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 밤의 톱스타-18화 (18/374)

〈 18화 〉 18­ 차라리 최악의 상황이면…

* * *

캠핑카 안에서 내외적으로 하룻밤 견뎌낸 상황에서 김준은 쌓인 피로에 며칠간 쉬었다.

“오빠~ 일어나요~”

“헤이 준~ 내가 왔어!”

한쪽은 문을 두들기고, 다른 한쪽은 손톱으로 문을 긁어댄다.

“흐아암­”

집 안에서 유일하게 잠긴 곳인 자신의 방 안에서 일어난 김준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문을 열었다.

그 순간 확 달려드는 그림자.

처음엔 당황하다가도 두 아이돌의 부드러운 살결 감촉에 그냥 즐기기로 했다.

“미스터 준 오빠~ 왜 이리 늦잠이야?”

“맞아요! 그래도 밥은 먹어야죠, 오빠.”

“아, 그래….”

김준은 아직도 깨지 않는 졸음에 세수부터 하고서 나왔다.

이미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김준을 보고 은지가 말했다.

“어떻게 쟤네 둘이 깨우니까 바로 일어나셨네요….”

“그때 깼어.”

은지가 김준이랑 에밀리랑 라나 사이에서 뭔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포칼립스의 계속되는 생활에서 적응한 아이들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브리핑도 같이했다.

“오빠, 할 말이 있어요.”

“어, 인아야 말해봐.”

어쩌다 보니 집안의 식량 담당이 된 인아는 옥탑방에 음식을 보고 말했다.

“저번에 콩 심은 거 있잖아요. 녹두던데, 어쩔까요?”

“그럼 수확하면 되잖아. 굳이?”

“아니, 그냥 콩으로 먹냐, 아니면 숙주나물로 키우나요….”

“아… 나물로 만들 수 있어?”

“네.”

김준은 진지하게 식량 문제로 이야기하는 인아를 보며 웃음이 나왔다.

‘톱스타 아이돌이 농사가지고 물어보는 상황이라니, 예능 프로 같네.’

뭐, 상황이 웃긴 건 웃긴 거고 지금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거니 김준이 결정했다.

“그럼 숙주나물로 하자. 그리고 말린 생선 중에서 하나 골라서 탕으로 끓이고 말이야. 풀때기만 먹어서 되겠어?”

“네~ 그럴게요.”

그다음은 다른 아이돌들도 하나씩 물었다.

“오빠! 최근에 저 사이클하고 러닝머신 배터리 충전이 느린데… 고장이 난 건가요?”

“어, 그래? 밥 먹고 발전제품들 한 번씩 봐야겠다….”

“맞다, 3층 배수구요. 또 막힌 거 같아요. 어쩌죠?”

“세면대에 머리를 감아대니 계속 막히지.”

“야, 그럼 어디에서 씻으라고?”

밥 먹다 투닥거리는 애들을 보고 김준은 그것도 해결해 줄 테니 식사나 빨리 끝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새 옷을 입은 톱스타들은 각각의 일을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청소와 빨래를 맡은 은지와 나니카 마리.

애들 데리고 나와서 숙주나물 재배를 가르쳐 주고 있는 인아와 집중해서 배우는 에밀리와 라나.

그리고 김준은 러닝머신부터 내친김에 배터리와 태양광 집열판까지 한 번 손을 보고 있었다.

“도경아. 야쓰리.”

“네, 넷?!”

보조를 맡던 도경은 야쓰리라는 말에 당황해서 가야에게 물었다.

“언니 야쓰리가 뭐죠?”

“야쓰리? 그런 공구는 없는데?”

그러자 김준이 한숨을 쉬면서 내려와 그 야쓰리를 공구 상자에서 꺼냈다.

“이거라고, 이거!”

“지난번엔 줄톱이라면서요?”

“…미안하다. 그래서 헷갈렸구나.”

기왕 말한 김에 김준은 일본어와 영어로 섞인 동명용어를 설명해줬다.

야쓰리가 줄톱, 메가네는 옵셋렌치, 다가네는 끌.

그것을 도경과 가야는 직접 보면서 숙지했다.

그다음은 3층에 올라가서 막힌 배수구를 뚫고, 그 외에 작업을 하다보니 점심시간.

오늘의 점심은 옥탑방에서 갓 따온 채소와 토마토로 만든 샐러드였고, 한 그릇 먹은 뒤로 담배 한 대 태우고 시간 보내다 보니 오후 1시였다.

“….”

침묵의 시간.

김준 역시도 때때로 담배 태우러 왔지만, 그래도 조용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도저히 못 버티던 에밀리가 드러누웠다.

“더럽게 심심하네!”

“동감!”

당분간 식량도 풍족해서 루팅도 쉬고, 집안에 남은 작업도 하나하나 처리했는데, 그러니 무료함이 몰려왔다.

전기를 제대로 쓰기도 힘들고, 있다해도 컴퓨터, TV, 스마트폰 뭐 하나 중계되는 것도 없다.

“그래! 영화라도 보자!”

거실에 TV와 VCR이 있으니 그걸 틀어서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한 김준.

어차피 전기가 끊긴 뒤로도 태양열과 배터리, 사이클로 인해서 영화 한 두편 볼 에너지는 충분했다.

이걸로 최소 2시간 정도는 시간을 보낼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버튼을 눌렀다.

계속 뒹굴거리느니 영화라도 한편 보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자고 두근거리는 8명의 톱스타들.

그리고 지난번 넣었던 DVD의 영화 장면이 재생됐다.

[아학~ 아항~ 오 마이 갓!!]

[항공유 두 통으로 플레이보이 걸들과 섹스라니! 최고야!]

“아, 저거….”

