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50 생존의 무게.
* * *
일찍 일어나 욕실에서 물을 튼 김준은 갑자기 수압이 내려가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이게 또 왜 이래?”
대야에 가득 채워놓고 물을 받으려 했는데, 다 채우기도 전에 물줄기가 줄어든 호스를 보고서 아쉬운 대로 남은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씻은 물을 변기 수통에 담은 뒤로 나와 수건으로 몸을 씻고, 바디로션을 꺼내 발라 상쾌한 아침을 준비했다.
식사 전에 밖으로 나와서 끽연을 즐기며 뒤꼍에 있는 물탱크로 갔을 때, 김준은 그 상황을 보고서 인상을 찌푸렸다.
“호스 문제인가?”
3층은 관정, 2층은 빗물탱크의 물을 썼는데 한쪽이 약간 굽어진 상태에서 물이 원활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김준은 나온 김에 창고의 밸브렌치를 가져와서 살짝 열어본 다음 꺾여있는 호스를 되돌리고, 대충 각도를 잡아서 원활하게 물이 나오게 했다.
생각 같아선 그냥 PVC나 금속파이프로 확 이어버리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애들 보조로 쓴다고 하더라도 그게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공사였고, 그럴 장비도 부족했다.
일단은 수압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호스 조정을 하는 땜질 식으로 해야겠다고 김준이 머리를 긁적일 때 3층에서 일어나 그를 보고 내려오는 여성이 있었다.
“우리 준 오빠, 뭐해요?”
“!”
오늘따라 일찍 나온 에밀리는 김준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그를 뒤에서 안았다.
“일찍 일어났네?”
“밤새 엉덩이가 아파서.”
“….”
“농담이야.”
에밀리는 빗물 탱크와 호스를 둘러봤고, 김준은 넌지시 물었다.
“3층은 샤워하기 괜찮았어?”
“엉! 물 잘 나와서 아주 구석구석 씻고 나왔는데?”
그러면서 새 바디워시 썼는데 어떠냐며 부비댈 때 로션과 섞인 좋은 향기가 났다.
“역시 2층이….”
김준이 다른 두 개의 빗물 탱크도 확인할 때, 에밀리는 슬쩍 다가가서 김준의 몸에 대고 코로 킁킁 맡아봤다.
“…뭐해?”
“2층 물 안 나와? 분명 오빠도 샤워한 냄새인데?”
“그건 아니고… 됐다. 올라가서 아침이나 먹자.”
김준은 에밀리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고, 뒤이어 일어난 인아나 은지가 하나둘씩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의 참극 이후 라나와 나니카 역시도 오늘은 나와서 거즈랑 붕대투성이 몸으로 그릇을 놓았다.
“몸은 괜찮아?”
“엄~청 쑤셔요. 여기 팔 보이죠? 새파래진거.”
얼굴 부기는 빠졌지만, 아직도 멍이랑 찰과상이 가득한 라나, 그리고 옆에서 밥을 씹을 때마다 얼굴을 부여잡고 몸이 쑤셨지만, 묵묵히 먹는 나니카였다.
“푹 쉬어. 나을 때까지는 남은 애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김준의 말에 가야, 은지, 마리의 언니 3인방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그 와중에 에밀리가 말했다.
“어제 약속은 지켜줄거지?”
“음.”
“약속이라니? 둘이 뭐 정한 거 있어요?”
은지의 물음에 김준이 답했다.
“흐음~ 그동안 이곳 사는 곳이나 먹는거에 대해서는 불만 없지?”
“뭐, 그렇긴 하죠.”
“입는 거는?”
김준대신 에밀리가 은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은지 뿐만 아니라 인아나 가야, 마리, 도경 등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 못했다.
당장에 여자애들이 8명이나 있는데도 생리대랑 탐폰도 격월로 쓰고, 몸에 안 맞는 브래지어도 억지로 차고 팬티는 돌려 입는다.
