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5화 > 악마교 소탕 (3)
평소라면 아카데미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시간.
이호연은 오랜만에 아카데미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바깥과 다르게 건물 안은 임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태평양에 나타난 지옥의 문은 일상을 무너뜨렸다.
아카데미가 휴교하면서 생도들은 수업 대신 실전에 뛰어들었고, 교수들도 자연스럽게 붕 뜨게 되었다.
그들은 보통 아카데미의 행정업무를 맡거나 생도들과 함께 지옥의 괴수를 사냥했다.
'그래도 출근하는 교수들은 많이 있으니까.'
강효린 박사도 출근하는 교수 중 한 명이다.
그녀는 교수직과 더불어 아이리스 길드의 일을 맡고 있으니 지옥의 괴수를 잡을 시간이 없겠지.
생각해 보면 진짜 엄청난 사람이다.
"여긴 진짜 오랜만이네. 예전에 한두 번 오고 안 왔었는데."
임솔을 만날 때는 마법 교수들이 모여있는 마도관에 가야 했으니, 평범한 교수들이 지내는 연구실은 거의 올 일이 없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오랜만에 듣는 강효린 박사의 목소리.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가자, 미소를 지은 강효린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이호연 생도? 말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요."
"딱히 중요한 용건으로 온 건 아니라서요. 악마교의 조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진행을 듣고 싶거든요."
"으음. 원래 조사 과정은 공유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 호연 생도라면 괜찮겠죠? 아이리스 길드의 데릴사위니까요."
"…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자료나 보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거기 앉아있어요."
이호연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찻잔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는 방금 내린 것 같았다.
자신이 먹을 커피를 접대용 테이블에 놓지는 않을 테니, 강효린은 자신이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저 사람도 참 이상하다니까.'
아이리스 길드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면 조금씩 이상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자신과는 너무 거리가 먼 곳이다.
홀짝-
커피를 마시며 자료를 찾는 강효린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문득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연구실 안에서 희미한 악취가 나고 있었다.
'응?'
개안.
이호연의 눈이 금빛으로 빛나고, 연구실을 훑었다.
그리고 이내 그 악취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아…."
그래.
뭔가 이상하긴 했어.
악마교 놈들이 대놓고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데 왜 조사가 안 되고 있나 했다.
… 이 사람이 당한 거였구나.
*
조사 진행은 생각대로 지지부진했다.
한국 지부장마저 세뇌에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조사원들이 사라진 걸 알아챈 것만으로도 기적 아닐까.
"호연 생도 덕분에 아이리스 길드의 자산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몰라요. 다음에 엘리스 아가씨랑 1팀장님을 만나면 거들먹거려도 될 거예요."
"… 그런 이야기를 잘도 해주시네요."
"얼마 전에 1팀장님이 한국으로 들어왔잖아요? 요 며칠간 얼마나 갈구던지… 저만큼 한국 지부를 잘 운영하는 사람이 없을 텐데 꼭 그러신다니까요. 호연 생도가 좀 말려주세요."
"노력해 볼게요."
강효린 박사는 자료를 살펴보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얼마나 강한 세뇌가 걸려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잡담하며 상태를 살펴봤는데, 자아가 없다기보단 악마교에 대한 일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벌써 커피를 다 마셨네요? 한 잔 더 드릴까요?"
"음… 강효린 박사님."
"네?"
"그거 기억하세요? 제가 기자회견 때 말했던 세뇌어요."
"당연히 기억하죠. 각국의 인사들이 기자들 앞에서 구토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한번 말해보세요."
"…? 투 아르마 마에스트로. 왜요?"
이호연은 꺼림직한 눈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구토하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으니, 마력을 써도 이해해 주겠지.
"호연 생도. 갑자기 무슨…? 크읍. 읍…?!"
이호연은 강효린 박사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마력을 흡수해 마력구를 만들었다.
다행히 강효린이 봤던 고위 인사들과 다르게 그녀의 옆에는 이호연이 있었다.
자신이 옆에서 컨트롤해 주고 있으니 추하게 구토하진 않을 거다.
"윽, 아… 그읍…."
"천천히 심호흡하면 돼요. 강효린 박사님."
10분 정도 헛구역질하던 강효린의 호흡이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세뇌에 풀리면 희미한 기억들이 제대로 떠오르고, 강한 두통이 느껴진다.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장 강효린도 그런 정보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세뇌에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강효린 박사님. 정신이 들어요?"
"… 고마워요. 호연 생도. 세뇌가 풀리는 건 이런 기분이었네요. 일반인들이 버티기 힘들겠어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헌터들은 저항력이 있는 만큼 더욱 강한 세뇌가 걸리니까요."
이호연은 마력 구슬을 뭉개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한국 지부장으로서 세뇌에 걸렸다는 게 그녀에겐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다.
다행히 그런 낌새는 없어 보였다.
"기억이 혼란스럽지는 않죠?"
"네. 괜찮네요. 호연 생도가 도와준 덕분에 두통이 금방 가셨어요."
"죄송하지만 곧바로 일 얘기를 해도 될까요? 한시가 급해서요."
"당연하죠. 한국 지부장으로서 큰 실수를 할 뻔했네요."
강효린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판데믹의 보스, 마에스트로의 세뇌 능력.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너무나 신기했다.
남의 기억이 억지로 머리에 주입되는 느낌.
