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28 생일축하 특집.
* * *
한바탕 땀을 빼고 들어오니 집 안이 완전히 물바다였다.
아이돌들이 바케스에 담긴 빗물을 날라서 욕조에 채워 놓고 다시 내리는 비를 받으러 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잘하는 모습에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머리부터 말렸다.
그 와중에 인아는 빗물로 샤워한 뒤로 머리를 수건으로 덮은 채 아침상을 준비했다.
“오빠, 일단 아침이랑 점심상은 간소하게 하고, 저녁에 다 만들어 놓을게요.”
“그래라. 근데 케이크는 되겠어?”
“지금 재료로 충분해요. 게다가 어제 우유까지 수급됐으니.”
한때 모두의 가슴을 설레게 한 멀티엔터테이너 샤인이 차려주는 생일상이라니, 옛날이었으면 전국의 모든 남자가 설렐 것이다.
“아~ 냄새 좋다.”
“오늘도 미역국?”
“당연하지. 무슨 날인데.”
“맞다!”
밥상 앞에서도 복작대는 소리가 났고, 오늘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은지의 생일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참기름 향 가득한 미역국과 함께, 은지는 실력을 발휘해줬다.
“이런 날은 역시 고기가 있어야 하는데.”
에밀리가 아쉽다는 듯이 말할 때, 대신 꺼내 든 건 스팸 구이와 지난번 만든 군만두였다.
“자~ 다들 아침부터 일하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자, 은지부터 수저 들고 먹자!”
김준의 말에 모두가 은지를 향해 박수를 쳐줬고, 멋쩍은 얼굴로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한 그녀가 수저를 집었다.
한껏 차려진 아침상을 모두가 감사히 먹었다.
그리고 은지는 미역국 한술씩 먹을 때마다 슬며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아포칼립스의 생일상에 고마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인아가 은지에게 말했다.
“그래도 차려 줘서 고마워.”
“이거로 고마워하면 안 되죠. 진자 메인디쉬는 오늘 저녁에 나올건데.”
“아, 아니야. 안 그래도 되는데… 우리 물 아껴야 하잖아?”
“그건 걱정 마라. 오늘 못해도 수백 리터는 수급했으니 하루 정도는 마음껏 먹게 해 주마.”
게다가 ‘어제의 그 일’로 인해 김준은 생각만 하고 있던 ‘그 계획’을 시행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은 정말 마음껏 애들 먹고싶은걸 만드는 자리를 가지기로 했다.
물 아끼자고 선언한 지 이틀만의 일이었지만, 천운이 닿아서 비를 선물로 줬다.
그리고 오늘을 위해 김준이 말했다.
“저녁에 생일 파티를 할 거야. 그러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모두 말하라고.”
“음….”
은지는 이런 자리에서 끼어들지 않는다.
원하는 것도 없고, 그냥 살아 있으니까 이 자리에 있는 거고, 그저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도저히 못 버티겠는 에밀리가 손을 들어 올렸다.
“피자!”
“…될 것 같니?”
“뜨끈뜨끈한 국밥이 땡겨요. 건더기 가득 담겨 있고, 후추랑 고춧가루 팍팍 넣어서.”
“라나는 취향이 아재틱하구나.”
“흐음, 스테이크….”
“고기는 어디서 구하고?”
“뭐, 희망 사항이죠.”
“짜장면.”
“아, 그건 가능성 있겠다.”
“튀김…돼요?”
“기름은 많이 있는데….”
“아니야. 생일은 다 필요 없고, 케이크야!”
하나둘씩 말하고, 몇몇은 절대 불가능할 것들을 말하는데, 정작 생일 당사자인 은지는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인아가 손가락으로 셈을 세더니 쿨하게 말했다.
“전부 가능해요.”
“진짜?”
“네, 몇몇은 재료가 바뀌겠지만 말이죠.”
“야, 국밥이나 짜장면, 튀김은 그렇다 쳐도 피자나 스테이크는….”
“오빠, 저를 전적으로 믿으시면 돼요. 오늘은 3층하고, 2층 냉장고 좀 많이 쓸게요.”
