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3 바깥엔 괴물, 안에는 악마.
* * *
마리는 안장 지팡이를 들고 대치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어이구~ 그년 성깔 좀 있게 생겼는데?”
“앞에 남자 뒤져분거 못 봤냐? 저항하면 아가씨만 다쳐.”
본색을 드러내고 음흉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두 사내를 보고 마리는 1층 진료실에서 도구를 챙겼을 때가 떠올랐다.
피에 젖어있는 진료실, 누군가 벗어놓고 간 오래된 옷, 보이지 않는 시체.
좀비에게 습격당한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당신들 의사… 아니, 여기 병원 사람들도 아니지?”
“그것이 뭐 중요하냐? 중요한 건 니년이 지금 살려면 우리한테 대주는 길밖에 없는데 말이다.”
“지랄 마!”
“하~ 고년 앙칼지네?”
“형님, 그냥 저따가 끌고 가서 묶죠?”
건장한 체구의 두 사내가 서서히 다가왔고, 이 상황에서 인간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리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저항했으나 두 사내는 바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
“크으윽!”
기습으로 떨어진 김준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개새끼…들.”
몇 달 만에 본 생존자에, 의사 가운을 입고 스스로 쉘터를 공개할 때, 경계를 풀었던 게 악수였다.
마리에게 지켜보라고 했어도 처음 루팅한 애가 뭘 알겠는가?
창가로 떨어졌을 때, 끝났다고 생각한 김준의 운명, 하지만 다행히도 이 요양병원은 매우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리고 오래된 병원 건물은 여러 개의 문이 있고, 문 위에 넉넉한 공간의 평지붕이 있다.
가정집에서는 평지붕은 장독이나 화분으로 꾸미지만, 이런 병원건물 지붕에는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고 바닥에 잔디나 담쟁이덩굴 등을 깐다.
천만다행으로 김준은 프로텍트를 입은 상태에서 실외기 호스에 떨어졌다.
아마 맨몸이었으면, 기절한 상태로 내일모레쯤 일어났겠지만, 지금은 두 다리 모두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크으… 끄으으응!”
자신이 떨어진 곳은 5~6m 정도의 높이.
아직 놈들은 김준이 생각보다 움직일 만한 상태이고, 떨어진 곳으로 올라간다는 걸 모를 것이다.
김준은 마리를 구하기 위해 힘겹게 일어나 허리춤에 있는 손도끼를 갈고리 삼아 올라갔다.
***
“저, 저리 가!”
지팡이에 자전거 안장이 붙어있어 무지성 좀비들을 밀어내는 용도의 도구는 칼과 쇠파이프를 든 건장한 체격의 두 사내를 막아내기엔 무리였다.
“이익!”
그들을 떨어트리기 위해 안장 지팡이로 밀어붙였지만, 경비원이 그대로 손으로 잡았고, 팽팽하게 대치할 때 의사가 그대로 마리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걷어찼다.
퍽
“꺄앗!”
발로 옆구리를 걷어차인 마리가 쓰러졌고, 복부를 붙잡으며 엎드려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오늘 집에서 수술하기 위한 장비는 놓치지 않았다.
“잡았다 이년~”
“우우웃!”
“아이구, 이거~이거~ 살결도 아주 제대로네?”
“아, 형님 뭐 이렇게 장난질을 해요? 걍 확 자빠트리지!”
목을 잡았다가 그 손이 슬금슬금 내려가고 있을 때, 마리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경비원과 의사 옷을 입은 사내들은 두꺼운 손으로 마리의 몸 이곳저곳을 훑고 있었다.
마리는 절규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고, 아무리 외쳐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두 사내가 마리의 옷 앞단추를 뜯고 차례로 범하려고 할 때, 사람이 떨어졌던 창문 난간으로 손이 하나 올라왔다.
탁
떨어질 때 충격으로 통증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
등부터 다리까지 비명을 지르는 몸이었지만, 도끼 하나로 난간을 타고 기어이 기어 올라온 김준이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그 안에서 시커먼 두 사내가 한 여자를 강간하려는 모습을 보고서 곧바로 상반신을 집어넣었다.
깨진 유리조각들이 몸에 쓸렸지만,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야이… 새끼들아!!”
“!?”
둘은 고개를 돌렸을 때, 기어 올라온 김준을 보고서 입이 떡 벌어졌다.
“뭐여, 씨벌? 저 미친놈이 어떻게….”
“저거 아주 끈질기네? 형님, 저 새끼 아예 죽이죠!”
그들이 쇠파이프와 침대에 있는 칼을 챙기려고 할 때, 마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가방 속을 뒤져 메스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바로 사내의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크악!”
기습적으로 메스에 종아리를 베인 경비원이 주저앉았고, 의사는 그걸 보자마자 마리에게 달려들어 발길질을 날렸다.
