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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29화 (629/648)

< 629화 > 기자회견 (2)

빅토리아 아카데미가 소유하고 있는 빅토리아 컨벤션센터.

서울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전시장에는 전세계에서 온 인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호연 한 명 때문에 한국까지 찾아오는 게 불만인 사람들도 조금 보였지만, 대부분은 진중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지옥의 문과 괴수들, 그리고 검은 기둥에 대해서 말할 거라는 찌라시가 퍼졌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가 계엄령을 선포한 지금.

고위직들이 이렇게 모인 것만으로 이호연의 기자회견에 얼마나 관심이 쏠리는지 알 수 있었다.

이름은 기자회견이지만, 정작 고위직들이 자리를 차지하느라 기자들은 구석으로 몰렸다.

각국에 송출될 인터뷰는 대변인들이 맡았고, 고위 직위자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려는 기자들도 경호원들에게 뒤로 밀려나다 보니 결국은 구석에 합류했다.

그 중에선 툴툴대는 기자도 있었다.

"… 이호연 마법사의 기자회견이 이렇게 커질 일이 맞아? 이호연 마법사가 아무리 대단해도 전 세계 연구진들보다 대단하다고?"

"이봐, 소식 못 들었어? 이대로 가면 지구 멸망이야. 이호연 마법사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

며칠간 수많은 연구진이 지옥의 괴수 연구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운 좋게 태평양의 어둠 안쪽으로 침투한 드론 한 기가 보낸 영상 때문이었다.

지금 인간을 습격한 괴수들도 막기 벅찬데, 그 괴수들보다 크고 강한 놈들이 끝없이 지옥의 문을 건너고 있었다.

- 현상 유지도 힘들지만, 괴수들이 제대로 습격한다면 절대 막아낼 수 없다.

그것이 연구진들의 결론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막 성인이 된 이호연 마법사의 기자회견에 전 세계의 인사들이 찾아오는 게 말이 돼?"

"미국 헌터 협회장랑 마법사 협회장이 왔는데 다른 나라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게다가 아이리스 길드장과 안젤라 길드장까지 직접 찾아왔어. 이런 자리를 빠질 정도로 눈치가 없는 놈이면 목을 내놔야지."

[이호연 마법사가 곧 입장하겠습니다.]

그때, 단상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다들 정면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기자들은 잡담을 멈추고 카메라를 들거나 스마트 워치를 준비했다.그들은 이호연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해야 했다.

각 나라의 방송국들도 생중계 카메라를 돌렸다. 인터넷에도 큰 관심을 받는 기자회견이었기에 생중계는 예정된 일이었다.

"이제 시작하는 모양이군요. 아이작 님."

"과연 우리 사위가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해줄까."

"예? 사위라고요?"

"쉿. 집중하게. 올라오고 있어."

아이작은 2팀장의 입을 다물게하고 정면을 바라봤다.

서로 인사를 나누던 고위 인사들의 표정도 제각각으로 변했다.

그들 중 일부는 눈가를 좁혔고, 일부는 좋은 결과를 기도했다.

저벅. 저벅.

곧이어 단상 위로 한 남자가 천천히 올라왔다.

누구나 호감을 느낄 만큼 조각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깔끔한 정장 차림은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여서, 기자들은 그가 보이자마자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위에서 보니까 사람이 엄청나게 많네.'

단상에 오른 이호연은 정면을 힐끔 확인했다.

최근 들어 사람이 없는 곳만 다녀서 그런 걸까.

마법사 학회에서 연구를 발표했을 때 이후로 이런 직접적인 관심은 오랜만이었다.

괜히 정장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넥타이를 제대로 맨 건가 신경이 쓰인다.

"크흠. 아아. 흠."

심호흡을 한 이호연은 헛기침하며 목을 풀었다.

긴장을 풀려고 노력해 봐도 영 쉽지가않았다.

이호연은 오랜만에 무거운 어깨를 느끼며 무대 위로 올라섰다.

