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09 진짜 생존은 이제부터!
* * *
김준은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서 몸을 풀고 안방에 있는 세면대로 갔다.
미리 받아 놓은 물로 세수부터 가벼운 샤워, 머리까지 감게 알뜰하게 썼고 주방으로 향해 물을 틀었다.
쪼르르르르
“….”
어제보다 물줄기가 시원찮았고, 전기에 이어 이제는 물까지 떨어질 것 같았다.
“휴~ 다 해결하려면 진짜 시간 좀 걸리겠는데?”
김준은 싱크대 상자 안에 물을 담았고, 찬장에서 1회용 용기들을 꺼냈다.
앞으로는 최소한으로 물을 이용해 씻어내고 얼룩이 심해지면, 닦다가 그냥 바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바꿔야겠다.
그 뒤로 화장실로 향한 김준은 변기 물통을 열자 벽돌이 하나 담겨있는데, 거기에 이어서 눈금자를 내려서 물 조절을 했다.
마지막으로 욕조 안에 미리 받아놓은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을 확인하고 김준은 하나하나 아끼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 뒤로 아침밥을 먹을 때 김준이 말했다.
“어제 전기 내려가고 물도 곧 끊길 거 같다.”
“….”
절망적인 이야기여서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 반응을 지켜본 김준은 조용히 앞으로에 대해 계획을 말했다.
“내가 옛날에 발전소 그쪽에서 일해봐서 아는데, 지금까지 전기가 통한 건 발전소에서 좀비 때문에 운전원이고, 뭐고 전부 죽어서 컴퓨터가 계속 돌았을 거야. 그리고 이제 연료가 고갈된 거겠지.”
추가로 발전기 내에서 연료가 고갈되면, 그대로 가동 중지가 되고 비상전력이 돌아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쓴 전력이 지금까지의 전기/수도가 돌아갔던 이유.
“이제부터 조명은 어젯밤 천장에 붙여놓은 LED등 있지? 저걸로 키자. 그리고 혹시 모르니 철저하게 해질 때는 커튼 쳐.”
“네, 오빠.”
“그리고 오늘은 어제 가져온 것들로 다들 작업 좀 하자.”
“작업이요?”
“집안일.”
김준은 하루의 시작을 작업으로 해서 작업으로 끝낼 계획을 준비했다.
식사를 끝내고, 김준은 설거지 대신에 오늘의 1회용 용기는 대충 씻어서 말리기로 했다.
그리고 플라스틱 수저들만 씻어내고, 나무젓가락은 칼로 깎아서 말렸다.
그다음으로 김준은 지난번 철물점에서 루팅한 드릴을 가지고, 양동이 두 개 바닥을 뚫어 주방 옆에 있는 미니 베란다(장독 보관실)에 배치하면서 간이 정수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러닝셔츠를 찢어서 바닥에 깔고, 그다음은 자갈이야, 그리고 숯을 쪼개서 짝 펴서 깔고, 마지막으로 씻은 돌멩이들을 까.”
“네, 한 번 해볼게요.”
김준과 같이 정수기를 만드는 건 나니카와 마리였다.
신선한 물이 중요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와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하는 나니카가 작업에 알맞았다.
김준이 간이 정수기를 만들고 그것을 밑에 화분 물 받침대를 두고 말했다.
“뒤에 있는 빗물 탱크의 물이나, 고인 물들을 먹을 때는 이걸로 걸러내는 거야.”
“네!”
“물론 그런다고 바로 먹을 수 없어. 한 번 끓여야 하는데 가스가….”
도시가스도 언제 끊길지 모르니 부탄 가스레인지를 두 개 배치했다.
“이걸로 끓이고, 찬장에 티백 있으니까 웬만하면 바로 물 마시지 말고 녹차나 보리차로 해서 마시자.”
“아,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면 적어도 균은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마리가 한마디 거들자 김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정수기 두 대를 뚝딱거리며 만들었다.
그다음으로 김준은 전기 문제를 위해서 가야와 도경을 불러 작업했다.
“전기는 항상 조심해야 하고, 특히 배터리 돌아갈 때 함부로 만지면 손톱 터진다?”
“히익!?
“그걸로 안 끝나고 손까지 다 타.”
“흐으으….”
순간 잡고 있던 전선을 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도경에게 김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근데 지금은 전원 내렸으니 괜찮아. 조심하라고 말한거야.”
고무장갑을 끼고, 목장갑으로 덧씌운 다음 배터리를 콘센트와 연결했다.
“자, 여기하고, 여기. 이걸 꼬아서 이어 붙이는 거야, 마지막은 테이프로 감고.”
“저, 저기 오빠… 이거 고무장갑 끼니까 안 위험하죠?”
“아, 괜찮아~ 스위치 안 올렸다니까? 그냥 이어 붙이면 돼.”
김준은 순간 자신이 톱스타가 아니라 군 시절 신병들 작업 가리키던 과거가 살짝 떠올랐다.
자신이 차출된 병들 때리는 파렴치한 간부는 절대 아니었지만, 수시로 일 못하면 갈구는 건 잘했었다.
