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33화 (633/648)

< 633화 > 악마

이호연이 전 세계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이 지나도 태평양에 있는 지옥의 문은 여전했고, 인간을 덮치는 지옥의 괴수들도 여전했지만, 공격받는 인간의 대처는 확연히 바뀌었다.

이호연이 발표한 '괴수 공략집'은 새로운 바람이었다.

모든 괴수의 상대법이 세세하게 적혀있는 공략집 덕분에 지옥의 괴수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눈에 띄게 감소했고, 당연히 민간인들의 피해도 많이 줄었다.

공략집뿐만이 아니다.

마도구 '지옥의 마력 주입기'는 모든 헌터의 필수품이 되었다.

S급 헌터들은 검은 기둥을 부수기 위해 지옥의 마력을 익혔고, 하위 헌터들도 지옥의 마력을 몸에 흡수하는 것으로 괴수들의 공격을 더욱 쉽게 막아낼 수 있었다.

이호연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콰아아앙-!

미국의 서부 연안.

정수리에 얼음창이 꽂힌 외눈박이 거인이 비틀거리다 해안가로 쓰러졌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괴수도 정수리가 약점이라는 게 알려지고 나선 한결 사냥하기 쉬워졌다.

"이 정도면 지원도 필요 없겠는데. 흐흐."

"로스.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집중해. 저 새끼들 안 보여?"

스티븐은 동료 헌터를 질책하며 정면을 응시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그도 전투에서 질 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았다.

해안가에 남은 지옥의 괴수는 다섯 마리. 그리고 마인이 5명.

괴수와 함께 있는 마인들을 의식해 지원을 불렀지만, 마인들은 생각보다 전투력이 강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전력으로 충분히 토벌할 수 있다.

"알겠다고. 빨리 끝낸 다음에 술이나… 응? 잠시만, 저건 뭐지?"

어깨를 붕붕 돌리며 미소를 짓던 로스는 눈을 찌푸렸다.

괴수 뒤에 있는 마인들 사이에서 어둠이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스티븐은 불길한 어둠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그도 지옥의 마력 주입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 어둠의 정체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지옥의 마력…?"

괴수들이 뿜어내는 지옥의 마력은 몇 번이나 겪어봤지만 저렇게 진한 지옥의 마력은 처음이었다.

느껴지는 마력은 실수로 검은 기둥에 가까이 갔을 때보다 더욱 강렬했다.

"젠장! 이상한 짓 하기 전에 빨리 공격해!"

로스는 칼을 뽑으며 소리쳤다.

괴수와 마인의 전투력은 앞선 전투로 파악한 지 오래다.

이상한 짓거리를 하기 전에 제압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순간.

마인들이 만들어낸 지옥의 마력에서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뼈만 남은 듯 앙상한 팔은 무언가 잡을 것을 찾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다 이내 가까이 있던 마인의 머리를 붙잡았다.

악마는 마인의 머리를 짓누르며 어둠의 덩어리에서 천천히 몸을 빼냈다.

마치 소금쟁이처럼 얇은 팔다리를 가진 악마가 서서히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얼핏 보기에도 기괴한 광경에 헌터들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저게 뭐야? 새로운 괴수?"

"지원. 지원을 요청…."

헌터들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던 그때.

악마가 긴 팔을 흐느적거렸다.

콰삭-

의미를 알 수 없는 손놀림 한 번에, 주변에 남아있던 괴수와 마인들이 두 동강 났다.

악마는 얇은 다리를 움직여 마인의 목을 물어뜯었다.

챱. 챱.

피가 터지고 살이 파먹히는 불쾌한 소리.

"…."

헌터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몸이 도망치라는 신호를 보낸다.

눈앞의 괴물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적이다.

헌터들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끼기기긱… 끼, 끼긱….

그러나, 악마는 이내 고개를 돌려 헌터들을 바라봤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은 악마는 몸을 일으켜 인간을 향해 움직였다.