“내가 그래서 준 오빠에게 요청했어! 우리 다 입을 옷들 좀 챙기러 나가보자고.”
“옷만 챙기러 나가기에는… 바깥 너무 위험하지 않나?”
생존에 필요한 파밍은 주기적으로 필요했지만, 편의성 하나 때문에 나가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 보여서 가야가 물었다.
그러자 에밀리 말고도 불편한 애들이 한두명이 아닌지 바로 말했다.
“그래도 필요한 거 같아요, 몸만 괜찮았으면 내가 가는건데 쓰읍….”
라나는 수저 든 오른손을 주물거리면서 가야에게 말했다.
“맨 처음 가야 언니가 김준 오빠하고 가져온 만물상 팬티들, 몇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막 구멍 뚫리고 그랬잖아요.”
“아….”
“그걸 옆에서 은지언니가 바느질로 꿰매는데 그래도 누더기가 되고.”
김준은 그 이야기를 듣자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면서 혀를 찼다.
“진작들 말하지 그랬냐? 그동안의 루팅 속에서 여성복점이라도 찾는 건데.”
“그러게나 말이지~”
에밀리는 어깨를 으쓱거렸고, 그 상황에서 조만간 다시 루팅이 있을거라는 것을 안 모두가 움직일 준비를 했다.
“잠시 밥 먹고 모두들 모여봐.”
그리고 김준은 이번 루팅을 위해서 전부터 기획했던 것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
“그동안 꾸준히 운동해왔지?”
“네, 그건 그렇죠.”
“앞에 지팡이! 새총 일발 장전!”
김준이 꾸준히 가르쳐준 것을 숙지하고서, 실제 상황은 아직 겪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김준은 이참에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번 루팅은 2인1조로 같이 가자.”
“네?!”
“그러니까 내가 운전하고, 너희들 중 둘을 해서 총 세 명이 다니는 거야.”
“와우~ 이제 세 명?”
에밀리가 손가락을 펼쳐보고, 가야나 은지, 마리, 인아, 도경 등 다친 둘 빼고서는 어떻게 파트너를 맞춰야 할지 생각하는 듯했다.
“한 명은 조수석, 다른 한 명은 캠핑카 뒤에 타는 거지. 그렇게 해서 루팅 때는 내가 엄호하면 2인 1조로 다니는 애들이 번갈아 가면서 밖의 물건을 챙기는 거야.”
“확실히. 애매한 보조보다는….”
은지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은지는 가야를 보면서 다른 건 몰라도 자기 파트너는 이미 그녀로 정해져있다는 듯이 바라봤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한 가지 더 말했다.
“그리고 루팅의 시간을 늘려야겠어.”
“네?”
“음?”
“뭐야, 하루에 다 끝내지 않는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자주 루팅을 다녔지만, 이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서 한번에 싹 쓸어오는 방식을 해야겠어.”
“시간을 둔다면?”
“오늘부터 하루에 다 담아오는게 아니라 캠핑카에서 하루 묵고 1박 2일로.”
“네엣?!”
“저기,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확 바뀌는 루팅 상황에서 그 이유에 대해 은지가 총대를 메고 물어보자 김준은 바깥을 보며 말했다.
“곧 겨울이 오니까.”
“아….”
은지뿐만 아니라 모두가 탄식했다.
이전에 마리가 말실수로 ‘이러다 겨울 나겠다.’라고 했는데 정말로 이 상황에서는 그게 현실이 되가고 있었다.
“어쩌면 집안일이 더 중요할 수 있어. 당장에 오늘만 해도 날 쌀쌀해져서 호스 쭈그러든걸로 2층 수압이 확 약해진거 가서 풀고 왔어.”
김준은 하나하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해줬고, 전부 수긍한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서 움직일 준비를 했다.
“뭐, 당일치기건 하루보내건 난 겪어봤으니 지금 출발하지 뭐! 그럼 파트너만 구하면 되는데….”
