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40화 (40/374)

〈 40화 〉 40­ 은혜와 덕.

* * *

김준은 두 짐을 넉넉히 챙긴 후, 뒤로 물러나 반대쪽 비닐하우스 문을 열었다.

인아가 먼저 확인하고 슬금슬금 빠지던 김준은 뒤돌아선 채로 참선을 하는 스님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지금은 상황이 이래서 그냥 가져가느라 미안하게 됐습니다.”

“….”

노스님은 말이 없었지만, 옆에 건장한 체구의 스님이 말했다.

“저희가 아궁이를 때느라 불붙일 도구가 필요합니다. 불자께서 혹시 가지고 계시다면….”

그 순간 김준은 품 안에서 라이터 몇 개를 꺼내 바닥에 내려놨다.

“라이터 여기에 놓고 갑니다.”

“허허허, 만약 지금 가져간 작물이 부족하시다면 사흘 뒤에 오시지요. 비닐하우스 앞에 자그맣게 절에서 재배한 채소를 가져다 놓겠습니다.”

“큰 스님!”

이 상황에서도 부족하면 더 주겠다면서 사흘 뒤에 이곳에 작물을 놓겠다고 하는 노스님.

김준은 아직 경계를 완전 풀지 않았지만, 사흘 뒤를 기억하고 일단 그곳을 빠져나갔다.

황급히 인아와 같이 산에서 내려갈 때, 묵직한 더블백 짐으로 인해서 시간이 좀 걸렸다.

김준은 그 와중에도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혹시라도 그 스님들이 쫓아올 지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인아는 그때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내려갔다.

“정말 좋으신 분들을 만났네요. 저는 교회다니는데, 불교에서 선물을 다 받네.”

“음….”

“처음으로 본 사람 아닌가요? 이거 알려야 될 것 같은데.”

“그건 내가 말할게.”

유일한 사람을 만났다고 김준과 마리 빼고는 모두가 인식하고 희망감을 가질 거다.

캠핑카까지 도착한 김준과 인아는 뒷칸에다가 더블백 두 개 분의 채소들을 싣고서 차에 타 시동을 걸었다.

“산 속에서 생존자 스님들이라….”

김준은 내친김에 덕원산 인근의 도로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산 속에 있는 절 주변을 둘러보면서 혹시 수상한게 없나 싶어서 충동적으로 한 순찰이었다.

그때 눈 앞에 좀비 행렬이 보였다.

“어머?!”

“흠….”

으어어­ 크어크어어어어­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덕원산 쪽으로 피 냄새를 찾으면서 걸어가는 좀비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열 마리 정도 되는 좀비들은 대부분 작업복과 등산복등을 갖춰입고 있었고, 인근에서 공사현장으로 보이는 곳에 멈춘 소형 포크레인이 있었다.

저걸 루팅할수 있다면 월척이겠지만, 무모한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채소 받은 값은 해야겠지.”

저대로 놔 뒀다간 덕원산을 올라 안에 있는 정토사로 향할 것이라 여긴 김준은 차를 돌리고 창문을 열면서 그대로 총구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여기까지 오는 것도, 덕원산을 타는 것도 어림없다는 듯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띵­ 철컥­

연지탄이 안되면, 슬러그탄을 섞으면서 품 안에 공기권총을 꺼내기 전까지 김준은 먼 거리에서 저격으로 좀비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렸다.

조수석에서 조마조마하게 보던 인아는 8번째 좀비를 쓰러트릴 때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남은 두 마리를 연달아 잡았을 때 순간적으로 ‘나이스’를 외쳐서 김준에게 한 소리 들었다.

어쨌건 덕분에 도로는 피로 물들었고, 좀비들의 시체로 한 곳이 막혔다.

숨이 끊어진 좀비는 며칠 지나면 녹아내릴테니 그때나 한 번 다시 오기로 하고 이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준은 바로 뒷좌석을 열어 안전히 잘 있는 야채들을 두 팔로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일찍 루팅을 끝내고 와서 모두가 반겼고, 거기에 한가득 담아온 신선한 산나물에 배추와 무 등을 보고서 감동했다.

“미친, 대박!”

“이걸 다 캐온 거라고?”

“어디 농장 털었어? 이게 다 웬거야?”

20대 초중반의 파릇파릇한 연예인들이 돈이나 보석류 말고 배추랑 쑥, 무, 도토리 가지고 이렇게 감동하는 장면도 예능이 아니고서야 못 볼 거다.

