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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03화 (603/648)

Chapter 603 - 603화. 범인은 이호연이었습니다 (12)

성녀 백아영.

그녀는 임솔과 함께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능력자였다.

마법이라는 분야에서 인정받는 임솔처럼, 치유라는 분야에서 백아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숨만 붙어있다면 억지로 살려낼 수 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든, 사지 일부가 날아가든, 마력 회로가 전부 찢어지든.

그녀가 맡은 환자는 전부 살려냈다.

만약 그 힘을 이용해 돈벌이를 했다면 백아영은 세계 최대의 거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돈을 좇지 않았다.

그녀가 환자를 고르는 기준은 유명세나 부가 아니었다.

당장 자신의 도움이 없으면 죽어야하는 사람들.

백아영은 그런 사람들을 치료했다.

그렇기에 성녀라는 이명을 얻을 수 있었다.

"아, 아아악…." 

"천천히 심호흡하세요. 금방 끝날 거예요."

백아영이 만나는 환자는 대부분 목숨이 위급한 환자들이었다.

요즘은 그 빈도가 더욱 늘었다.

화아악-

얼굴이 새파래진 여자의 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녀의 몸 내부를 확인한 백아영은 미간을 좁혔다.

'… 이 사람도 온몸의 마력 회로가 엉망으로 꼬였어.'

최근 이런 부류의 환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원인은 지옥의 마력.

검은 기둥이나 지옥의 문을 조사하겠답시고 억지로 지옥의 마력을 몸에 받아들인 결과였다.

재능이 있는 사람은 마력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인간의 몸이 버티지 못한다.

백아영은 최근 이런 환자들을 수없이 받았다.

치료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그들은 응급실의 골칫거리였다.

"응급처치는 끝났습니다. 마력 회로가 찢어지는 건 막았어요. 다음은 의료팀에서 맡아주세요."

"넵! 성녀님. 다음 환자는 30분 뒤에 이송된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후우. 잠시 사무실에서 쉬고 올게요."

고개를 꾸벅 숙인 백아영은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긴급 환자가 오늘만 8번째였다.

그녀도 조금은 휴식이 필요했다.

백아영이 나간 뒤, 남아있던 인원들은 놀란 듯 중얼거렸다.

같이 일하는데도 그녀의 능력을 볼 때마다 새로웠다.

"저런 분이 아카데미에 양호 선생님으로 근무했었다니…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 진심인 분이야. 아카데미의 축복이지."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심지어 이렇게 일하고 주말에는 봉사활동도 하신다고 들었어."

"… 성녀님은 정말 대단하시네. 저 삶의 태도는 나도 본받아야겠어."

성녀라는 이명처럼 상냥한 성격과 우수한 업무능력.

외모도 아름다우며 본인의 능력까지 뛰어나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백아영은 잠깐 휴식을 취하러 가면서도 응급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역시 일을 때려치워야 할 지도 몰라.'

사무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백아영은 피 묻은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누가 보면 섬뜩한 장면이었지만, 그런 행동을 하는 백아영은 소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아영의 고민은 하나.

일이 너무 많아서 이호연을 못 보고 있다.

미래의 결혼 생활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정작 일 때문에 이호연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본말전도였다.

"으으. 아직 환자가 많을 텐데."

하지만 백아영의 타고난 심성을 고칠 순 없었다.

그녀는 남을 돕고 살리는 일에 순수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응급실 일을 때려치우려고 해도 자신을 기다리는 응급 환자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백아영은 입술을 내밀고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쓸데없는 연락은 전부 넘겼다.

중요한 건 여보의 연락.

똑똑.

스마트워치를 살피던 그때. 

백아영의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네. 누구세요?"

"아영 씨. 얼굴이라도 보러왔어요."

"히익."

숨이 멎을 것 같은 미성.

백아영은 뒤늦게 스마트 워치를 내려다봤다.