그렇지 않아도 루팅으로 인해 음식은 많이 챙겨도 전부 보존식 위주라 슬슬 채소들은 비울 때가 되긴 했다.
그렇게 음식을 만들준비하는 인아를 보고 김준은 슬며시 물었다.
“당장 필요한 게 뭔데?”
“계란이긴 한데.”
“…미안, 그건 진짜 못 구한다.”
어디를 가도 계란은 모두 상해 있어서 챙겼다간 음식쓰레기만 늘어난다.
어디 가서 야생 닭이라도 잡아 와 사육하지 않는 이상 고기류는 통조림 빼고는 없을 거다.
“별수 없죠. 그럼 유화제 정도만 있으면 최고인데.”
“유화제? 그게 뭔데?”
“음, 그러니까 물하고 기름을 분리하는 화학조미료인데요. 그것만 있으면 치즈부터 버터, 마가린, 마요네즈 다 만들 수 있어요.”
“어디서 구하는데?”
유화제라는 게 있다면 앞으로 치즈, 마가린, 마요네즈 등도 만들 수 있다니 관심을 가진 김준이었다.
그리고 인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빠, 제가 옛날에 ‘파리쥬르’에서 CF모델할 때요. 거기서 일일제빵 체험하면서 거기서 많이 봤는데요. 보통 빵집에 많이 있어요.”
“그걸 CF찍는 연예인들에게 보여줬어?”
“비즈니스니까요. 사실 시골에서도 화학조미료 많이 써요.”
어쨌건 어디에서 구할 줄은 알겠으니, 김준은 저녁 식사까지 한 번 다녀오기로 했다.
“아, 루팅 나가시는 거예요?”
은지가 다가오자 김준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응, 너는 안 와도 돼.”
“생일 때문에 그런 거면 신경 안쓰셔도 돼요. 어차피 저녁까지니까 상관없….”
그때 눈치껏 옆에 있던 라나가 은지의 뒤를 와락 끌어안으며 말했다.
“언니~ 오늘 그거 해 주시기로 했잖아요?”
“뭐? 그거라니….”
“지난번 미용실 털고서 가위랑 고데기 챙긴걸로 머리 해주신다면서요? 저 숱쳐달라고 어제부터 말했는데.”
“아, 그건… 갔다 와서….”
“아니야. 나 돌아올 때까지 애들 머리 좀 만져 줘. 몇몇은 앞머리가 눈찌른다고 난리더라.”
이제는 이곳 안에서 요리와 농사뿐만이 아니라 미용실까지 갖춰질 것 같았다.
은지는 김준의 만류에 할 수 없이 그동안 머리 만져달라고 한 아이들을 챙기기로 했다.
그리고 김준이 데리고 갈 루팅 파트너는 가야였다.
***
“오랜만이네요.”
“아직 안 한 애들도 있는데, 골라서 미안하게 생각해.”
“아니예요! 맏언니가 이런 걸 당연히 해 줘야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두 번째 루팅을 준비하는 가야.
가야는 맨 처음 시작했을 때 좀비 보자마자 비명 지르고, 총소리에 자기 멘탈이 나갔던 그때의 모습은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오늘은 가까운 곳이야. 그동안 안 갔던 빵집이거든? 여기서 1km만 가면 나온다.”
“인아 걔가 진짜 피자 만든대요?”
“유화제인가 그거만 있으면 된대.”
“히야~ 오늘 진짜 호화 만찬이겠네요. 이런 상황에서 피자에 짜장면에 케이크에….”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 위험을 감수하고서 받는 보상이다.
김준은 가끔가던 동네 베이커리에 도착했다.
이벤트로 천 원에 크림빵 세 개, 2천 원에 7개, 이런 식으로 묶음할인을 하던 곳이었는데, 유리창 너머로 봐도 곰팡이가 가득한 포자의 밭이라 얼씬도 안 하던 곳이었다.
“오빠! 저기 좀비가….”
“봤어.”
김준은 공기총을 들고서 멀리서 조준했다.
