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8화 > 기자회견
이호연은 루시루미 쌍둥이를 데리고 B 구역 내부를 거닐었다.
이미 지옥의 괴수는 전부 처리했지만, 혹시나 일반인이 남아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섬나라가 아닌 게 다행이지. 뉴스에서 일본은 큰일 났다던데?"
루시는 바다를 좀먹고 있는 어둠을 보며 몸을 움츠렸다.
일본의 해안선을 따라 동해를 채우고 있는 어둠은 지금 이 순간에도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루시. 혹시 모르니까 그쪽에 가까이 가면 안 돼."
"루미도 조심해. 내가 바다 쪽에서 갈 테니까."
"아니야…. 내가 그쪽에서 걸을게."
이호연은 서로 바다 쪽에서 걷겠다는 쌍둥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남자가 여자를 인도 쪽으로 안내하는 건 봤지만, 쌍둥이가 서로 양보하는 장면은 꽤 귀했다.
"이호연, 근데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도 돼?"
"여유로운 게 아니라 순찰이야."
"네가 괴수들은 전부 죽였다면서. 이제 남은 일반인도 없을 텐데."
"없다고 확신할 순 없지. 혹시 모르잖아."
이호연은 스마트 워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구역이 생기면 곧바로 출발하려고 했는데, 그런 구역이 없었다.
그만큼 한국에 나타난 괴수들이 약하다는 뜻이다.
"호연 씨? 왜 그러세요…?"
이호연은 자신이 준 음료수를 홀짝거리는 루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루미는 결국 루시에게 밀려서 인도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냥 귀여워서. 요즘은 너희들 괴롭히는 기자들 없어?"
"검은 기둥을 부수러 다닐 때는 엄청나게 연락이 오긴 했어. 네 말대로 다 무시했지만."
"네. 특히 호연 씨를 소개해달라는 연락이 엄청 많았어요. 방송국이나, 음… 기자들이요.
"잘했어. 너희들도 이제 유명해졌더라."
검은 기둥을 부수러다닌 히로인들은 전부 유명해졌다.
레베카와 릴리아나는 아이리스 길드 소속으로 알려졌다고 하던데, 너무 유명해져서 릴리아나는 방송도 쉬고있다고 한다.
루시와 루미도 검은 기둥을 부수러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쌍둥이의 실력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대부분 긍정적인 관심이었다.
"… 아마 더 유명해질 거야. 각오해 둬."
"헉. 정말요?"
"앞으로도 검은 기둥을 부수러 다녀야 하니까."
세계에 남은 검은 기둥은 아직도 많았다.
물론, 이제부턴 다른 사람들도 검은 기둥에 관심을 가질 거다.
히로인들에게만 짐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
"슬슬 가자. F 구역에 외눈박이 거인이 세 마리나 나타났대."
"헉. 조심하세요. 호연 씨."
"우리만 조심하면 돼. 루미."
이호연은 쌍둥이를 데리고 F 구역으로 향해 걸었다.
F 구역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니 어둠을 안 봐도 되겠지.
'한 마리 정도는 생포해볼까.'
좋은 연구 소재가 될 거다.
*
지옥의 괴수가 세계를 덮친 지 3일이 지났다.
한국과 프랑스가 안정화되기까진 3일이면 충분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 소속 생도와 교수가 위험한 구역에 파견되고, 아이리스 길드원들이 프랑스 내부를 단단하게 방어했기 때문이다.
지옥의 마력을 얻지 못하는 괴수들은 인간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다른 나라들은 아직도 고전 중이었다.
점점 강해진 지옥의 괴수는 인간을 전부 파악했다.
이제는 처음 발견한 도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인간도 가만히 맞고 있지는 않았다.
- 지옥의 괴수들이 검은 기둥에서 나오는 지옥의 마력에서 힘을 받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인간이 지옥의 마력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호연은 거실에 앉은 채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확인했다.
전 세계가 비상사태인 만큼 적에 대한 연구는 더욱 활발했다.
