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48화 (48/374)

〈 48화 〉 48­ 바람 잘 날 없다.

* * *

아침부터 큰 사고가 하나 있었다.

“으아앙­ 으흑! 흐아아앙!”

정말로 서럽게 울어대는 소리와 함께 급하게 문을 두들겨서 김준을 깨우는 가야.

부스스한 얼굴로 김준이 밖에 나온순간 그는 잠이 확 깨는 참극을 봤다.

도경과 인아에게 부축을 받으며 피투성이로 들어오는 두 소녀, 라나와 나니카가 있었다.

“야이 씨! 얘들 왜 이래?”

“오빠! 흑, 흐으윽!”

김준을 보자마자 다시 눈물이 터진 라나와, 그 뒤에서 참고는 있지만 본인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가득한 나니카를 보고 김준은 일단 더운물하고 소독약부터 준비했다.

그리고 마리가 바로 구급상자를 챙기고 미닫이 방으로 둘을 데려가서 치료 준비를 했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 역시도 뭔 일이냐면서 당황해했고, 갑자기 크게 다친 동생들을 보고서 모두가 걱정했다.

마리가 안에서 치료하는 동안 김준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베란다를 타고 3층 계단 사이에 보이는 핏자국의 흔적, 그리고 막 나르다가 엎어진 야채 소쿠리가 보였다.

“하….”

그 와중에 옥탑방을 정리하다가 바로 내려온 은지는 일단 핏자국부터 닦고 그녀들이 엎은 야채를 챙기며 말했다.

“애들이 저기서 넘어진 거 같아요. 크게 다치면 안 되는데…”

“뭐?”

“지난번부터 저기 계속 신경 쓰였는데요.”

은지가 가리킨 곳의 계단 한곳의 페인트가 살짝 벗겨져 있었다.

그리고 거길 올라가면서 확인했을 때 애들이 여기서 넘어져 구른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됐다.

“아, 이거 진짜 위험한데… 내가 이걸 왜 신경 못썼지?”

2층에서 3층까지 올라가는 유일한 길인 계단길.

여기는 옛날에 2층 천장 누수로 인해서 옥탑방부터 계단까지 방수페인트를 쭉 바른 곳이었다.

덕분에 장마철에 비가 새는 일은 없었지만,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반질반질해진 페인트 바닥이 상당히 미끄럽다는 거다.

그동안 자유롭게 2,3층 오가면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새벽에 안개가 끼면서 습기가 찬 방수페인트 계단에 그대로 미끄러져서 두 아이가 굴러 크게 다쳤다.

거기에 둘 중 하나가 넘어지면서 벗겨진 슬리퍼를 보니 하도 오래쓰던 신발이라 바닥이 반질반질하게 되어있었다.

잘못했으면 정말 크게 다칠뻔한 아이들을 떠올리고서 김준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김준은 일단 은지와 같이 보루를 꺼내서 물기가 있는 계단을 닦아내려갔고, 여기를 손보기로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 인아는 황급히 애들 먹일 죽을 쑤고 있었고, 마리가 겨우 애들을 달랜 다음에 방에서 나왔다.

“하아­”

“애들 상태 어때?”

“천만다행으로 치아랑 뼈는 안 다쳤네요. 라나는 이마 쪼금 까졌는데, 찢어지지는 않았고 팔다리에 찰과상, 나니카도 그 정도 찢어졌는데 꿰매진 않아도 될거 같아요.”

일단 상처들부터 씻어내고 소독을 한 다음 붕대와 거즈로 묶고 소염제를 먹였다고 했다.

“딱지 생기고 낫는데 한 2주 생길거에요. 그거보다도 애들이 너무 놀란거 같아서.”

“….”

“오빠, 죽좀 쒀 왔어요. 일단 아침은 이걸로…”

“이리 줘. 내가 갖다 줄게.”

인아가 차려온 상을 김준이 받아들고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던 두 아이돌이 일어났다.

“아흑!”

몸 여기저기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거즈가 붙어있고, 팔다리에 멍도 올라 오는게, 며칠간 푹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오빠….”

“흐으으으….”

김준은 조용히 쟁반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아이고, 미안하다. 넘어진데 보니까 거기 미끄럼 방지턱 하나 설치해야겠어. 신경도 못 썼다.”

“아, 아니에요! 저희가 앞에 못보고….”

“몸 잘 챙기고, 죽 먹으면서 편히 쉬어.”

김준은 두 아가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특히 이마 한곳에 반창고를 붙인 라나는 아파하면서도 그 손길을 느꼈다.

거실로 나온 김준은 밥을 먹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니, 어쩌다가 둘이 나란히 저런거야?”

에밀리의 물음에 가장 먼저 발견한 가야랑 은지가 말했다.

