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08 조금씩 해결.
* * *
김준은 오늘의 아침메뉴로 된장국과 쌀밥, 김치등을 차리고서, 식사를 하는 톱스타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먹으면서 들어.”
8명의 여성이 모두 김준의 말에 귀를 집중했다.
“어제 냉장고에서 뭐 꺼내먹다가 싸우고, 다들 먹을 거 부족해서 예민한 거 같은데, 안 그래도 돼.”
“!!!”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어떻게 할지 집중했고, 김준은 현 상황에 대해 그녀들을 달래줄 말을 해줬다.
“1층 창고에 쌀이랑 통조림 비상식량이 있어. 물론 말 그대로 비상식량이야.”
“어! 진짜?”
에밀리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잽싸게 접시에 놓인 햄 두 개를 집어서 밥 위에 올려놨다.
가야나 도경 등이 그녀를 노려봤지만, 오빠의 말을 들어보라면서 젓가락으로 김준을 가리켰다.
“일단 루팅은 계속 할거야.”
“네, 그러면 제가 또….”
첫 루팅 이후로 식량에 대해 연달아 꽝이 나왔던 가야가 다시 나서려고 했을 때, 김준이 그녀를 만류했다.
“어, 가야 너는 할 만큼 했어.”
“그래도 다른 애들이 하기엔….”
가야는 가장 연장자로 총대메고 나섰다가 바깥의 공포에 발목만 붙잡았는데, 다른 동생들도 그럴까봐 계속 나서려고 했다.
그러자 은지가 가야 다음으로 자신이 나서겠다고 조용히 손을 들려는 순간, 먼저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음, 그러면 저 나가도 될까요?”
자신 있게 손을 든 여성은 서인아였다.
17세의 나이에 가요무대에 데뷔했던 샤인이라는 예명의 전직 국민 여동생, 연기노래예능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냈던 멀티 엔터테이너.
그리고 지금은 집 안에서 빨래와 요리 담당이었다.
“좋아. 그럼 인아가 없는 동안 빨래는 거기 은지가 하자.”
“네, 그럴게요.”
김준은 그렇게 말하고 나설 준비를 했고, 가야는 자신이 직접 차를 타고 나갈 때 해야 할 일과 아대와 지팡이를 주고서 좀비 대처법에 대해 알려줬다.
특히 가장 강조할 것은 김준이 사격을 할 때, 절대 방해하지 말고 놀라지도 말 것.
그 인수인계가 이뤄질 때, 김준은 엽총과 공기총을 한 번 손질하고는 탄을 두둑이 챙겨서 나갈 준비를 했다.
“가자.”
“네!”
인아는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애써 밝은 모습을 보이면서 차에 탔다.
그리고 들었던 대로 칸막이를 확인하고, 대시보드를 보면서 현 위치가 있는 곳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자~ 오늘은 좀 좋은 것을 발견해야 할 텐데.”
“네, 잘 됐으면 좋겠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말하는 대로 가 보자.”
“흐음~”
김준이 긴장을 풀어줄려고 인아에게 말하자, 그녀는 대쉬보드에 있던 소사벌시 지도를 보다가 여기저기 x자가 쳐진 곳을 체크했다.
그리고는 전부터 생각했던 것을 김준에게 물었다.
“오빠, 혹시 이 근처에 종묘상 있어요?”
“뭐?”
“야채나 꽃씨 파는 곳이요.”
“그거?”
김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액셀을 밟았다.
“시골에서 그런 데가 없으려고!”
화훼농가하고, 농산물을 직거래하던 곳이 있어서 김준은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야하고 그렇게 시달렸던 고가교 밑에서 만물상 루팅을 한 곳에서 농가 쪽으로 가면 한 곳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창고 안에 최후의 상황을 대비해서 각종 씨가 있긴 했지만, 정작 그걸 심을만한 곳이 여의찮았다.
원래 있던 텃밭은 물탱크 설치하느라 싹 밀어버렸고, 화분도 딱히 갖추지 않는지라 생각을 못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주 좋은 자리가 있었다.
