해 십수명의 옷을 만들어도 남을 정도의 수많은 양을 보고 김준은 조용히 물었다.
“어디 모직 공장 파밍이라도 하셨습니까?”
“허허허, 이것은 본디 겨울에 인근 학교 아이들에게 체험학습용으로 준비한 것인데, 본의아니게 창고만 차지하고 있었소이다.”
“아….”
“소승들 보다는 불자께서 가져가시는 것이 더 가치있게 쓰일겁니다.”
“뭐, 그러면… 고맙게 받지요.”
김준은 그것들을 챙기고, 돌아가던 중 마지막으로 절을 한 번 보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차에 올라타고 출발하려는 김준 일행.
이번에도 조수석에 앉은 도경은 김준을 유심히 보다가 말했다.
“진짜 멋진 사람이었네?”
“스님들?”
“아니, 오빠요.”
“…새삼스럽게.”
그것은 존경을 넘어 사랑에 빠진 눈이었다.
정말 시크하면서도 휴머니스트인 김준을 보고서 자신들의 운명이 좀비 사태 이후로 이렇게까지 살수 있다는 건 다 저 사람 덕분이라는걸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아~ 집에가면 샤워하고 푹 자고 싶어.”
에밀리의 말에 모두가 동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어제의 마트에서 한 번 더 루팅이 남아있었다.
“근데 저 털실 말이야. 우리 중에 뜨개질 할 줄 아는 사람 있어?”
“그, 글쎄? 인아나 은지 언니 정도면 알지 않을까?”
“못하면 어쩌지?”
그러자 김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뭔 고민이야? 저 실들 가지고 바리케이트 만들어 쓰는거지.”
“털실 장벽? 그거 웃기겠다.”
“적어도 좀비가 오다가 발에 걸려 자빠지긴 할거다.”
“아, 굿 아이디어!”
김준과 도경, 에밀리는 그렇게 밝아진 모습으로 2차 물자 수급을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가장 길었던 1박 2일의 성과는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물건과 값진 기억을 그들에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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