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1화 > 마인 조직 (2)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학생회는 생도들에게 커리어였다.
들어가기도 어렵고, 활동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다른 생도들과 비슷한 성과를 요구받으면서도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지옥의 괴수가 습격한 지금도 학생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카데미가 조용한 지금도 학생회에는 불빛이 켜져있었다.
타닥- 탁- 탁-
문수린은 홀로그램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슬슬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이 정도 시간까지 일하는 건 익숙했다.
"끄으으읏."
몇 시간이나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더니 온몸이 쑤셔온다.
문수린은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확인했다.
학생회 임원들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참 고마운 친구들이야.'
문수린은 주먹을 쥐고 다시 일할 의욕을 불태웠다.
그나마 사람을 많이 고용한 덕분에 일찍 끝낼 수 있었다.
만약 전문 경영인을 안 구했다면 오늘도 밤을 새워야 했겠지.
이럴 때만큼은 호연이의 말을 듣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띠링-
그때, 문수린의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 우리 호연이 : 수린 누나. 임솔 교수님 연구실에 들렀다가 그쪽으로 가는 중이에요.
이호연에게 온 메시지였다.
문수린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피었다.
직장인이 퇴근 시간을 바라보며 하루를 버티듯, 문수린이 학생회 일을 버티는 건 한 남자 덕분이었다.
문수린은 잠시 일을 중단시키고 학생회장실에서 나왔다.
학생회 임원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
이호연을 만날 때는 단 둘이 있고 싶었다.
"얘들아.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다들 퇴근해."
문수린의 말에 학생회 임원들이 고개를 돌렸다.
"네? 아니에요. 아직 많이 남았는걸요."
"아니야. 다들 학생회 일 때문에 시험 점수 확보도 제대로 못 했잖아?"
학생회는 시험 점수에 보너스가 있지만, 그래도 점수를 확보해 놓는 게 좋다.
문수린의 말을 들은 학생회 임원들은 감격스러운 눈으로 문수린을 바라봤다.
"학생회장님…!"
"나머지는 내가 정리할게. 다들 돌아가. 빨리빨리."
문수린은 손을 저으며 학생회 임원들을 퇴근시켰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다급해보였지만, 임원들은 별 의심 없이 학생회를 빠져나갔다.
"후우…."
텅 빈 학생회실의 안.
문수린은 심호흡하며 무선 이어폰을 꼈다.
- 수린 누나. 언제나 고생이 많아요. 사랑해."
"나도…."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며 복잡한 머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호연이가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많이 힘들었겠지.
누나로서 자신이 잘 달래줘야 한다.
"오늘은 아무도 없으니까 길게 만날 수 있겠지?"
기분이 좋아진 문수린은 남은 일을 정리해 분류하기 시작했다.
전문 경영인에게 넘길 수 있는 건 넘기고 나머지는 아버지에게 부탁하면 된다.
직접 하는 게 가장 완벽하긴 하겠지만, 오늘은 호연이가 오는 날이니까.
딩동-
어느 정도 일의 정리가 끝나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간에 학생회실로 오는 사람은 이호연밖에 없다.
문수린은 서류들을 옆으로 밀어놓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갔다.
"호연아!"
"응?"
포옥-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백금발 머리카락이 자신을 덮쳤다.
이호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뛰듯이 안긴 문수린을 붙잡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문수린은 이호연의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대며 그를 끌어안았다.
강하게 이호연을 안으며 냄새를 맡다 보니 이호연을 만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저도 누나 보고 싶어서 빨리 찾아왔어요."
냅다 끌어안고 냄새를 맡는 게 어이없긴 했지만, 예쁜 사람이 하니까 이런 행동도 기분이 좋았다.
"누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엘리베이터 문이 안 닫히잖아요."
"응, 아! 그러자."
일단 몸에서 문수린을 살짝 떼어냈다.
문수린은 이호연에게 딱 달라붙은 채 학생회장실로 들어갔다.
"음료수는 늘 먹던 걸로 줄게."