“이 썅년이!”
퍽
그대로 머리를 맞은 마리가 쓰러졌다.
그때 김준은 필사적으로 힘을 짜내어 겨우 창문으로 올라왔고, 다리를 베인 경비원은 피가 흐르는 다리를 붙잡고 칼을 집어 들었다.
“개 썅년들이 곱게 뒈질 것이지 끈질기게….”
김준을 찢어 죽이려고 달려드는 경비원, 그리고 마리를 붙잡는 의사.
온전치 못한 몸으로 식칼을 든 채 살기가 가득한 괴한과 대치한 상황이었고, 도끼를 든 손도 통증에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문가에 있는 마리가 의사의 다리를 붙잡는 모습과 그 위의 유리창을 보고 보고 김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마리야! 문 열어!”
“?”
“이 새끼가 무슨 소리를….”
앞에 있던 경비원이 칼을 들고 달려들려 할 때, 김준은 도끼를 그의 손을 향해 휘둘렀다.
빠각
“크아아아아아악!!!”
“명호야!!”
다리에 이어 팔에도 피를 본 경비원이 몸부림칠 때, 김준은 발로 그 경비원을 걷어차 문으로 뒷걸음질 치게 했다.
그 둘이 문으로 향했을 때, 마리는 잠금용으로 괴어놓은 나무를 빼버리고, 모든 힘을 다해 미닫이문을 열어버렸다.
드르르륵
“이 썅년이! 문을 열….”
그 순간 문가에 있던 두 사내는 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리는 손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으어어어
콰드득
“크아아아아악! 뭐야?”
“씨바알! 이거 놔! 놓으….”
콰득 콰드드득
복도에서 상대할 때 시속 1km는 되냐고 했던 느릿느릿하게 걷던 중앙데스크 일대의 좀비들.
하지만 그놈들이 소란 속에서 기어이 사람이 있는 병실로 다가왔고, 문의 창으로 본 김준은 바로 놈들을 이용했다.
환자복과 간호사복을 입은 좀비들이 경비원과 의사 둘을 물어뜯고 그들이 몸부림칠 때, 뒤로 빠진 마리에게 외쳤다.
“이쪽으로!”
“히익!”
마리는 성폭행 미수의 충격 속에서도 그 한마디에 김준에게로 달려갔고, 그때 좀비 하나가 마리의 뒷목을 노리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딱
정말 한끗 차로 좀비가 그녀의 목 대신 허공을 깨물었고, 마리가 김준의 품 안에 들어가 머리를 박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이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려 패닉상태였다.
으적 으적
크어어어 어어어
“끄아아아아아악!!!”
“그르륵 커러러럭!”
조금 전까지 사람이었지만, 이젠 목덜미와 척추를 물어뜯겨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숨통이 끊어져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감염된 이들의 처절한 비명.
그리고 몸을 일으켜 남은 사람 둘을 보고 마저 먹어 치우려는 좀비를 향해 김준은 어깨에 찬 엽총을 주섬주섬 들었다.
이곳까지의 거리는 단 3m도 되지 않아 달려들면 모두가 끝날 상황에서도 김준은 무섭도록 침착했다.
느릿느릿 걸어오는 좀비를 향해 영거리에서 총구를 든 김준은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콰직
침착하게 영거리에서 날린 엽총의 슬러그탄이 좀비 머리를 박살내고 공중에 피가 튀었다.
딱 1m 남짓해서 좀비의 튄 피가 흐르지만, 김준은 개의치 않고 마저 날렸다.
탕 타앙 철컥!
“….”
두 마리의 좀비.
거기에 물려 감염된 두 괴한.
딱 세 발 남은 엽총의 총알이 모두 동났고, 다시 챙기려고 했을 때, 뒷주머니로 손이 닿지 않았다.
“아, 씨….”
어깨가 나갔는지 빳빳해진 손이 떨리며 뒤로 안 움직였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품긴 마리는 완전히 멘탈이 나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김준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크어어어어어!!!! 어어어!!!”
결국 의사양반의 탈을 쓴 괴한이 완전히 감염되어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김준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좀비가 달려들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김준은 허리춤에 있는 리볼버를 꺼내 그대로 당겼다.
타앙!
이것으로 그동안 요긴하게 써 온 리볼버의 총알이 모두 동났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 성능은 확실해서 단 한방으로 마지막 남은 좀비까지 처리했다.
김준은 그 상황에 뒷주머니 대신 앞의 요대에 찬 지포라이터 기름통을 꺼냈다.
이빨로 그것을 돌려 뚜껑을 연 다음 그대로 널브러진 네 좀비를 향해 던지자 기름 냄새가 확 올라왔고, 전부 끝낸 기념으로 담배 한 대의 시간을 가졌다.
칙 치익!
“후우….”
