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12 끝까지 나를 믿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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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끝까지 나를 믿어준다.
김준이 차를 타고 나와 주변을 돌 때, 아크릴판 너머 조수석에서 라나가 말했다.
“오빠~ 어제 진짜 좋았어요.”
“….”
“역시 엄청 파워풀한 사람이라니까? 세 번 연달아….”
“그런 얘기 하지 마~”
요부처럼 유혹했던 라나와 거기에 어울려 우직한 변강쇠처럼 그녀와 어우러졌던 한 김준.
차 안에서만 말할 수 있는 다른 7명의 톱스타가 모르는 우리만의 이야기.
“…가자.”
김준은 활기차게 액셀을 밟았다.
오늘 루팅을 위해 그가 선택한 곳은 그동안 한 번도 시도해보지 못한 서해안 쪽이었다.
“소사벌 서쪽으로 가면 산업단지하고 바닷가야.”
“와~ 우리 바다보러 가는 거예요?”
“가는 길만 40분 넘는데, 중간에 좀비 나오는 거 생각하면 엄청 오래 걸릴 수 있어.”
“네, 뭐. 바닷가까지 가서 좋은 물건 찾았으면 좋겠네요.”
라나는 훌륭한 멘탈로 지금의 이 루팅을 RPG게임이나 할리우드 영화같이 즐기고 있었다.
거기에 바깥에 좀비 시체를 보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김준은 불안감이 생겼다.
‘확실히 들뜨긴 했네. 오늘은 진짜 안전한 상황 아니면 못 나가게 해야겠다.’
가야때처럼 방해가 될 정도로 너무 무서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라나같이 진짜 무서운 거 모르고 날뛰는건 더 문제였다.
김준은 그것을 체크하고서 서해안 일대까지 액셀을 밟았다.
일직선으로 뚫린 국도였는데, 그 일대는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드라이브할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우 씨….”
이 동네는 산을 깎고 도로를 뚫은곳이어서 야생동물에 대한 사고가 잦은 곳이었다.
김준이 다닐 때도 고라니나 너구리가 튀어나와 로드킬 흔적이 많이 보이던 길인데, 지금도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신경이 곤두섰다.
그 상황에서 좀비들이 날뛰는 지금은 곳곳에 불에탄 차량의 흔적이나, 이미 ‘감염된 사람이자 좀비였던 것’의 녹아버린 잔해가 아스팔트에 눌어붙어 있었다.
저 멀리에 붉은 것만 보이면 여지없이 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은 피들이었다.
이제껏 좀비를 잡아 오면서 버텨왔지만, 장거리로 길을 가다가 그 악취에 김준은 중간에 멈춰섰다.
차를 타고 가면서 연달아 담배를 태우면서 냄새를 어떻게든 잊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역해서 찾을 수가 없었다.
끼이이이익
“오빠?”
“허억… 허억… 우욱!!!”
“오빠! 왜 그래요?”
“진짜 냄새 때문에 죽겠네.”
김준의 말에 라나는 창문을 슬쩍 내렸다가 올라오는 시체 핏물 냄새에 본인도 황급히 창문을 닫고 대쉬보드에서 마스크를 썼다.
“어우! 생각도 못 했어요. 제가 냄새를 잘 못 맡아서….”
25km 거리를 한 번에 못 가서 중간쯤에 멈춘 길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일대에 편의점과 복권 가게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전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하아, 아! 진짜!”
좀비가 습격한 다음 일제히 불이라도 지른 것인지 주변이 전부 잿더미다.
김준이 5년간 잘 이용했던 복권 가게에 그 옆의 편의점과 폐계닭집 역시도 불타버린 상태였다.
평소에는 차 타고 1분이면 찾던 편의점들이 죄다 쑥대밭이 되어 있었고, 그래도 중간에 멈췄는데 뭐 찾을게 없는 상황에서 라나가 주변을 둘러보다 외쳤다.
“어? 오빠! 저기! 저기요!!”
“?”
김준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좀비들이 보였다.
“썅, 그래. 저것들이라도 잡아야지.”
“아니, 오빠 그 뒤에요. 저 가게!”
좀비가 서너마리 보이는데, 그 근처에 불타지 않고 있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약국?”
그러고 보니 상비약이 있긴 했어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 하는데, 타이레놀과 포도당만 챙겨도 땡큐였다.