"네."
응접용 소파에 앉아 학생회장실을 둘러봤다.
예전에는 올 때마다 서류가 한 무더기씩 있었는데, 이제야 깔끔한 사무실 같다.
"천천히 마셔. 호연아."
문수린은 이호연의 앞에 끌레르 로즈 라떼를 내려놓으며 그의 옆에 앉았다.
맞은 편이 아니라 옆에 앉는 이유는 당연히 오랜만에 만난 호연이랑 붙어있기 위해서였다.
"고마워요. 누나."
홀짝-
혀를 때리는 매콤한 맛.
이건 참 먹어도 먹어도 새로운 음료수다.
'잠이 확 깨네.'
임솔은 단 거에만 미쳐있고, 문수린은 끌레르 로즈 라떼에만 미쳐있다.
왜 이 사람들은 중간이 없을까.
가끔은 커피나 홍차 같은 평범한 걸 먹고 싶다고.
"성녀님이 직접 가겠다고 해서 안심하긴 했는데… 역시 후유증은 없어 보이네."
"네. 누나 덕분이죠. 성녀님이 미국으로 바로 올 수 있는 전용기를 준비해 주셨다면서요."
"호연이가 다쳤다는 데 당연하지."
이호연은 자신의 팔을 주무르는 문수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끔 이상한 짓을 하긴 하지만, 역시 그녀만큼 든든한 사람이 없다.
"맞아. 일단 일 얘기 먼저 해줄까? 호연이한테 얘기해줄 게 많아."
"저야 좋죠."
이호연은 문수린이 내민 서류를 확인했다.
"악마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진 건 알고 있지? 그래도 아직 눈앞에 다가온 위협은 없으니, 대부분은 괜찮긴 한데… 뒤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있어."
"악마교? 이게 뭐예요?"
"악마가 나타나서 세상을 멸망시킬 테니 지금부터 악마를 믿으라는 종교야. 신흥 세력인데 이상하게 사람이 많아서 뒷조사를 해봤더니 뒤에 마인들이 있었어. 이상하게 신도들의 신앙심도 비정상적으로 높아."
"… 마에스트로의 작품이네요."
"마에스트로라고?"
"네. 고위 인사들을 세뇌했던 것처럼 민간인과 마인을 세뇌한 거겠죠."
요즘 들어 조용하다 싶었는데, 또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류를 읽다 보니 원래부터 조금씩 활동하다가 최근 세력을 엄청나게 불린 모양이다.
'이런 거 원작에는 없었던 거 같은데.'
이건 나중에 아이리스 길드에게 부탁이라도 해봐야겠네.
"아, 이것도 주목해 볼 만해. 아이리스 길드에서 보내준 지옥의 문 주변 사진인데…."
이호연은 문수린이 준비한 서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동향을 잘 알 수 있었으니 확실히 빨리 온 보람이 있었다.
'악마교만 어떻게 하면 되겠네.'
마에스트로.
그놈은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편이 좋다.
이왕이면 마왕이 강림하기 전에 죽이고 싶었다.
"호연아. 내 말 듣고 있지?"
"아. 응. 잠시 생각을 좀 하느라."
"이 정도가 최근 동향이야. 악마교를 제외하면 엄청나게 새로운 건 없어."
문수린은 이호연의 옆에 딱 붙은 채 말을 이었다.
용건이 끝났으니 떨어질 만도 한데, 그녀는 떨어질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벌써 7시나 됐네."
"그러게요. 누나랑 있다 보니 시간이 빨리 가네요."
"응…. 하지만 오랜만에 봤으니까 좀 더 있고 싶어."
이호연의 손등에 부드러운 손이 얹혀진다.
마치 뱀처럼 슬쩍 올라온 손은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고, 동시에 문수린의 애처로운 눈빛이 이호연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아….'
이럴 줄 알고 임솔은 확실하게 끊고 왔는데… 막상 이렇게 들이대니까 마음이 약해진다.
이호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수린아. 오늘은 해야 할 일 없어?"