“오늘 반찬거리 만든다고 텃밭에 있는 버섯이랑 토마토 좀 따오라고 했는데… 둘이서 그걸 들고 내려가다가 굴렀대요.”

“엄청 식겁했어. 갑자기 와장창 소리 들리더니만 비명이 퍼져서. 나오니까 2층 베란다가 피투성이고….”

“그렇게 크게는 안 다쳤어요. 아마 2,3일 지나면 딱쟁이 생길때가 진짜 쑤시고 부어오르겠지만.”

“아이고~ 다치면 안되는데, 나 저번에 발뒤꿈치 까졌다가 며칠 누웠잖아.”

가벼운 부상인줄 알았다가 봉와직염 판정 받고서 수술도구 구하러 마리랑 김준이 갔던 일을 떠올리며 도경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 상황에서 은지는 조용히 밥을 먹다가 김준에게 말했다.

“아까 김준 오빠가 계단 수리한다고 했죠? 그건 제가 도울게요.”

“어, 그래. 밖에서 작업 좀 같이 하자.”

“준 오빠, 나도 도울까?”

에밀리가 손을 번쩍 들어올리자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랑 가야가 애들좀 챙겨주고, 인아가 수고스럽겠지만 애들 나와서 밥 먹을 때까지 죽하고 건강식좀 따로 챙겨줘.”

“네, 그럴게요.”

“그리고 도경이는 나니카가 원래 하던 손빨래하고, 다락 정리 좀 대신 해 주고.”

“아~ 그건 문제없어요. 오히려 집안일이 더 쉽지!”

8명의 아이 중 부상으로 열외자 2명, 그 외에 나머지가 오늘 하루 작업을 두고서 김준은 일과 준비를 위해 한 명씩 오더를 내렸다.

그리고 식사 이후 창고부터 가서 물건을 꺼냈다.

미끄럼 방지 테이프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없어서 대안으로 준비한건 사포였다.

“빼파를 러버고무에 붙여서 이걸 계단마다 붙여야겠지.”

“그럼 이거를 전부 붙이면 되는건가?”

“다 만들면 계단 끝에 하나씩 붙여야지. 오늘 은지랑 에밀리가 같이 좀 하자.”

“흐응~”

에밀리와 은지는 김준의 가르침을 한번 보고서 그걸 치수를 맞춰서 자신도 똑같이 만들어가고 있었다.

김준 역시 두 아가씨가 만드는 걸 지켜보면서, 자기 손도 쉬지 않고 미끄럼 방지 패드를 만들어냈다.

“점심 먹고, 이거 다 설치하자.”

“네~”

“예스!”

점심을 먹을 때, 누워있는 아이들을 보러 갔을 때 상태가 점점 안좋아졌다.

“아앙~ 어떡해? 얼굴이 두 배가 됐어.”

CD하나로 가릴 수 있는 작은 얼굴이 이마를 찧은 뒤로 점점 부어올라서 보기가 안쓰러웠다.

“냉찜질 많이 해야겠다. 여기 얼음.”

“고마워요~ 오빠!”

비닐로 묶은 얼음주머니를 바로 이마에 부비대는 라나와, 몸 여기저기가 쑤셔서 얌전히 누워만 있는 나니카였다.

“소고기 얇게 썰어서 붙이면 직빵인데, 그걸 구할 데가 없네.”

“드레싱 패드가 있는데 무슨 소릴 하시는거예요?”

마리가 상처 보러왔다가 김준의 ‘상처에는 빨간 소고기’라는 말에 정색했다.

“그리고 고기가 있으면 먹어야죠.”

“동감! 근데 고기 이야기하니까 스테이크 먹고 싶네요.”

신선한 고기 못 본 게 벌써 몇 달째였다.

정말 사냥이건 낚시건 급박해지면 뭐라도 해볼까 생각이 들었을 때, 조용히 식사 준비를 하던 인아도 들어와 두 명의 환자를 보고 넌지시 물었다.

“스테이크라… 햄버그 스타일로 한 번 만들어 줘?”

“인아 언니! 완전 대박! 지난번에 은지 언니 생일 때 그거 넘넘 맛있었어요.”

“그래, 오늘 저녁은 그걸로 하자.”

“고마워요… 샤인 언니.”

인아의 말에 아픈 몸으로도 만세를 부르는 라나와, 연신 감사를 표하는 나니카였다.

그리고 점심 이후 오후가 돼서 2층에서 3층 올라가는 계단에 미끄럼 방지 판을 모두 붙이고, 거기에 혹시라도 다음에 이런일이 생기지 말라고 베란다 일대에 폐스티로폼을 난간에 깔아서 외풍 방지 겸, 방호판으로 썼다.

“다 됐다.”

“오, 튼튼해!”

