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6화 > 악마교 소탕 (4)
이호연 저택의 점심시간.
남다은은 식탁에 음식을 옮기며 수저를 내려놨다.
각자 일정에 따라 밥을 따로 먹는 날도 많았지만, 오늘은 다 같이 식탁에 모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거 아니야? 악마교 토벌에서 악마를 잡는 에이스인 나를 놓고 가다니!"
"호연 님도 생각이 있으셨을 겁니다. 릴리아나 님."
"릴리아나. 어차피 가자 해도 안 갔을 거잖아? 애기 아빠도 우리를 배려한 거겠지."
"… 그래도 호연이가 위험할까 걱정되네요."
"호연 님은 괜찮을 겁니다. 제가 듣기로 악마교의 예상 전력보다 3배 이상의 헌터가 몰려갔다고 하니까요. 저도 그 말을 듣고 집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스칼렛은 샐러드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악마교 토벌대에 이호연이 낀다고 했을 때, 스칼렛은 곧바로 강효린 박사에게 달려가 자신도 토벌대에 끼워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토벌대에 참가하지 말라는 이호연의 의사가 있었기에 저택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으응. 맞아. 애기 아빠가 다치는 일은 거의 없을 거야."
"하지만 호연이가 안전하다고 말한 다음에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요…."
"언니. 우리 오빠 위험해?"
"아니. 금방 돌아올 거야. 다음에 같이 피크닉이라도 가자."
냠.
남다은은 돈가스를 오물오물 씹으며 남다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릴리아나가 자신의 돈가스를 다 먹고 고개를 돌렸다.
"다은아! 근데 오늘 점심은 치킨 아니었어? 돈가스도 좋긴 하지만."
"치킨은 어제 점심이었어요. 릴리아나 씨."
"아하. 그런가? 혹시 돈가스 안 먹으면 내가 먹어도 돼?"
"네. 저는 다 먹었거든요."
"고마웡!"
"릴리아나. 애기 아빠가 없다고 다은이 음식을 뺏어 먹으면 어떡해."
"… 이호연한테는 비밀로 해줘!"
릴리아나는 이호연에 대한 걱정 대신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이호연에 대한 걱정은 쓸데없다는 걸 진작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그런 걱정보다는 집의 평안에 집중해야 한다.
"…… 응?"
그때.
돈가스를 입에 쑤셔 넣던 릴리아나의 손이 멈췄다.
열려있던 창문에서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지구에서도 흔해진 지옥의 마력이 아니다.
평생 자신의 바로 옆에서 느껴지던 따스한 마력.
"… 엄마?"
*
골목 사이 복잡한 길을 지나자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
이곳이 악마교의 집회 장소였다.
넓은 공터에는 얼핏 봐도 수천 명 정도가 모여있었고, 중간중간에 마인도 보였다.
[신호를 보내면 한 번에 덮친다. 민간인은 건들지 않도록 해라]
철혈 길드장 김태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이호연은 몸을 숨긴 채 공터를 노려봤다.
현재 자신을 포함한 토벌대원들은 악마교에게 들키지 않도록 골목 곳곳에 숨어있었다.
상황이 시작되면 추가로 투입될 인력도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으니, 여기까지 침투한 순간 작전은 성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아직까지 악마가 느껴지지는 않아.'
토벌대원들이 하나 둘 씩 골목에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악마교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전혀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
토벌대가 집회 장소까지 아무 방해 없이 침투했다는 게 그 증거였다.
'… 예배를 하는 건가?'
공터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기도하고 있었다.
이호연은 공터에 가득 찬 마력을 느끼며 눈을 찌푸렸다.
공터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마인도 있었다.
신장이 3M가 넘는 괴물 같은 놈이나 몸무게가 400kg는 될 것 같은 뚱뚱한 놈.
딱 봐도 인간 같지 않은 마인들은 마치 경비병처럼 공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걸 보면 이 많은 인간을 전부 세뇌한 것 같았다.
그때, 공터의 끝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왔다.
무리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마인 세 명이 그를 경호하듯 서 있었다.
'마에스트로?'
아무리 세뇌한 사람들 앞이라지만 저렇게 무방비하게 몸을 드러낸다고?
원작에서 보던 마에스트로는 훨씬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5초 뒤 돌입한다. 습격 준비.]
하지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강효린 박사의 증언으로 이미 마에스트로의 얼굴은 토벌대 전원이 파악하고 있었고, 마에스트로가 몸을 드러내자마자 돌입 명령이 떨어졌다.
이호연은 무전이 들림과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진입!]
콰아아앙-!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이 순식간에 돌진했다.
"기, 기습이다! 젠…!"
서걱-
앞장서던 김태현 길드장이 거대한 마인의 목을 썰어 넘겼다.
순식간에 일어난 기습에 마인들도 당황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민간인들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민간인은 절대 다치지 않게 해라! 세뇌에 걸렸으니, 눈에 초점이 없을 거야!]
이호연도 뒤늦게 돌입하며 마인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먼저 돌입한 정예들이 타격을 주면 뒤에서 대기하던 다른 대원들이 민간인을 구출하는 작전이다.
토벌대에 속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헌터들이 골목 곳곳을 둘러싸고 있으니 잔당이 도망갈 구석은 없었다.
"크, 크아아아악!"
"도, 도망… 죽여버려! 죽인다!"
그때, 당황한 마인들의 눈빛이 달라지며 죽을 기세로 항전하기 시작했다.