에밀리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으니 이번 루팅에 참전 선언을 했고, 같이 갈 파트너를 눈여겨봤다.
“인아는 밥해야 하고, 은지 언니는 가야 언니하고 간다고 했고, 마리 언니는… 애들 돌봐야 하잖아?”
“그럼 나?”
“씁, 별수 없지. 잘 부탁한다. 배구선수!”
“뭐야? 그 표현은?”
도경은 자신을 픽한 에밀리의 반응을 보고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어쨌건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이 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좋아! 그러면 에밀리가 지팡이 잡고, 도경이가 새총 준비하고, 준비하자.”
“좋아~ 가자~”
“후우, 1박2일로 밖에서… 좀비… 으으윽!”
뭐든 신나하는 에밀리에 비해 지난번 단독행동에다가 아무것도 못 하고 민폐만 끼쳤던 일을 이번에 만회하겠다고 다짐한 도경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잘 부탁한다.”
“아니요. 이번에는 절대 실수 안 할게요.”
“그래.”
오랜만에 차 시동을 걸고 나선 김준은 조수석에 새총을 든 도경, 그리고 뒷좌석에서 도착할 때까지 캠핑카 침대에 편히 누워있는 에밀리와 같이 출발했다.
어제의 격한 현장에 앉아있는 에밀리를 보니 세상 참 편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밖에 나온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상황에서 김준은 먼저 오늘 갈 곳에 대해 말했다.
“대학가 쪽을 지나 좀만 더 가면 아파트 조금 있고, 생활용품 파는 상가가 있어.”
“거기부터 시작이군요.”
“마트 있어? 마트?”
있었으면 좋겠는데, 대형마트를 막 공사한 상태여서 찾아봤자 소규모 슈퍼마켓 정도이다.
“편의점은 볼 수 있을거다.”
“오케이! 그거면 됐지.”
바깥에 좀비들이 보이는 곳인데도 저세상 멘탈로 느긋한 에밀리.
그리고 그 앞에서 오랜만에 보는 좀비 행렬이 있었다.
으어 으어어어!
철컥!
김준이 공기총을 장전했을 때, 뒤에서 에밀리가 외쳤다.
“후방 아무것도 없음! 양쪽 모두 클린!”
한 명이 더 있으니 뒷좌석에서 확실히 시야가 트였다.
그럼 굳이 차를 돌려서 쏠 필요가 없었고, 김준은 창문을 열기 전 도경에게 말했다.
“할 수 있겠어?”
“….”
“못 하겠으면 내가 다 잡고.”
“아, 아니에요! 해 볼게요!”
도경의 말에 김준은 슬쩍 조수석 창가의 잠금을 풀어줬다.
그리고 김준은 자신부터 창문을 열고서 상반신을 내밀고 눈앞에서 대여섯 마리의 좀비를 향해 겨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근에 있는 좀비를 향해 심호흡하고 오랜만에 방아쇠를 당겼다.
띵
경쾌한 공기총 소리와 함께 눈 앞에서 좀비 하나가 비틀거리다가 풀썩 쓰러지자 반응한 다른 좀비들이 움직였다.
크어어어
다행히 전부 걷는 좀비들이어서 표적으로는 최고였다.
철컥
바로 다음 연지탄을 장전하기 위해 노리쇠를 당겼을 때, 도경은 식은땀을 흘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창문을 열고서 자신의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동안 배웠던 대로 새총에 너트를 장전하고서 힘껏 당긴 다음 그대로 놓았다.
파캉!!!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새총 너트샷이 좀비 하나를 맞췄다.
“좋아! 한 번 더!”
비록 머리가 아니라 가슴팍을 맞췄지만, 확실히 저지력은 공기총보다 더 묵직했다.
사람이었으면 바로 갈비뼈 여러대가 그 자리에서 박살날 충격의 너트 새총이 다시 한번 도경의 손에서 당겨졌다.
