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31화 (31/374)

〈 31화 〉 31­ 생각지 못한 위기가 생기다.

* * *

“후우,”

김준은 일어나자마자 어제 남은 물로 씻었다.

어제 설치한 2층 양수기 호스가 지금쯤이면 실리콘이 굳었을테니 그것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옷을 챙겨 입을 때, 침대에서 전라의 상태로 잠든 라나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찢은 스타킹, 사용한 콘돔, 뜯어진 포장지 등 하나하나 담아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 치우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슬며시 깬 라나였다.

“우음, 일어났어요?”

“어우 씨! 깨 있었냐?”

라나는 바로 몸을 돌려서 반쯤 뜬 눈으로 김준을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서로 물고 빨아대서 립스틱 묻은 흔적이 여기저기, 어제 8시에 일어난다는 마리의 오피셜로 몇 시간 못자고 일어난 몸 상태.

하지만 그 상황에서 라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전라의 몸으로 다가와 김준에게 안겼다.

“차라리 모두에게 알릴까요?”

“큰일날 소리 하네 얘가.”

“그래도 커플링 인증하면 다들 넘어가 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눈 맞아서 한 게 벌써 네 명째인데, 진짜 그랬다가는 생존 쉘터가 애정촌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됐고, 일어나서 옷 입어라.”

“우음~ 그래야죠.”

라나는 팬티부터 먼저 챙긴 다음에 김준 앞에서 입었고, 브래지어를 들어 천천히 찼다.

그동안 살짝씩 벗기는 것만 생각했는데, 은근히 속옷을 천천히 입는 모습도 상당히 꼴릿한 상황이었다.

라나가 속옷을 다 입고, 마지막으로 원피스를 훌렁 들어 입었을 때, 김준은 그녀의 뒤에 서서 손으로 등을 살살 어루만졌다.

“음?”

“감촉 좋네.”

“등이요?”

등을 쓰다듬으며 그 옷 속의 브라끈 감촉을 느끼던 김준은 라나의 말에 웃으면서 손이 내려갔다.

“옷 입고 잠깐 나가자. 어제 작업 좀 확인하게.”

“아, 지금?”

“물 잘나오는지 확인해야지.”

“흐아암, 그래요. 같이 가요.”

김준은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봐어제의 흔적을 전부 지운 다음 밖으로 나가 양수기로 향했다.

그리고는 덜덜덜 거리는 양수기 소리를 막기 위해 지난번에 만든 나무 커버를 씌우고 거기에 토목용 덮개를 깔은 다음 전원을 올렸다.

“번거롭겠지만, 앞으로 물을 쓸 때는 누구 한 명이 내려가서 양수기 돌려야 해.”

“리모콘 있으면 딱 좋을 텐데.”

“음,그러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을 못 하잖니.”

“…아, 그것도 그렇네요?”

김준은 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에 집 안에 물 나오는 것을 확인할 준비를 했다.

“가서 시원한 물로 한 번 씻어봐. 나라야.”

“…예?”

“물 잘나오는지는 테스트 해야지? 게다가 너 얼굴에 그 립스틱 자국들….”

작업 같이 했으니 편의성을 봐 줬는데, 라나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아이돌 예명이 아닌 본명 차나라로 불러준 게 상당히 설렜는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물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김준은 양수기 앞에서 담배 한 대를 태웠다.

그리고 2층 욕실 창 박 너머로 물이 완전 잘 나온다고 손을 흔드는 라나를 보고 김준도 엄지를 들어 올렸다.

덕분에 하나둘씩 일어난 아이들은 오랜만에 콸콸 쏟아지는 물로 상쾌한 샤워를 했고, 기분좋은 아침식사를 가졌다.

“자, 일단 2층은 해결됐고, 남은 건 옥탑방에 물 수급이겠지?”

“어떻게 3층까지 이어요? 2층처럼 똑같이 호스 꽂나요?”

“아니.”

김준은 수저를 내려놓고 잠시 집중하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3층은 진짜 큰 공사가 될 거야. 관정을 뚫을 거거든.”

“관정?”

“오빠, 그게 뭔데요?”

“어머!”

김준이 관정을 준비한다는 말에 그게 뭔지 어리둥절하는 아이들 속에서 인아가 흠칫 놀랐다.

“관정이 있었어요?”

역시 시골출신 아이돌 인아는 그 존재를 알았고, 김준은 설명하기 쉽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후를 위한 보험으로 가지고 있었지.”

“그럼 왜 지금까지…”

“아무래도 불안하잖아? 지하수는 좀비 사태에 오염이 안 됐을까 하는 거.”

“아….”

그때 성질급한 가야나 에밀리가 되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관정이 뭔데?”

“간단하게 말해서 땅에다가 파이프 심어서 지하수를 펌프로 바로 끌어올리는 인공 우물이에요.”

“어머! 그럼 지하수로 계속 물을 쓰는 거야? 완~전 편하겠다!”