김준은 오늘자 루팅을 마치고서 잠시 쉬러 밖으로 나갔고, 남은 아이들은 바로 채소들 손질할 준비를 했다.

칙­ 치익­

담배 한 대를 물고 2호기 창고로 갔을 때, 잘 돌아가는 관정 모터, 그리고 그 뒤로 수북하게 쌓여있는 쌀을 보고서 김준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인제 두 가마 소비했는데, 이걸 다 먹는다면 9명의 입으로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김준은 풍족한 식량을 보고서 기지개를 켜며, 든든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에서는 오늘 가져온 채소를 가지고 씻으면서 손질하는 8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자~ 내일은 김장을 할 거고, 일단 여기 쑥하고, 달래, 상추까지고 반찬을 좀 만들자.”

인아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잘 만들었다는 달래장, 그리고 상추와 양파를 썰어서 무침을 만들고, 쑥을 깨끗이 씻어서 된장국에 투여했다.

늦은 저녁이지만, 지난날 은지 생일 이후로 오랜만에 반찬 가짓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난 식단이었고, 김준은 아까 말한 대로 인아에게 슬쩍 일렀다.

“씻은 재료로 비빔밥 한 번 만들어보자.”

“네, 각자 퍼갈수 있게 하려고요!”

그렇게 쑥된장찌개에 각종 버무린 나물들을 가지고 모두가 고추장과 참기름을 가진 비빔밥 회식이 이어졌다.

미나리, 참나물, 시금치, 상추를 한데 담아 먹을 때, 이런 곳에서 행복을 느끼며 모두가 좋은 식사 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그날 저녁 편의점에서 가져온 위스키들을 가지고 조촐한 회식 자리를 가지면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스님들이었다고?”

“엄청 관대하신 분들 갔더라고요. 비닐하우스에 배추랑 무가 잔뜩 있어서 캐고 있는데 딱 마주쳤어요.”

“진짜 우리 말고도 생존자가 있구나!”

“그래! 이렇게 하나하나 산 사람들을 찾아 나가면 될 거야!”

희망회로가 잔뜩 돌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상황을 편하게 지켜보지 못하는 사람이 딱 둘 있었다.

“오빠, 그래서 사흘 뒤에 가실 거예요?”

“….”

인아의 물음에 김준은 바로 확답을 하지 않았다.

그 스님들이 확실히 마음껏 가져가라고 해서 잔뜩 챙긴 채소들, 거기에 모자라면 더 드리겠다면서 사흘뒤에 오라는 말도 들었다.

당연히 음식 하나하나가 필요한 상황에서 기쁜 마음으로 받으러 가야겠지만, ‘그 일’로 인해서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리 역시도 멋쩍게 웃으면서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처음으로 본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거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한 번 더 가봐야 하려나?”

“가는 게 낫지 않아요? 지금 우리가 1층 상가에 농사 새로 짓는다 해도 시간 많이 걸리는데.”

“게다가 겨울이 곧 오고 말이지.”

생존을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데, 김준 혼자서만 위스키 잔만 홀짝이면서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은지가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가 같이 갈게요.”

“?”

“어차피 인아는 지금 가져온걸로 김장한다고 했으니까 이번 루팅은 빠지고, 내가 대신 갈게.”

“아니에요. 제가 이번에도 갈게요.”

“그럴 필요 없어.”

그때 에밀리가 도경을 가리켰다.

“은지 언니, 차라리 무거운 짐 들고 간다면 이참에 얘 시키지?”

“….”

“그, 그래! 진짜 나 혼자 밖에 안나갔다! 오빠, 제가 갈게요!”

도경은 등 떠밀려서 손을 들어올렸다.

직접 움직인다는 아이들의 반응이 반갑기는 했지만, 김준은 신중히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는 지금 여자애들을 맡는 가야쪽을 지긋이 바라봤다.

“어, 제가 갈까요? 그래도 여기선 많이 물건 챙기러 많이 나갔으니.”

“저기… 사실은 저도 아직 밖에 나가본 적이 없는데….”

나니카까지 조용히 손을 들었을 때, 그녀 역시도 바깥에 대해서 못 움직여본 몸이었다.

자신은 픽하던 말던 시키는대로 하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라나, 그리고 선택을 요청하는 눈치의 인아까지.

8명이 생존자를 보고서 움직이겠다는 말에 김준은 결정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

칙­ 치익­

김준은 밖으로 나와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사흘 뒤의 계획을 준비했다.

일단 이번에는 파트너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간다.

