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5화 (35/374)

〈 35화 〉 35­ 오늘이 날인가봐요.

* * *

이제는 뻐근한 몸도 근성으로 견뎌내는 김준이 또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아이고, 아직도 이러네?”

“언제까지 흙탕물 나오는거예요? 이러다가 이걸로 샤워하겠어요.”

“좀만 더 기다려봐. 흙탕물 다 뱉어내면 깨끗한 물 나오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최대 1톤, 용량으로는 1천 리터 넘게 빼낸 다음에야 새 물이 나오는 부분이 있으니 참고 기다려야 했다.

일단 양수기 문제는 얼추 해결되가니 남은 것은 쉘터에 대한 방어 구축, 그리고 양수기에 3층까지 올릴 파이프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두 개 조로 나뉘었다.

“잘 해.”

“걱정하지마요. 나 이런거 해보고 싶었어.”

“무슨 일 있으면 제가 말할게요.”

아이들을 데리고 지난번 파이프를 뜯어냈던 상가 건물에 도착한 뒤로 공구들을 모두 풀어놓았다.

지난번 좀비가 벽을 타고 문을 두들겨서 곧바로 죽여버린 다음에 문 앞에다가 잡동사니를 쌓아서 바리케이트를 만들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자, 오늘은 위험하니까 특히 조심해라.”

“네, 오빠.”

“니네도 지켜볼꺼고.”

“오케이!”

김준은 도경과 에밀리를 시켜서 잡동사니를 뒤로 살짝 빼고 유리문을 덮은 양 옆의 알루미늄에 판을 대고 전동드릴로 박았다.

드르르륵­ 이이이이이잉­

알루미늄 기둥을 뚫고 분해된 합판이 하나하나 고정되고 있었다.

그 뒤에서 가야가 문을 막을 합판을 분류해서 대 보고는 둘을 보조했다.

그렇게 문을 아예 막아버리는 공사를 셋에게 시킨 뒤로 라나는 뒤꼍에서 양수기와 정수통을 두고 흙탕물을 계속 빼내는 작업을 시켰다.

덕분에 그녀는 ‘수처리 담당’으로 아예 롤이 고정되어있었고, 오늘은 마리가 김준 옆에서 작업을 같이해 집밖조가 다섯 명이었다.

“조심해라. 옆에 불꽃 튄다.”

슬금슬금 물러난 마리를 두고 김준은 널브러진 파이프들의 용접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번 인아랑 같이 종묘상하고 철물점 루팅하면서 얻어온 새삥 용접기와 용접봉들.

그리고 에밀리와 라나 시켜서 뜯어낸 파이프들을 아주 깔끔하게 갈아내서 딱 일하기 좋았다.

지직­ 지지지직­

선글라스를 쓰고, 플라스틱 캡으로 막은 김준은 파이프 용접을 해서 길게 2,3층을 이어나갈 길다란 파이프를 만들어 나간다.

이 작업도 며칠 걸릴 거고, 이것만 해결되면 진짜 물 걱정은 안녕이다.

물자가 없으면 밖에 나가 루팅, 물자가 많으면 안에서 편의시설을 만드는 작업.

그것이 반복될 때 오늘은 점심에 반가운 손님이 왔다.

“자~ 다들 이거 먹고 하세요.”

“와! 직접 만들어온거야?”

오늘은 올라가서 먹을 필요 없이 인아가 직접 점심을 가져왔다.

뒤꼍의 라나까지 불러서 밖에서 작업하던 아이들은 물티슈로 손을 씻으면서 인아가 만들어온 참치김치 주먹밥에 김칫국을 먹으면서 점심시간을 가졌다.

김준은 그것을 먹으면서 인아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녀 역시 지금 상황에서 이 정도는 당연하다는 듯 배려해줬고, 이제는 서로가 척 하면 아는 자리가 되었다.

모두가 식사를 즐겁게 할 때 김준은 빨리 먹고서 밖으로 나가 식후땡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조용히 그런 김준에게 다가오는 인아였다.

“오빠.”

“음? 뭐야?”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김준은 담배를 태우며 관정을 보다가 하라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2층 딤채에 김치 다 떨어져가요.”

“그럼 이제부터 못 먹겠네.”

“3층에 쌓인것도 다 먹기전에 전부 묵은지로 쉴 것 같고요.”

“그렇게 됐구나.”

김치가 사라진다고 하니, 이제 매일 먹는 밥 중에서 중요 반찬 하나가 사라진다.

게다가 편의점 턴 뒤로도 레토르트 식품도 빠르게 동내고 있으니 남은건 이제 옥탑방에서 조금 재배하는 채소와 버섯, 그리고 창고에 수북한 쌀과, 통조림, 1호 창고에 있는 군용식품 정도일거다.

“총각무랑 배추 따고, 고추도 조금만 있으면 다 자라니까….”

“김장하자는 말 아니지?”

“그래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

생존에 직결된 장기 식량 문제니까 진짜 해결을 하긴 해야 했다.