단상에 서자 시끌시끌한 소리가 제대로 느껴졌다.

플래시 라이트의 밝은 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고, 찰칵찰칵하는 셔터음이 들려왔다.

[각국에서 찾아와 주신 귀빈분들과 언론인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지금부터 이호연 마법사의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질의응답은 이호연 마법사의 말이 끝난 뒤에….]

옆에서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장 강효린의 말이 들려온다.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

잠시 눈을 감은 이호연은 생각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정말 중요했다.

지금까지 준비해 온 자신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알릴 중요한 기회였다.

이 순간만큼 이호연의 발언권과 존재감이 높은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히로인들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호연은 이번 관문을 뛰어넘어야 했다.

"하아…."

감았던 눈을 떴다.

이호연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수 천명이 이호연 한 명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진 않았다.

[뚜렷한 정신력]

일부러 멀리하던 특전을 사용했다.

오랜만에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기자회견을 보는 시점에선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서보니 부담감이 엄청났다.

이 정도는 극복해야 정치인으로 먹고살 수 있는 거구나.

이호연은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입을 열었다.

"이호연 마법사입니다. 검은 기둥과 정체불명의 괴수 습격에 대해서 궁금증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전부 말씀드릴 생각이니 천천히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끄럽던 셔터음이 조금씩 줄어든다.

이호연은 준비한 말을 천천히 풀어냈다.

"저는 검은 기둥이 나타난 순간부터 연구를 지속해 왔습니다. 이윽고 검은 기둥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마력을 내뿜는다는 걸 깨달았고, 그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이리스 길드와 빅토리아 아카데미를 통해서 사실을 전파하려 했지만, 이미 고위직들은 세뇌당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일이 편해졌겠지.

"이번 사건은 던전이나 게이트 같은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테러 집단 판데믹이 주도한 테러입니다. 그들은 지옥의 문을 열어 다른 차원의 괴수들을 지구에 불러들였습니다."

이호연은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장 강효린 박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자 회견이 시작하기 전, 아이리스 길드에게 부탁한 자료들이 고위 인사들과 기자들에게 나눠줬다.

- 이, 이건…. 검은 기둥을 부수는 방법인가?

- 외눈박이 거인의 약점이 눈이 아니라 정수리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생포한 괴수에게 확인해보라고 해!

- 지옥의 마력을 일반 헌터들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는 건 무슨 뜻이지?

괴수들의 약점과 지옥의 마력을 사용해 괴수들에게 대항하는 방법을 정리한 연구자료.

이호연이 직접 만든 공략집이었다.

시간을 들여서 모든 괴수들의 약점을 정리해놨으니, 이걸 익히기만 해도 전투에서 희생되는 헌터들이 줄어들 거다.

현재 지구는 원작 시점보다 전체적인 능력자의 수준이 낮고, 지옥의 마력에 익숙하지도 않다.

인간의 결속이 단단하지도 않고, 아직도 자신의 이득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엔 이호연이 있었다.

본래 몬스터는 상대법을 알기 전까지 피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법.

이것이 게임이라면 플레이어가 상대법을 안다고 해도 NPC에게 알려줄 수 없지만, 지금은 게임이 아니다.

상대법을 아는 건 분명히 유리한 상황이다.

지옥의 괴수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옥의 마력을 익힌 뒤 약점을 공략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이것은 저와 아이리스 길드, 그리고 빅토리아 아카데미에서 연구한 괴수들의 상대법입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지옥의 마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법사 협회에서 만든 마도구가 있다면 누구든 지옥의 마력을 익힐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마법사 협회에서 양산하는 마도구를 헌터들에게 하나씩 쥐여주기만 해도 전투력이 유의미하게 상승한다.

10과 11은 차이가 적지만, 0과 1은 차이가 크다.

'그 상태에서 검은 기둥을 부수기 시작하면 돼.'

