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10 얌전한 고양이 라나(1)
* * *
며칠 뒤.
아침에 일어난 김준은 인아가 잔뜩 따온 버섯을 보고 놀랐다.
“어, 이게 그… 곰팡이 버섯이야?”
“금방 자란다고 했죠?”
“대박이네, 버섯 계속 키워야겠다.”
옥탑방에 심은 지 딱 사흘 만에 풍성하게 따온 버섯들을 보니 반찬은 걱정 없을 것 같았다.
김준은 오늘 버섯을 위해 냉장고에서 두부랑 된장, 쌈장을 꺼냈다.
“버섯찌개 하자.”
“근데 냉장고에 이 두부… 먹을 수 있겠어요?”
유통기한이 한 달이나 지난 것이라 인아가 걱정스럽게 물어봤지만, 김준은 쿨하게 대답했다.
“넣어~ 넣어~ 취두부는 아니야.”
“하지만, 이거 먹고 배탈 나면….”
“두부는 포장 안 까면 세 달까진 안 상해. 먹어봐서 알아.”
“그래요? 그럼 버섯부터 손질할게요.”
인아가 가위로 딴 버섯들을 깨끗이 씻었고 남은 야채를 잘게 썰어 구수한 냄새가 나는 찌개로 끓였다.
거기에 오늘 밥은 쌀에다가 건미역을 잘게 썰어 넣고 참기름을 한숟갈 둘러서 미역밥을 만들었다.
좋은 냄새를 맡고 일어난 아이들은 받아놓은 물로 씻고 나오면서 식사 준비했다.
“후우~ 머리 짧게 잘라야 할까 봐. 씻는 물도 엄청 신경 쓰이네요?”
“아까 에밀리 세수하다가 코 풀려는 거 보고 한 대 칠 뻔했어요.”
“야, 실수라고 실수!”
그래도 애들이 잘 버텨줬다.
8명이 씻는데, 세숫대야 분량의 물을 담아서 그걸로 둘이 나눠 씻는다.
그리고 사용한 물은 최저눈금으로 맞춘 변기에 넣어서 물을 내릴 때 썼다.
그렇게 물 절약 이야기하면서, 밥을 먹을 때 때 김준은 이번 루팅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번 루팅에도 순번상 인아가 해야 할 텐데….”
농사를 짓고 있는데다 상하기 직전의 채소들을 말리고, 각종 보존식품 만드는 것도 그녀가 해서 애매했다.
그러자 조용히 밥을 먹던 막내, 라나가 김준을 보고 손을 들었다.
“오빠! 그럼 오늘은 제가 갈게요.”
“으음?”
“인아 언니는 집에서 하는 일 많다니까 제가 할게요!”
가야와 인아에 이어서 세 번째는 막내 라나가 지원했다.
김준은 자원한 라나에게 그러라고 하면서 가야와 인아에게 인수인계를 준비하게 했고 안방에서 무기를 챙겼다.
그러다 허리춤에 찰 리볼버의 약실을 열어 보고서 머리를 긁적였다.
“경찰 좀비 추적해서 일일이 탄을 수급해야 하니 원….”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게 총알이었다.
공기총에 쓰이는 납 연지탄이나, 산탄 등 모두가 중요하지만 그래도 근접에서 좀비 기습에 대비하려면 권총이 필수였다.
어쨌든 이번에도 풀 무장을 하고 나서자 밖에서 아대랑 마스크를 차고 풀 무장한 라나가 두 눈만 깜빡였다.
“자, 일단 운전할때는 조용히 있고 이따가 좀비를 보면 어떻게 할지 알려줄게.”
“네~ 저는 보조니까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흠.”
맏언니로 책임감 있게 나서다가 겁냈던 가야, 딱 자기 전문분야에선 프로급인 인아.
그리고 8명 중 가장 막내인 이 소녀는 어떨지 기대되는 루팅이었다.
김준은 나가기 전 상황을 보고 확인한 다음 좀비를 발견하고는 운전하기 전에 캠핑카 위로 올라갔다.
루프 박스를 집고 겨우겨우 올라온 김준은 전방에 보이는 좀비를 보고 말했다.
“잠깐만! 다들 물러나.”
“네?”
“바깥에 좀비 있다. 나가기 전에 잡아야 해.”
“!!!”
좀비라는 말에 여자들이 후다닥 피했고, 김준은 침착하게 연지탄을 장전하고 겨눴다.
띠잉
공기총 튕기는 소리와 함께, 30m 밖에 있는 좀비가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비틀거렸다.
“어이 씨, 한 방으로 안 돼?”