한 대 빤 바로 담배를 던지자 빠른 속도로 불길이 올랐고, 불과 3m 앞에서 캠프파이어가 벌어지는데 그 연료는 힘겹게 몸부림치다가 서서히 타들어가는 좀비들이었다.
김준은 그 상황에 품 안에서 떨고 있는 마리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개빡셌네… 많이 놀랐지?”
“….”
“약 챙기고 집에 가자.”
등을 쓰다듬어주며 진정시켜줄 때 그녀의 옷 위로 매끈한 감촉이 느껴졌지만, 몹쓸 짓을 당할뻔한 여자한테 실례라 생각하고 그대로 들어 일으켰다.
“하!”
겨우 일어나자 몸이 뒤늦게 비명을 질렀지만, 뛰지는 못해도 걸을 수는 있었다.
그동안에 가슴팍이 축축해져 있었고, 눈물에 코피에 상처투성이인 마리에게 말했다.
“안주머니에 물티슈 있거든? 좀 닦을래?”
“….”
그 상황에서 마리는 김준의 몸을 뒤적이며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냈고, 자기 뺨을 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가죠!”
아마 죽을 때까지 끔찍하게 남을 기억이겠지만, 그것으로 밍기적거렸다간 진짜로 죽을 수 있다.
불에 타들어가는 좀비를 뒤로 한 채 김준은 마리에게 부탁해 뒷주머니의 슬러그탄을 겨우 꺼내서 천천히 장전하고 다시 움직였다.
복도는 이미 수많은 좀비들을 잡아서 피로 물들어 있었고, 김준은 벽을 짚으면서 천천히 중앙으로 향했다.
그 사이 마리는 수시로 양옆을 보면서 혹여라도 다른 곳에서 좀비가 튀어나올까 봐 김준 대신 앞에서 먼저 경계를 하고 앞장섰다.
덕분에 김준은 평소보다 느리게 어기적거리면서 걸어갔지만, 마리로 인해 중앙 약제소까지 도착했다.
철컥
김준이 엽총으로 경계를 서고, 마리는 황급히 다가가 약재통을 뒤적였다.
각종 항생제, 소염제, 수면제에 신경안정제, 진해거담제까지 노인병원이라 그런지 각종 중증에 대처할 약이 한가득이었고, 마리는 떨리는 손으로도 하나하나 분류하여 착실히 챙겼다.
다행히 비닐팩에 담겨 제품명이 붙어있어서 챙기기 수월했다.
상온에서 3달간 있어서 백신은 못 챙기겠지만, 각종 키트나 주사, 솜, 거즈 등은 쓸 수 있다.
전부 챙겨서 가방이 두둑했을 때, 이제 돌아갈 길만 남았다.
“이제… 어쩌죠?”
“내려가 봐야지.”
떨어지기 전, 다른 지역에서 몰려든 좀비로 인해서 병원 밖에는 수많은 좀비가 있다.
게다가 이 몸상태로 밖에 있는 좀비를 저격한다 하더라도 총알이 충분할지 장담 못 했다.
차 안으로만 간다면 남은 연지탄과 슬러그탄이 충분했지만,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길이었다.
“….”
“1층에 그게 있길 바래야지.”
“?”
김준은 어기적거리면서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조금 전 좀비들을 잡느라고 질렀던 불이 타버리고, 그슬린 좀비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마리가 문 밖을 봤을 때, 딱 봐도 열 손가락으로는 못 셀 수의 좀비들이 보였다.
“오빠….”
“안으로 뛰어오는 놈 있으면 말해라.”
김준은 1층 건물 안으로 점점 들어갔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아이템을 찾던 중 원무과 안에서 그것을 발견했다.
“됐다!”
“!”
피로 얼룩진 백색거탑 안에서 김준이 발견한 것이 있었다.
이곳은 몇 번이고 강조했던 요양병원, 그래서 주 환자는 장기간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
그 속에서 김준이 발견한 것은 이동수단이었고, 장애인 전동카트가 있었다.
“아! 저건!”
“기다려봐.”
석달 넘은 상황에서 전기배터리로 움직이는 저 카트가 움직이는지 확인해야 했다.
일단 스위치를 올리고 피로 물든 바닥에서 끌어와 작동여부를 확인했다.
삐익 삐익
배터리가 딱 7% 남아있었다.
“진짜… 뒤지란 법은 없다니까.”
배터리가 앵꼬 직전이지만, 훌륭하게 작동한다.
“앞에 바구니에 가방 담고 무릎 위에 올라타라.”
“…네.”
1인승인지라 마리를 앞에 앉힌 김준은 정문에 있는 휠체어 경사로를 노리고 그대로 핸들을 당겼다.
위이이이이잉
저소음의 전기 카트는 시속 10km 남짓이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키아아아아아악!]
