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36화 (636/648)

< 636화 > 636. 성녀 (1)

악마.

지옥에서 가장 강한 생명체이자 최상위 포식자.

강자와 전투를 즐기고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본능을 가진 괴물 같은 종족.

그들은 싸우기 위해 태어나 싸우다가 죽고, 자신보다 강한 자를 만나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그런 악마들도 덤비지 못하는 존재가 있었다.

지옥의 지배자.

마왕.

마왕성의 마력을 몸에 받아들인 마왕은 지옥의 신이 된다.

지옥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는 모두 마왕의 명령에 따라야한다.

그가 평화로움을 원하면 지옥이 평화로워지고, 투쟁을 원하면 지옥이 불타오른다.

그리고 지금의 마왕은 인간계를 침략하기 위해 악마들끼리의 전투를 금지했다.

싸울 수 없는 악마들이 지구로 눈을 돌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차원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루시퍼를 필두로 악마들은 지구를 침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마왕의 후계자 루시퍼는 악마 중에 가장 강했지만, 다른 악마들에게 흥미가 없었다.

악마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가 다음 마왕이 된다면 악마들이 지구에서 마음껏 날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꿈도 잠시.

루시퍼가 하루아침에 행방불명되고, 휴식기에 들어갔다던 마왕이 지구 침략을 이어갔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마왕은 악마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신이 올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며 함부로 행동하지 말 것.]

악마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마왕의 명령은 지옥의 생명체가 저항할 수 없는 것.

따르기 싫어도 몸에 새겨진 지옥의 마력이 억지로 명령을 따르게 만들었다.

'함부로 행동하지 말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카르쿠스를 제외하고, 다른 악마들은 지옥의 문 주변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지옥에서 싸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지구에 왔는데 여기서도 싸우지 못했다.

심지어 지구에 있다던 루시퍼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으니, 악마들은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마왕이 도착하기 전에 악마들을 관리할 만한 존재가 나타났다.

"이사벨라 님. 카르쿠스가 생포 당했습니다."

충직한 마왕의 신하이자 루시퍼 다음으로 강한 악마.

아가레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카르쿠스가 생포 당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아가레스는 마왕에게만 충성하지만, 마왕님이 계시지 않는 지금은 그와 가장 가까운 이에게 충성해야 했다.

"당연히 인간에게 생포 당했다는 뜻이겠지?"

아가레스의 보고에 대답하는 건 서큐버스 퀸, 이사벨라.

서큐버스 퀸에게 마왕처럼 악마를 조종하는 힘은 없었지만, 본래 마왕과 가장 가까운 이의 명령을 듣는 게 지옥의 룰이었다.

마왕의 정부가 되면서 더욱 강해진 서큐버스 퀸은 그럴 자격이 있었다.

"예. 인간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와 마주친 모양입니다."

"카르쿠스는 멍청하니까 그럴 수 있겠네. … 하지만 생포 당했다니, 인간 중에 그런 강자가 있는 걸까?"

서큐버스 퀸, 이사벨라가 되물었다.

뛰쳐나간 카르쿠스가 하루 만에 죽은 것도 이해하기 힘들텐데 생포 당했다니?

아무리 멍청해도 카르쿠스는 악마였다.

그를 생포하는 것은 설령 루시퍼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투를 봤던 가고일의 뇌를 빼내 기억을 추출했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홀려버리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며, 아가레스는 서큐버스 퀸에게 기억 구슬을 넘겼다.

"기억 구슬이구나."

이사벨라는 별생각 없이 기억을 확인했다.

카르쿠스가 생포 당한 게 신기하긴 했지만, 사실 이사벨라는 악마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들은 마왕의 소모품.

그녀가 이렇게 빨리 지구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인간이 카르쿠스의 움직임을 잡아내다니…."

이사벨라는 가고일의 기억을 신기한 듯 감상했다.

인간과 대치하던 카르쿠스는 특유의 속도로 인간의 몸을 베어냈다.

그러나 인간도 만만치않았다.

카르쿠스에게 당하나 싶더니, 엄청난 반응속도로 카르쿠스의 다리를 잘라냈다.

카르쿠스의 속도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런 인간이 지구에 있을 줄이야.

완전한 힘을 갖추고 강림하겠다는 마왕의 말이 이해될 것 같았다.

'… 저것은?'

그때, 가고일의 기억을 보던 이사벨라의 눈가가 좁혔다.

강한 인간의 몸에 익숙한 마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큐버스의 음문(淫紋)?'

이사벨라는 서큐버스 퀸이었다.