철컥
김준은 재빨리 새 연지탄을 장전하고 한 방 더 갈겼다.
띵
두 번째 총알이 훌륭하게 좀비의 마빡을 뚫어 버렸고, 계속 비틀거리던 좀비가 그제야 쓰러졌다.
김준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봤고, 좀비 셋이 더 있는데, 총 다섯 발을 갈겨서 모두 쓰러트렸다.
그러고는 지붕 위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우면서 천천히 기다렸다.
혹시라도 다시 일어날지 몰라 긴장한 상태였다.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연달아서 또 필 때까지 좀비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후우”
김준은 두 번째 담배까지 비벼 끈 다음에 안에 있는 애들을 불렀다.
“가자! 라나 차에 타!”
김준의 말에 라나가 달려와 조수석에 탔고, 다른 아이들은 자동문으로 움직이는 대문까지 배웅했다.
부디 이번에도 많은 식량과 생존 물품을 찾아오길 바라며 말이다.
***
“가야랑 인아에게 대충 이야긴 들었어?”
“네, 맘껏 총 쏘세요. 저는 그런 거 잘 안 놀래요.”
“봐야 알지.”
좀비 시체가 보이는 곳을 두고 김준은 대쉬보드에서 석유통 꺼내라고 했다.
지포라이터 충전용인 손바닥만 한 신나통을 라나가 꺼내자 김준은 차에서 내려 그걸 받아들고 바닥에 뿌려댔다.
화르륵
혹시 모르니까 좀비들에게 불을 붙인 뒤에 출발한 김준은 눈을 감고 어느 길로 갈지 생각했다.
“오늘은 대학교 쪽으로 가 봐야겠다.”
시내가 아닌 고속도로 톨게이트 인근에 있는 소사벌전문대학으로 향했다.
그 일대에는 아직 개발이 덜 된 시골 학교지만, 대학생들 수요로 인해 마트와 술집 등은 어느 정도 있었다.
“제~발 그쪽은 안전해야 할 텐데.”
“….”
김준이 운전하는 동안 라나는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얼마 만에 나온 바깥 풍경인데,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불타버린 차에, 그을린 시체들이 보이는 건 이전까지 루팅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로변에서 보이는 좀비는 실시간으로 나타났고, 느릿느릿 기어오는 존재들을 보고 김준은 거기에서 판단했다.
남은 탄을 계산해 피해 가거나, 깔아뭉개 거나, 아니면 차 멈추고 샷건으로 쏜 다음에 쓰러트리고 계속 가거나.
가까운놈은 죽이고, 그러면서 다시 액셀 밟고, 그런 상황이 이어질 때 라나가 조용히 말했다.
“…진짜 이건 영화가 아니네요.”
“음?”
“좀비 수백, 수천 명이 막 뛰어와서 차로 달려들 줄 알았어요.”
“이 동네는 그 정도 인구가 안 돼.”
“그럼 서울은 지금쯤….”
김준은 눈앞에 보이는 좀비를 잡아가면서 최대한 조심조심 차를 몰아 소사벌대 인근까지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에 타 버려서 흔적만 겨우 남아있는 마트였다.
“아, 젠장!”
“세상에… 죄다 불탔어.”
마트뿐만 아니라 주변 상가 일대에 큰불이 났는지 죄다 타버린 흔적이 가득했다.
특히 무너진 잔해 속에서 사람의 뼛조각 비스무리한 게 보였는데, 더 수색할 것도 없었다.
“다른데 찾아봐야겠다.”
할 수 없이 대학교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뭔가 다른 곳이 없을까 찾아봤다.
하지만 돌아보면서 찾을 만한 가게가 안 보였다.
대학교 안을 직접 들어가기에는 운동장에서 돌아다니는 좀비를 다 처리해야 하니, 대학가 뒤에 원룸촌 일대를 찾아봤다.
그러다가 라나가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보며 운전석의 아크릴판을 두들겼다.
“어머, 오빠! 저기요.”
“?”
칸막이로 노크하면서 한 곳을 가리키자 그곳에는 [봉래장]이라는 이름에 전기 간판이 보였다.
“…모텔?”
“저기 안에 뭐 찾을 수 있나요?”
“흐음….”
“들어가 볼까요?”
대낮에 차를 타고 가면서 아름다운 톱 아이돌이 모텔 가자는 말.
뭔가 묘한 이야기인데, 바깥을 보면 전혀 그 느낌이 안 들었다.
“안에 가면 1회용 샴푸나, 비누, 세면도구 있을 거 같고.”
“후우, 그래. 가 보자.”
김준은 주변을 둘러보고 차를 세운 다음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리고 조수석에서 내려 먼저 내부를 둘러본 라나가 순간 몸이 굳었다.
