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4화 > 악마교 소탕 (2)
"그래서 있지. 루미가…."
"루시도 불화살을 잘못 쏴서 아이 씨한테 죄송하다고 한 적 있잖아…."
"앗.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실수였어! 아이 씨가 내 눈 앞을 막았다니까."
나는 카페에 앉은 채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봤다.
내 앞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건 루시와 루미.
둘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며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맛있긴 하네….'
딸기가 가득 올라간 케이크를 입에 넣을 때마다 달콤함이 몸을 채운다.
이 정도면 찾아와서 먹을만한 맛이다.
"호연 씨. 케이크가 입에 맞으세요?"
"응. 오길 잘했네."
"헤헤. 루시랑 고른 거예요."
"특별히 딸기가 맛있는 곳이야!"
나는 루시와 루미의 말에 열심히 맞장구쳐 주며 바깥을 바라봤다.
루시루미 쌍둥이와 카페에서 놀고 있는 와중에도 머리를 채우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새끼들 분명 악마교같은데….'
길거리에서 사이비에게 받았던 전단지.
그것은 아직도 내 주머니에 있었고, 여전히 미세한 지옥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악마교가 아니라면 지옥의 마력이 느껴질 이유가 없잖아.'
평범한 사이비가 뿌리는 전단지에서 지옥의 마력이 느껴질 가능성은 없다.
분명 마인 조직인 악마교일 가능성이 높은데, 하필 거기서 느껴진 게 지옥의 마력이라 문제였다.
'지옥의 마력이 느껴진다는 건 마에스트로뿐만 아니라 진짜 악마가 있는 건가?'
마에스트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악마까지 있다면 더욱 긴장해야한다.
설령 그놈들이 악마교라고 쳐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렇게 대놓고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고?'
악마교는 나 뿐만 아니라 아이리스 길드와 빅토리아 아카데미도 조사하는 중이다.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활동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호연 씨?"
"이호연, 뭐해?"
생각에 너무 빠져있었던 걸까.
루시와 루미가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응. 미안 잠깐 다른 생각을 좀 했네. 무슨 말 했어?"
"뭐야. 루미랑 화장실 갔다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구."
"알겠어. 기다리고 있을게."
루시와 루미가 화장실에 가고, 나는 주머니에 쑤셔 넣어 놓았던 전단지를 꺼냈다.
대충 읽어도 내용이 영 좋아 보이진 않았다.
"세상에 멸망이 도래한다, 집회에 참여해라…. 흐음. 집회에 참여하라는 건 집회가 있다는 건데…."
일반인들이 많이 엮여있는건가?
생각보다 더 스케일이 클지도 모른다.
나는 스마트워치를 들었다.
- 나 : 엘리스. 길거리에서 사이비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수상해. 집회가 있다고 하니까 조사원들이 사라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조사해 봐.
혹시 이상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 에브리타임도 살펴봤지만, 사이비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전단지를 넘기는 게 귀찮다고 욕하는 내용이었다.
"흐음. 흠흠~."
스마트워치를 바라보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분 좋은 콧노래가 들려왔다.
자리에 돌아온 루시는 내 손에 들려있는 전단지를 보며 물었다.
"이호연. 뭐 보고 있는 거야?"
"루시. 이거 뭐 이상한 거 안 느껴지지?"
"아까 그 전단지네? 이걸 왜 안 버렸어?"
내 손에 있던 전단지를 들고 이리저리 살핀 루시는 눈을 찡그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으음. 잘 모르겠는데."
"오케이. 별거 아니면 됐어."
"뭐야. 김빠져."
루시도 지옥의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사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면 웬만한 조사원들도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
혹시라도 의심하며 그 뒤를 따라가는 몇몇은….
'마에스트로한테 세뇌당했겠지.'
조사원들도 모든 사안을 상부에 보고할 수 없으니, 이 정도 사안은 보고하기 전에 직접 조사해서 정말 수상한 지 확인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사원들이 사라지는 것도 이해가 된다.
'나보다 마력을 잘 감지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혼자 악마교에 접촉했다가 세뇌당해서 그대로 실종되었겠지.
혹은 자신이 세뇌당한 것도 모르고 보고를 누락했거나.
"… 쩝."
나중에 직접 조사라도 해봐야 하나?
굳이 조사원들을 더 보냈다가 마에스트로가 도망치는 게 가장 최악이다.
엘리스한테 절대 들키지 않도록 조사하라고 말해놔야겠네.
"호연 씨.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야. 그냥 전단지를 보니까 기분이 나빠져서."
나는 미소를 지으며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악마교 조사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혼자 쳐들어갈 게 아니라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루시루미와 노는 데에 집중하자.
"아, 너무 맛있어서 어쩌지… 오늘은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먹어버려도 될까?"
루시는 그 말을 하면서도 포크로 케이크를 집고 있었다.
내 생각에 자기도 이쁜 걸 아니까 저러는 것 같다.
"루시는 많이 먹어도 예뻐."
"후후. 고마워!"
루시가 미소를 짓는 동안, 루미는 눈을 깜박거리더니 급하게 포크를 들었다.
"호, 호연 씨. 저도 케이크 먹을 거예요."
"루미도 예쁘고 귀엽지."
"… 냠."
나는 얼굴을 붉힌 채 케이크를 먹는 루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별 거 아닌 행동인데도 몸에 귀여움이 묻어난다.