자신이 곳곳에 뿌려놓은 루시퍼의 시체가 드디어 효과를 보고 있었다.
이호연의 마력이 아니면 지옥의 마력을 인지할 수 없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실력 있는 헌터들은 대부분 지옥의 마력을 겪었을 거다.
'마법사 협회에 부탁한 마도구가 완성되면 일반 헌터들도 지옥의 마력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상황이 좋아지겠어.'
지옥의 마력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검은 기둥과 지옥의 괴수들 사이의 연결을 찾아냈다.
확실한 물증이 생겼으니, 이호연의 발언에도 엄청난 무게감이 생겼다.
엄청난 피해자가 나왔지만 역설적으로 마왕을 막는 것에 다가가고 있었다.
지잉- 지잉-
"연락은 일부러 안 받는 거야?"
릴리아나는 막대사탕을 쪽쪽 빨며 이호연에게 물었다.
"지금 바로 기자들한테 인터뷰할 순 없잖아. 최대한 이목을 끌고나서 해야지."
"좋은 생각이십니다. 호연 님."
옆에서 릴리아나의 어깨를 주무르던 스칼렛이 대답했다.
"하, 근데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내는 거지? 스칼렛. 네가 팔아먹었어?"
"저라면 집 주소를 팔았을 겁니다."
"…."
그래도 집 주소는 미리 손을 써놔서 다행이었다.
아이리스 길드 한국 지부장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이호연의 집 앞은 기자들로 가득 찼을 거다.
"쯧. 어쩔 수 없네."
혀를 찬 이호연은 스마트 워치를 들었다.
아무리 차단해도 계속 다른 번호로 전화가 오니 뉴스를 볼 수도 없었다.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솔이나 엘리스의 연락은 어차피 못 받겠어.'
이호연은 스마트 워치를 조작해 통화와 메시지를 아예 차단했다.
그리고 SNS와 인터넷을 확인했다.
뉴스와 다른 의견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
[이제야 검은 기둥 부수기 시작한 해외 상황....]
이번에 전 세계를 습격한 괴수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생도들이 많을텐데....
[영상]
[영상]
[영상]
[영상]
...
영상 보면 알겠지만 다른 나라들은 이런 괴물들이랑 싸우고 있었던 거임 ㄷㄷ
괴물들 피부 단단한 거 보이지? 마법이 통하지도 않음.
[영상]
이건 바로 몇 시간 전에 밝혀진 연구인데, 생포한 괴수들이 검은 기둥에 가까이 갈수록 강해진다고 함.
즉 검은 기둥이 지옥의 괴수들한테 힘을 주고 있는 거임.
전 세계에서 한국이랑 프랑스만 검은 기둥이 없는 거 알고 있지?
아이리스 길드랑 빅토리아 아카데미가 주도한 검은 기둥 부수기가 이제와서 재평가받는 중임.
특히 제일 먼저 검은 기둥을 부쉈던 이호연이 엄청나게 주목받고 있음.
선구안이라면서 전 세계에서 이호연을 찾고 있다고 함.
추천 : 1572 비추천 : 231
-------------------------
[이미 해외 상황 다 알려졌는데 괴수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음? 뒷북 오지네]
[와, 이거 진짜임? ㅅㅂ 나 인기 글만 보고 이호연 욕 존나 했는뎅. 미안하네....]
[ㄴ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기자들이 매일 어그로 끄는 기사만 쓰는 거야 ㅋㅋ 팩트를 알아볼 생각도 안 했으면서 일단 욕부터 하는 새끼들 ㅋㅋ] (삭제되었습니다)
[ㄴ 이 새끼 작성 글에 이호연 욕하는 거 있는데 머임?]
[임솔 교수님은 왜 미국에 있는 거야?]
[ㄴ 교수님도 생도들하고 같이 검은 기둥 부수러 다녔잖아. 마법사 학회 요청으로 검은 기둥 부수는 거 도와주고 있대.]