전화만 가능했으면 마리하고 연락해서 전문적으로 챙기겠지만, 그건 안 되겠고 일단은 저곳으로 가야 했다.
“그 전에 저것들 잡고….”
김준은 차를 돌려 총을 겨누기 쉬운 자세를 잡은 다음 주머니에서 연지탄을 세 발 꺼냈다.
띵!
최소한의 소리로 잡는 덴 역시 공기총이 최고였다.
멀리서 좀비 하나가 쓰러지자, 반응하는 다른 좀비들.
그중에서 하나가 뛰어오자 김준은 바로 노리쇠를 후퇴하고 장전해서 갈겼다.
띵! 철컥 띠잉!
압축공기 터지는 두 발의 총성.
그리고 뛰던 좀비는 머리에 두 방 맞고 쓰러져 비틀거렸다.
시간은 충분했다.
김준은 조용히 공기총으로 네 마리의 좀비를 모두 쓰러트렸고, 담배 한 대를 태워서 미동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그것들을 제치고 약국으로 향했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네?”
“내가 나오라면 그때 나와!”
먼저 차에서 내린 김준은 조심스럽게 총구를 겨누고서 안을 살펴봤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허리춤에 있던 HD등으로 내부도 비춰봤다.
여기저기에 피로 찍은 손바닥 자국이 있었고, 역한 냄새가 나는 게 안에서 죽은 다음 썩은 것 같았다.
“후우”
안에 있는 루팅물품은 죄다 가벼운 약 종류라서 혼자 들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김준은 가장 먼저 타이레놀부터 챙기고 그 뒤로 항생제, 지사제, 연고, ,마스크, 파스, 그리고 포도당, 식염수 등 갖가지 약 종류를 챙겼다.
특히 포도당은 이후 몸이 안 좋은 아이들에게 중요할 테고, 비타민류도 많아서 괴혈병 각기병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며칠 전에 끊긴 전기 속에서 상온에 보관된 비타민 드링크들을 들었을 때였다.
똑똑
김준이 한짐 들고서 나올 때, 자신도 돕겠다고 차 안에서 손짓하는 라나였지만 나올 필요 없다고 고개를 돌렸다.
30분 안에 약국 내의 루팅을 끝낸 김준은 약국을 탈탈 털고서 차에 탔다.
“오빠, 약국이니까 그거 있죠?”
“뭐?”
“피임약.”
“생각하는 게….”
“그거 꼭 섹스 할 때만 필요한 거 아니거든요? 그… 한 달에 한번 있는 매직도 있고요!”
한 집에 8명이나 있다 보니 여러모로 생리대도 부족하고, 면을 써야 할 상황까지 왔으니 그녀들에게는 필요할 거다.
김준은 하나 챙겨놓은 것을 라나에게 보였다.
[안전한 그 날을 위해 머쉬룸 정!]
“오, 이거!!”
라나는 오늘 루팅은 이걸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준은 약국에서 가져온 마스크를 끼고 어떻게든 좀비가 쓸고 지나간 자리의 악취를 막았다.
“좋아! 다시 간다!”
김준은 힘껏 엑셀을 밟았고, 30분 걸릴 길을 두 시간, 그것도 중간중간 잡은 좀비가 무려 10마리였다.
***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항만터미널이 있었지만, 그곳은 화물이나 취급하는 곳.
김준은 일대를 세 번이나 돌아다니며 샅샅이 뒤졌지만, 가게들은 불탔고, 여기저기 가스통이 터진 흔적 속에서 일단 수색을 중단했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가 아직 산책로 공사가 덜 끝난 해안가 바위에 걸터앉았다.
“휴우~”
바닷바람을 맞으니 온종일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던 역한 좀비의 피 냄새가 지워져 살 것 같았다.
담배 한 대를 꺼내 태우면서 옆 자리에는 미모의 아이돌과 같이 음료수 한 잔.
“자유롭다~ 자유로와.”
“그러게요. 샌드위치랑 김밥만 싸오면 딱 피크닉인데.”
그 말대로 좀비 세상만 아니었다면 꽤 훌륭한 데이트 코스 였을거다.
주변 일대에 좀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그저 걸터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는 시간.
바다를 보니 좀비 이후로 아무도 안 잡아서인지 발밑에서 작은 우럭과 전갱이들이 돌아다녔다.