드드드드드득. 까드드드득….

마치 오래된 기계장치의 톱니바퀴를 억지로 돌리는 것 같은 소리.

생명체에서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망. 도망… 도망쳐!"

푸슛-

가장 먼저 움직인 로스의 몸이 축 늘어졌다.

도망치던 그의 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아, 아…."

콰득-

충격으로 무릎에 힘이 풀린 에일리의 머리가 망치에 맞은 듯 터져나갔다.

눈앞의 괴물에게 자신들은 날파리와 같은 존재였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압도적인 무력감.

저놈이 다가오는 것만으로 온몸의 세포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는 걸 알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인지를 뛰어넘은 공포에 팔다리가 뇌의 명령을 무시했다.

"아…."

끄드득-. 끄그극…

천천히 걸어오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바라보며.

스티븐은 자신의 죽음을 기다렸다.

*

쿵-!

마지막 미노타우로스의 배가 찢겨나가며 바닥에 쓰러졌다.

해안가에는 30마리가 넘는 괴수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괴수 사냥이 쉬워졌다고 해도 30마리가 넘는 괴수들은 수백 명의 헌터가 달려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 광경은 단 한 명이 해낸 업적이었다.

"와. 저게 이호연이구나. 나도 나름대로 지옥의 괴수를 잘 잡는다고 생각했는데…."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더니. 저런 걸 말하는 걸까요."

"… 하늘이고 나발이고 괴수보다 저 남자가 더 무서운데."

미국의 헌터들은 지옥의 괴수를 사냥하는 이호연을 보며 침을 삼켰다.

헌터 협회장이 믿을만한 지원군을 보낸다길래 왔더니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자신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혼자서 부대 할당량의 5배를 잡아버렸다.

해안가에 남은 건 난잡한 살덩어리와 핏자국뿐.

그것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 헌터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 못해 허무할 지경이었다.

'클린.'

그들이 느끼는 감상과 다르게, 이호연은 헌터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말도 처음엔 좋았는데 일주일째 들으니까 살짝 물리는 감이 있다.

몸에 묻은 모래를 털고 헌터들에게 다가가자, 부대의 대장이 몸을 쭈뼛거리며 말을 건네왔다.

"이, 이호연 마법사 님.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은 어디죠?"

"예?"

"지원을 요청한 다른 구역이요."

"아, C 구역입니다. 그곳은 마인도 함께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어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쪽은 제가 가볼게요."

고개를 살짝 숙인 이호연은 마력을 갈무리하며 C 구역으로 향했다.

뒤에서 헌터들이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 부족해.'

최근 며칠간 괴수들을 잡으며 각국의 안정화에 힘썼다.

이호연의 생각대로 검은 기둥이 없으면 괴수들은 인간의 위협이 되지 않았다.

기자 회견 이후로 세뇌에 걸린 인간을 거의 잡아냈고, 괴수 문제까지 해결했으니 생각보다 빠르게 세상이 안정화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호연이 상대하기에 괴수는 너무나 쉬운 상대라는 것.

저런 괴수들은 아무리 잡아도 강해지지 못한다.

"… C 구역이라고 했었지."

일단 맡은 일은 끝내야한다.

하지만 오늘까지 괴수 사냥을 돕고 내일부턴 미국에 있는 임솔 교수님하고 마법 연구라도 해볼 생각이다.

강해지는 건 차라리 그쪽이 더 빠를 것 같았으니까.

"근데 여기가 C 구역 아닌가?"

잡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C 구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C 구역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전장에서 사상자가 아예 없을 순 없는 법.

어쩌면 헌터들이 전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헌터를 죽인 괴수들의 소리라도 들려야 한다.

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까.

정체 모를 불안감에 이호연은 걸음 속도를 높였다.

- 끼긱. 끼기긱….

그때, 음습한 공기 사이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듣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소음과 섬뜩한 피 냄새.