“잘 알지? 사냥 방해하면 뒤지게 욕 처먹는 거.”
가야는 지난번 서점에서 가져온 무선 헤드셋을 끼고서 엄지를 올렸다.
물론 그러면서 조수석 쪽 백미러와 전후좌우를 살피는 것 또한 놓치지 않았다.
김준은 하던 대로 총구를 겨누고서 빵집 일대에 있는 좀비들을 겨눴다.
총 넷이었는데, 거리는 충분했다.
띵
깡통치는 것 같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연지탄이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키야아아아아!!!]
“!?”
순간 연지탄에 맞은 좀비가 비틀거리다가 달려들었고, 남은 셋까지 합쳐서 총 넷의 좀비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엄ㅁ…!”
순간 가야가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다가 자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어 필사적으로 방해가 안 되게 버텼다.
김준 역시도 점점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권총으로 바꿔 끼려고 하다가 다급한 상황에서 바로 차를 뒤로 후진시켰다.
부우우웅!
달려오는 좀비 넷을 상대로 후진으로 빠진 김준은 바로 방향을 틀어서 권총을 겨눠 갈겼다.
타앙!
파각!
차를 타면서 발사해 비껴맞았지만, 눈알 한 짝을 터트리고 머리 절반이 날아간 좀비 하나가 비틀거리다가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곡예하듯이 차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뛰는 좀비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감염되어서 달려드는 좀비라 하더라도 골목길에서 시속 20km 안팍으로 달리는데도 전혀 따라오질 못한다.
김준은 그렇게 따돌린 다음 권총을 접고 엽총을 뽑아 들어 겨눠 발사했다.
쓰리샷, 쓰리킬!
그리고 황급히 총알 장전을 하다가 권총은 이제 정말 몇 발 안 남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음식은 고사하고, 진짜 이걸 아껴야 하는데.’
김준은 훗날 총알도 어떻게 챙기기로 한 다음 차 안에서 대기하고 좀비들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질 때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가 닫힌 문을 열고 빵집으로 들어왔다.
곰팡이 가득 슬고, 썩은 내가 확 나는 자리에서 마스크를 쓴 두 남녀는 일단 조심스럽게 그 안에 제빵실로 들어갔다.
“오빠, 여기!”
아직 사용하지 않은 밀가루 포대가 [강력분],[박력분],[중력분]으로 쌓여 있었다.
냉장고를 열자 계란이 보였지만, 이미 곪은 지 오래라 하나 잡고 흔들어 보니 노른자의 감촉이 전혀 없고 물처럼 찰랑였다.
“아스파탐, 설탕, 효모, 식용색소, 휘핑그림 가루… 알짜는 이 안에 있구만.”
“와! 통조림도 있어요.”
“호오, 민스로 된 염장고기네? 이건 인정이지!”
진짜 겉의 가게만 보고서 내부를 생각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최소한 이걸 전기 끊기기 전에 좀 더 빨리 발견했다면, 상하기 전에 유제품도 습득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김준이 하나하나 챙길 때 가야는 뭔가를 발견했다.
“이건 쓸 수 있을까요?”
밀폐된 공간 안에 있는 버터였는데, 상온이라 겉에가 살짝 녹아 끈적이고 있었다.
그걸 상자채로 챙기려는 가야를 보고 김준은 버터는 빛만 안 닿으면 최대 8개월 보관 가능하다고 하니 챙기기로 했다.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커피와 식수통까지 있는 대로 다 챙겼지만, 정작 인아가 말한 그게 없었다.
“유화제가 대체 어떤 거야? 유화제가….”
“오빠!”
“왜?”
“이거… 가져가도 되겠죠?”
빵집이라 각종 요리 만드는 도구가 가득했는데, 가야가 꺼내 든건 오랫동안 안 사용해서 먼지 뒤집어쓴 스테인레스 수동제면기, 그리고 전기로 돌리는 반죽기, 거기에 에어프라이어도 있었다.
“다 챙겨, 챙겨!”
“네, 그러면 이것도….”