“3층 옥탑방.”
“네~ 거기 옥탑방 마당에 화분으로 야채 심으면 적어도 자급자족은 될 거 같아요.”
“해 볼 만 하겠네?”
100평 면적의 토지에서 집이 40평, 옥탑방 집이 18평.
소규모로 작물 짓기는 괜찮은 곳이었고, 실제로 빨래 건조대 치우고 화분을 설치한 적도 종종 있었다.
김준은 고가교를 지나 지난번 만물상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지난번 죽인 좀비들의 흔적이 살짝 남아있는 곳에서 그 일대에는 저 멀리 좀비 10여 마리가 보였다.
전방 30m에서 보인 것을 확인한 김준은 곧바로 차를 한 곳에 대고 시동을 껐다.
공회전 소리가 사라지자 멀리서 좀비의 울음만 들렸고, 김준은 슬쩍 대린 창으로 뒤에 있는 인아에게 말했다.
“숨소리도 내지 마. 지금부터 총 쓸 거야.”
“네.”
“근처 좀비 발견할 때만 나 불러.”
가야한테도 그랬지만, 이 녀석도 혹시 모르니 변수를 계산하고서 총구를 창가로 꺼냈다.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라 그 수가 한정된 지역에만 있다는 게 다행이라 봐야 할까?
김준은 공기총의 납탄을 넣고 먼저 한 방 갈겼다.
띵
공기총 소리와 함께 좀비 하나가 머리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그것을 확인한 좀비들이 달려왔다.
뛰는 좀비 둘, 나머지는 걷는 좀비.
‘충분히 잡을 수 있어.’
김준은 단발 장전식인 공기총을 치우고, 바로 옆에 있는 엽총을 들어 침착하게 두 좀비를 향해 두 방 갈겼다.
탕 철컥! 탕
순식간에 좀비 두 마리가 쓰러졌다.
“뒤에 좀비 보여?”
“없어요!”
“오케이, 그럼 계속 가자!”
김준은 다시 좀비를 노렸다.
느릿느릿 걷는 좀비는 한발씩 장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탄이 많은 공기총으로 바꿔 천천히 겨눴다.
사냥꾼 시절 송전탑 위에 까치 잡는 것에 비하면, 표적도 크고 느릿느릿해서 여유도 있었다.
팅 철컥!
연달아서 좀비들을 쓰러트리고, 혹시 몰라 1분 동안 꿈틀거리는 녀석이 있나, 살펴봤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한 김준은 바로 시동을 걸고 달릴 준비를 했다.
곡예 운전을 하듯이 쓰러트린 좀비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다시 인도를 밟았을 때, 앞은 완전 깡촌 시골길이었다.
“여기 근처일 텐데?”
김준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종묘상을 발견했다.
“찾았다!”
김준이 바로 그곳으로 향해 차를 댔다.
“내려서 준비할게요.”
“아냐, 기다려!”
김준은 자전거 안장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나가려는 인아를 말리고 권총과 엽총을 챙기고 먼저 내렸다.
종묘상과 그 옆에는 철물점이어서 그야말로 이번 루팅은 노다지라고 생각했다.
끼이익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을 때, 다행히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종묘상과 그 옆의 철물점 모두 바닥에 늘어붙은 피의 흔적은 보여도 그게 전부였다.
“후우”
밖으로 나와서 인아를 부르려던 찰나 차로 달려오는 좀비가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철컥 탕!
반사적으로 총구를 들어 차로 달려드는 좀비를 잡았고, 그 순간 캠핑카 트렁크 쪽으로 피가 쫙 튀었다.
“젠장….”
문을 열고 루팅을 해야 하는데 하필 좀비가 저기 있다.
김준은 다시 차로 올라가 안에 있는 인아를 진정시키고, 곧바로 시동을 걸어 뒤에 잡은 좀비를 깔아뭉갰다.