다른 서큐버스의 흔적을 보는 건 그녀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서큐버스의 음문은 서큐버스가 주인과 관계를 가지며 자연스럽게 새겨지는 것.

카르쿠스를 생포한 인간의 몸에 새겨져있던 음문은 이사벨라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너무나 보고 싶었고, 찾고 싶었던 마력이었다.

'드디어 찾았네. 릴리아나'

서큐버스인 그녀가 마왕보다 빠르게 몸을 드러낸 이유는 지구에 있는 그녀의 딸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왕의 이름을 팔아먹으면 악마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나중에 마왕에게 들키면 골치 아프겠지만, 다행히 '지금의 마왕'은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날부터 정부인 자신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으니까.

마왕에게 릴리아나를 숨겨야 하는 이사벨라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아가레스."

"예."

"저는 지금부터 자리를 비우겠어요. 마왕님이 강림하시기 전까지 당신이 악마들의 수장입니다."

"예? 퀸이 계시는데 어찌 제가…."

"모든 게 마왕님의 뜻입니다. 악마들이 날뛰지 않도록 적당히 풀어주세요."

악마들이 시선을 끌어준다면 릴리아나를 찾는 것이 더 편해지겠지.

이사벨라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허공에 마력을 흩뿌렸다.

딸이 가진 마력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마력이 딸에게 닿는 순간, 릴리아나도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겠지.

'그때까지 마왕이 강림하지 않기를….'

그녀의 바람과 함께, 이사벨라의 몸이 어둠에 흩어졌다.

*

미국 헌터 협회에서 제공한 VIP 병실.

양팔에 주렁주렁 링거를 매달고 있는 이호연은 푹신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카르쿠스를 생포한 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눈앞이 캄캄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극한 상황에서 몇 번이나 미래 예지를 사용한 여파로 시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몇 시간이 지나자 제대로 앞을 볼 수 있었다.

몸이 아픈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미래 예지를 위해 블러드 비트를 한계 이상으로 사용하느라 마나 회로가 다쳤을 뿐 큰 외상은 없었다.

"…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괴수들이 있고, 인류의 적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번에 나타난 악마는 시작에 불과해요."

그렇기에 하루만에 이런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이호연은 침대에 누운 채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젤라 길드장의 부탁이었다.

"그렇군요…! 안정화되기 시작했다고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인터뷰 정말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맞아. 이호연 마법사님. 그… 안젤라 길드에 대해서도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방관했다는 비판 여론이 생각보다 있어서요…."

"안젤라 길드장의 판단은 굉장히 좋았어요. 그때 끼어들었다간 전부 죽었을 겁니다. 곧바로 의료팀을 불러준 덕분에 바로 치료받을 수 있었어요. 역시 미국의 대표 길드다운 판단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것도 인터뷰에 실을게요!"

기자는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두드렸다.

그녀는 이호연과 했던 인터뷰를 저장하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 어우. 온몸이 뻐근해 죽겠네."

기자가 병실에서 나간 뒤.

이호연은 몸을 일으켜 침대에 몸을 기댔다.

침대 옆에서 삑삑 소리를 내는 심박수 모니터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인터뷰도 끝났겠다.

때마침 할 것도 없었으니, 이호연은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뉴스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 마법사 협회의 연구실에 있는 악마 '카르쿠스'의 모습입니다. 이호연 마법사가 단독으로 생포한 카르쿠스는 지금까지 생포한 괴수들과는 격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고…

- 이호연 마법사가 보여준 전투는 마법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단순히 천재 마법사라는 단어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세계 최고의 마법사 자리를 굳건히 하는….

- 임솔 마법사를 주도로 카르쿠스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카르쿠스는 지금까지 나타난 지옥의 생명체와 다른….

카르쿠스는 때마침 미국에 있던 솔이가 직접 마법사 협회로 운반했다고 한다.

혹여나 다른 사람이 건드렸으면 다쳤을 수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다음은 에브리 데이.

뉴스보다는 직접 괴수들과 싸우는 생도들의 의견이 더욱 현장감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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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이번 기말고사는 시험이 아니라 지옥의 괴수들 잡은 걸로 점수 측정한다고 함!]

아직 공지가 나오진 않았는데 학생회 친구한테 들은 얘기라 거의 확실함.

태평양의 지옥의 문이 점점 범위를 넓히고 있고, 이번에 악마까지 발견되면서 전 세계가 다시 비상사태로 돌입한 거 알지?

학생회장님도 지금은 아카데미보다 괴수에 집중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하셨음.

