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1 우리 지금까지 잘 하고 있는거죠?
* * *
채소를 든든하게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김준은 헤드라이트를 켰다.
뒤에 있던 도경과 조수석의 은지가 자리를 바꿨고, 처음 루팅을 나온 그녀는 연신 밖을 보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진짜… 불빛 하나 없어.”
“곧 익숙해질거야.”
“오빠는 이런 상황을 석달동안 오가신 거예요?”
“뭐, 그렇지.”
김준은 운전하는 김에 담배 한 대를 물고서 그 어둠 속에서 불 한 대를 추가했다.
그때 뒷좌석에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왜?”
“오빠, 오늘 물자는 이것으로 끝인가요?”
은지의 물음에 김준은 아직은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잠깐의 시간을 살폈다.
“왜? 뭐 발견했어?”
“스코프로 편의점을 봤어요.”
“어딘데?”
“저 앞에 사거리에서 안쪽이요.”
“아, 저기!”
평소 가던 길이 아닌 좀비를 피해 골목길로 갔는데, 그곳에 김준도 몰랐던 편의점이 있었다.
[오픈 기념]이라는 푯말이 반쯤 떨어져 나가서 을씨년스러웠다.
아마도 이 사태만 아니었으면, 오픈 3개월 차로 주/야간 아르바이트생 구한다고 했을텐데 보다시피 이 상황이다.
김준은 골목길에 차를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타이밍이 애매하긴 한데.”
“옆에 체육사도 있어요. 운동기구도 챙길 수 있을까요?”
은지가 다른 건 몰라도 눈 하나는 정말 좋아서 주변 상황 파악은 기가 막히게 했다.
그리고 조수석에 있던 도경은 진짜 루팅을 한다는 생각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럼 내려서 안에 있는거 싹 털면 되요?”
“잠깐, 그 전에 앞이 잘 안 보이니….”
김준은 곧바로 클락션을 크게 눌렀다.
[BB!!!!!!!!!!!!!1]
클락션을 울리고 품 안에 HD등, 추가로 도경에게 말해서 대쉬보드에서 플래시라이트를 꺼내라고 한 김준은 클락션 이후로 주변 움직임을 살폈다.
쨍그랑!
크어어어어!
여지없이 체육사에서 유리문이 깨지면서 좀비가 튀어나온다.
그것도 뛰는 좀비인데 힘껏 달려들어 캠핑카를 이리저리 두들겼다.
쾅쾅 쾅
크아아아아아!!!!
“으걋!”
어떻게 참는다 하더라도 반사적으로 비명이 나온 도경을 보고 김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곧바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 뛰는 좀비를 한껏 추월했을 때, 반대편에서도 느릿느릿 걷는 좀비들이 보인다.
총합은 네 마리 정도였는데, 일단 뛰어다니는 놈 하나만 제압하면 나머지는 저격 포인트다.
“캬아아아악!”
김준의 차에 정면으로 달려드는 뛰는 좀비.
그리고 이 차의 앞에는 몇 번이고 로드킬을 해서 강화시킨 철제 범퍼가 있었다.
부우우우웅
콰득 콰아아앙
그대로 쳐 버린 순간 뼈 부서지는 소리가 리얼하게 울리면서 날뛰던 좀비가 그대로 날아갔다.
딱 순간속도 60km 정도로 들이받았는데 데굴데굴 구르며 나가떨어진 뛰는 좀비.
그것도 두 다리가 기형적으로 꺾여서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도경은 차마 보지 못하고 얼굴을 감쌌고, 김준은 익숙하게 공기권총으로 바닥에 붙어 헤엄치는 좀비를 향해 두 발 갈겼다.
거슬리는 뛰는 좀비 하나 처리했으면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남은 세 좀비를 향해 근거리에서 공기총을 꺼내 하나씩 저격했고, 총 네 마리의 좀비를 처리했을 때 뒤에 있던 은지가 외쳤다.
“오빠, 뒤에 둘 더요!”
“!”
김준이 백미러로 보자 정말 서서히 다가오는 좀비를 보고서 다시 차를 돌렸다.
“도경아! 너도 눈좀 여기저기 돌려라!”
“아, 네! 저… 죄송합니다!”
참혹한 상황이었지만, 살기 위해서 두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둘러보고 플래시라이트를 바깥에 비춰서 유리창 밖을 살펴봤다.
김준은 좀비들을 정리한 다음 나갈 준비를 하며 말했다.
“자~ 이번 루팅은 스피드가 관건이야. 통조림, 물, 소금 위주로 잽싸게 움직이고, 바람 소리만 들려도 바로 알려!”
“네, 넷!”
“제가 도경이 도울게요.”
그렇게 김준이 먼저 나와 주변에 총구를 겨눈 다음 곧바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쇼핑바구니에다가 있는 대로 통조림과 김, 미역, 소금, 장 종류를 전부 담았고, 오늘 80kg 쌀을 소비했는데 그 안에서 찾아낸 보리와 찹쌀, 쌀을 600그램 단위로 묶인 것을 보고 전부 챙겼다.