지난번 틀었다가 갑분싸의 상황이 되었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나온 조난당한 위문공연 플레이보이 쇼걸들과 항공유를 딜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

그나마 달라진 것은 그 상황에서 이번에는 심도 있게 보는 반응이었다.

“으음, 다시 보니까 사실 저게 엄청난 명작이래잖아?”

“마치 우리 상황 같은데?”

하필 그 말을 하는 게 라나하고, 에밀리였다.

그리고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묘한 눈으로 라나를 바라보고는 슬쩍 물었다.

“…너야?”

“뭐가요?”

“으응~ 아니야.”

어쨌든 둘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 그 장면이 지나가자 그때 봤던 스토리를 상기하면서 보는 아이들.

하지만 그중에 은지는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김준 역시도 이미 몇 번이나 본 작품이기에 담배나 한 대 태우러 나갔다.

그때 은지가 그것을 보고 조용히 밖으로 따라 나왔다.

바깥은 이억 만리 죽음의 도로, 그리고 이 안은 아직 좀비에게 물리지 않은 인간들만 남아있는 집.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허락된 곳은 저 캠핑카와 지금 있는 집이 전부였다.

김준이 담배 한 대를 태울 때 은지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저기, 아저… 아니, 오빠?”

“왜?”

“옷 문제 때문에 그러거든요? 에밀 리가 가져온 옷도 많지만, 그래도 속옷이나 일상 옷은 부족해서요.”

“옷 문제라 어떻게 해야 하나…”

“미닫이 방 장롱에 있던 옷들, 저희 몸에 맞는 사이즈로 줄이려는데 괜찮을까요?”

은지는 기존에 루팅해온 옷으로도 8명이 입기 부족하니 기존에 있는 옷 중에서 김준이 안 입는 옷을 바느질로 사이즈 맞추겠다고 제안했다.

사실 쌓아만 놨지, 김준이 입을 옷과 속옷은 충분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지금 미닫이 방 장롱 옷들은 전부 치울게요.”

그러면서 달려가는 은지를 보고 김준은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처음으로 8명 중에서 몇몇하고 자신과 섹스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인물.

그리고 저 아이가 어떻게 퍼트리냐에 따라서 달라질 분위기.

하필이면 또 지옥의 묵시록 영화의 그 장면을 봐서 어떻게 변할질 모르는 다른 톱스타들의 반응.

솔직히 말하자면, 루팅중에 또 다른 생존자 무리를 보거나, 아니면 이쯤되면 수많은 좀비 영화를 보다가 나오는 클리셰로 헬기와 전차가 나와서 군대가 좀비를 쓸어버리고 구하러 와주는 이야기가 나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건 안나오고, 그 상황에서 세 명이나 건드렸으니 다른 애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평소의 정조 관념에 따라 다르겠지.

“차라리 진짜 극한이면… 이딴 말도 안 나오겠지. 애매하게 살만한 동네니 말이야.”

김준의 중얼거림 대로 모든 게 다 끊겼는데, 이 집의 특수성으로 전기는 돌아가고, 물도 나온다.

거기에 쌓아놓은 식량도 있고, 영양 상태에 따라 부족한 것을 파밍으로 채우니 남은 것은 인간 자체의 욕망이었다.

섹스를 못 한 욕구불만.

시간이 지나는데 아무것도 못 하는 심심함.

살아남기 위해 음식을 만들지만, 신선한 고기가 없는 밥상.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침묵 속의 대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전부 생존을 위해 먹을 것과 살아남을 거처만 알지 그 이상으로 시간 보낼 때 인간의 갑갑함은 캐치 못 한 것 같았다.

김준 역시도 군 시절 말년에 할 일 없어서 뒹굴거리던 게 생각나 남일 같지 않았다.

그것을 생각하다가 어느새 발밑에 담배꽁초가 5개가 넘는 것을 보고 슬슬 일어나 들어왔다.

그리고 아직도 영화를 보는 애들을 보고 뭘 또 보나 슬쩍 얼굴을 내밀었다.

근데 타이밍 이상하게 또 묘한 장면에서 김준이 들어왔다.

[여자를… 주겠다고 했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 자리에서 분노 바이러스의 좀비를 막아내는 내 부하들이었소. 그래서 그들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 방송으로 사람들을 모았고, 그중에 여자들이 온다면 너희들의 성노예로 해주겠다고 약속을 한 거요.]

[그, 그러면 나는…]

[당신은 여자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인물, 죽이지는 않겠소. 하지만,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넘어가 줘야 하오.]

은지 빼고 7명이 좀비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좀비 영화 중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명작이라 불리는 [28일 후]였다.

참고로 그 좀비 영화에서는 응급실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좀비를 처음 보고서 살기 위해 달리다가 2명의 여자 캐릭터를 데리고 라디오에 나오는 군부대에 왔는데… 알고보니 PTSD에 쌓인 군인들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 방송으로 여자를 부르는 내용이 있었다.

“아니, 무슨 안에서도 좀비 영화를…”

김준이 멈추려고 했지만, 모두가 손을 올렸다.

쉬잇!

“....”

굳이 그 내용이 아니어도 좀비 영화로서는 세계적인 명작이니 모두가 몰두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기어이 결말까지 본 상황에서 7명의 ‘여자 톱스타들’이 묘한 눈매였지만, 김준은 아예 상관 안 하기로 했다.

이 모든 건 평소라면 그냥 재밌다고 넘어갈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이 상황은 아포칼립스고 하필이면 좀비가 퍼진 세계고, 하필이면 군인 출신 남자 하나에 여러 명의 여자애가 있다.

영화가 끝난 이후 김준은 방 안에 들어가 생각했다.

“진짜 놀 거리라도 따로 만들어야 하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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