그리고 지금까지는 비상사태 지원이라 보상이 없었잖아?

헌터 협회랑 협의가 끝나서 이제 생도 지원이 아니라 헌터처럼 보수를 받고 사냥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임.

참고로 검은 기둥이 없는 지역의 괴수는 훨씬 강해서 잡으면 추가 점수 있으니까 잘 생각해서 잡아야 함.

추천 : 521  비추천 :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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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나중에 현역 경력이나 마찬가지니까 나쁘진 않네.]

[시험 1등은 정해졌잖아. 이호연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ㄴ 와. 진짜 그렇네. 이거 아카데미에서 이호연 밀어주기 하는 거 같은데?]

[ㄴ 제대로 된 시험 본다고 니가 이호연을 이기겠냐.]

[이번에 이호연이 무슨 악마를 잡았다는데… 그건 대체 몇 점임?]

[ㄴ 나 이호연 싸우는 영상 봤는데 그냥 지금 1등 주는 게 나을 듯? 내가 보던 괴수들하고 차원이 다르던데.]

[ㄴ 이호연이 악마랑 싸우는 영상이 있어?]

[ㄴ 당장 에브리데이 메인에도 떠 있는데 눈은 장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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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데이 메인에 있다고?"

근데 전투 영상은 자신의 허락을 받고 퍼트리는 게 정상 아닌가?

눈을 떠보니 이미 전투 영상이 전 세계에 퍼져있었다.

유명인에게 초상권같은 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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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카르쿠스'와 이호연 전투 영상 (고화질 보정, 0.01 배속 포함)]

전 세계에서 난리 난 카르쿠스와 이호연 전투 영상임.

1배속, 0.1배속, 그리고 0.01배속 까지 가져왔음.

[영상]

[영상]

[영상]

전투를 직접 본 안젤라 길드장 말로는 S급 헌터인 자신도 눈으로 쫓는 게 불가능했대.

이호연이 저 괴물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안젤라가 끼기엔 전투가 너무 수준이 높아서 구경만 했다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음.

생포한 카르쿠스는 지금 마법사 협회에서 연구 중.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체라 까다롭다고 함.

이호연은 이 전투 이후로 미국 마법사 협회에서 입원한 상태.

성녀님도 미국으로 파견갔다고 하니까 잘 되길 빌어야 할 듯.

추천 : 1614  비추천 :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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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배속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0.01배속이 저 정도 속도면 카르쿠스는 대체 얼마나 빠른 거냐;]

[ㄴ 생포한 카르쿠스한테 다친 연구원이 한둘이 아니래. 혀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와서 공격했다는데.]

[ㄴ 뭔가 웃기면서 무섭네.]

[지옥의 문에서 나오는 괴물들은 원래 강했으니까 카르쿠스는 그렇다 쳐도 이호연은 머임? 어케 눈에 안 보이는 놈한테 마법을 맞추는 거야?]

[눈에서 피가 나는데 끝까지 악마 노려보는 거 진짜 멋있다….]

[ㄴ 나도 여기서 존나 지렸음]

슬쩍 댓글을 훑은 이호연은 영상도 재생했다.

자신과 카르쿠스의 전투는 영상으로 잘 남아있었다.

꽤 강한 헌터가 찍은 것인지, 의외로 전투를 잘 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동영상을 저렇게 잘 찍은 게 더 신기하네."

안젤라에게 듣기론 길드원 중 하나가 찍었다고 한다.

그 영상을 찍느라 자신을 안 도와줬다는 비판을 받는 모양인데, 인터뷰를 했으니 괜찮아지겠지.

'사람들도 영상을 보면서 더 긴장하는 느낌이고.'

괴수를 상대하는 게 안정화되기 시작했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안 그래도 어제부터 세계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관측된다고 했으니, 그것도 좀 찾아볼까.

똑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호연은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했다.

메디컬 체크 시간이었다.

"네. 들어오세요."

드르륵-.

문을 열고 이상한 기계들과 병실에 들어온 사람은 익숙한 흑발의 미녀.

자신때문에 미국까지 달려온 백아영이었다.

도도한 얼굴로 병실에 들어온 백아영은 문을 닫음과 동시에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울상을 지으며 이호연에게 다가왔다.

"여보…. 많이 아프죠? 흑."

"한 시간 전에 괜찮다고 했잖아요."

메디컬 체크 때마다 저런 반응이다보니 죽을 병이라도 걸린 것 같다.

이호연은 쓴 웃음을 지으며 백아영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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