 - 여보 : 엄청 바쁜가 봐요. 오늘 한 번 찾아가 볼게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놓쳐버렸다.

백아영은 소파에서 일어나 다급히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기다리던 사람이 서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여보."

"여, 여보…."

오랜만에 보는 이호연의 미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호연이 양팔을 벌리자 백아영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은 백아영의 무게를 받고도 가뿐하게 서 있었다.

"2주만에 봤는데 다크 서클이 이게 뭐야. 엄청 바쁘다던데 고생이 많네요."

이호연은 백아영의 눈 아래를 쓸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의료팀에 오는 김에 잠깐 시간을 내서 들른 건데, 역시 오길 잘한 것 같다.

이렇게 기뻐하니 자신도 기분이 좋다.

"여보… 으으으. 보고 싶었어요."

"응응. 이리 와."

뜨거운 눈빛이 오가고, 애틋한 손길이 이호연의 얼굴을 감쌌다.

츄읍- 쪽.

둘은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백아영은 까치발을 들고 2주간의 그리움을 키스에 쏟아부었다.

짧은 키스를 끝내자 얇은 실이 둘의 입 사이에서 떨어진다. 

"여보…. 너무 외로웠어요. 흑."

"… 나도 보고싶었어."

물 흐르듯 이호연의 몸을 탐하려던 백아영은, 문득 벽에 있는 시계에 눈이 갔다.

[7시 13분.]

지옥의 마력에 중독된 환자 이송까지 5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늦어버린다.

정신이 든 백아영은 눈을 깜박거리며 이호연을 바라봤다.

이호연도 갑작스럽게 바뀐 그녀의 분위기를 깨달았다.

"아영 씨. 아직 일이 남은 거예요?"

"흐으으. 여보. 미안해요."

"아니,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나도 일 때문에 2주나 못 봤으니까."

"아, 하지만… 음, 역시 일을 그만둬야겠어…."

"잠시만. 일 끝나고 또 올 테니까…."

이호연은 슬픈 표정의 백아영을 간신히 응급실로 보냈다.

*

이호연이 의료팀에 온 첫 번째 이유는 백아영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보기 위해서였지만, 두 번째는 문수린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마인이었던 남자, 문성민.

그를 보러 온 것이다.

"… 바쁘면 꼭 오늘 안 봐도 괜찮은데."

"아니에요. 장인어른 몸이 괜찮아졌다는데 한 번 뵈러 가야죠."

이호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문수린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솔직히 말해서 문성민에게 좋은 이미지는 없다.

지금도 수린 누나가 같이 아버지를 보고싶어하길래 같이 가주는 거다.

'물론 불쌍한 사람이긴 하지만… 쯧.'

마인에게 아내를 잃은 문성민은 딸을 버릴 정도로 복수에 집착한다.

당연히 잘못된 일이지만, 그때 문성민이 얼마나 절망했을 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누나는 제가 했던 말이나 다시 생각해보세요."

"으음… 전문 경영인을 구하라는 거지? 하지만 아카데미에 그런 게 괜찮을까…?"

"당연히 괜찮죠. 요즘은 대형 길드에도 다 경영인이 있어요. 정 안되면 제가 추천해드릴게요."

이호연은 문수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아카데미 때문에 고통받는 문수린의 일을 덜어주고 싶었다.

'아카데미는 썩을 대로 썩어있으니… 바깥에서 힘을 빌려야지.'

주변에 정 믿을 사람이 없다면 백수나 마찬가지인 레베카나 스칼렛이라도 꽂아주지 뭐.

일은 배우면 그만이고, 중요한 건 신뢰다. 

그 둘이라면 확실히 아카데미를 위해 일해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병실에 도착했다.

의료팀에서도 깊은 곳에 있는 VIP 병실이다.

똑똑-

예의 바르게 노크한 문수린은 병실의 문을 열었다.