김준은 일단 1호 창고에 박스채로 쌓여있는 군용식품을 본 다음 인아에게 물었다.

“어떻게 지금 있는 걸로 만들 수 있겠어?”

“텃밭이 소규모라 다 긁어모아야 김치통 작은걸로 두 통 나올까요?”

9명이 그거 나눠 먹으면 한 달도 못 가서 동날 거다.

김준은 그것을 두고서 인아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까지 일 마치고서 전체적으로 남은 식량 한 번 보자.”

“네, 그래야겠어요. 계산 잘해야죠!”

진짜 자신의 부재 시에도 믿을 수 있는 세 손가락 안에 연예인 중 하나였다.

아마 인아가 없었다면, 이 상황에서 애들 배고프다고 하면 대충 밥하고, 있던 반찬 소비하고, 그러다가 통조림 데운걸로 끝내다가 농사 조금 하다가 점점 영양상태가 나빠졌을거다.

김준은 진짜 200% 도움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고,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지켜본 다른 연예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김준은 인아와 같이 남은 식량을 계산하기 위해 3층부터 시작했다.

3층의 냉장고는 아주 옛날에 세입자가 버리고 간 대우전자 제품이었다.

냉동실은 얼음 빼고는 아무것도 없이 휑했다.

김준이 혀를 차면서 냉장실을 보자 그 안에는 인아가 만든 각종 반찬들이 있었다.

“이건 뭐야?”

“장조림캔에다가 버섯 재배한거 손질해서 병조림으로 만든거에요.”

“아, 가끔 저녁에 나오던 반찬. 그거 맛있더라.”

그 뒤로 재배한 채소로 만든 상추무침, 깻잎무침, 방울토마토 등이 가득했고, 지난번 횟집거리에서 가져와 말린 건어물들이 있었다.

그 위로 찬장에 있는 각종 소금, 설탕, 식초등의 조미료와 소면과 밀가루 등이 있다.

부족하진 않지만, 딱 여기 있는 것만 따지면 한 달 남짓한 반찬들.

김준은 밑으로 내려가 또 확인했다.

김치냉장고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합쳐서 반 밖에 안남은 김치, 그리고 각종 소주에 지난번 탈지분유로 만든 우유는 매일같이 아침에 먹으라고 배치되있고, 역시 만든 반찬들과 레토르트 제품 딴 게 전부였다.

“확실히, 다시 한 번 털 때가 되긴 했네.”

“뭐야? 먹을 거 부족해서 그래요?”

쉬고 있다가 배를 긁적거리면서 주방으로 온 에밀리가 다가왔고, 같이 장기를 두던 마리와 은지도 뒤따라왔다.

그녀들은 그동안 잘 먹고 잘살았는데, 루팅 안해서 그렇게 된지 알고 신경을 썼다.

“아냐, 다 종합하니 앞으로 크리스마스때까지는 먹을 양이다.”

“오~”

“염려는 해야겠지만, 당장 위험하진 않지?”

“네, 지금은 그렇죠. 아까 김장 같은 거만 아니라면.”

“그건 차차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김준이 그렇게 말하자 인아도 수긍했다.

그때 오늘 계속 작업을 하던 마리가 넌지시 말했다.

“저기, 오늘 작업한 곳이요.”

“음? 1층 상가.”

“네, 거기 유리벽인데 전부 셀로판 스티커 붙어있던거 위에만 떼어내서 햇빛 밭게 한다음에 그 안에서 농사 지으면 되지 않을까요?”

“!”

김준은 그 말을 듣자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생각해보니 거기다 실내재배를 못할 건 없었다.

다만 그걸 하려면 포장된 화학비료가 아니라 진짜 흙이 많이 필요했고, 거기에 쓸 화분도 루팅하거나 아니면 직접 만들어서 써야 했고, 보온을 위해서 따로 조명 같은 걸 설치해야 했다.

“좋은 방법이긴 한데, 손이 좀 많이 갈거다. 설치하는데, 며칠 걸려.”

“씨앗은 충분하니 상추나 콩, 시금치는 확실히 될거 같아요.”

“다음 루팅때는 음식 말고 흙도 퍼와야겠네.”

김준은 내친김에 그것을 준비하고, 그러면 지금 빠지는 흙탕물 들을 가지고 화분에 뿌리는 용도로 써야겠다고 퍼즐을 맞췄다.

“지난번 좀비 나온 거 때문에 빈 공간이라도 안 쓰려했는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긴 하지.”

“네, 그럼 집안조 멤버들 데리고 화분으로 쓸 바케스 모아볼게요.”

인아도 여기에는 동감했고, 50평 상가에서 대규모로 실내재배를 하려는 계획을 입안한 마리를 향해 김준은 엄지를 올렸다.

“좋은 아이디어. 박수!”

“아니 그냥….”

김준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는 마리와 진짜로 박수를 치는 에밀리, 다른 애들은 그냥 뒤따라서 박수를 쳐준다.