가방에 이것저것 집어넣고 혹시나 안에 가루 터질까 봐 이중 삼중으로 포장해서 조심스럽게 넣는 가야였다.
김준은 그 속에서 뒤적거리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SP파우더 제빵유화제].
“찾았다!”
김준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넣고서 오늘 루팅은 밀가루와 설탕, 버터, 그리고 각종 조미료와 제빵기기들을 잔뜩 챙겨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늘 진짜 엄청 든든하네요!”
“음, 이제 루팅은 됐고, 시간 좀 많지?”
“…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냐는 가야를 두고 김준은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별안간 차 안에서 ‘상담의 시간’이 된 순간이었다.
“은지랑 루팅하다가 트러블이 많았어.”
“아….”
“아니, 진짜 조심성이라고는 0도 없이 하는 행동 보면… 후우.”
가야는 왜 다른 아이들 중에서도 자기를 콕 짚어 같이 가자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김준 역시 이런 상담을 위해선 역시 연장자가 좋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 녀석 맨 처음부터 상처 있나 보자고 옷 벗으라고 할 때 거부했지?”
“그거 제가 확인하고… 감염 안 됐잖아요?”
“그렇지.”
가야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서 조용히 말했다.
“사실 있죠. 걔가 좀 트라우마가 있어서….”
“뭔지 알 것 같은데, 그래도 아예 다른 친구들하고도 안 엮이는 건 그래.”
“그거는….”
“기억나지? 술 먹고 네가 처음으로 와서 콘돔 없으니 입으로 하잔 거.”
“그, 그건!?”
“뺄 거 없어. 이미 다른 애들도 알 거 다 알잖아?”
“….”
가야는 정말 여기에 대해서 아무 말 안 했다.
사실 그녀 역시도 다른 아이돌들하고 김준의 관계를 의심했고, 몇몇은 확정인 거 같아서 자신도 입 말고 몸으로 안겨야 하나 고민했다.
“나한테 그런 말을 하더라, 이해는 하는데 그런 일이 자신에게 생긴다면 조용히 이 집을 나가겠다고.”
“….”
“쯧, 내가 어떻게 보였길래 그런 말을…”
“그럴 수 있죠. 다른 아이들에게 있어선….”
“암튼 말이야. 잘 좀 챙기자고, 너무 다른 애들하고 안 엮여.”
“제가 2층, 3층 방 바꾸면서도 계속 룸메로 케어하고 있어요. 하지만… 더 노력해야겠죠. 트러블 없이 남은 사람들 모두 살아야 하잖아요.”
“내 말이!”
김준은 그러면서 출발할 준비했다.
오늘 시간을 보니까 벌써 4시인데, 더 늦었다가는 굉장한 생일상이고 뭐고 없을 거다.
“암튼~ 가서 우리 까칠한 아가씨 은지 생일 파티좀 해 주자!”
“네, 오빠!”
김준은 돌아가는 길은 가볍게 액셀을 밟았다.
***
“대박! 완전 대박~”
인아는 잠깐 다녀온다는 루팅에서 엄청난 것들을 가져와 설레하고 있었다.
“어머, 단백질 보충은 잘되겠네요. 세상에 조미료에 캔도 잔뜩 있네?”
마리가 하나하나 살펴보지만, 지금 상황에서 영양가를 따질 것도 아니고 화학조미료 가지고 먹지 말자고 할 사람도 아니니 일단 하나하나 보여줬다.
그리고 도경도 나와서 만들었던 밀가루 반죽을 치댄 것을 가져와 인아에게 보였다.
“너, 머리 짧게 잘랐구나?”
“아, 보브컷으로 살짝 쳤는데, 어색한가요?”
선수시절 헤어스타일에 멋을 좀 내봤는데,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음식 준비나 했다.
“오, 유화제! 그럼 이걸 가지고 바로 슬라이스 치즈를 만들어 보죠.”
하나씩 거들기 시작하는 아이들, 게다가 제면기는 깨끗이 씻어서 바로 면을 뽑을 준비했다.