“근데, 준이 오빠가 말한 것처럼 오염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긴 하네요.”

그때 은지가 조용히 밥을 먹다가 말했다.

“괜찮을 거야.”

“응?”

“내가 밖에서 하천 물 먹어봐서 잘 알아.”

“….”

순간 모두가 입이 떡 벌어졌지만, 은지는 자기 모습을 보라면서 아무 일 없다는 것을 알렸다.

그렇게 2층 이후 3층까지 물을 수급할 대공사 관정 설치를 위해서 집밖조가 다시 움직이기로 했다.

그때 도경이 넌지시 김준에게 말했다

“저기, 오빠.”

“왜?”

“오늘 저는 바깥일 좀 빠질 수 있을까요?”

“왜? 어디 아파?”

“몸이 좀 으슬으슬해서….”

도경의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이 조금 느껴졌다.

김준은 몸 안 좋아 보이는 도경 대신 집안조 애들 중 한 명을 쓰기로 했고, 대타로 나온 애는 마리였다.

그녀는 어제 김준과 라나의 자리를 눈치챈 듯이 눈웃음을 지으면서도 잘 부탁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관정은 빗물탱크 옆, 2호 창고 안에 있었다.

“예전에 80M 정도 파이프를 박았었거든. 근데 안 돌리게 됐어.”

“와, 80미터…”

지하수는 뚫었지만, 그 뒤로 인근에 공장 생겨서 지하수 못 쓰겠다고 접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생각하면 진짜 돈 수백만원 댔는데 피눈물이 날 정도였지만, 그 뒤로 소송 끝에 공장에서 합의금으로 메꿔주기는 했다.

그리고 이제 그때 박아놓은 관정을 다시 쓸 때가 됐다.

“일단 이걸 제대로 돌리려면 모터 설치해야 돼.”

“그러면 저희가 뭘 해야 되죠?”

“일단 전선은 도경이가 잘 이었는데, 가야가 해 줘야 겠다. 그리고 캠핑 발전기 있지? 1호창고 가서 하나 꺼내와.”

“네, 오빠! 마리야. 같이 가자. 어떤건지 알려줄게.”

그동안 잔뜩 챙겼던 발전기를 두고서 기름을 아껴 쓰느라 보관한 것들을 하나하나 투입해야 했다.

그리고 김준이 공사를 하면서 공구상자를 옆에 두고서 하나씩 보조를 시켰다.

“렌치, 22mm.”

“여기요.”

“노기스.”

“아, 버니어요? 여기요.”

하나하나 알려주니 바로 공구를 꺼내서 옆에서 지켜보는 아이들.

그러면서 2호 창고를 보고 가득 쌓여있는 쌀과 소주 박스들을 보고서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취하는 감정을 느꼈다.

‘헐! 창고에 쌀이 엄청 많이 있었네?’

‘그동안 먹는 거 가지고 문제없었던 이유가 있었네.’

처음 이곳에 살아가면서 냉장고에 햄 한조각 가지고 싸우고, 실시간으로 음식 체크하면서 몸을 대줬던 상황이 뻘쭘해질 정도였다.

애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모르는 김준은 계속해서 모터 설치를 하고, 그걸 지난번 도경이 잔뜩 이어 붙인 전선을 연결해서 코드를 붙이고 이을 준비를 했다.

“자~ 점심 먹고 하자!”

반나절 공사 일을 한 김준은 시간을 보고는 슬슬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고, 모두가 그를 따라갔다.

식사를 하면서 가야가 넌지시 김준에게 물었다.

“저 작업은 얼마나 해야 되요?”

“사나흘 정도.”

“계속 저희가 매달려야되네요.”

“그나마 관정이 박혀 있어서 망정이지, 저거 아니었으면 아예 시도도 못했어. 전문 중장비로 파고 들어갔어야 하니까.”

그러자 인아가 밥을 먹다가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지하수로 물이 수급되는거잖아요? 준이 오빠 덕분에.”

김준이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사실은 자신도 처음 해보는 거였다.

예전에 관정 뚫는 거 옆집에서 구경한 적이 있어서 자신이 머릿속으로 응용해서 설계해본건데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으으음.”

“왜 밥을 남겨?”

“속이 안 좋아서….”

“다이어트 하려고?”

“…꺼져.”

아침부터 몸이 좀 안 좋다고 했던 도경은 얼굴이 벌게진 채로 열이 더 나서 후끈거리고 있었다.

김준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녀에게 물었다.

“계속 열 나? 진짜 어디 몸살 난 거 아니야?”

“괜찮아요. 쫌만 쉬면 되겠죠….”

“마리야. 점심에 쟤 케어 좀 해주고 천천히 내려와라.”

“네~ 그럴게요.”

일전에 파밍했던 약국의 약들 가지고 어떻게 해결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아프면 정말 답도 없는 상황이 될 거다.