주변에 전기빛이라고는 김준 일행밖에 없어서 암흑이 드리우기 전, 세 명은 빠르게 보이는 것들을 모두 챙겼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싹 쓸어갈수 있겠지만,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이번에도 와인, 위스키, 소주 종류는 전부 쓸어왔다.
그리고 김준이 짐을 챙길 때 은지가 물건을 받으며 직접 차에 실었다.
“도경이는?”
“저쪽이요”
“뭐?”
김준이 고개를 돌리자 도경이 운동장비를 잔뜩 들고 왔다.
“뭐야 그거?”
“운동기구요. 아, 이거… 챙기면 안 되나요?”
“혼자 움직였어?”
“…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됐어, 네가 챙긴거 다 담자.”
짐볼부터 필라테스에 쓰일 매트, 아령, 악력기, 체육복 박스 등을 챙겼다.
확실히 운동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에밀리 같은 애들이 놀릴 정도로 힘은 좋아서 다른 아이들보다 배 이상의 짐을 쉽게 나르는 도경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너무도 위험한 짓을 했다.
불도 안 켜진데다가 바깥도 깜깜한데 거길 플래시 하나 들고 들어가서 따로 챙겼다니, 만약 창고나 카운터 같은곳에 숨은 좀비가 있었다면 도경은 그날로 끝이었다.
욕이 나올뻔한 일이었으나 일단 꾹꾹 참았다.
일단 그 이야기는 차 타고 들어가면서 하면 되는거다.
“오빠, 다 챙겼어요.”
은지가 편의점에서 각종 화장품과 속옷, 양말, 샴푸, 비누등의 마지막 짐을 들고 오자 김준은 그것을 담고 이만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은지를 짐칸으로, 도경을 조수석에 앉힌 김준은 차를 운전하면서 담배를 물었다.
“도경아.”
“예, 오빠.”
“은지한테 말하고 체육사 간 거니?”
“죄송해요. 제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푹 숙인채로 눈가가 점점 촉촉해지는 도경을 보자 김준은 여기서 계속 말하는 건 아니라 생각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니에요. 제가 다녀오라고 했어요.”
은지가 자신이 시킨 것이니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자 둘 다 정말 위험천만한 행동을 했다며 김준이 혀를 찼다.
아무래도 오늘 일에 대해서는 은지하고 도경이는, 집에서 기다릴 가야에게 맡겨서 상담 좀 해야겠다.
그날 밤은 지난번 채소 수확 이상의 루팅 물량을 보고서 8명이 모두 내려서 짐을 날랐다.
김준은 락스를 꺼내서 아까 친 좀비의 흔적부터 치워냈고, 싹싹 긁어서 지난번에 판 캠핑카 화장실 오물 처리하는 구덩이로 몰아 신나를 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짐이 모두 올라갔을 때, 김준은 가야를 조용히 불렀다.
“네, 오빠.”
“오늘 둘이 좀 위험했어.”
“!?”
“은지는 지난번처럼 또 위험한 곳에서 서성였고, 도경이는 총이랑 좀비보고 날뛰다가 따로 움직였고.”
“아이고….”
“잘 타일러야겠어. 이따가 술이라도 한 잔 먹고 말이야.”
“네, 제가 잘 말해볼게요.”
예전처럼 쌍욕을 한다음에 밤에 달랠 수도 없었고, 그나마 가장 루팅을 많이가고 연장자인 가야에게 맡겼다.
그녀를 조용히 올려 보낸다음 담배를 문 김준은 커튼이 쳐진 창밖으로 슬쩍 보이는 빛, 그리고 밤하늘 위에 달과 별.
마지막으로 라이터로 붙인 담뱃불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후우”
김준은 요즘들어 담배가 점점 늘어난다는 걸 느끼면서 어깨를 두들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에밀리와 라나가 사이클과 런닝머신으로 경쟁을 하고 있었다.
마리는 지난번 병원에서 챙겨온 수술도구들로 타이 연습을 하고 있고, 인아와 나니카는 오늘도 많이 챙겨온 물자들을 창고와 주방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김준은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용히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갓 지은 김치하고 같이 먹으면서 사색에 잠겼다.
어느 쪽을 돌아봐도 초미녀의 톱스타들이 우아하게 움직였지만, 장기간 동거를 하다보니 이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김준이 자작으로 소주를 마실 때, 그걸 보던 에밀리는 슬그머니 사이클에서 내려서 김준에게 다가왔다.
“같이 먹을까요?”
“운동하고 와서?”
“뭐, 삘받으면 뭐든 먹는거지.”
땀냄새와 페로몬 확 풍기면서 달라붙는 에밀리의 모습에 라나는 잠시 지켜보다가 조용히 내리고는 자신은 욕실에서 씻은채로 김준에게 다가왔다.
“원래 땀 실컷 뺀다음에는 시원한 맥주인데.”
“맥아 제조기계 있으면 고려는 해 볼게.”
“괜찮아요. 나름 소주도….”