"호연이가 말한 대로 전문 경영인을 고용했더니 일이 많이 줄었어. 덕분에 호연이랑 이런 시간도 보낼 수 있잖아."
"… 그건 다행이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눈빛이 바라는 건 당연히 뜨거운 밤이겠지.
이호연은 그걸 눈치챘지만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기분 좋은 섹스는 자신도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섹스보다 중요한 일이 많았다.
"미안. 너무 부담을 준 건 아니지? 호연이가 바쁘면 그냥 돌아가도 괜찮아."
이호연을 바라보던 문수린은 천천히 손을 풀었다.
그녀는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시기가 이호연에게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 대신 키스 한 번은 해줄 수 있지?"
"… 당연하죠."
그 정도는 허락할 수 있다.
아니, 문수린이 싫다고 했어도 키스 정도는 했을 거다.
"호연아."
문수린은 이호연의 무릎 위에 올라왔다.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목과 어깨로 손을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 상태로 천천히 얼굴을 붙였다.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는 키스.
혀가 얽히고 타액이 섞인다.
문수린의 눈빛에 담긴 애틋함에 이호연도 키스에 집중했다.
"하아…."
짧은 키스가 끝나고, 입과 입에서 투명한 실이 이어진다.
자신을 바라보는 문수린의 약간 풀린 눈과 흐트러진 생도복.
이호연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문수린은 무언가 재미난 것이라도 찾은 듯 손을 아래로 내렸다.
바지에서 빠져나갈 기세로 단단하게 커져 있는 물건.
그것을 살살 쓰다듬자, 이호연의 몸이 살짝 떨렸다.
"호연아…?"
욕심인 건 알지만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려달라는 문수린의 몸짓.
이호연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지만, 이렇게까지 하는데 매정하게 몸을 돌리는 게 힘들었다.
"누나. … 밤이 되기 전까지는 돌아가야 해요."
"사랑해."
이호연의 말을 이해한 문수린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생도복을 풀어헤치고, 천천히 좋아하는 남자의 몸을 쓰다듬었다….
*
몇 시간 뒤.
텅 빈 학생회장실은 뜨거운 열기와 달콤한 숨으로 가득 찼다.
"… 결국 해버렸네."
나는 한숨을 쉬며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내 정신이 문제인 건지 이 몸이 문제인 건지.
한번 시작한 순간 몇 시간이나 박아야 직성이 풀린다.
이래서 히로인을 만나도 섹스를 자제하려는 거다.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악마의 습격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
하지만 임솔한테는 바쁘다고 말해놓고 바로 다음 약속에서 섹스를 해버리다니.
문수린이 집요하게 어필했다는 걸 감안해도 너무 나쁜 놈이었다.
'어차피 솔이도 금방 만날 테니까…. 그때 제대로 해줘야지.'
한 명만 하는 건 불공평하니까.
결국 돌아가면서 해줘야한다.
"으으응…."
고개를 내리자, 테이블에 누운 채 몸을 떠는 문수린이 보였다.
육식동물처럼 덤벼들었던 문수린은 몇 시간 만에 암컷이 되어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테이블에 올려놓고 박은 건 너무했나?'
그래도 기분 좋아 보이니까 괜찮다.
직접 꼬셨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누나. 저 이제 가보려고요. 일어나세요."
"호연아, 으, 으으…. 사랑해."
"수린아. 나도 사랑하지. 잠시만. 일단 놓고…!"
달라붙는 문수린을 떼어내고 그녀의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누나는 아직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해야겠네.
띠링- 띠링-
주변을 정리한 뒤 인사하기 위해 문수린을 깨우려는데, 스마트 워치가 울렸다.
- 엘리스 : 내일 한국에 갈 테니까 기다려! 네가 원하는 정보 엄청나게 들고 갈 테니까 도망칠 생각 하지 마.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엘리스.
난 스마트 워치를 보며 눈을 깜박거렸다.
"응?"
혹시 화났나…?
정체모를 오한이 몸을 떨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