의사가 있다고 해도, 사실상 청진기 하나 없는 맨몸으로 뭘 할 수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김준은 식사 이후에 잠깐 쉬다가 다시 관정 설치를 했다.

모터를 달고, 그걸 전기로 이은 다음 볼밸브를 달고, 다음은 제어판넬을 이어야 했다.

옆에서 부르는 공구만 대주면서도 그걸 유심히 보고 있던 아이들은 눈 앞에서 마치 묘기를 보듯이 감탄하고 있었다.

남은 셋은 계속해서 충실한 데모도 작업을 하다가, 김준의 명으로 지난번 깔끔하게 긁어냈던 파이프들을 이을 준비를 했다.

그렇게 관정 설치로만 오늘 하루도 오후가 되가고 일과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상쾌한 마음으로 작업을 하려던 김준은 아침에 벌어진 소란을 겪게 됐다.

***

“으으음. 으음….”

“아니 하루 만에 이렇게 됐다고?”

“어제 분명 해열제 먹었을 때만 해도 괜찮았어요.”

“근데 얘 왜 이래, 완전 몸이 불덩이잖아?”

“어제 봤을 때, 목 안도 깨끗해서 편도선도 아니고, 독감이라고 하기에는 옮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어제 열이 조금 있다던 도경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리는 이런저런 증상을 확인하다가 현 상황에 대해 말했다.

“아무래도 이거….”

마리는 추적관찰로 도경의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다가 발을 보고는 춥다고 껴입은 옷 중 양말의 뒤쪽이 끈적거리는 것을 보고 바로 벗겨봤다.

그리고 그 병의 원인이 드러났다.

도경의 발뒤꿈치에 빨갛게 부어오른 상처에 물집이 자라 고름까지 차 있었고, 주변에도 발진이 돋아나 있었다.

“이런 씨발!”

“어머나!”

김준은 직감적으로 저게 뭔지 알았고, 마리 역시도 열이라고 하고 상처를 못 봐서 뒤늦게 확인했다.

하필이면 이 상황에서 저걸 걸리다니, 그것도 저렇게 방치해 놓은 상황이었다.

“야,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숨겼냐?”

“뭐가요오... 지난번 발뒤꿈치 물집난거 까진건데 그게 열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도경은 아직도 자기가 무슨 질환으로 누운 지 몰라하는 눈치였다.

마리는 지금 있는 상비약 가지고 어떻게든 저 상처를 소독했고, 김준 역시 냅둘 수가 없어서 밥 먹고 바로 움직이기로 했다.

식탁에 돌아온 김준을 보고 다른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도경 언니 괜찮아요?”

“뭐 때문에 그렇대요?”

“감염 뭐 이런거는 아니죠?”

한명씩 물어보는 질문공세에 김준은 밥을 먹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봉와직염이야.”

“네?”

“학창시절 운동부였다면서 어떻게 이걸 모르고 방치하냐? 진작 알았다면 바로 소독해서 끝날거였는데.”

“봉와직염.... 그거 엄청 아프고, 상처 덧난다고 들었는데...”

“벌써 그 지경까지 왔다. 다 나아도 발에 흉진다고 생각해.”

“으으....”

김준 역시 군 시절에 숱하게 저걸로 앓았던 병사들을 체크했었고, 군의관에게 보내 상처 긁어내는 수술을 여러 번 봤었다.

몇몇은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군기 빠졌다면서 다리를 붙잡아주기도 했고 말이다.

“후우~ 저거 외과가서 통원 2,3일만 하면 바로 낫는거라고.”

“일단 제가 소독은 했어요. 하지만, 손으로 짤 수는 없고 제가 치료하려면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수술 도구, 구해야겠네.”

“일단 메스, 타이, 항생제는 필수고, 거기다가 드레싱 핀셋하고 각종 약도 구비해야 하고요.”

그걸 다 챙기려면 아무래도 오늘은 관정보다 더 우선순위의 일을 해야겠다.

“마리야. 밥 먹고 나가서 구하러 가자.”

“네? 아… 그럼 나갈 준비 할게요.”

그렇게 은지와 가야 이후로 여섯번째 루팅 파트너로 마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늘은 근처 병원들을 살펴보면서 그 도구들을 구할 준비를 해야 했다.

김준은 누워있는 도경을 보고는 수건을 갈아주면서 말했다.

“쫌만 참아. 가서 약이랑 수술 도구 가져와야 하니까.”

“수술… 그렇게 심해요?”

“아니야, 그냥 상처 핀셋이랑 칼로 긁어내면 끝이야.”

“상처를 뭘로 긁어요? 엄청 아프겠....”

김준은 누워있는 도경에게 기다리라면서, 안방으로 들어가 장비와 총을 챙겼다.

그리고 마리 역시 다른 멤버들에게 루팅에 대한 기초를 들으면서 굳은 의지로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오늘 이 시간에는 관정공사 대신 봉와직염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약품 루팅을 하러 떠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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