한국과 프랑스에서 봤듯이 지옥의 마력이 없는 괴수들은 일반 헌터들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검은 기둥이 없어져 약해진 데다가, 인간들이 지옥의 마력을 익히고 괴수들의 상대법까지 아는 상태라면… 괴수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어째서 이런 정보를 제가 알고 있는 건지 의문인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 이제서야 말하는 건지도 궁금해하실 겁니다."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선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이호연이 주목받은 이유는 검은 기둥을 가장 먼저 부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괴수들의 약점을 아는 건 논리적인 비약이었다.

마도구는 지옥의 마력을 연구했다는 핑계가 있지만, 검은 기둥을 부쉈다는 것만으로 괴수의 약점을 전부 아는 건 너무 어색했으니까.

게다가 이런 정보를 이제야 공개하는 것도 조금은 의심스러울 거다.

자신이 괴수의 약점을 아는 이유는 원작 게임을 플레이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말할 순 없으니,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이것은 판데믹의 마인들에게 직접 얻은 정보입니다. 저는 최근 미국에 숨어들어온 판데믹의 스파이들을 생포했습니다. 그들은 겁 없게도 미국의 헌터 협회장님과 안젤라 길드장에게 접촉했습니다."

이호연의 말에 깜짝 놀란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고, 미국 헌터 협회장과 안젤라 길드장은 이호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 회견이 시작하기 전, 이미 말을 맞춰놓았다.

"스파이들에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현재 판데믹에게 세뇌당한 사람들이 각국의 요직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세뇌당한 고위인사들은 저의 연구 결과가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언론을 이용해 절 공격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그들의 정체를 낱낱이 밝히겠습니다."

웅성웅성.

이호연의 폭탄 발언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고위직들은 눈을 찌푸리거나 서로 쑥덕거렸고, 기자들은 특종을 잡았다는 생각에 흥미를 보였다.

- 정확히 누가 배신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정체를 밝혀주시죠!

- 출처가 확실한 정보입니까? 지금 이호연 마법사의 기자회견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

"제 발언의 증거를 지금부터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이호연은 대답과 동시에 마력을 일으켰다.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해야 최대한 관심을 많이 받을까.

엄청나게 고민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마천궁 전개.'

몸 안에서 끌어올린 마력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이내, 컨벤션 센터 내부가 이호연의 마력으로 가득 찼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한 명의 마력이라고…?"

고위 인사들의 경호원들은 이호연의 마력을 느끼자마자 긴장하며 정면을 바라봤다.

눈 깜짝할 새에 공간을 채운 마력은 지금 당장이라도 흉기로 변해 자신의 목을 노릴 수 있다.

"…."

이호연은 주변에서 살기를 무시한 채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무력시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무력시위만큼 강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건 또 없거든.

이런 자리에서 어그로 한 번 끌어주면 이번 기자회견에 관심을 갖기 싫어도 가지게 될 거고, 고위 인사들도 자신의 말을 절대 무시할 수 없을거다.

"세뇌에 걸린 사람을 밝혀내는 법은 쉽습니다. 테러 집단 판데믹은 자신들의 세뇌를 푸는 방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벅. 저벅.

이호연은 긴장하고 있는 고위 인사들 사이를 지나 미국 헌터 협회 에커먼 회장에게 다가갔다.

살짝 고개를 숙인 뒤, 정중한 말투로 부탁했다.

"에커먼 회장님. 제가 말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호연 마법사의 부탁이라면 어렵지 않지."

"투 아르마 마에스트로."

"투 아르마 마에스트로."

에커먼 회장은 세뇌어를 말한 뒤 어깨를 으쓱했다.

이호연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평범한 사람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는 문장입니다. … 그러나."

이호연은 몸을 돌려 한국의 고위 인사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갔다.

몇 번이나 만남을 요청했지만 만나지 못한 사람.

한국의 헌터 협회장.

검은 기둥을 부수는 자신을 감싸준 수린 누나에게 막말을 하셨던 분이다.

"협회장 님. 제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해 주시겠습니까?"

이호연은 눈 앞의 남자가 뿜어내는 불쾌한 마력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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