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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27화 (27/374)

〈 27화 〉 27­ 죽으란 법은 없다.

* * *

김준과 은지는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언제든지 자신을 쏘라면서 두 팔을 벌린 채 태연하게 기다렸다.

1분이 1시간 같은 긴 시간이 계속 흐르고, 그런 대치 속에서 은지는 웃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을 보이거나, 눈이 뒤집히고 좀비의 성향을 보이는 순간 미간을 뚫어버릴 서슬퍼런 엽총이 겨눠진 상태로 말이다.

지금 이곳에 좀비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두 남녀가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 때, 은지의 뒤에서 슬며시 보이는 생물체가 있었다.

들개였는데, 천천히 하천의 흐르는 물을 마시다가 김준을 보고 흠칫 놀라하는 기색이었다.

“….”

김준은 그 상황에서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깨갱­!

일부러 물가에 있는 들개 근처로 한방 갈기자 물보라가 일어났고, 물을 마시던 들개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다.

“후우….”

김준은 총을 내리고서 은지를 바라봤다,

눈을 감은채로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있던 그녀의 모습.

그리고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살짝 고여있었다.

“…집에 가자.”

“….”

김준이 총을 내려놓고, 그녀를 부르자 말없이 따라오는 은지였다.

그리고 차 주변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시간상 다른 루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재끼기로 했다.

게다가 오늘 물도 생수로 4­50L는 충분히 챙겼고, 각종 음식들도 잔뜩 모아서 캠핑카가 풍족해졌다.

은지가 감염될 확률은 점점 떨어졌고, 그녀는 칸막이를 둔 조수석에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순간적으로 빡쳐서 있는대로 욕은 해 댔지만, 이렇게 돌아가는 길이 뻘쭘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봐.”

목숨을 내다버리려 하고 그걸 희생이라고 말한 은지를 향해 김준이 한 마디 했다.

이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김준 마음속의 1픽의 아이돌이었으나, 지금은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러면서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일꾼이다.

몸은 안 바쳐도 목숨은 바친다는 행동이었을까?

뭐가 어찌 됐든간에 김준은 한숨을 쉬면서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은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하천에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는 걸 보고 생각했어요.”

“….”

“동물도 물을 마시고 감염된 거라면 오히려 달려들어야겠죠. 하지만, 놈들은 바로 인기척에 도망가더라고요. 처음부터 감염같은게 없는지.”

“만약에 타이밍 맞게 그 뒤에 좀비 시체가 빠져있었다면?”

“이미… 좀비가 나오고 세상이 멈춘게 벌써 세 달 가까이… 빠질 좀비는 벌써 빠졌겠죠.”

“더 위험한 말이잖아.”

“그래서 쏘라고 한 거였어요.”

“후우….”

김준은 아까의 그 야생동물을 쫒아냈을때를 떠올렸다.

혹시나 해서 위협용으로 들개 근처에 쐈을 때 바로 도망간 것을 보고 동물은 감염이 안된다거나, 최소한 하천의 물 정도로는 퍼지지 않을 바이러스라고 한가지 정보는 얻었다.

그래서 살짝 안심은 했지만, 그래도 방금 일은 정말 운이 좋아 넘어간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그런 짓 하지 마라.”

“네.”

“얼마나 식겁했는지 아니? 뭐 그래서 욕한 건 미안하고.”

김준이 먼저 사과를 했을 때 은지 역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천에 물을 떠 마셨을 때 그 상황에 대해 말했다.

“청계천보다 물은 깨끗하더라고요. 그리고 일대에 붕어나 잉어같은 큼직한 물고기가 많아요.”

“민물고기 비려서 맛 없어.”

“저, 붕어찜 진짜 맛나게 하는데 말이죠. 묵은지랑 무만 있으면”

처음으로 우스갯소리를 한 은지를 보고서 김준은 조금 전의 분노가 풀린채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돌아가는 길까지 또 다시 수십, 수백의 좀비를 발견하고 그놈들 피하면서 이리저리 골목을 찾다가 또 몇 시간이 소요됐지만 말이다.