조수석에는 은지가 동행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도경이 캠핑카 안에서 무기와 스코프를 들고 대기한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들이 새 야채를 제공한다면 감사히 받아가겠지만, 아니라면 두 명의 눈썰미로 바로 함정을 간파해서 자리를 피한다.

일단 정면에서 붙는다면 절대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공기권총과 도끼에 지난번 유용하게 써먹은 너트슬링도 있다.

“산 속에서 고고하게 사는 스님들이라….”

밖에 나온 김준을 따라와 사흘 뒤 멤버로 합류한 은지는 홀로 중얼거리다가 넌지시 말했다.

“생각해보니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네요.”

“음?”

“우물물을 마시고, 인적없는 산속에서 농사도 지으면서, 절이라는 건물 속에서 숙식이 되고, 그러면서 전기가 끊겨도 안에서 수행하느라 촛불 하나면 되겠죠?”

“그렇긴 하네.”

“정신적으로 몰려도 불경을 외우면서 마음을 달랠테고, 속세와의 인연이 안 닿으니 위험도 적고.”

“잘 아네, 불교신자였어?”

“템플스테이 많이 다녔거든요.”

은지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면서 2호 창고쪽을 바라봤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던데, 그쪽도 나름 풍족하게 가지고 있겠죠.”

“상황만 보면 2명 말고 더 있어보이긴 했어.”

김준의 대답에 은지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음 루팅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다.

그때 가만히 두 남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도경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오빠. 제가 정말 바깥 상황을 몰라서 그런데….”

“음, 왜?”

“진짜 길가다가 막 좀비 총으로 잡고, 그러면서 밀고 들어가서 막… 그러나요?”

“어.”

“….”

도경은 덩치에 안 맞게 그 이야기를 듣자 몸을 움찔거리면서 벌써부터 겁을 내고 있었다.

“그래도 오빠가 있으니까… 안전하겠죠?”

그 대답은 은지가 대신했다.

“안전해. 내가 두 번 가 봐서 알거든.”

“….”

은지는 도경의 어깨를 토닥여주면서 잘 할거라고 위로해줬고, 김준은 담배 다핀 다음 슬슬 들어갈 준비를 했다.

***

사흘 동안 받아온 배추와 무 등으로 김장을 하는 아이들.

그리고 김준 역시도 주변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집 이곳저곳을 수리했다.

지난번에 전력량이 좀 줄어든 것 같다는 이야기에 집열판하고, 태양광 배터리도 한 번씩 만져보고, 차량용 배터리들 떨어져 가는 것도 손보고, 디젤과 가솔린 캠핑 발전기들 역시도 전부 다듬었다.

이후 빗물탱크 쪽도 한 번 정리하면서 이음새 부분에 녹이 슬지 않게 윤활유도 한 번씩 뿌려서 시설관리에 들어갔다.

루팅 없는 날이라고 해서 애들이 음식 만들고 있는데, 자신이 빈둥거릴 수는 없었다.

이후 집 안에서 싸이클과 런닝머신을 이용해서 전기를 만들어내고, 옆에서 고무다라이에 익은배추 속을 치덕치덕 만드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게 잘 만들어질 줄 모르겠네?”

“뭐가 됐든 필요하니 만들어야죠.”

배추랑 무, 소금, 고춧가루는 있어도 나머지 없는 재료는 이대신 잇몸으로 한다.

매실액과 배가 없어서 사이다, 젓갈이 없어서 꽁치 통조림 따서 나온 국물로 버무리는 배추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동치미였다.

“아~ 보쌈먹고 싶다.”

“….”

에밀리의 한 마디에 순간 모두가 움찔했다.

“이런건 갓 만들자마자 맛보면서 삶은 고기에 싸다가 탁! 막걸리도 한 잔 탁!”

“어디가서 고기를 구해요? 멧돼지라도 잡을까요?”

“음, 만약에 사냥해서 잡은 고기는 먹어도 감염 안 될까?”

“시도해봐. 말리진 않을게.”

“응원할게요. 죽지만 마요.”

쿨하게 말하는 가야와 도경, 에밀리는 김샌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고무장갑을 벗었다.

그날 저녁은 갓 지은 김치 겉절이와 수많은 나물무침으로 인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그 이후 김장김치가 딤채 안에서 잘 익어가고 있을 때, 약속한 사흘이 되어 김준이 움직일 준비를 했다.

“밥들은 든든하게 먹었지?”

“네, 그대로 출발하면 될거 같아요.”

언제나 담담한 은지, 그리고 뒷좌석 캠핑카에 앉아서 조마조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도경이었다.