병실 안 침대에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었고, 주변엔 그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기계들이 놓여있었다.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딸과 데려온 남자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수린아. 왔구나."

"네. 아버지. 호연이도 데려왔어요."

"오랜만입니다. 장인어른."

이호연은 고개를 숙였다.

수린 누나의 아버지인 만큼 예의는 확실히 차려야지.

"아버지의 치료가 끝났으니 호연이랑 인사드리러 왔어요. 그게 도리인 것 같아서요."

"… 그렇구나. 수린아. 호연 생도와 단둘이 대화를 해도 되겠니?"

"호연이랑…?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그래. 이번이 마지막일 거다. 부탁한다 수린아."

문수린은 슬쩍 이호연을 바라봤다. 

아버지에게 데려온 것도 자신의 욕심이었다. 

근데 또 욕심을 부려도 괜찮을까.

이호연은 미안한 눈빛을 보내는 문수린을 향해 싱긋 웃었다.

"전 괜찮아요. 수린 누나. 힘든 것도 아닌데요."

"… 응. 그럼 잠시 밖에 나가 있을게."

안도한 문수린이 바깥으로 나간 뒤.

이호연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문성민을 바라봤다.

그는 문수린이 나간 뒤에도 말 없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근데 무슨 말을 한다는 거지? 딱히 들을 말이 없는데.'

이제와서 설마 덮치진 않을테고, 자신을 죗값을 치를테니 수린 누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은 이미 들었다.

1분 정도 침묵을 유지하던 문성민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난 곧 떠날 거다."

"… 네?"

"내가 한 짓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 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백 명이 넘더군."

'대체 무슨 소리냐.' 라고 말하려던 이호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들어보기 위해서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었다. 뉴스에서 본 슬퍼하는 유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 그렇다고 법의 심판을 받기엔, 이 늙은이 하나 때문에 수린이에게도 피해가 가겠지. 내 존재 자체가 수린이에게 약점이 된 거야."

마인이 된 순간부터 문성민은 문수린의 짐이었다.

이호연이 문성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유도 저것때문이다.

생각보다 자신의 처지를 잘 파악하고 있네.

"그러니 평생 혼자 속죄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스르륵- 

내게 고개를 숙인 문성민의 모습이 흐릿해진다.

"내 딸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 미안하다. 내 딸 수린이를 부탁한다."

문성민을 뒤쫓을 때 몇 번이나 봤던 단거리 텔레포트.

이호연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회복이 오래 걸린다 했는데…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기다린 거였군요?"

이제 막 치료가 끝난 몸 상태가 아니다. 

이 아저씨는 처음부터 자신에게만 사실을 말하고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다.

수린 누나의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아버지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딸에게 누를 끼치긴 싫었던 거겠지.

"하아…."

이호연은 병실 안으로 룬의 결계를 퍼트렸다.

혹시나 큰 소리가 들리면 수린 누나가 걱정할 수도 있으니 확실히 해야한다.

"장인어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평생 속죄하며 죗값을 치뤄야하는 것도 맞습니다."

"…."

그에게 마음의 짐이 있는 건 이해한다.

이호연도 몇 번이나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건 패배자일 뿐이다.

개안 심(心).

이호연은 가볍게 손을 들었고, 동시에 문성민의 몸이 또렷해졌다.

그의 마력을 몸 내부에서 휘저은 것이다. 

눈 앞에서도 문성민의 도주를 막지 못했던 과거의 이호연과는 달랐다.

"… 으윽?!"

문성민은 갑작스럽게 꼬인 마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눈을 찡그렸다.

조금 아프긴하겠지만, 도망치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말은 저한테 하는 게 아니라 수린 누나한테 하셨어야죠."

그 마음을 이해는 한다.

수린 누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차마 직접 말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가까이에서 문수린을 본 이호연은 알고있다.

그녀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녀에겐 문성민의 존재가 필요했다.

"죗값은 수린 누나 옆에서 치르세요. 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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