이건 재능의 영역이구나.
'역시 여유롭게 있을 수는 없겠네.'
내일은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
마에스트로.
원작에서 계속 주인공을 괴롭히는 최종 보스.
정확히 말하면 마왕이 최종 보스지만… 마왕을 강림하게 만들며 주인공을 게임 내내 괴롭힌 마에스트로가 더욱 상대하기 까다롭다.
특히 놈이 까다로운 건 특유의 전투 방식이다.
"애기 아빠. 이거면 될까?"
"좀 더 강했으면 좋겠는데요."
"으음. 가능하긴 한데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혹시 이런 취향이었어?"
"… 레베카 씨. 집중해 주세요."
이호연은 아카데미에서 마에스트로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몸에 마력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한 감각.
전신을 옥죄어 오는 답답함과 무력함.
이호연은 그 만남에서 케이론이 말했던 운명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제대로 남아있다.
다시 만나면 그때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진 않겠지.
지잉-
훈련장을 채운 룬의 결계가 이호연의 몸을 압박했다.
레베카가 사용하는 룬의 결계는 이호연과 같지만 달랐다.
그녀가 사용하는 룬의 결계의 극의는 그야말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마에스트로를 만났을 때 압박을 재현해달라는 부탁도 그래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호연이 기대하는 느낌과는 달랐다.
'압박이 강하긴한데….'
마에스트로를 만났을 때 느꼈던 것은 단순한 압박이 아니었다.
말료 표현하기 힘든, 조금 더 고차원적인 느낌?
레베카가 재현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마천궁 전개."
"으, 으읏…."
마천궁을 펼치자 이호연의 마력이 레베카의 마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온몸을 짓누르던 힘도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레베카는 미간을 좁히다가 결국 마력을 풀었다.
"항복, 항복! 힘들어 죽겠어. 하아."
"고마워요. 레베카 씨. 테스트해 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이 정도 가지고 뭘. 이제 됐지? 나는 스칼렛 양하고 릴리아나랑 놀러 가야 해."
"네. 천천히 놀다오세요."
오늘은 다 같이 쇼핑하러 간다던데 자신 없이도 잘 놀아서 참 다행이었다.
레베카가 떠나고, 이호연은 텅 빈 훈련장에서 마법을 수련하다 1층으로 올라왔다.
남다은과 남다희도 둘이 외출하러 가서 집에 있는 건 이호연 혼자였다.
"일단 바깥이라도 나가볼까."
악마와 마왕의 습격이 일어나기 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악마교였다.
원작에서는 마에스트로를 죽이고 마왕이 등장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만약 둘이 같이 존재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클리어는 엄청나게 힘들어지겠지.
'마에스트로를 처리할 수 있다면 인간이 뭉치는 게 훨씬 쉬워질거야.'
이호연이 각 국의 인사들에 걸린 세뇌를 풀긴했지만, 매번 신경쓸 수는 없다.
마에스트로를 처리해야 마왕의 습격을 막아내기 쉬울거다.
'마음 같아선 혼자 쳐들어가고 싶은데.'
당장이라도 마에스트로를 찾아 머리통을 부수고 싶지만, 그러다 자신이 당하기라도 하면 참사도 그런 참사가 없다.
하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조사한다고해도 언제 조사가 끝날지 모른다.
"일단 아카데미에 있는 한국 지부장이라도 만나볼까."
매번 엘리스에게 묻는 것도 좀 그러니 강효린 박사에게 직접 물어봐도 될 거다.
아이리스 길드에게 모든 걸 맡길 수도 없으니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것도 찾아보자.
이호연은 대충 옷을 챙겨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
아카데미의 교수실.
강효린 박사는 하품을 하며 서류를 정리했다.
본래도 아카데미 교수의 일과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장이라는 두 명분의 일을 해왔던 그녀지만, 오늘따라 더욱 피곤한 느낌이었다.
"… 요즘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강효린은 한국 지부장으로서 마인 조직을 조사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마인들의 움직임이 많이 포착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본거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 지부장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스칼렛이 데이트한다고 안 와서 그래. 에잉. 쯧."
정작 스칼렛은 여자들과 놀고 있었지만, 강효린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따가 안부 메시지라도 보내야지.
"하아암… 내가 어디까지 조사했더라?"
강효린은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그때, 이상한 부분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 이상하네. 내가 이곳을 안 갔다고?"
강효린은 눈을 찌푸리며 서류를 확인했다.
마인들의 움직임을 역추적해 조직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숨어있던 마인들의 본거지를 찾는 성과를 낸 것이다.
중요한 일이다 보니 조사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조사할 생각이었는데, 아직도 가지 않았다니.
뭔가 이상했다.
"아니지. 내가 분명 이틀 전에…."
어색함을 느낀 순간.
강효린의 눈이 탁 풀렸다.
텅 빈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던 강효린은 몇 분이 지나서야 정신을 되찾았다.
그녀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다가 스마트워치를 들었다.
"응…? 내가 뭐 하고 있었더라. 아, 스칼렛한테 안부 문자를 보내려고 했었나?"
강효린은 미소를 지으며 스칼렛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와 이호연의 관계를 놀리는 건 참 재밌었으니까.
강효린의 기억에서 마인 조직에 대한 서류는 이미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