거기에 당근과 양파, 고추등을 잘게 썰고, 건어물로 만든 생선들 살만 발라내 불린다음 참치캔과 밀가루를 넣고 섞어서 어묵까지 만들어냈다.
“이건 국밥용. 딱 민스 고기도 있으니 한뚝배기 뚝딱!”
지난번 무 심다가 줄기만 잘라서 시래기청을 만들고, 콩나물대신 숙주, 양지대신 민스에 된장끓여 팔팔 끓인다.
거기에 제면기로 뽑아 삶은 면에 춘장으로 짜장소스까지 만들어서 진짜 파티가 되어갔다.
띠잉
“오! 오븐에 케이크 다 익었다.”
“와씨! 진짜 제대로 준비했네? 없는 살림에.”
“그래도 설탕이랑 밀가루 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생크림 대신에 코코아 파우더와 견과류를 갈아 넣어 그럴듯한 케이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3층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온늘은 진짜로 즐길 준비했다.
***
[하나~둘~셋~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주은지양~ 생일 축하 합니다.]
아이돌들이 합창으로 불러 주는 축가, 그리고 아침에 말했던 것들이 정말 인아의 손에서 모두 만들어져 아포칼립스 세상이란 것을 못 믿을 정도로 화려한 진수성찬이었다.
“이건 라나가 말한 장터국밥, 미안한데 배추를 못 구해서 상추로 건더기를 삶았어.”
“아니예요! 완전 최고야!”
“그리고 짜장면은 아예 한 냄비로 했으니 각자 덜어먹고, 스테이크는 아까 준이오빠가 민스 가져와서 스팸 갈은 걸로 함박스테이크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건 어묵튀김 만든 건데, 군만두랑 같이 먹으면 기가 막히고…”
메인디쉬인 피자는 진짜 기적적인 손맛으로 만들었다.
밀가루 도우에 케찹, 재배한 버섯과 바질 대신 깻잎, 스팸, 그리고 치즈를 흔히 말하는 모조치즈라고 식용유와 버터에 유화제에 카제인나트륨, 즉 프리마를 넣고 소금쳐서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장난으로 한 게 진심으로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케이크에 오늘 털은 제과점의 초를 꽂아 불을 붙이고 은지 앞에서 보였다.
“….”
“뭐 해? 빨리 불지 않고.”
“초 녹는다! 빨리 불자.”
“고, 고마워요. 다들….”
은지가 초를 불었을 때, 갑자기 에밀리가 뭔가를 꺼내 모두를 찍었다.
찰칵!
“야, 너 그거 뭐야?”
“폴라로이드. 어쩌다 보니 필름도 있었어.”
“야이 씨! 어디서 꺼냈냐? 나도 안쓰던 건데, 그걸 뒤졌어?”
“으음~ 이런 좋은 걸 놔뒀으니 써야겠죠?”
그때 가야가 재빨리 은지 옆에 붙어 브이를 하며 말했다.
“아냐, 그러지 말고 우리 다 같이 찍자! 이것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기록이잖아!”
“그래요, 같이 찍자!”
8명이 우르르 모이고 김준이 카메라를 받아 찍어줬다.
그때 가야는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셀카로 9명이 다 같이 찍으며 음식들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겼다.
김준이 은지의 옆에, 그리고 뒤에는 목을 잡고 안긴 라나와 팔짱을 낀 에밀리와 같이 사진을 찍는다.
그때 사진 속에서 희미하게 은지의 미소가 보였다.
***
그날 밤.
소주에 생일파티상을 배터지게 먹은 아이돌들은 연달아 2차다 3차다 왁자지껄한가운데 정작 주인공인 은지는 조용히 옥탑방에 올라왔다.
그러고는 아까 찍은 사진들을 LED의 작은 조명 속에서 흐릿한가운데 벽에 하나하나 테이프로 붙였다.
우스꽝스러운 엽사에 케이크에 얼굴에 코코아 크림을 발라진 모습까지 하나하나 붙이고는 조용히 미소를 짓는 은지였다.
“…근래 최고의 생일파티였어.”
비록 상황이 상황이지만 오늘만큼은 그녀도 웃을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