운동 마친 두 여아이돌들은 서로를 보고는 알 수 없는 눈웃음을 지었고, 김준은 관심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따가 가야랑 오늘 간 애들 내려오겠지.”
“배구선수 잘했어? 막 날뛰고 그러지 않았지?”
“후우”
“오늘 엄~청 많이 챙겨왔는데, 뭔일 있었어?”
김준은 대답 대신 한숨만 내쉬었다.
“힘들면 내가 풀어줄까?”
“그만둬라.”
에밀리는 피식 웃다가 가슴에 손을 얹고서 자기 PR을 시작했다.
“역시 밖에 나가는 파밍은 내가 제일 인가봐?”
자신만만해 할 정도로 에밀리가 처음부터 잘하긴 했다.
“편의점 싹쓸이부터, 미스터 준이 쓰는 무기, 그리고 하룻동안 갇힌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무전기써서 돌아왔어! 게다가 좀비도 한 마리 잡았지.”
그러자 라나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무전기랑 언니가 매달 먹는 머쉬룸과 비타민은 누가 챙긴걸까요~?”
“무기와 약중에서 좀비 앞에서 뭐가 더 중요한지는 다들 알지?”
에밀리와 라나.
둘은 은근슬쩍 경쟁을 하면서, 한번 더 김준의 파트너로 자신이 적합하다는 걸 어필했다.
그 와중에 혼자 실크 타이 연습하던 마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의료도구 가져와서 집 안에서 수술을 한 사람도 여기 있어.”
“어머, 마리 언니도 참전?”
공교롭게도 김준하고 한번씩 뜨거운 밤을 보냈던 세 여자의 경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음식을 가져온 둘이 참전했다.
“저기, 이제 저만 유일하게 밖에 못나갔으니 다음에는 제가 갈게요! 필요한 물건들로!”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나니카.
“뭐, 그런 경쟁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난 어지간해선 나가기 싫은데.”
그리고 강건너 불구경으로 술안주거리로 배추전을 만들어 온 인아.
잠시후 가야와 상담의 시간을 가진 은지와 도경도 왔을 때, 김준은 여덟명의 톱스타들을 모아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자, 다들 이야기 잘 들어봐.”
모두가 집중하는 가운데, 김준은 소주를 마시면서 하나하나 말했다.
“다들 각자 일을 아주 잘해주고 있어. 먼저 가야!”
“네, 넷?! 저요?”
“맨 처음 연장자로 나랑 같이 움직이고, 쌍욕도 먹었지만 그 뒤로 애들 통솔 잘 해줬지? 그거 칭찬해! 게다가 지난번 은지 생일상 차리러 같이 나가 챙겨온게 엄청나지?”
가야는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나는 가장 어린나이에 자원해서 움직였고, 약이랑 기본 생필품을 전부 챙기고 무전기도 가져왔지, 에밀리는 물품 챙기다가 갇힌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루팅을 끝내게 도왔어.”
“그것도 캠핑카 1박 2일로~”
자기를 언급해줘 고마운 라나, 그리고 브이를 하는 에밀리.
“인아는 집에서 요리도 잘하지만, 그 재료들까지도 전부 챙길수 있게 했어. 덕분에 채소는 넘치도록 풍족해졌다. 마리? 의사 출신이라고 해서 도경이 치료한 공이 크지! 나니카, 너는 밖에 안나가도 집안일을 은지랑 같이했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도경과 은지를 보고 말했다.
“은지는 가끔 예상을 벗어나지만 안에서도 밖에서도 궂은 일을 다 해준 살림꾼이야, 그리고 오늘 도경이는 처음이라 실수를 좀 한 거야. 그렇지?”
“…죄송합니다.”
김준은 다시 한 잔을 채우고 말했다.
“8명이나 이곳에 들였을 때 공간이고, 먹을거고 상황이 되니까 모두 데려왔어.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든 각자 먹고 살 기술을 만들어주려고 멀티를 시켰어.”
루팅 외에 각자 전기, 기계, 요리, 청소, 물수급까지 하나하나 가리켜서 한 사람이 부재시에도 대체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드려고 했다.
“물론 상황이 다 여의치는 않지. 도경이가 오늘 한거 가야가 맨 처음에 총소리 듣고 놀래서 날뛰었던거 생각하면.”
“아, 그….”
부끄러운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자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가야.
그리고 김준은 이제 말을 정리했다.
“여튼 내 말은 이거야.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각자 몇 가지 기술을 구사할 정도로 다들 멀티가 됐으면 좋겠어. 물론 지금은 과도기고 언제든 내가 뒤에서 커버한다는 건 알아줘라.”
“오케이!”
에밀리가 손을 들자 라나 역시도 웃으며 동의.
그 뒤로 마리, 인아, 나니카, 가야가 차례대로 따르고, 머뭇거리던 도경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은지 하나가 남았다.
그는 김준과 눈이 마주친 다음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김준은 앞으로의 생존에서 중간점검이 될지도 모르는 자리를 가졌고, 그 기념으로 잔들 준비해서 한잔씩 채워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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