김준은 그러면서 기념으로 오늘도 팩 소주를 꺼내 빨대로 따서 쪽쪽 빨았고, 자기 전에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장기를 두는 에밀리와 라나가 서로 싸우다가 한판 더 하자면서 장기판이랑 말 가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일찍 잠드는 가야의 코골이 소리가 들렸고, 그동안 저 소음에 대해 정체를 밝혔지만 뭔가 기쁘진 않았다.

“아, 나도 들어가야겠다.”

“그러네? 나도 슬슬 정리해야지.”

김준이 인아가 치우는 그릇들을 두고, 다 먹은다음 들어가겠다고 하자 그녀는 나니카가 잠드는 방으로 들어가 인사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마리 하나였다.

“안 자?”

“잠이 안 오네요.”

“흠.”

김준은 팩소주를 쪽쪽 빨며, 땅콩을 씹어댔다.

마리는 그때의 일 이후로 계속해서 김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1주일동안 아침과 저녁마다 몸상태 체크한 뒤로 작업을 할때도 그녀가 계속 보조로 따라다녔고, 담배 피러 나갈때도 슬며시 따라나와 그 일에 이야기를 했다.

사실 눈치가 조금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김준은 일부로 거리를 뒀다.

“생각해보면, 여기 살면서 저하고는 별로 교류가 없었죠?”

“아니 뭐, 잘 아는게 없어서.”

“제 데뷔작품도 모른다고 하셨고요.”

의대생 시절에 캐스팅 돼서 시청률 20%가 넘는 의학드라마 [지니어스 서전]으로 이름을 알린 마리.

그 뒤로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조연으로 얼굴을 드러내다가 싱글 앨범도 준비하고, 걸스 스피릿 멤버도 라나하고 같이 합류하는 멀티 엔터테이먼트의 커리어에서 지금 상황은 여기까지 왔다.

“이제부터 알아나가고 있잖아?”

“하긴, 저 말고도 다른 애들한테도 전부 똑같이 대해주셨죠?”

지금 이 자리는 아무것도 필요없는 진솔한 자리.

김준은 휴머니스트 적으로 다 죽어가는 생존자들을 구해줘 같이 사는 거고, 그 대가로 일을 시켜서 그만큼의 밥값을 하게 하면 끝나는 아주 쿨한 관계였다.

“그래서, 지난번에 챙긴 그 약들은 잘 쓰고 있어?”

“아껴쓰고 있어요.”

“안정제랑 수면제도 있었다고 하던가?”

“그거… 안 먹었어요.”

뭐, 당사자이자 의사가 판단한거니 김준은 거기에 대해 별 말을 안했다.

오히려 척이라도 이 정도로 밝은 모습을 보여주면 차차 큰 트라우마라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아까 음식 말이죠. 물자 구하러 가실 때 저 한 번 더 갈수 있는거죠?”

“뭐, 대부분 2번씩 하긴 했는데, 힘들면 안 해도 돼. 안 그래도 인아 말처럼 음식이랑 화분 구한다면 걔가 더 잘하긴 하고.”

“아니요. 갈게요.”

“…괜찮겠어?”

“오히려 오빠 옆이 더 안심이 되요.”

“….”

그렇게 생각한다니 고맙기는 했다.

마리는 오늘 술도 마시지 않았지만, 계속 얼굴에 홍조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오늘 분위기는 대화 속에서 아주 좋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적당히 마신다음 그 감성 가지고 자러 가야겠다.

“그냥… 조금 편해질때까지 옆에서 이야기 할 수 있나요?”

“그래, 아직 안 졸리니까 좀 더 앉아있을께.”

“고마워요.”

김준은 그런 마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

철컥­

모두가 잠든 새벽 아직 깨어있는 두 남녀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홍조가 생길 정도로 좋은 이야기를 했던 두 남녀는 기어이 눈이 맞았다.

딸깍­

“쪽­ 쪽­ 츄르릅­”

김준은 문을 잠그자마자 마리와 연신 입을 맞추고서 침대로 향했다.

“하, 씨발 진짜….”

“오늘이 날인 거 같아.”

김준이 욕을 하지만, 마리는 오히려 그런 김준을 꼭 끌어안으며 발그레해진 얼굴로 말했다.

술자리에 위로하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새벽에 눈이 맞아서 여기까지 왔다.

김준은 그대로 마리를 들어서 침대에 눕혔다.

티셔츠를 벗어들고 그녀의 위로 올라타 상의부터 천천히 단추를 풀어 헤쳤다.

작은 불빛 아래 새하얀 몸이 드러났고, 마리는 부끄러운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김준은 그녀의 쇄골부터 가슴골까지 입을 맞추면서 츄리닝 바지까지 슬슬 벗겨내자 레이스 팬티의 골반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얼굴을 가린 두 손을 잡아 들고 눈을 마주칠 때 그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오빠… 안 말한게 있는데.”

“어?”

“그… 나 처음이라….”

남자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그 말을 하면서 시선을 회피하는 마리, 하지만 그게 더 흥분하게 만든 단어라는 건 몰랐나보다.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그녀의 브래지어도 마저 풀어헤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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