***

“자, 물 한 번 분류해보자.”

“350미리, 500미리, 이거는 2리터 짜리네요.”

한가득 가져온 물을 두고서 분류를 하는 아이들.

특히 여자애들의 리더인 가야는 그걸 엄격하게 체크하고, 오늘 마신 물의 양까지 계산해서 차곡차곡 냉장고에 물과 음료수를 담았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네. 물은 계속 수급이 되잖아?”

에밀리가 그러면서 350ml짜리 생수통 하나를 집고 벌컥벌컥 들이키자 주변에서 고함이 난무했다.

김준은 그 상황에서 손뼉을 치고 정리하면서 말했다.

아까의 은지 일 때문에 꿉꿉한것도 있고, 뭐든 맛난걸 만들어서 다같이 먹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로 했다.

“여기 우유 먹을 사람?”

“우유요?”

“헐, 그것도 챙겼어? 근데 냉장고도 없는데 다 썩지 않았나?”

김준은 웃으면서 가방 속에서 탈지분유를 꺼냈다.

“어, 그거?!”

“인아야 찬장 가서 물병 가져와라.”

인아가 바로 가서 가져오자 김준은 탈지분유와 설탕을 약간 넣고 물을 부어서 휘휘 젛었다.

“어렸을 때 많이 먹었지. 흔히 자판기 우유라고 하는 그 단맛나는거 있잖아? 그게 이거야.”

“오옹~ 오랜만에 먹어보겠네?”

“이거, 아이스크림으로 만들 수 있어. 얼음만 있으면.”

“아쉽지만, 그건 나중에 식수 해결되면 만들어 먹자!”

김준은 아이돌들 앞에서 휘휘 젛어서 만든 우유를 냉장고에 넣고서 차게 되면 다같이 먹자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오늘 남은 시간에 일 하나를 하기 위해 올라갔다.

치직­ 칙­

락스를 스프레이로 뿌린 다음 솔로 구멍 난 타이어를 씻어낸 다음 말렸다.

그다음으로 흙이랑 화학비료를 구비해놓은 다음 앞으로 여기다가 작물을 심기로 했다.

폐타이어 하나도 지금은 그냥 버릴수가 없었다.

그런 김준을 향해 주변을 둘러보고 살금살금 다가오다가 확 끌어안는 그림자가 있었다.

“우웁?!”

순간 김준은 팔꿈치 휘두르려고 했다가 푹신하게 느껴지는 등의 감촉에 그 손을 붙잡았다.

“아, 누구냐? 하지 마라.”

“어머! 너무하시네? 찐한 밤은 다 잊으시고.”

라나의 목소리였다.

지난번 루팅 이후로 무전기라는 엄청난 아이템을 발굴했고, 9명이 붇끼는 속에서 처음으로 김준을 유혹해서 만리장성을 쌓은 소녀였다.

“남들 보는데 왜 이래?”

“오늘 갑자기 삘이 팍 와서요.”

김준의 등에 안긴 채로 가슴을 부비대는 라나를 겨우 떼어놨다.

하지만 그녀는 암코양이같이 그르릉거리면서 김준에게 다시 붙으려 했다.

“오랜만에 오늘 밤 무전기 켤까요?”

“안 돼. 내일도 루팅 준비해야 해.”

“그럼 같이 가요. 은지 언니 두 번했으니 돌고 돌아 내 차례.”

“하아, 너도 진짜 어지간히 급발진이다.”

“남자 보는 눈이 있는거죠.”

김준은 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내려갈 준비를 했다.

그때 밖에 나온 또 다른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홀로 캠핑카 앞에서 서성이면서 누구와도 엮이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었다.

김준과 그 옆구리에서 착 달라붙어서 걸어오는 라나를 본 그녀는 그들을 보고 인사했다.

“아, 둘이 같이 오네요.”

“어머, 은지 언니!”