우두둑 거리는 소리가 나고, 좀비가 완전히 짓이겨진 것을 확인한 김준은 차를 돌리고 곧바로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인아야, 잠깐만 더 기다려.”
“….”
반사적으로 끄덕이는 인아를 두고, 김준은 안으로 들어가 일단 철물점에서 락스부터 꺼내 차 바퀴에 있는 좀비 시체에다 뿌렸다.
매캐한 냄새에 폐가 쓰릴 정도였지만, 진열된 플라스틱 빗자루로 긁어내서 확실히 치웠다.
그리고 루팅의 시간이 되었다.
김준은 우선순위로 냉장고를 열고 생수 등을 챙긴 다음 트렁크에 담았다.
철물점에서 팔던 담배와 냉장고 안에 있는 음료수들을 전부 챙겼고, 그 뒤로 종묘상 안에 있는 씨앗들을 모조리 챙겼다.
“토마토 당연히 챙기고, 무… 챙기고, 총각무… 챙기고, 강낭콩, 대두, 양상추, 깻잎, 치커리, 마늘 파, 시금치….”
확실히 종자는 신의 한 수였다.
부피도 작고, 계속 재배할 수 있으면서 여기 있는걸 다 담아도 겨우 봉투 하나에 다 들어간다.
종자들을 모두 쓸어 담고, 챙기는 김에 꽃삽하고, 호미 등도 담을 때였다.
덜컥!
“!”
갑자기 문소리가 들리고 인아가 내렸다.
“야이 미친, 너 갑자기 왜 내리….”
그녀는 갑자기 어디론가 뛰어갔고 김준이 욕을 하며 쫓으려는 순간, 저 멀리서 뭔가를 잔뜩 들고 왔다.
“스티로폼 박스?”
인아는 그것을 한가득 들고 달려와 침착하게 짐칸에 던졌다.
“저걸로 화분을 쓰고, 배양토만 있으면 돼요.”
“아, 배양토… 가 아니라 너 왜 나왔냐고?”
“괜찮아요. 도울게요!”
“야, 야! 들어가 있어!”
“네!”
인아는 김준의 명에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갔다.
김준은 그 모습을 보고 차에 앉힌 다음 주변을 한 번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오라고 손짓했다.
결국 밖으로 나온 인아는 재빨리 종묘상 안으로 달려와 김준 옆에 착 달라붙으며 종묘상 안의 물건들을 둘러봤다.
“챙겨야 할 게 톱밥, 배양토, 화분틀, 영양제….”
“집에서 농사했어?”
“어렸을 때요.”
“잘하긴 했는데… 아까처럼 막 튀어나오지 마. 식겁했다고.”
“아, 죄송해요.”
인아는 침착하게 그것들을 챙기고 김준과 같이 날랐다.
종묘상 하나를 다 털고 여기 있는 씨만 있어도 아마 몇 년은 재배할 양일 것이다.
물론 그것을 가꾸고 관리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풀이라도 반찬은 잔뜩 생기겠네.”
“나물류는 한달이면 금방 자라요.”
이걸 가져가서 옥탑방에 화단 만들어 반찬을 직접 만들 계획이 착실히 만들어질 때, 인아는 뭔가를 또 발견했다.
“아, 저거!”
인아가 다가간 곳은 포장된 봉투에 담겨있는 곰팡이 덩어리 들이었다.
원래 팔려는 것은 ‘느타리버섯’과
‘팽이버섯’, ‘양송이버섯’, ‘만가닥버섯’ 등이었다.
하지만 상온에 오래된 상태에서 전부 썩어버렸고, 곰팡이가 그득했다.
“이것도 챙길게요.”
“야, 그걸 어디다 쓰려고?”
“이 정도면 재배할 수 있어요.”
“뭐? 봉지 안에 썩은 버섯을?”
“으흠~”
인아는 자신을 믿으라며 비닐포장 속에서 곰팡이가 잔뜩 선 그 썩은 버섯들을 모두 챙겼다.
냄새가 좀 역했지만, 일단 그걸 살릴 수 있다는 말에 트렁크에 담았다.