티잉
쩍
이번엔 확실히 머리를 맞춰 해골이 빠개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가 뒤로 넘어갈 때 뒤이어 김준도 연지탄으로 다음 좀비를 저격했다.
그동안 좀비 상대하는데 거리를 두고 저격하기 좋은 차 방향을 틀고 이것저것 다하면서 보조석에서 후방을 살피게 했는데, 한 명이 더 추가되니 순식간에 시간이 단축됐다.
순식간에 다섯의 좀비가 처리되었을 때 뒤에서 에밀리가 외쳤다.
“뒤에서 다가오는 좀비 발견! 어? 뛴다!”
“그걸 먼저 말해!”
김준은 뛰는 좀비라는 말에 바로 액셀을 밟아 차를 돌렸고, 정말 100m 스프린터처럼 달려오는 좀비 하나를 보고 침착하게 공기총을 장전한 상태에서 정면으로 미간을 겨누고 갈겼다.
띵!
한 방으로 쓰러진 뛰는 좀비 앞으로 가운뎃손가락을 올린 김준은 다시 달렸다.
양옆이 논밭으로 늘어진 국도를 달리면서 도경은 자신이 새총으로 좀비를 맞춰 잡은 것에 대해 손이 떨리고 있었다.
“무리하지 마.”
“네? 아, 네… 죄송해요. 금방 진정될 거예요.”
도경은 새총을 쥔 오른손이 계속 떨리자 왼손으로 주물거리면서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힘들면 바꿔줘? 네가 지팡이 들래?”
“됐어! 명중률은 내가 좋아.”
“음~ 그래.”
에밀리의 말에도 도경은 꿋꿋하게 이번에는 다르다는 의지를 갖추고 김준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했다.
그리고 오늘따라 일직선으로 가는 길에 좀비가 드문드문 계속 보여서 가다 멈추고를 반복됐다.
역시 좀비 처리는 빨라졌어도 길 가는 것에 대해 시간을 지체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디까지나 실험이고, 평소였으면 슬슬 해가 질 때쯤에 대해서 야간 장비까지 완벽히 준비했으니까 천천히 가기로 했다.
그렇게 새로운 루팅 최적화 장소를 찾기 위해 대학가를 넘어가 아파트 상가 쪽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먼저 발견한 것은 슈퍼마켓이었다.
“와! 마트다.”
“정확히는 슈퍼지.”
SSM할인매장에 도착한 셋은 아직 불이 켜진 곳을 보고서 결정했다.
“각자 가슴팍에 찬 호루라기 챙기고 일단 수색부터 해! 분명히 말한다. 수색이 먼저야!”
50평 조금 넘는 규모에 청과류 썩은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김준의 오더에 따라 세 명이 샅샅이 수색을 시작했다.
에밀리는 좀비를 밀어낼 지팡이를, 그리고 도경은 바로 좀비를 쏠 새총을 장전한 채로 FM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김준 역시도 손도끼와 권총을 허리에 차고 반대편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위험할 카운터와 [관계자 출입금지]가 써진 카운터를 확인하고서 셋이 같이 모였다.
“클리어!”
“오케이, 클리어!”
그때부터는 무지성 파밍의 시작이다.
편의점때보다 더 풍족한 물자들. 거기에 쇼핑카트까지 있어서 있는대로 쓸어담았다.
0순위 물부터, 쌀과 각종 잡곡들, 그리고 아직까지는 요긴한 식량이 될 라면과 좀 더 긴 건면과 전분류까지 싹 털었다.
그 외로 김준은 6개들이 2L생수를 두 손으로 들어서 꽉꽉 담았다.
“오늘 과적 장난 아니겠는데?”
물론 좋은 신호였다.
정말 털만 한 것들은 싸그리 털었고, 통조림을 마지막으로 해도 여유가 있을 루팅이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차 안에 차곡차곡 쌓아놨을때까지 좀비가 보이지 않았고, 그 옆으로 학원, 부동산, PC방, 성인오락실이 있었다.