“도경아. 조심하라고 했지, 누가 벌벌 떨면서 아예 손대지 말라고 했니?”
“죄송해요! 오빠!”
“이런 전선 작업은 지금 할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이 좀비 세상에서 버티지.”
“이, 이렇게요?”
“어! 그렇지. 그렇지! 그다음은 여기 테이프 감고, 안 그러면 접촉 불량 때 스파크 튄다.”
김준이 갈구다가도 어르고 달래면서 생전 안 해 본 전기를 다루는 일을 하는 연예인들.
마지막으로 선을 길게 늘여서 그동안 전기 만드는 자가발전기로 설치해놓은 러닝머신하고, 사이클에 연결해서 수시로 충전을 하게 했다.
“자~ 이것도 좀 증폭을 시켰으니 앞으로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 몸매 관리가 아니라 살려면 냉장고랑 밥솥은 돌아가야 하니까.”
“네, 열심히 뛸게요!”
“몸매 관리에는 도움 되겠네요.”
가야는 지금도 열심히 하지만, 순번 돌아가면서 매일 같이 2시간 러닝머신과 싸이클을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얼마나 전기가 채워지겠냐만, 적어도 냉장고나 밥솥 돌릴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거다.
김준은 2층 전기 공사를 마친뒤로 3층 옥탑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인아가 어제 가져온 물건들로 농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흙이랑 톱밥 다 버무렸어?”
“네, 근데 이거… 냄새가 뭐 이래요? 꼭 똥 같잖아?”
“화학비료야. 냄새가 좀 그렇지?”
“으엑”
종묘상에서 가져온 비료, 그리고 톱밥을 손으로 버무려서 곤죽처럼 만들어 놓고, 거기에 어제 가져온 곰팡이 가득 찬 버섯을 꺼냈다.
그 냄새에 순간 에밀리나 라나, 은지 등은 얼굴을 찌푸렸다.
“쉿! 정말 쉣이네!”
“그래도 이래야 잘 자라요.”
그래도 세 명은 인아의 명에 따라 알아서 자기 먹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자, 여기 버섯 밑둥 보이죠?”
“야, 이거 완전히 썩었잖아? 곰팡이가 가득하다.”
“아니에요. 이게 썩은 게 아니라 버섯의 포자 부분이야.”
“이걸로 심는다고, 썩은 데서 버섯이 자라?”
“완~전 잘 자라요.”
인아는 두 손으로 썩은 버섯들을 모두 짓이겼고, 곤죽으로 만든 땅에다가 그걸 깔았다.
“비료랑 잘 버무리고, 위에다 이걸 덮어쓰면 돼.”
“다 쓴 티백이잖아요?”
“응. 그게 버섯 자라는데 제일이야.”
우려낼 대로 우려낸 보리차 티백을 뜯어서 그걸 버섯 위로 흩뿌려서 스티로폼 박스에 담았다.
그렇게 서늘한 곳에다가 팽이, 느타리, 양송이, 만가닥 등을 스티로폼에 적었다.
“관리만 잘하면 무한으로 재배해서 먹을 수 있어. 앞으로 분무기로 물 뿌려주고 습기만 유지하면 돼요.”
김준은 그 모습을 보고서 피식 웃었다.
‘쟤 진짜 농사 잘하네?’
멀티 엔터테이너 국민 여동생이 음악, 연기, 예능 말고 농사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아, 오빠!”
“어머! 미스터 준!”
옥탑방의 소녀들은 김준에게 인사하고, 자신도 거들기 위해 스티로폼에 흙을 채우고서 하나하나 심었다.
“이건 마늘이랑 콩, 그리고 깻잎, 양상추… 그리고 여기 이거! 감자랑 토마토는 꼭 챙겨야 해.”
알감자와 방울토마토는 비타민과 칼로리를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
그 뒤로 다른 농작물들도 확실히 챙겨서 천장의 태양광 발전기 아래에서 옥탑방 일대가 전부 농사의 현장이 되었다.
“하나하나 키워보자. 씨앗은 충분하고, 겨울 되면 베란다에 조명 깔고 실내 재배도 가능해.”
“네, 노력해 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김준은 옥탑방 농사에 대해서는 인아에게 맡긴 뒤로 1층으로 내려와 물탱크를 혼자 열어봤다.
안에서는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고, 김준이 2m짜리 파이프를 가져다가 안으로 집어넣어 봤다.
철렁철렁 소리가 좀 더 커졌고, 비가 쏟아질 때 채운 3개분의 빗물 탱크들에는 물이 가득했다.
“수처리 정화 펌프만 있으면 딱인데….”
아쉽게도 그건 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당분간의 식수는 구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물줄기가 약해진 건지 수도가 아예 끊긴 것은 아니고, 오히려 진짜 핵심은 따로 있었다.
김준은 지붕에 태양열 집열판이 깔린 창고를 보면서 아직 저 안에 담긴 존재를 모르는 연예인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저게 진짜 보물창고지. 안에 있는 쌀하고 소주만 해도…’
그 안에는 소주가 가득했고, 그 외에도 전투식량, 통조림, 그 외에도 장기보존 식품 등이 있어서 여기 있는 것만으로 김준 혼자라면 1년 이상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일을 시켰으니 보답은 해 줘야지.”