마에스트로의 명령 같았다.
하지만 상황 자체가 너무나 유리했다.
급습으로 마인의 숫자를 엄청나게 줄였고, 애초에 전력이 상대가 안 됐다.
이번 계획을 위해 헌터 협회의 에이스들을 전부 차출했다.
판데믹이라는 이름과 전 세계 인사들을 세뇌한 마에스트로를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세뇌에 당했다고 해도 마인들로는 한국의 헌터들을 상대할 수 없다.
'… 생각보다 마인들의 수준이 낮아.'
이호연은 눈앞의 마인의 배에 스파이럴을 꽂으면서도 긴장을 풀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이미 전황은 압도적이었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건 마인이 아니다.
마에스트로.
그놈의 위치를 찾아야 했다.
'그 자리에 계속 서 있다고?'
이호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마에스트로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그를 지키던 마인들도 전투에 돌입했다.
아직도 도망치지 않았다는 건, 무언가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다.
씨익.
마에스트로는 전투를 지켜보다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 함정?'
콰아아아앙-!
이호연이 이상함을 느낌과 동시에 양옆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새의 머리가 달려있는 인간형 괴수와 몸 곳곳에 광석이 박혀있는 남자.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아몬과 말피스. 악마가 둘이나 있다고?'
놈들은 공터에 나타나자마자 눈에 보이는 인간을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아몬은 몸의 깃털을 날리며 인간의 눈을 파먹었고, 말피스는 몸의 광석을 빠른 속도로 날리며 전방위를 공격했다.
설마 악마가 나타날까 했지만 두 마리나 나타나다니.
"쯧. 김태현 길드장 님. 작전대로 저는 마에스트로를 노리겠습니다. 토벌대는 저놈들을 맡아주세요."
이호연은 주변에 있던 김태현에게 달려갔다.
미리 말해놓은 대로, 전투가 길어지면 자신 혼자 마에스트로를 노리는 작전이었다.
"이호연 마법사. 혼자서 괜찮겠나?"
"저보다 토벌대가 문제입니다. 저놈들은 악마예요. … 이길 수 없다면 버티기라도 하세요. 새대가리는 날개를 뜯어내야하고, 광석이 달린 놈은 몸에 있는 광석을 부숴야해요."
상대법을 짧게 전달한 이호연은 대답을 듣지 않고 정면을 향해 달려 나갔다.
마에스트로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운명이란 무엇인가.
마왕님이 강림해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도 운명이라면.
자신이 만든 악마교가 무너지는 것도 운명이다.
모든 것은 마왕님을 위한 일이다.
설령 그분이 자신이 알던 마왕이 아니더라도.
마에스트로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몇 번이고 건넜다.
운명의 대척자 이호연.
그를 죽임으로서 마왕 소환에 더욱 가까워지겠지.
마에스트로는 그렇게 생각하며, 정면에서 다가온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같은 남자가 봐도 미형이라고 느낄만한 얼굴을 가진 남자.
하지만 그의 진짜 능력은 얼굴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이호연 마법사."
"…."
"같이 온 동료들이 걱정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이호연은 눈앞에 서 있는 마에스트로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강효린 박사가 했던 말을 이제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처음 마에스트로를 봤을 때 느껴지던 여유가 눈앞에 남자에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마왕 때문이겠지.'
마에스트로는 악역이다.
자신의 삶을 마왕을 위해 바치고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악역.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마왕을 소환해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마왕을 소환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그 정도로 광기를 가진 놈이야. 계획이 순조로운데도 불안해하는 이유는 몇 개 없어.'
사실 계획이 순조롭지 않거나, 순조롭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
이 세계에 마왕이 강림하는 것은 확실한 일이니, 마에스트로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후자다.
이호연은 확신을 가지고 말을 이었다.
"확실히 전에 봤을 때보다 상태가 안 좋아 보이네. 마왕이 이상한 걸 눈치챈 거야?"
이호연의 말에 마에스트로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에스트로가 궁지에 몰린 이유는 무조건 마왕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게 맞았다.
그는 이 세계의 신이 마왕이 된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큭. 서큐버스 퀸 그 여자가!"
"…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서큐버스 퀸.
이호연이 신경 쓰던 이름이 마에스트로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마에스트로가 서큐버스 퀸이랑 접촉한 건가?'
이런 곳에 악마가 2마리나 있는 게 이상하다 했는데, 그녀의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서큐버스 퀸에 대한 정보는 이호연도 필요했다.
그녀가 릴리아나와 만나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 대화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마왕님을 위해 당신을 죽이는 것."
화아악-
몸을 감싸는 마력에 이호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을 세뇌하는 마에스트로의 마력.
이호연의 '뚜렷한 정신력'때문에 세뇌에 걸리진 않지만, 마에스트로의 능력은 그게 다가 아니다.
"마천궁 전개."
촤아악-
마천궁이 펼쳐지며 몸을 덮는 마에스트로의 마력을 떨쳐낸다.
"개안."
이호연의 눈이 금빛으로 빛나며 주변의 마력을 읽는다.
마에스트로의 몸 주변에는 세뇌의 마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 파이어 애로우."
손 위에 피어난 불화살이 빠르게 놈을 향해 쇄도한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달려 나가던 불화살은 마에스트로에게 닿기 직전에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런 잔재주로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의 능력은 세뇌.
마에스트로는 실체가 없는 것도 세뇌해 버린다.
그것이 마에스트로의 전투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