“옷가게는?”
“음, 여기 말고 다른 길로 가야 할 것 같다.”
아파트 단지를 넘어 소규모 상가가 있는 곳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곳을 노려야 겠다.
게다가 이미 캠핑카가 90% 이상 꽉 찬 물자만 봐도 오늘은 대성공의 파밍이었다.
차에 탄 뒤로 에밀리는 그 뒤에서 물자와 부대끼며 말했다.
“왜 마트에서 브래지어를 안 팔아? 죄다 팬티랑 양말이잖아.”
“그래도 그게 어디야?”
“하긴, 뭐.”
에밀리와 도경은 나쁘지 않다는 듯, 서로 칸막이를 두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저럴때는 또 콤비가 잘 맞는다.
그렇게 차를 이용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는 자리가 계속됐다.
그리고 좀비가 골목 골목에서 보일 때마다 김준과 도경이 바로 새총과 공기총으로 저격해서 쓰러트려나갔다.
손발이 짝짝 맞는 루팅 속에서 그들은 미용실 제끼고, 부동산 제끼고, 정육점 제낀 다음 드디어 그곳을 발견했다.
[란제리 여성복 전문점!]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찾은 옷가게, 그 옆에는 적절하게도 수영복점까지 있었다.
김준은 자신의 속옷이야 편의점이나 아까 슈퍼에서 잔뜩 구한 105사이즈 트렁크나 드로즈면 충분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맘껏 털게 했다.
“됐어! 이상 없다!”
“오우!”
그 뒤로 널려있는 수많은 속옷들을 가지고 두 여성이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다.
레이스팬티, T팬티, 브래지어는 그냥 종류별로 볼 것도 없이 전부 쓸어담았고, 란제리에 네글리제에 파자마, 원피스 등등 전부 털어갔다.
그 와중에 김준은 조용히 수영복 전문점 쪽을 보고서 철저하게 경계를 섰다.
그리고 속옷만으로 두 박스 넉넉하게 더블백에 담은 둘은 곧바로 김준을 따라 수영복 점으로 들어갔다.
“이런 건 바닷가 가서 입어줘야 하는데.”
에밀리는 사이즈 맞는 브래지어를 찾기 위해 하나하나 살펴봤고, 김준은 그 안으로 들어가 혹시 모를 정수기 물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안을 보고서 검게 굳어있는 피를 보고서 이 안에서도 뭔가 참극이 벌어졌다는 것을 짐작했다.
한편 그 상황에서 김준은 정신없이 챙기는 아이들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여기 전부 챙긴 다음에 아예 한 바퀴 둘러보고 갈 곳이 있….”
그때였다.
촤악!
갑자기 뒤에서 김준을 기습하는 그림자.
순간 도끼를 꺼내서 바로 날리려고 했지만, 그전에 먼저 칼이 목에 겨눠졌다.
“오빠?!”
“꺄앗?!”
에밀리와 도경은 갑자기 숨어있다가 튀어나와 김준의 뒤에서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댄 그림자가 있었다.
“움직… 이지 마!”
김준의 뒤에서 후드를 푹 뒤집어쓴 채로 마스크를 찬 괴인은 떨리는 손으로 그를 위협하며 말했다.
그리고 김준은 차분하게 손을 뻗으면서 에밀리와 도경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새, 생존자에요?”
“저기! 좀비는 아니지?!”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슬며시 눈을 돌렸다.
체구는 자신이나 도경보다도 작아보였고, 가느다란 손이 밥도 제대로 안 먹어 보였다.
게다가 묵직한 백팩을 메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 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잔뜩 긴장한 에밀리와 도경부터 진정시키고 김준은 천천히 손을 옆구리로 향했다.
“가, 가진거… 다 내놔… 특히 물하고…”
“진정해요. 그동안 용케 살아계신 생존자 같은데, 일단 천천히 이야기 하죠. 트럭에 먹을게 많이 있어요.”