김준은 친하게 지내던 미군용품 사장님이 가게 문 닫았을 때 박스 단위로 쌓아뒀던, 전투식량을 챙겼다.
점심에는 때아닌 아메리칸(아미) 스타일로 식사를 했다.
“와, 대박! 완전 신기!”
“어머! 이게 진짜 데워지네?”
비닐 발열팩 안에 물을 붓자 안에 있는 레토르트 파스타가 김을 뿜으며 끓고 있다.
그걸로 가스 없이 즉석에서 데운 음식을 만들고, 소금이랑 후추를 곁들였다.
메인디쉬는 평범했지만, 진짜 중요한 건 안에 있는 간식들이었다.
투시 롤 사탕부터 초코볼, 치즈, 말린 과일, 크래커는 메인디쉬가 익기 전에 모두가 먼저 꺼내 먹었고,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나 진짜 초코볼 먹고 이렇게 감동하기 처음이야.”
“나도 나도! 진짜 나중에 돌아가면 초롤렛 광고 찍을래!”
오랜만에 아이들이 왁자지껄 웃으면서 식사를 했고, 그 맛대가리 없다고 짬 처리 쌓아놓은 전투식량을 용케도 다 비워서 점심은 가볍게 처리했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작업이 시작됐고, 전기 쪽 아이들은 테스트로 싸이클과 런닝 머신을 뛴다.
물 담당인 아이들은 제법 쓸만한 정수기를 만들어서 테스트로 빗물탱크에서 가져온 물로 정화를 시키고, 식수용 보리차를 끓일 준비를 했다.
그리고 농사짓는 아이들은 계속 농사.
특히 인아가 주축인데, 농사를 위해 하나씩 말해줬다.
“그러니까 여기에….”
그녀가 설명하다 허리를 숙이자 냉장고 바지 너머로 엉덩이에 종아리부터 발뒤꿈치 라인이 딱 드러났다.
그 모습을 에밀리가 보고 말했다.
“헤이, 샤인! 뒤에?”
“음…!?”
뒤돌아보자 자신이 이리저리 허리를 굽히면서 농작물을 만지던 모습을 보는 김준에게 얼굴을 붉혔다.
“에이씨! 뭔 소리를….”
“오빠 아까부터 시선이 계속 엉덩이에 가던데?”
“농사짓는 거 보는 거잖아.”
“앞에 와서 봐요. 이쪽으로.”
김준이 얼굴을 긁적이며 안으로 들어오자 하나하나 심고 있는 농작물이 드러났다.
“콩은 재배하는데 두 달이면 돼.”
“너무 길어!”
“다른 야채는 그래도 짧아, 여기 이 시금치는 한 달이면 되고, 총각무도 4주면 돼. 치커리나 양상추 등은 더 빨라. 반찬으로 충분해.”
하나하나 알려주는 인아를 보고서 김준은 자신도 군 시절 농사짓던 게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그날 밤.
김준은 작업을 다 끝내고 전기와 물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서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치익
담배 한 대를 태우면서 창고 두 곳을 둘러보고, 거기에 물탱크를 한 번 더 확인해본 것이었다.
[으어어 어어어어]
[우어어어]
저 멀리서 좀비들이 발정기 길고양이처럼 울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여기까지 다가오는 존재는 없었다.
생존 반응을 보고서 이곳으로 오는 것 같지는 않고, 이곳저곳에서 계속 먹잇감을 찾는 것 같았다.
“진짜… 우리밖에 안 남은 건 아니겠지?”
이제껏 봤던 수많은 좀비 영화들을 보면, 이쯤 되면 적당히 헬기도 뜨고, 장갑차도 나와서 구해줄 거로 생각했는데 아직도 안 나타난다.
그래도 오늘 전기와 물을 자체 수급하기 위해 벌인 작업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버티는 건 문제 없었지만 그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몰랐다.
“팔자에도 없는 톱스타들 데리고 살면서 말이야.”
한 방에 같이 지내면서 오늘처럼 성욕도 몇 번 끓었지만, 아직 입으로 한 번 받은 거 빼고는 제대로는 못 해봤다.
그렇다고 초콜릿 하나, 라면 한 개 가지고 걔네 몸 탐하는 취미는 없고 그저 그대로 이어질 뿐이었다.
“쯧, 아무쪼록 빨리 끝나야 되는데.”
어쩌다 보니 최고의 요새에 풍족한 식량, 자급자족의 시스템을 갖췄어도 지금은 생존 쉘터.
김준은 빨리 옛날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숨을 내쉬었다.
***
그때 자다 깨서 물을 먹다가 바깥에 김준을 발견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밖에서 서성이면서 생각에 잠긴 김준을 보고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요란하긴 해도, 아직 누구하고도 안 했겠지?’
눈치껏 남자 꼬신다는 건 이럴 때 써야 하는 말 같았다.
‘다음엔 내가 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