[우어어어!!! 으아아아!!!]
죄수복을 입은 좀비 중에서도 정말 험악하게 생긴 일부 좀비들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지만, 뛰는 좀비를 우습게 제끼면서 캠핑카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차 앞에는 아까 떨어지기 전에 헤드샷으로 쓰러트리고 사후경직된 좀비가 있었다.
세차는 집에가서 하기로 하고, 카트에서 내리자 마자 곧바로 마리를 차에 태우고 자신도 운전석에 올라탔다.
오늘 하루가 몇 주는 지난 것 같았고, 겨우 차 안에 들어왔을 때 김준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뒤늦게 좀비들이 달려올 때, 김준은 창가에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면서 바로 시동을 걸었다.
***
“으아아악! 끼아아아악!!!”
“에밀리, 나니카! 잘 잡고 있으라고! 몸부림 치다가 잘못하면 얘 아예 못 걸어!”
“아오, 이 배구선수 왜 이렇게 날뛰어?”
옆방에서 항생제와 수술도구를 가져온 마리가 도경의 봉와직염을 치료하고 있었다.
메스로 고름을 째고, 환부를 뜯어내고, 항생제를 먹이고, 속칭 빨간약이라 불리는 포비돈으로 적신 솜을 상처 안에 넣어 후볐다.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거리던 도경이 저리 날뛸정도로 저거 치료하는데 엄청 아프긴 했다.
반면 김준은 전신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고통을 가야와 라나에게 부탁해서 파스를 여기저기 붙이고 소염제를 먹은채 침대에 누웠다.
“계단에서 굴렀어요?”
“뭐, 그렇지.”
“헐… 오빠! 진짜 위험했잖아요. 우린 오빠 없으면 안 된다고요!”
라나가 오늘 김준이 크게 다친 모습을 보고 살짝 울먹였다.
이런 상황도 아까 살아남지 않았다면 다시는 못 봤을거다.
“좀 어떠세요, 죽이라도 끓여올까요?”
앞치마를 두른 인아가 다가와 묻자 김준은 손사래를 쳤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넘어가지도 않아.”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린 김준은 내일 아침이 두려웠지만, 적어도 팔다리는 쓸수 있는 것에 대해 안도했다.
그리고 그날 밤.
도경의 봉와직염 치료가 끝난 마리는 곧바로 손을 씻고서 김준의 방으로 들어왔다.
“좀 볼게요. 오빠.”
“으음….”
파스가 덕지덕지 붙은 몸을 보면서 마리는 손으로 몸 구석구석을 눌러갔다.
“아, 크으….”
“억지로 참지 않으셔도 되요. 그대로 아픈데를 말해주세요.”
“됐어. 견딜만 해.”
“스플린트 댈 곳이 없는지 볼게요.”
엑스레이도 없이 두 손의 압진으로 묵묵히 체크하던 마리는 부족한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봤다.
“다른 곳은 몰라도 총 메던 오른팔하고, 골반 부분은 좌상이 클 것 같아요. 실금일수도 있고요.”
“진통제 먹었으니 버틸수 있겠지.”
“내일 일어나자마자 바로 연고랑 소염제 준비할게요.”
“…괜찮아?”
김준은 검진 이후 넌지시 마리에게 물었다.
인간으로써 끔찍한 상황을 연달아 겪은 마리를 두고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두 남녀의 침묵속에서 마리는 뒤늦게야 입을 열었다.
“…오늘 챙긴 약중에 트라린, 리페리돈, 로라반 등이 있었어요. 셋다 신경안정제에 수면 유도기능도 있죠.”
“….”
“위험했어요. 좀비가 있는 밖에 나가서 물릴 뻔한거. 약을 구하기 위해 미끼가 된거.”
“저기, 쉘터에 그 두 놈은….”
그때 마리는 멈칫하다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네? 그건... 무슨 말이죠? 오늘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
마리는 담담하게 검진을 마치고서 일어났다.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내일은 아침 7시에 노크할게요.”
“아, 그래. 푹 쉬어라. 오늘 정말로 잘해줬다.”
오늘 루팅 중에 김준이 죽을뻔한 상황과 부상을 입은 적은 있었지만, 쉘터의 2명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한 적은 지금부터 두 남녀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김준은 그 말뜻을 알아듣고 차라리 그러는 게 낫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을 닫은 마리 역시도 말이 없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거실에 있는 인아에게 말했다.
“인아야. 언니 소주 한잔 해야겠다.”
“네? 언니… 술 안드시잖아요?”
“그냥 오늘 좀 그래서.”
“아, 루팅 다니며 바깥 보셨구나.”
인아는 그렇게만 알아듣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이랑 씹을 거리로 어제 먹다 남긴 꽁치 통조림을 구웠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지나갔고, 이 집안의 9명 외에 새로운 생존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