“와, 저거 보니 생선 먹고 싶네요?”
“생선… 생선이라….”
“매운탕도 좋고, 튀김가루 발라서 살짝 구운 다음 밥이랑 김이랑… 크으!”
“….”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봐야겠다.”
“어디로요? 설마 벌써 돌아가는 거예요?”
“이 근처에 관광단지 만든다고 횟집 있는 곳이 있어.”
“어… 전기랑 물 끊긴 지 오래됐는데, 거기 수조에 고기들 죄다 죽었지 않았을까요?”
“살펴는 봐야지.”
김준은 오붓한 시간은 잠깐으로 끝내고 바로 차를 타고 달렸다.
그리고 소사벌항 인근의 횟집 일대를 봤을 때, 벌써부터 고인 바닷물이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어우….”
좀비 핏자국에, 생선썩는 냄새에 오늘 여러 번 눈코입이 찌푸려졌다.
진짜 아까 약국에서부터 쓴 마스크 아니었으면, 직빵으로 콧속이 헐 것 같았다.
“여기서 먹을거 무조껀 찾아간다!”
벌써 여러 번 음식만 찾는 데 실패해서 오늘까지도 음식 루팅 꽝은 안 됐다.
김준은 일렬로 늘어선 횟집들을 보고서 총을 뒤로 메고, 도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아까 챙긴 식염수를 자루에 담아놨다.
이걸로 보관할 수 있겠냐 싶겠냐만 최소한 부패는 줄일 거다.
쾅 쾅 콰직!
촤아아아아아악
가장 먼저 보이는 횟집의 수조를 향해 도끼질했고, 자물통 주변이 박살이 나고 수조가 깨져 물이 쏟아졌다.
시커먼 물이 쏟아지면서 쏟아져나오는 생선들.
하지만, 첫 번째는 꽝이었다.
“우욱, 씁….”
괜히 썩은 물 수조를 건드렸다가 비린내만 발밑에 뱄고, 김준은 두 번째 횟집 수조로 다가갔다.
원통형과 직각형으로 여러 개 있어서 장사 잘되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김준의 노획 대상이었다.
콰직! 쨍강!
촤아아아아악
전어가 가득 들어있던 원통형 수조 아웃, 그리고 뒤이어 날린 1층 수조에는 눈이 허옇게 뜬 부패한 참돔과 줄돔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두 번째는 광어와 우럭인데… 그중에 살아있는 놈이 있었다.
“오!”
끈질기게 살아남은 놈들을 김준은 고맙게 담았고, 뒤이어서 연달아 수조들을 깨부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스박스를 챙기는 건데, 아쉽게도 회는 못 뜰 것 같았다.
그래도 당분간 생선요리를 통조림이 아닌 탕이나 포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준은 50m 일대에 있는 횟집 수조를 모두 깨트리고, 그 일대에서 자루 하나 채울 정도의 생선을 담았다.
아직도 자루 안에서 펄떡이는 녀석들을 두고 가져가는데 더 좋은 보관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그의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어, 저거!?”
횟집 옆에 쌓여있는 포댓자루들.
그것은 천일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하면 안 되는 물자 중 하나가 소금인데, 아주 잘 됐다.
김준은 차를 끌고 와서 실을까 하다가 왔다 갔다 하기 귀찮아서 일단 생선 자루를 깨진 수조 옆에 가져다 놨다.
그리고 천일염이 쌓인 곳으로 다가가 그것을 한 자루 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오늘은 매운탕이나 끓여 먹고, 삘 받으면 소주 한 병 더 까야겠다고 행복회로가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천일염 40kg 자루를 어깨에 둘러매고 이제 저 생선 자루만 챙기면 되는데…
와장창창창!
“!?”
크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멀쩡하던 유리문이 박살나면서 김준을 덮치는 존재가 있었다.
피로 물들 앞치마에 두 눈이 하얗게 뜬 좀비가 입을 벌린 채로 말이다.
“야잇, 씨…빠…ㄹ”
김준은 무방비상태에서 그대로 좀비에게 덮쳐졌다.
황급히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아까부터 계속 깨부수면서 흘러내렸던 썩은 생선과 바닷물로 적셔진 바닥에 순간적으로 미끄러졌다.
지이익
“!”
쿠당탕탕!!
김준은 좀비와 같이 쓰러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