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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04화 (604/648)

Chapter 604 - 604화. 범인은 이호연이었습니다 (13)

"커흡, 지금 뭐하는 거냐…!"

마나 회로가 갑작스럽게 뒤틀렸다.

그 피해를 그대로 감당한 문성민은 피를 토하며 침대에 쓰러졌다.

이호연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고통스럽긴 해도, 마인의 치유력이라면 이 정도는 상처도 아니겠지.

심지어 완전한 컨디션까지 휴식을 취하셨으니 한 시간 정도면 다 나을 거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장인어른. 뭐 하시는 거에요? 수린 누나한테 인사도 안하고 사라지는 건 아버지로서 할 행동이 아니잖아요."

"… 수린이에게 말하면 떠나게 두지 않을거다."

"그럼 안 떠나면 되는 겁니다. 수린 누나도 그걸 원할 거예요."

문성민은 입을 다문 채 눈을 감았다.

문수린은 자신을 버린 아비를 거두어 옆에 두려고 할 정도로 너무나 착했다.

그 점이 오히려 약점이 된다.

"…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미 수린이에게 너무 상처를 줬어. 더이상 수린이에게 민폐가 될 순 없다."

자신은 인간이 아닌 마인이다.

빅토리아 아카데미에게도, 문수린 개인에게도 약점이 된다.

자신의 존재는 문수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성민은 평범햇던 아내를 잃었기에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눈을 감을 때마다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눈을 감으면 내가 죽인 사람들이 떠오른다."

문성민은 마인으로서 자아를 거의 잃었을 때, 아내의 복수와 상관없는 민간인들까지 건드렸다.

뒤늦게 정보를 접한 문성민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내라는 트라우마가 무뎌지자, 무고한 희생자들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난 수린이의 곁에 있을 자격이 없어. … 최대한 조용히 사라지는 게 수린이를 위한 일이란 말이다."

"하아…."

이호연은 문성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눈이 죽어있다.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눈앞에서 사라진다.'

문성민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겠지.

아버지로서 수린 누나를 도와주긴커녕 해가 되긴 싫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호연에게 그런 사정은 중요하지 않다.

"장인어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힘든 건 저한테 중요하지않아요."

아내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마인이 된 문성민.

그의 복수는 허무하게 끝난다.

아내를 죽인 마인들은 이용당한 조무래기들이었고, 진짜 범인들은 정체를 숨겼다.

'결국 모든 마인을 죽여버리겠다면서 미쳐버리지.'

문성민의 사연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딱한 것도 알고 있고, 자신도 그 처지에 놓여있었다면 문성민처럼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제게 중요한 건 장인어른의 기분이 아니라 수린 누나예요."

이호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의 감정에 휘둘려서 도망쳐버리면, 남은 수린 누나는 어떡하라고.

그건 눈 앞의 일에서 도망치는 거지, 정말로 문수린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렇게 후회하고 있으면서 또 후회하시려고요?"

"…."

"수린 누나에겐 장인어른이 필요합니다. 수린 누나를 위해 남아주세요."

"나는…."

이호연의 말을 들은 문성민은 입술을 옴짝달싹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

이호연과 문성민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바깥에서 대기하던 문수린은 1분 1초도 아끼기 위해 아카데미의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 학생회장 님. 아카데미 정상화와 관련된 안건을 제출했습니다. 곧 교수들도….

- 학생회장 님. 올해 빅토리아 아카데미 운영비 절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 안녕하십니까. 철혈 길드 팀장 민예지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1학년인….

루시퍼의 습격에서 받은 피해가 대부분 정상화되고, 이제부턴 아카데미의 정상화를 논할 시기였다.

언제까지나 쉬고 있을 순 없었으니까.

아카데미의 이사들이나 교수들의 복귀.

보안 협력업체나 대형 길드와의 미팅.

교보재, 보호장비, 포션, 냉병기를 구입하는 것까지.

전부 문수린의 업무였다.

"할아버지가 없으니까 더 힘들긴 하네. 역시 호연이 말을 들어야 하나."

이사장이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였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일은 문수린이 맡았다.

이호연이 말한 대로 전문 경영인을 구하면 문수린의 부담이 훨씬 덜해지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직접 관리하던 아카데미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이 거부감이 들었다.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자신의 부모님이 남겨주신 것이니까.

"하아…."

문수린은 고개를 들어 병실을 바라봤다.

저 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자신의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저번에는 딸을 잘 부탁한다고 주책을 떨었다는데, 이번에는 어떤 대화가 오갈 지 궁금했다.

'이상한 말만 안 했으면 좋겠는데.'

어릴 땐 아버지가 그리웠다.

나이를 먹으며 원망했고, 이제는 별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아버지를 볼 때마다 긴장되는걸까.'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감정이 어떤 지.

문수린 자신도 잘 모르겠다.

"… 호연이 목소리라도 들을까."