다음으로 김준은 옆집인 철물점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각종 공구가 가득했다.
“캬~ 내가 아직 군대 있었으면 눈 뒤집혔다.”
김준은 용접기, 배터리, 그리고 LED램프 등의 가벼운 것부터 먼저 챙겼다.
그 뒤로 무게가 제법 나가는 전동공구와 전기부품, 뒤이어 말통의 담긴 시너와 부탄가스, 시멘트도 챙겼다.
“오늘 이 정도면 대박이네. 집에 가자!”
“네, 오빠.”
김준은 루팅한 10보루의 담배 중 하나 뜯어서 입에 물고는 차를 운전하고 바로 출발했다.
안에 신나와 부탄가스가 있으니 안전 운전으로 좀비를 하나하나 잡아가면서 천천히 말이다.
***
그날 밤은 루팅 해온 음료수들을 꺼내서 오랜만에 탄산 맛을 본 집안이었다.
술보다 더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콜라 순식간에 세 통이 비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생긴 건 아니었다.
툭
“어!?”
“어머!”
전기가 내려갔다.
순식간에 깜깜해진 집안에서 김준이 플래시 라이트를 들고 두꺼비집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아무리 스위치를 올려도 더 이상 전기가 안 들어온다.
“에휴, 기어이 전기 나갔네?”
그래도 한 달이면 오래간 편이었지만, 집 안에서 전기가 끊기자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어떡해? 이제 불이 안 나와!”
“냉장고랑 밥솥도 꺼졌어.”
“하, 진짜 전기 끊긴 거야? 그럼 이제...”
모두가 걱정할 때 김준은 비상전력을 가동했다.
비상 발전기로 간신히 전기가 돌았고, 김준은 거실 빼고는 모두 꺼버렸다.
“자, 주목! 자기 전에 야간작업 좀 하자. 전기 만질 줄 아는 사람?”
“….”
“…어, 전기요?”
모두가 멍할 때 이번에도 인아가 손을 들었다.
“진짜 할 수 있어?”
“끊어진 선 붙이는 거 정도는….”
“오케이! 이리 와.”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17세에 데뷔한 전직 국민여동생이 농사에 이어 이런 것도 할 줄 아는지 김준은 나중에 꼭 물어보기로 했다.
일단 지난번 이 아이들을 구할 때 챙겼던 대피소용 기름 발전기부터 꺼냈다.
“자, 이거 선하고 이거 선을 이제 이을 거야.”
“집게로 돼 있어서 연결은 쉽네요. 물만 안 닿으면.”
“테이프 많이 있어.”
김준은 군 복무 시절에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능숙하게 선을 연결하고, 옆에서 인아가 장갑을 낀 채 껌 테이프를 감았다.
“아까 챙긴 거 중에서 LED 부착등 있거든? 그거 건전지 채워서 각 방 천장에 붙여라.”
“아, 네! 그거면 다른 언니들하고도 할 수 있어요.”
아마 이 방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소녀인 것 같았다.
인아는 발 빠르게 움직여서 철물점에서 가져온 손바닥만 한 LED 등을 천장에 부착했고, 무선 스위치를 각 벽에 붙였다.
앞으로는 전등을 쓰지 않고 이걸로 조명을 밝힐 셈이었다.
그렇게 전보다는 덜 하지만, 확실히 빛이 생겼고, 2층까지 도경이나 가야 등의 언니들 데리고 다니면서 화장실까지 전부 붙인 인아가 작업을 마쳤다.
“자~ 이제 물만 최대한 받아놓고 오늘 작업 시마이!”
김준의 말에 콜라 세 통 값으로 8명의 연예인은 질서 있게 움직여 자신들의 은신처를 구축하는데 각자의 손을 거들었다.
새벽이 늦었지만, 기념으로 콜라 두 통을 더 나눠주고, 자기 전에 꼭 양치하라고 숙지시켜준 김준은 소주 한 병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본격 장기 생존에 필요한 물과 전기 문제로 작업할 게 많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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