“뭐야?”
“…!!!”
라나가 물러나며 지팡이로 가리킨 곳은 여관 카운터.
[크아아아아악! 캬아아아악!]
여관 카운터 안에 있는 노인 좀비가 거칠게 포효했다.
김준은 곧바로 총을 겨누고, 원래라면 카운터에서 돈을 계산하는 방향으로 총알을 보냈다.
티잉
촤아악!
지근거리에서 갈긴 연지탄은 여관주인 좀비의 얼굴을 꿰뚫어 버리고 쓰러트렸다.
철컥
김준은 주머니에서 연지탄을 장전하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다른 좀비는 보이지 않고 수많은 방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와중에 라나는 피투성이가 된 유리 벽 너머로 보이는 물건들을 보고 아쉬워했다.
“아, 저 안에 있는 건 못쓰겠네.”
눈앞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가 얼굴 박살 나고 피가 튀는데, 놀라기는커녕 안에 있는 물건들 못 가져간다고 아쉬워한다.
‘차라리 저런 애가 대하기 편한가?’
김준은 저세상 멘탈을 가진 막내 아이돌을 지켜보면서 주변을 계속 수색했다.
“여기 어디 창고가 있을 거야. 1층만 수색하고, 정 안 되면 나가자.”
“빈 방 찾아볼 순 없겠죠?”
“그러다 죽어.”
시답잖은 대화는 접고 김준이 움직이자 라나가 그 뒤를 지키면서 수색했고, 그러던 중 복도 끝에 있는 철문을 발견했다.
김준이 조용히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확인한 다음 천천히 열어 봤다.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고, HD 램프로 비춰 봤을 때, 그 안에는 비누 냄새가 가득했다.
“오!”
“들어가 볼게요!”
라나가 쪼르르 달려가 확인하자 그 안에는 1회용 샴푸와 린스, 그리고 비누와 치약, 칫솔부터 목욕 타월에 로션까지 박스채로 있었다.
“비누랑 칫솔 챙기고!”
라나가 달려가 박스 하나를 들었고, 김준도 총을 어깨에 멘 채 하나하나 챙겼다.
몇백 명분의 숙박 용품들을 챙긴 뒤로 그 안에는 정수기에 쓸 20L 생수통이 가득 있었다.
생수는 언제 발견해도 땡큐였다.
비록 무겁기는 했어도, 라나는 낑낑거리면서 들고 캠핑카에 차곡차곡 담았다.
“후우, 가자.”
“오빠! 잠깐만요!”
“?”
라나가 안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뭔가를 잔뜩 들고 왔다.
그 안에 담겨있는 건 무전기였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뭐야? 모텔에 무전기가 다 있어?”
“카운터에서 쓰는 거 같은데요?”
“뭐, 없는 것보단 낫겠지.”
김준은 일단 그것도 챙기기로 하고 차에 올라탔다.
그날 루팅을 기다렸던 톱스타들은 음식이 없는 게 아쉬웠지만, 화장품과 새 칫솔들을 받고서 씻는 건 걱정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이후 김준은 애들을 달랠 겸 소주를 꺼내와서 같이 마실 친구들을 불렀다.
몸이 안 좋다며 먼저 올라간 인물들을 제외하고, 거실 탁자에 남은 건 가야, 에밀리, 라나 이렇게 셋이었다.
“회식하는 기분이네.”
“아주 예쁜 톱스타 셋이랑 같이요~”
에밀리는 여느 때와 같이 김준의 옆에 붙으면서 페로몬을 풍겼다.
하지만 이제는 김준도 익숙해서 소주를 들이켜는 동안 접촉 한번 없었다.
김치 썬 것에 햄 조금 구워서 먹는 조촐한 술상에서 라나는 오늘 있었던 이야기했다.
“눈앞에서 여관주인이었던 좀비 쏘는 모습 봤는데… 어휴~”
“얘 진짜 간 크더라? 좀비 머리를 날리는데~ 전혀 안 놀래.”
혹시라도 그 모습 보고 ‘꺄아아악~’ 거리며 소리가 울리면 어찌나 했는데, 무서울 정도로 냉정했던 라나.
이전에 가야나 인아와 달리 자기는 진짜 안 놀랜다더니 강철멘탈이었다.
“우리 라나, 언니들보다 낫네? 난 아직도 총소리만 들으면 흠칫하는데…”
“뭐, 적응해야죠. 사실 영화 촬영할 때 분장으로 본 게 더 무서웠어요.”
“어머~ 걸 크러쉬~”
에밀리가 키득대고, 가야도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모텔에서 털어왔다며, 콘돔 없었어? 콘돔?”