이호연은 그제서야 해안가에 앉아있는 악마를 발견했다.

몸은 소금쟁이처럼 가늘고 길쭉했고, 움직일 때마다 팔다리에 달린 가시들이 긁히며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놈은 입이 붉어졌는지도 모른 채 정체불명의 뼈를 삼키고 있었다.

이호연에겐 익숙한 생김새였다.

"… 카르쿠스."

원작에서도 처음 등장하는 악마.

카르쿠스.

그 기분 나쁜 외형때문에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하게 되는 놈이다.

다른 악마들은 지성을 가지고 있기에 천천히 상황을 살피지만, 카르쿠스는 좀 더 본능에 몸을 맡긴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몸을 드러낸다.

끼기기기긱-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카르쿠스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뾰족한 머리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이호연을 탐색하던 카르쿠스는 이내 먹던 뼈를 던졌다.

눈 앞의 인간이 먹이라는 결론이 난 것이다.

- 인… 간…. 강하면… 맛있어….

"지랄하고 있네. 벌레 같은 새끼가."

이호연은 몸 내부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사실 서큐버스 퀸이 나타났을 때부터 예상하긴 했다.

마왕이 강림하기 전에는 악마들이 지구를 탐색하는 법이다.

"운이 좋다고 해야하나. 쯧."

이호연이 매일같이 현장의 정보를 들으며 직접 발로 뛰어봤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악마는 하나도 없었다.

즉, 저놈이 지구에 나타난 첫 악마라는 것.

이호연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찢어진 옷들과 박살 나 있는 헌터 협회 뱃지.

C 구역을 맡은 헌터들은 저놈에게 당한 모양이다.

비록 피해자들이 나오긴 했지만, 이호연이 카르쿠스를 만난 건 천운이었다.

저놈을 여기서 놓쳤다면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왔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두근. 두근.

루시퍼와 전투 이후로 오랜만에 심장이 빠르게 뛴다.

[전투 감각]이 곧 있을 전투를 대비해 몸을 깨우고 있었다.

급격히 예민해진 감각이 미세한 소리를 잡아내고, 머리가 차가워졌다.

"개안. 심."

카르쿠스는 아직도 머리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악마.

지옥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본능에 몸을 맡기는 그들은 최강이었기에 오만했다.

그렇기에 이호연이 공격 태세를 취하기 전까지 공격하지 않았다.

이호연의 입장에선 참 고마운 놈이었다.

"블러드 비트."

몸 내부의 혈액이 빠르게 몸을 순환한다.

마나 회로가 팽창하고 강한 마력이 몸을 휘감는다.

카르쿠스는 그제서야 기세가 달라지는 걸 느끼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천궁 전개."

화아악-

그러나 이제는 늦었다.

이호연은 금빛으로 빛나는 눈으로 눈앞의 악마를 노려봤다.

- 인간… 맛있는… 강한 인간… 아니, 악마……?

카르쿠스는 갑작스럽게 강해진 기세에 당황한 듯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한 손에 두개골이 들려있지만 않았어도 조금은 귀여웠을 것 같다.

"아크 컨저레이션."

이호연의 몸에서 지옥의 마력이 피어나고, 머리 위로 3개의 마력구가 떠올랐다.

도핑이란 도핑은 전부 했는데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만큼 눈앞의 악마가 강하다는 뜻이다.

"마침 샘플이 필요하긴했어."

악마를 공략하는 법은 없다.

그렇기에 공략집을 만들 순 없지만, 하나 정도 사냥해 놓으면 인류에게 큰 도움이 되겠지.

피식.

이호연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양감은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샘플?

그래. 있으면 도움은 되겠지.

하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호연에게 중요한 건 카르쿠스의 존재 그 자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강자와 싸움이 필요했다.

싸움으로써 한계를 뛰어넘고 더욱 강해져야한다.

몸 전체에 가득한 전투 감각을 느끼며, 이호연은 악마와 전투를 게시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