캠핑카 내부에는 많은 물건이 들어있었고, 김준은 정토사 가는 길로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점심까지 먹고서 오후 넉넉한 시간대에 출발한 김준 일행은 이미 한 번 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좀비와의 접점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중간중간에 뒷좌석에서 이미 죽였던 좀비 시체가 길바닥에 널브러진걸 보고 비명을 질렀지만, 조수석의 은지가 달래줘서 덕원산까지 어찌어찌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김준은 긴장한 얼굴로 옆에 있는 엽총을 어루만졌다.

과연 이것이 미끼일까, 아니면 정말 자비롭게 베푸는 것일지 모르는 상황.

평소에 사람 잘 믿고, 휴머니스트라 불렸던 그가 혹시 몰라 보조로 두 명을 붙여서 온 자리였다.

그리고 어제 인아와 같이 올라갔던 [덕원산근린공원] 간판이 있는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은지와 김준은 동시에 입을 벌렸다.

“어?”

“어머나?”

“뭐, 뭔데? 뭐냐고요?”

어제 차에서 내려 채집을 위해 내렸던 주차 위치에 뭔가가 있었다.

박스가 가득 쌓여있었는데, 김준은 차에서 내리기 전 총을 챙겼다.

그리고 은지는 김준의 명대로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손톱만큼이라도 인기척이 느껴지면 바로 호각을 불기로 했다.

그리고 김준이 총을 든채로 산 중턱을 겨누면서 한 손으로 바로 박스 윗부분을 뜯었다.

거기에서 나온 것들은 그의 입이 다시 한 번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안에 있는 것은 모두 갓 재배한 채소였다.

배추와 무가 들어있는 박스, 그것을 내린 순간 다음 박스에는 애호박, 푸성귀, 미나리, 마, 칡 등이었다.

다음 상자 역시도 콩나물과 숙주나물, 그리고 대두, 감자, 고구마 등이 알차게 담겨있었다.

이 엄청난 양의 채소를 본 김준은 할 말을 잃었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

김준이 조용히 손짓하자 은지는 안장 지팡이를 들고서 조용히 나왔다.

그녀 역시 박스에 한가득 담겨 있는 채소들을 멍하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진짜 부처님의 은덕이네요?”

“내가… 괜한 의심을 한 건가?”

“그럴 수 있어요. 이 상황에서는...”

김준은 일단 그것들을 모두 들고서 캠핑카 뒷문을 열었다.

무슨일이냐며 놀라하는 도경에게 나오라고 한 다음 그 채소들을 모두 창고에 담았다.

“뭐, 뭐야? 이게 그 스님들이 약속한 야채들이에요? 세상에….”

다양하게도 재배한 채소들을 보고서 진짜 신선한 비타민은 잔뜩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경아.”

“아, 네. 오빠!”

“우리도 안에 있는 거 꺼내자.”

혹시나 했던 상황에서 의심한 자신이 부끄러워진 김준은 이것들을 모두 챙긴 다음 자신들도 기꺼이 보답하기로 했다.

***

그날 저녁.

“스님 저 혼자 가도 됩니다.”

“허허허, 뭐든지 하나보다는 둘이 나은 법일세.”

노스님과 성정스님은 전기램프도 아닌 호롱불 하나에 의존한 채로 덕원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번에 일로 생존자인 김준 일행을 향해 남은 채소들을 기꺼이 내놓았고, 혹여라도 여기까지 오기 힘들까봐 입구 앞에 올려놨었다.

혹여라도 좀비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스님은 태연했고, 성정은 어떻게든 그분을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큰스님, 저기를 보십시오!”

“허허허, 가져가지 않은겐가?”

분명 자신들이 쌓아 놓은 야채 박스가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노스님.

“큰스님,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건 저희가 놓은 짐이 아닙니다.”

“으음?”

좀 더 가까이 와서 보니 그곳에는 자신들이 재배한 채소를 놓은 곳에 다른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거적으로 쌓여있는 도정처리가 안 된 쌀 두 가마, 그리고 ‘등유’라고 또렷이 써진 기름통 두 개. 그리고 각종 상비약이 담긴 구급상자가 있었다.

“큰스님, 이것은….”

“부처님께서 인도해주신 불자들로 큰 시주를 받은걸세.”

큰스님은 이 자리에 이것을 놓고 떠난 자리를 향해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합장 인사를 했다.

덕분에 그들이 필요한 불과 연료, 그리고 안에 있는 불자들에게 배추국이나 생야채 대신 쌀을 먹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