에밀리는 벽을 손으로 톡톡 쳐 보다가 내친김에 어깨로 한 번 들이받았다.

“야!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헹­ 안전 테스트?”

스티로폼판 넘어가면 바로 난간이고 떨어질 수도 있어서 에밀리를 붙잡는 김준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묵묵히 그것을 지켜본 은지는 아까 라나와 나니카가 굴렀던 곳을 보면서 그 뜯어진 페인트 부분에 걸리지 않게 발로 단단하게 다지고, 옆에 붙은 본드를 살짝 덧발랐다.

***

“진짜 음식 잘해.”

“네~ 고마워요. 최고의 칭찬이네요.”

편의점에서 잔뜩 챙겼던 스팸과 소시지를 갈아서 경양식 스타일의 햄버거 스테이크를 만든 인아는 모두가 잘 먹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서 끝내지 않고 두 환자는 일찍 잠들고, 작업도 빨리 끝나서 해가 떨어졌을 때 또 한 번 술을 깠다.

어제의 은지의 바, 오늘의 소주 한 잔, 지지난번의 회식, 더 이전까지 간다면 생존자 구출 실패 이후 미친 듯이 퍼마셨던 일까지.

“최근 들어 진짜 많이 마시긴 했네.”

“술은 넘치도록 있는데, 뭘?”

원래였다면 다들 와서 한 잔씩 하겠지만, 애들 케어하느라 특별히 셋이서 같은 방에 묵겠다고 한 마리.

술이야 주면 먹는다 해도 김준하고 찐한 사이는 절대 아닌 인아와 도경.

그리고 언제나 2인 1조로 다니면서 같은 방 쓴다고 먼저 나간 은지와 가야.

이러면서 오늘의 술친구는 자연스럽게 에밀리가 되었다.

게다가 어제 새벽까지 바텐더 은지와의 이야기 이후로 급 삘이 왔는데 전부 자고 있어서 아쉽게 혼자 잠들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술은 잘못해도 언제까지나 김준하고 어울리는 에밀리는 벌써 발그레해진 얼굴로 눈웃음을 지었다.

“안주 좋네.”

“햄벅 스테이크 최고야.”

케찹에 찍은 한 조각 오물거리면서 소주로 입안을 헹궈내며 쭉 들이킨 에밀리.

그리고 분위기 속에서 점점 부각되는 티셔츠 안쪽의 그녀의 가슴.

김준은 소주를 먹다가 힐끗 바라봤고, 그 눈치를 아는지 에밀리가 말했다.

“저기 준 오빠, 하나 부탁할게 있어.”

“음, 뭔데?”

“슬슬 물자 구하러 가야 하잖아? 이번엔 옷 위주로좀 하자.”

“옷이라….”

의.식.주 중에서 식이랑 주는 어느정도 풍족하게 있다 하더라도 옷은 언제 생각해도 부족한 것 같았다.

같은 옷을 며칠씩 입고 속옷도 고충이 심하다고 한다.

특히 사이즈 안맞는 브래지어는 고통이었고, 지난번 등산복점에서 가져온 스포츠브라를 가지고 돌려 입는다고 하는데, 그쪽은 생각좀 해 봐야겠다.

“아줌마 같은 브라랑 팬티도 그만 입고 싶고, 란제리라도 하나 걸치고 싶다고.”

“너희들 입을만한 옷가게를 찾는다면….”

만물상표 속옷 대신 진짜 20대 여성용 속옷, 거기에 이어 진짜 겨울을 날 준비를 해야 하는 여성복들도 아주 잔뜩 준비하기로 했다.

“좋아, 그런 가게 찾아서 한 번 가 보자고.”

“준 오빠, 약속한 거야?”

하얀 손을 내미는 에밀리를 향해 언제쩍 한지도 모르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적당한 취기가 오른 김준은 에밀리를 데리고 아까 미끄럼 방지에 난간벽도 푹신하게 만든 3층으로 안내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도 신호가 온 건지 조용히 손을 잡고서 발그레해진 얼굴로 안방을 가리켰다.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너무해.”

와락 안기는 에밀리는 샴푸향과 소주냄새 섞인 목소리로 칭얼거렸고, 김준은 조용히 말했다.

“아픈 애들 옆방에 두고 저기서 할 순 없잖아?”

“그래도 오늘은 좀 아쉬운데, 준 오빠랑 조금만 더 있고 싶어.”

애인처럼 안겨있는 에밀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히려 1층으로 에밀리를 데리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럼 진짜로 가서 좀 쉴래?”

“…!”

요새 파밍 안 나가서 샤워실과 화장실 용도로만 쓰이는 캠핑카가 그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다.

에밀리는 그런 김준을 보고 자신도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

이후 두 남녀의 쉬어가는 장소는 집 밖이 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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