[해외 커뮤니티 들어가 보면 지옥도가 따로 없음. 바다랑 가까운 도시는 대부분 폐허가 됐고, 내륙 지방도 날아오는 괴수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함.]
[오히려 이호연을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기 혼자 그런 걸 다 아는 거임?]
[이호연 글에 항상 비추했는데 오늘은 추천한다.]
이호연은 에브리데이를 훑어보며 여론을 파악했다.
습격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욕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여론이 완전히 돌아선 것 같았다.
임솔 교수님은 마법사 학회의 요청으로 미국에 갔고, 아이리스 길드도 프랑스 주변 나라들의 검은 기둥을 부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드디어 전 세계가 자신의 말에 주목할 때가 됐다.
"호연 님. 오늘 오후에 대책 회의는 참석하실 건가요?"
"아니. 안 갈 거야."
"예?"
"한국은 어차피 피해가 없는데 한국 사람들끼리 대책을 왜 세워."
"그럼 뭘 준비하시는 건가요?"
스칼렛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이호연은 하루종일 집에서 쉬고 있었다.
어제까지만해도 괴수가 나타나는 곳마다 쏘다니던 모습과 달랐다.
"기자 회견을 열거야."
상대는 만만한 적이 아니다.
이호연이 마왕을 죽인다고 해도, 지구가 멸망하면 말짱도루묵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선 인간들이 결속해야한다.
'그 전에 방해물을 전부 치워야지.'
세계 곳곳엔 마에스트로에게 세뇌받은 고위직들이 많이 남아있다.
아무리 이호연이 하는 일이 옳다고 해도, 그들이 전부 자신을 막는다면 일이 귀찮아진다.
그렇다고 하나 하나 찾아가서 세뇌를 푸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한창 몰려있는 지금.
억지로 그들을 끌어내려야한다.
*
전 세계가 괴수의 습격을 막기에 급급하던 때.
이호연의 기자회견 소식은 전 세계를 뒤집기에 충분했다.
[누구보다 먼저 검은 기둥을 부순 남자. 천재 마법사 이호연의 기자회견!]
[천재 마법사 이호연 '지옥의 괴수를 막아낼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을 제시하겠다.']
[한국과 프랑스의 사상자는 100명 미만? 기적의 마법사 이호연이 한국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빅토리아 아카데미 학생회장 문수린 '이호연 생도의 도움이 없었다면 한국도 다른 나라와 같은 피해를 입었을 것.' 아이리스 길드장 아이작 '전 세계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각 나라의 대표와 대형 길드들은 전부 참여해야 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엄청난 피해가 나오고 있는 만큼, 이호연에 대한 집중도가 커졌다.
[왜 이제야 공식 선상에 나온 것이냐.],[사실 이호연이 흑막 아니냐.] 같은 쓸데없는 의심도 있지만, 이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다.
"역시 아버님이 눈치가 빨라. 이 정도는 해줘야 정보 길드의 대표지."
이호연은 인터뷰를 보며 씨익 웃었다.
아이작 덕분에 기자회견에 직접 찾아올 사람들이 늘었다.
이 정도면 기자회견이 아니라 연설이라고 봐도 된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에게 피해가 생겨야 급하게 움직인다.
각 나라의 정상과 대형길드의 길드장들이 움직이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아무 증거가 없다면, 이호연의 주장은 어떻게든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괴수와 검은 기둥의 연관성이 대중에게 알려진 이상 그들도 대중의 목소리를 무시할 순 없었다.
결국 일반 시민이 없으면 길드와 나라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미국의 대통령, 헌터 협회장, 마법사 협회장, 그 외 대형 길드장 10명이 한국으로 향할 예정.]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호연. 그가 무슨 말을 꺼내는가.]
게다가 이호연의 진심을 알아주는 미국의 대표들이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나라도 적당히 인사치레만 할 수는 없었다.
각국에서 한 자리씩은 먹고 있는 사람들과 대형 길드장들이 이호연의 기자회견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오늘.
기자회견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