답답한 상황에서 문수린은 이어폰을 꼈다.

이럴 때 마음의 안정을 가져오는 건 이호연의 목소리였다.

[호연이의 사랑 고백]

- 수린 누나. 사랑해….

"호연아, 나도 사랑해."

달콤한 목소리에 머리가 차분해진다.

호연이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다시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진다.

사실 이호연을 한국에 돌아온 날에 곧바로 봤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만났다.

아카데미 일만 아니었다면….

"응?"

문수린은 눈을 크게 떴다.

이호연이 전문 경영인을 구하라고 한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호연이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구나…."

아카데미 일 때문에 만나지 못하는 게 슬프니까 일을 줄여서 자신과 더 만나자는 말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더욱 보고 싶다는 뜻이겠지.

이호연의 마음을 알고 나니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사랑스러웠다.

"역시 전문 경영인을…."

끼익-

그 순간,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병실의 문이 열리더니 이호연이 걸어 나왔다.

이호연은 자신을 보고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호연아! 다 끝난 거야?"

"네. 잘 마무리했어요."

이호연에게 다가가 안긴 문수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문 경영인. 고용하기로 마음먹었어. 호연아."

"정말요? 휴우, 좋은 선택이네요."

이호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수린의 과로는 문제가 될 수준이었다.

그대로 진행했다간 분명 사고가 생겼을 거다.

"응. 이제 더 자주 볼 수 있겠지?"

"… 그럼요. 당연하죠."

쩝.

사실 문수린이 바빴던 만큼 히로인들을 만날 때 스케줄 관리가 쉽긴 했다.

하지만 저렇게 기쁜 얼굴로 웃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말을 하겠어.

'과로로 쓰러지는 것보단 낫지. 열심히 하면 더 자주 볼 수도 있을거고.'

이호연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문수린을 안아줬다.

"맞아. 아버지랑은 무슨 말을 한 거야?"

"그건 누나가 들어가 보면 알 거예요."

이호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문수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성민과 문수린 사이에 있는 감정의 골은 부녀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자신이 낄 자리는 아니다.

*

[검은 기둥과 천재 마법사 이호연의 수상한 행동.]

[빅토리아 아카데미와 이호연의 거래내용은?]

"미친 새끼들."

이호연은 뉴스 기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검은 기둥을 부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난리가 난 모양이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대중은 언론의 선동과 날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이호연의 행동이 수상하다는 찌라시를 뿌리기만 해도 어느새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도와주면 금방 진압하겠지만…."

지금의 흐름을 억지로 막을 이유가 있을까?

이런 흐름이 계속될 수록 상황이 반전되었을 때 효과가 커진다. 

[정부와 헌터 협회는 이호연 생도의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안전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행위는 헌터로서….]

이호연은 다른 나라의 속보를 보며 눈가를 좁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에스트로가 의심스러워진다.

문수린의 말로는 자신의 행동은 협회 회의에서 아직 문제삼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그 점이 더 수상했다.

아직 지옥의 문에게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자기 나라에 있는 검은 기둥을 부순 것도 아닌데 저런 인터뷰를 하다니.

조잡하다면 조잡한 거고, 급하면 너무 급하다. 

"일단 시간이 지나야겠네."

[아버지. 흑-]

"…."

이호연은 병실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억지로 감각을 낮췄다.

둘이 나눌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혹시나 또 도망치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장인어른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좀 기다리지 뭐."

다른 일을 하러 갈 수도 있었지만, 이호연은 다시 스마트 워치를 키고 뉴스를 확인했다.

오늘은 수린 누나에게 시간을 좀 써보자.

*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아침부터 힘들게 돌아다니다가 가만히 쉬고 있으니 슬슬 졸려서 하품이 나온다.

그때, 병실 문이 슬쩍 열렸다. 

"호연아…! 아직 기다리고 있었어?"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문수린은 이호연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깥에 이호연이 있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대화를 했는데,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니.

방금까지 먹먹하던 가슴에 미안함이 가득 찼다.

"이리와. 수린아."

"… 호연아."

이호연은 별 말 없이 팔을 벌렸다.

가슴에 안기는 문수린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래도 수린 누나가 신경 쓰던 걸 하나 덜어냈네.'

그녀의 아버지 문성민은 문수린의 트라우마 중 하나였다.

이호연의 입장에서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갔어야했는데, 드디어 그 짐을 덜어냈다.

"…. 호연아."

"응."

"고마워."

10년 만에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보았다.

평생 쌓아온 그녀의 슬픔을 털어내기에 하루는 너무나 부족했지만, 대체할 수 없는 가족의 존재는 문수린에게 큰 힘이 되었다.

[수린아. 너는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좋겠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전 강하니까요. … 그리고 옆에 소중한 사람도 있고요.]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아직도 눈 앞에 떠오른다.

문수린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이호연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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