“으읏! 그, 그러면 저 두 여자가 당장 가져…와!”
“아~ 그러죠. 그 전에….”
그 순간 김준은 자신의 목에 칼을 댄 손을 확잡아버리고 그대로 낚아챘다.
“우웃?!”
그리고는 그대로 힘으로 팔을 꺾어 버렸고, 그 순간 그 괴인은 몸을 움츠렸다.
“이야아압!”
“!?”
에밀리가 바로 안장 지팡이를 들고 달려들어서 그 괴인을 밀쳐 넘어트렸고, 지팡이를 들어 마구 내리쳤다.
퍽 퍽
“감히 누구를 칼로 위협해!? 우리가 이런 걸로 당할 것 같….”
“그만해! 사람이잖아!”
오히려 도경이 달려들어 말렸을 때, 김준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들고서 피식 웃었다.
“세상에 날도 안 선 빵칼을 가지고 위협을 하네?”
그것을 눈치채고서 충분히 제압 가능하다 생각하고 일부로 견뎌본 것이었다.
그 괴인은 무기를 잃고서 에밀리한테 두들겨 맞은채 바닥을 굴렀다.
그때 그녀가 멘 백팩이 움직였고, 에밀리가 가방있는 등을 내리쳐 확실히 제압하려는 순간, 필사적으로 일어나 도망치는 괴인이었다.
“자, 잠깐만!”
김준이 외쳤지만, 저쪽에 뒷문이 또 있었나보다.
콰앙!
급하게 도망치느라 모서리에 어깨를 부딪치고 신발 한 짝 까지 빠트린 순간에서 허겁지겁 도망가는 괴인.
에밀리나 김준은 추격하려다가 멈칫했다.
“됐어!”
“안 다쳤어? 어떻게 준 오빠가 당해?”
“말했잖아.”
김준은 떨어진 빵칼을 흔들거리면서 말했다.
“이런걸로 누가 죽겠니? 몸에 기스도 안나겠다.”
그냥 갈데까지 간 생존자 하나가 날뛰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거였다.
그러면서 만약 정중하게 다가와 도움을 요청했으면 인도적으로 먹을 것 좀 남겨주겠지만, 감히 기습을 시도하고 강도질을 하려는 아포칼립스의 생존자를 향해 쓴 웃음을 지었다.
“뭐, 알아서 잘 살겠지.”
***
“허억… 허억….”
입에 핏물이 가득한 상태로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괴인은 골목길 어귀에서 멈춰섰다.
떨리는 눈으로 뒤를 돌아봤을 때, 아무도 쫒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가로등 아래에서 겨우 몸을 지탱했다.
벌써 며칠째 하천의 물 조금과 약간의 사탕 빼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아까 팔을 잡혔을 때 삔 팔목과 어깨가 저릿저릿한게 움직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넘어지고 지팡이로 맞으면서 몸 이곳저곳에 상처가 가득했고, 입술이 찢어져서 피가 멈추질 않았다.
“흐으윽!”
그녀는 그 상황에서 부들부들 떨다가 등에 꼼지락거리는 느낌에 황급히 백팩을 벗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지퍼를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스펀지에 감싸진 상태로 계속 꿈틀거리는 존재가 있었다.
뽁 뽁
얌전하게도 공갈꼭지를 문 채로 눈을 깜빡이다가 손발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마스크와 후드를 벗으면서 그것을 와락 끌어안았다.
생존자를 보고 죽기살기로 들고 있던 물건을 집고 달려들었지만, 역으로 제압당해 크게 다친 상태에서도 그녀의 관심사는 당장에 살려야 할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하준아…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흑….”
괴인의 정체는 세 달이 넘도록 홀로 아들을 지키며 살아갔던 ‘아기엄마’였다.
으어어 어어어어
그리고 그녀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듣고 골목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