“에밀리 언니가 노래를 불러서 구하려고 했는데, 미안해요. 카운터 안에 좀비 피가 쫙~”
얼굴이 붉어지고 알딸딸해진 라나가 웃으면서 바깥 이야기하자 그걸 흥미롭게 듣는 두 언니.
에밀리역시 시뻘게진 얼굴로 소주를 먹다가 김준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오빠, 우리 거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거 같아요.”
“궁금한데, 너 진심으로 이러는 거냐?”
“후~ 지내고 보니까 오빠도 제법 괜찮게 생겼잖아? 그리고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요.”
처음엔 장난으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진짜 섹무새가 되어서 찐하게 침대 위에서 한 판 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가야가 못 말린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쟤 원래 저랬어요. 그동안 TV에서 엄청 조용했던거죠.”
“언니, 아이돌은 사람 아니야? 맘에 들면 만나고, 어! 그러면서 사랑이 생기고!”
에밀리의 말에 김준은 진짜 연예인에 대한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그런 걸 참았니?”
“그게 다 비즈니스죠.”
“그럼 다른 애들도? 소속사가 엄격하게 그런 거 막지 않나? ”
그 순간 에밀리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에이~ 오빠~ 그런다고 못 만나는 거 아니에요.”
“충격적이네. 연예계 엑스파일도 아니고.”
“오빠, 연예인들 가식에 속지 마세요. 앞에서는 솔로에 사생활 체크한다지만 다 뒤에서는 술 처마시고 떡치….”
그 순간 가야와 김준이 동시에 손을 들어서 에밀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 이상 말하지 마.”
“아, 미친년아. 뭔 소리를 씨부리냐?”
에밀리는 그 상황에서 묘한 눈웃음을 지었고, 가야는 여기까지 먹자면서 에밀리를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담배나 한 대 태워야겠다.”
김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안방으로 가려고 했다.
그때 라나는 조용히 무전기를 들었다.
“들어간 김에 이거 테스트해볼까요?”
“음? 아, 뭐 그래. 아까 보니 충전은 돼 있던데.”
김준은 일제히 주파수를 마치고 한 번 거실과 안방 베란다 사이에서 무전기 테스트를 해 봤다.
다행히 아주 훌륭하게 되었고, 일단 내일 일어나는 대로 2인 1조씩 하나씩 가지고 있어 밤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호출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돌아온 김준은 남은 잔을 마셨고, 라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배시시 웃어 보였다.
“왜?”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사람이 진짜 잘생겨 보이네요.”
“….”
묘한 분위기가 에밀리 말고 또 있나 보다.
“들어가 자라. 빈 병 정리하고.”
김준은 안주만 냉장고에 집어넣고 몸을 풀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라나는 그 상황에서 정리하다가 무전기를 들고 알 수 없는 웃음을 계속 보였다.
***
[치직 직 오빠…]
“뭐야?”
막 자려는 순간 무전기 너머로 라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요?]
“이제 잘 건데, 네가 깨웠다.”
[치직… 좀 더 마시고 싶었어요.]
“먹는 것도 아껴야지.”
[오늘… 치직… 분위기 좋았는데…]
“무슨 분위기?”
[말은 안 하고, 우리 쳐다보기만 하고… 에이그!]
“!”
뜬금없이 그린라이트가 켜진다더니, 가야와 에밀리에 이어 하나도 술 들어가니까 갑자기 성욕이 막 끓어오르고 그러나 보다.
김준은 피식 웃으면서 무전기로 말했다.
“솔직히 TV에서 보던 예쁜 애들 이랑 같이 살면서 오빠도 좋은데, 콘돔 생기면 그때 생각하자.”
아무래도 좁은 집안에서 부대낀 데다가 술까지 마시니 슬슬 눈이 맞는 거 같은데, 김준은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또 무전기가 왔다.
[치직… 오빠 지금 몇 시?]
“10시 56분이네?”
[아… 그럼 오늘까지는 안전한 날인데.]
“????”
오늘까지는 안전한 날이라는 말에 그건 또 뭔가 싶었다.
[지금 방문 앞에 있는데… 지금이라도 노크할까요?]
“야.”
[문… 열으셔야겠죠?]
“너 진짜 미쳤구나?”
[치직 전 벌써 와 있어요.]
그르르륵 그르륵
그러면서 손톱으로 나무 문을 고양이처럼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술김이었을까, 아니면 저런 대쉬에 안 넘어갈 남자가 없는 거였을까?
김준은 머리맡에 있는 권총을 조용히 장롱에 넣어 잠그고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열어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