라나의 말에 은지는 둘에게 조용히 인사했고, 아까 루팅 중 하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잊었다는 듯이 조용히 있었다.

김준은 그런 은지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캄캄한 밤 속에서 조용히 HD등을 비췄다.

“!?”

“오빠? 뭐에요? 왜 은지 언니한테 눈뽕을….”

당황하는 라나를 향해 김준이나 은지는 서로 이해한다는 눈치였다.

천연 쌍커풀이 진 커다란 두 눈에 매력적인 갈색의 눈이 이리저리 굴러간다.

눈 흰자에 실핏줄 하나도 없었고, 뭔가 변한 것은 없는 것을 확인한 김준은 HD등을 껐다.

“미안하게 됐어.”

“괜찮아요.”

은지와 김준 사이를 보고서 라나는 다시 그를 붙잡고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요? 왜 은지 언니 눈은 그렇게 살핀거예요?”

“어, 그럴 일이 있다.”

“혹시 저런 큰 눈 좋아하는거예요? 나도 눈 크기는 어디 가서 안 꿇리는데, 게다가 눈동자 색도….”

“응, 아니라고 했어.”

김준은 달라붙는 라나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인아와 가야를 포함해서 남은 아이들은 갓 만든 우유를 마시면서 품평을 하다가 김준을 발견했다.

***

깊은 잠에 든 김준은 새벽에 무전기 소리를 듣고 깼다.

[치직­ 오빠! 오빠!!!]

“우으으음, 뭐야? 시발….”

단잠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눈을 뜬 김준이었다.

그리고 무전기에서 울리는 소리는 라나였다.

그리고는 문밖에서 노크소리가 울렸다.

“아, 진짜! 저 지지배가 미쳤….”

그 순간 김준의 귓가에 들리는 또다른 소리가 있었다.

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소리.

그동안 자다가 많은 소리에 깬 적이 있었지만, 지금 이것만큼 반가운건 없을거다.

김준은 바로 옷을 챙겨입고 문을 열었다.

안 그래도 문 앞에서 기다리는 여자애들이 있었다.

“만세! 김준 오빠! 일어났다.”

“오빠, 지금 밖에 비 엄청 온다고요!”

“어, 들었어!”

가야와 라나의 이야기를 듣고서 곧바로 뛰어가 커튼을 친 순간 그야말로 쏟아지는 폭우를 보고 김준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짜 죽으란 법은 없구나!”

가뭄에 단비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여야 할 것 같았다.

김준은 곧바로 레인코트를 꺼내 입었고, 1회용 우비들을 애들 앞에서 풀어놨다.

“옥탑방에 자는 애들 다 깨우고, 단체로 일좀 해야겠는데. 일단 물탱크부터 열고, 남은 양동이에다가 받아야지.”

“옥상 위에 있는 농작물들도 다 치워야겠어요. 옆에 있는 보일러실에 넣어도 되죠?”

인아의 말에 김준은 그것도 신경쓰기로 했다.

“어, 그래라! 옥탑방 애들 다 깨워서 움직여! 그리고 나는…”

그때 옆에 있던 소란을 듣고 깨어난 은지가 여닫이문 방에서 나오고 상황파악을 바로 해서 우비 하나를 챙겨 입었다.

“저번에 빗물탱크 이용하던 애들. 싹 다 이리로!”

김준의 말에 도경이 움직였고, 뒤늦게 3층에서 내려온 가야 역시 따랐다.

그리고 은지까지 포함해서 넷은 바로 빗물탱크로 향했고, 나머지는 옥상으로 바케스 들고 올라갔다.

김준은 먼저 밸브렌치를 나눠주고 세 빗물탱크를 열었다.

끼긱­ 끼기기긱­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나씩 열리는 빗물탱크였다.

“으갸가가각! 끼야아아앗!”

“언니, 줘봐! 내가 할게!”

“아냐, 이거 내가 이번엔 꼭 연다!”