하지만 이 기억은 강효린이 직접 겪은 일이었다.
그녀는 몇 시간 전 쓰레기통에 던져놨던 서류를 다시 꺼냈다.
"이곳이 악마교의 본진이에요."
그녀는 마에스트로와 직접 만났었다.
*
강효린이 펼친 건 지도였다.
서울의 시외지에는 새빨간 X 표시가 되어있었다.
"여기서 마에스트로와 직접 만났다고요?"
"네. 확실히 기억해요. 얼굴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남자의 마력이 몸을 감싸자마자 기억이 끊겼어요."
"흑발의 젊은 남자에요. 퀭한 눈동자에 생기없는 피부라면 그놈이 맞을 겁니다. 다른 기억은 없어요?"
"제 느낌이지만… 무언가 포기한 사람의 표정이었어요."
"포기?"
"정확히는 잃을 게 없어서 막무가내가 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직업 특성상 궁지에 몰린 사람을 자주 만나니까요. 그런 부류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거든요."
세상에는 곧 마왕이 강림한다.
즉 마에스트로의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마에스트로는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이호연으로선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이 사실은 아이리스 길드에 알리죠. 한국 헌터 협회와 손을 잡고 토벌대를 구성해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제가 전할게요."
이호연은 혀를 차며 커피를 들이켰다.
별생각 없이 들린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었다.
'오늘은 아영 씨를 만나러 갈 생각이었는데.'
그 계획은 폐기해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일주일이나 같이 있었으니 이해해 주겠지.
*
다음 날.
악마교 토벌대는 단 하루 만에 만들어졌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아이리스 길드가 동시에 요청했으니 한국 헌터 협회에서도 토벌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직접 악마교에 잠입했던 강효린의 경험과 이호연의 의견이 있었기에 작전도 금방 만들 수 있었다.
"반갑다. 이번 악마교 토벌 작전의 지휘를 맡은 철혈 길드장 김태현이다."
악마교 토벌 작전.
토벌대는 한국 헌터 협회를 중심으로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전 세계를 상대로 테러를 일삼던 판데믹이 한국에 있다는 소식에 헌터 협회도 제대로 칼을 뽑았다.
작전대장으로 철혈 길드장 김태현을 뽑았기 때문이다.
철혈 길드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상대는 불법적인 마인 조직이다. 작전은 간단하다. 악마교의 신교인 척 잠입한 후 습격으로 일망타진한다. 작전은 다들 숙지했겠지?"
"""넵!"""
팀은 대부분 대형 길드에서 보낸 정예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건 철혈 길드였다.
한국에서 가장 강한 철혈 길드는 이호연과도 인연이 있었다.
철혈 길드의 민예지 팀장이 임솔과 백아영의 친구다 보니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참고로 이호연은 그들 사이에 가만히 서 있었다.
원래는 자신에게 지휘를 맡기겠다고 했지만 그건 거절했다.
'나는 마에스트로를 죽여야 해.'
마에스트로의 세뇌에 저항하면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휘는 다른 사람이 맡아야 한다.
이호연은 주변에 아는 얼굴이 있나 고개를 돌렸다.
히로인들은 전부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만, 가끔 오고가며 본 얼굴이 토벌대에 있을 수도 있다.
"오랜만이네. 이호연. 아니, 이제 천재 마법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때, 철혈 길드원들 사이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얼굴을 만났다.
금발에 문신까지 있는 양아치상의 남자.
"너 살아있었냐?"
김영한.
이호연의 유일한 남자 친구가 철혈 길드원들 사이에서 인사를 건네왔다.
솔직히 존재도 까먹고 있었는데, 막상 인사를 받으니까 반가움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많이 노력한 모양이네. 철혈 길드에 들어가다니.
"살아있다니. 그건 말이 너무 심하네."
"농담이야. 근데 나보다 네가 더 대단한데? 어떻게 철혈 길드에 들어간 거야?"
"아… 하하, 사실 우리 아빠가 저분이야."
고개를 돌리자, 작전을 지휘하는 열정적인 눈빛의 남자가 보였다.
철혈 길드장 김태현이다.
이제 보니까 같은 김씨구나.
"너 금수저였구나. 좀 더 친하게 지낼 걸 그랬네."
"숨겨서 미안."
"됐어. 딱히 중요한 일도 아닌데."
빙의 초반에 알았다면 좀 더 친하게 지냈겠지만… 지금은 빅토리아 아카데미가 자신의 뒤에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에는 아이리스 길드, 미국에는 마법사 협회.
이미 이호연에게는 백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호연 생도! 오랜만이네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민예지 팀장.
임솔과 백아영의 절친한 친구였다.
"오랜만입니다. 민예지 씨."
"못 본 사이에 이렇게 의젓해지다니. 역시 뉴스는 틀린 말을 안 하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얼굴에 금칠을 받으니까, 기분이 영 이상했다.
실제로 토벌대에 있는 인원들은 이쪽을 흠칫흠칫 보고 있었다.
이호연이라는 이름이 이제 그렇게 유명해진 것이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지기 전에 다른 말을 꺼냈다.
"예지 씨랑 김영한도 토벌 작전에 참여하는 거죠?"
"당연하지. 예지 씨는 1팀장이고, 나는 길드의 후계자니까."
"그래. 몸관리 잘해라. 죽지 말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하는 말이 죽지 말고라니.
참 살기 힘든 세상이네.
이호연은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