가야가 밸브렌치를 들고 낑낑거리면서 돌릴 때, 도경이 개입해서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결국 두 여자가 힘을 줘서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두 번째 빗물 탱크였다.

“애쓴다. 그게 그렇게 안 돌아가는게 아닐텐데.”

“완전 빡빡해요! 전 녹슬어서 안 돌아가는 줄 알았다고요.”

“가야 너, 운동 좀 해야겠다.”

비를 맞으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는 김준이 세 번째 빗물탱크는 직접 열려고 했으나 알아서 잘 올라갔다.

끼릭­ 끼리릭­ 끼릭­

“!”

“….”

은지는 혼자서 밸브랜치로 손쉽게 물탱크를 열었다.

물론 그게 운동선수 출신인 도경이나, 가야보다 힘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무거운 밸브랜치를 물리면서, 그 끝에다가 소형 함마렌치를 끼우고 지렛대처럼 만들어 망치로 두들기니 손쉽게 열리는 것이었다.

“머리 좋네?”

“지난번에 인아가 알려줬어요. 녹슬어서 꽉 물린 너트 같은 건 이렇게 하면 쉽게 풀린다고.”

그 시골소녀가 요리랑 농사만 잘하는게 아니라 노하우를 제대로 알려줬다.

어쨌건 그렇게 세 개의 100L 단위의 빗물탱크들이 모두 열렸고, 농업용수에 대비해서 그 옛날 할아버지가 설치한 것들이 지금은 아주 훌륭한 생존수단이 되었다.

“비 진짜 많이 온다.”

“안에 있는 양동이 다 빼도 모자라겠는데요?”

그때 김준은 뭔가 생각나서 바로 앞으로 갔다.

“얘들아. 일 하나만 더 하자!”

김준은 그녀들을 데리고 바로 캠핑카로 달려가 옆 부분에서 오물통부터 뺐다.

화학제품으로 인해 용변이 죄다 분해된 상태에서 냄새가 사라진 그 통을 지금 비우고, 안에서 샤워도 가능했던 캠핑카 물탱크도 내친김에 여기서 채울 셈이었다.

“거기 안에 깔대기랑 호스 있어. 찾아서 꺼내줘.”

“어디요?”

“아, 이건가 보다!”

두 아이돌이 바로 꺼내 온 것은 키가 큰 도경이 사다리 타고 올라온 김준에게 건네줬다.

캠핑카 안에는 100L에 육박할 물이 들어가니 이 자체로도 확실히 보관창고가 된다.

그 뒤로도 비가 계속 내려 우비를 입어도 홀딱 젖은 아이들을 데리고 추우니 이제 들어가려고 할때였다.

“언니들~!!”

3층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드는 라나가 있었다.

근데 왜인지 머리에 거품이 가득했다.

“야, 너 머리가 왜 그래?”

“비 쏟아질 때 그냥 다 씻기로 했어요! 이거 받아요!”

지난번 모텔을 털면서 잔뜩 챙겼던 1회용 샴푸와 바디워시를 던지는 라나.

그리고 발치에 쏟아지자 그것을 보고 멍해진 김준과 세 아이돌이었다.

“비오는데, 이걸로 샤워하자고?”

“미친, 나 이거 만화로만 본 건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진짜 우비 후드 부분을 제끼고 고개를 숙인채 샴푸를 뜯어 부은 도경이었다.

폭우 속에서 비누와 샴푸칠을 하고 씻는 아이돌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진짜 생존을 위해서 하는 움직임이었다.

가만 볼수 없었던 김준도 자기 머리에 샴푸를 발라서 씻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은지는 그런 모습을 멋쩍게 웃으면서 가볍게 머리만 한번 시치고는 조용히 들어갔다.

웃옷을 벗고, 브래지어 차림만으로 여기저기 씻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여하튼 아침부터 빗물로 목욕을 하고, 물을 자연적으로 공급받는 상황이 되어서 기분 좋게 시작할 하루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준비할 게 많았다.

“자~ 아침먹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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