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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601화 (601/648)

Chapter 601 - 601화. 범인은 이호연이었습니다 (10)

이호연은 아이리스 길드에게 긴급 연락을 보낸 후,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원래는 저녁까지 검은 기둥을 부수러 다닐 예정이었지만, 벌써 습격이 시작된다면 검은 기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건 진짜 아니잖아. 진짜 아니라고."

집에 돌아온 이호연은 초조한 감정을 숨기며 곧바로 스마트 워치를 켰다.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아이린과 화상 통화를 연결했다.

[응. 연락받았어. 무슨 일이야?]

며칠 만에 보는 아이린의 얼굴.

수척해진 얼굴을 보니 저쪽도 아주 바쁘긴 했나 보다.

안부를 물으며 장난이라도 걸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오랜만이에요. 아이린 씨. 시간이 없어서 본론부터 말할게요. 지옥의 문은 계속 감시하고 있죠?]

[당연하지. 지금도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어.]

[대륙에 닿으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은지 분석은 끝났어요?]

[원래 한 달 이상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둠이 늘어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거든? 이 속도면 일주일 정도로 예상하고 있어.]

[일주일….]

대륙과 지옥이 맞닿은 순간부터는 지옥도의 시작이다.

매일 같이 몇만, 혹은 몇십만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가겠지. 

하지만 그 일주일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저번에 봤던 그, 공중을 날아다니던 괴물 있잖아요. 혹시 그 놈이 영역 바깥으로 나와서 돌아다니진 않았나요?]

[응. 아직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아.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쪽을 바라보긴 해도 공격하려는 모습은 없었어.]

[진짜 다행이네요. 제대로 감시하다가 움직임이 보이면 곧바로 얘기해주세요.]

다행이다.

아직 그 놈들이 움직이진 않았다.

지구에 적응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알겠어. 너도 특이사항이 생기면 바로 얘기해줘.]

[네. 아이린 씨. 사랑해요. 엘리스 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뭐라는 거야. … 안부는 전해줄게.]

뚝-

빈 화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마지막에 아이린이 창피해하는 게 꽤나 볼만했다.

"후우."

이호연은 착잡한 표정으로 빛나고 있는 붉은 마력구를 내려다봤다.

이게 빛난다는 건, 지구와 지옥이 완전히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씨발.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아이린 덕분에 좋아진 기분이 금방 나락으로 떨어졌다.

곧바로 괴수들이 습격하지 않는 건 너무나 다행이지만, 원작보다 몇 년이나 빠르게 지옥과 동화되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대비를 끝낸 원작에서도 엄청난 피해가 생겼다. 지금 이대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원작과는 과정이 너무 달랐어.'

지구가 원작보다 빠르게 동화되었지만, 원작에서 일어난 현상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원작에선 던전의 폭주 현상이 더욱 중요했다.

던전의 폭주 현상은 지옥의 마력을 흘리며 지구의 마력을 조금씩 지옥과 동화시켰다.

그 상태로 몇 년이 흐르면 지구는 지옥의 마력이 가득한 환경으로 변한다.

인간도 지옥의 마력에 더 익숙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구는 원작처럼 지옥의 마력이 가득 차지않았다.

"지옥과 연결되긴 했지만, 아직 적응하진 못한 거야."

즉, 완벽하지 않은 동화 현상이었다.

단지 지구와 지옥이 연결되었을 뿐이고, 환경은 따라오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옥의 괴수들도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한다.

"… 아니. 이상하잖아. 그럼 동화를 할 필요가 없어."

이호연은 고개를 저었다. 

[지구와 지옥이 동화되었지만 완벽하지않고, 지옥의 마력이 없으니 괴수들은 힘이 약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편의적인 해석이었다.

지구와 지옥의 동화가 빠르게 일어난 이유.

저 괴물들이 벌써 지구에서 날아다니는 이유를 확실히 밝혀야한다.

"천천히 생각하자. 지옥의 괴수들은 지옥의 마력이 있어야 힘을 쓸 수 있어. 케이론이나 알베도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지. 그 개념이 바뀌진 않았을거야."

인간이 지옥의 마력에 익숙하지않은 것처럼, 그들도 지구의 마력에 익숙하지않다.

괴수들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인간들이 힘을 뭉쳐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구가 벌써 동화한걸까.

상대는 이 세계의 신이다. 

멍청하게 일을 진행할 리가 없다.

"…."

이호연은 입술을 깨물고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꼬집었다.

생각해야 한다.

이 세계에서 원작의 정보를 아는 건 자신밖에 없다.

내기의 신이 있는 이상 내기는 공평하다. 

하루 아침에 지옥의 괴수들이 인간들을 전부 죽여버린다면 그건 공정한 내기가 아니다.

아니, 그 정도의 힘이 있다면 지금 이호연이 살아있지도 않겠지.

분명 이호연이 알지 못하는 빈틈이 있다.

"지옥의 마력이 없는데 괴수들이 등장한 이유. 그 새끼들이 힘을 되찾으려면 지옥의 마력이 필요해. 예를 들면 지옥의 문 근처라던가…."

지옥의 문이 넓어지는 범위는 한계가 있다.

동화 작용은 지옥과 지구가 연결되는 것이다. 지옥이 지구를 삼키는 게 아니다.

아마 원작처럼 태평양을 덮는 게 한계겠지.

"지옥의 문이 아니라면 지옥의 마력이 가득한 검은 기둥이…. 잠시만. 검은 기둥?"

미간을 좁히던 이호연은 눈을 크게 떴다.

검은 기둥.

지금 세계는 원작과 확실히 다르다.

이 세계의 신이 마왕에게 빙의해있고, 지구와 지옥의 동화 현상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일어났다.

그리고, 원작과 다르게 지구 곳곳에서 지옥의 마력을 퍼트리는 구조물이 존재했다.

"… 검은 기둥에서 흘러나오는 지옥의 마력이야."

전 세계 곳곳에 솟아있는 검은 기둥.

검은 기둥에서 지옥의 마력을 공급받는다면, 그 괴물들이 활동할 수 있다.

*

고요한 헌터 협회의 회의실 안.

문수린은 이사장 대신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표로 참석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자격을 증명하듯 회의를 이끌어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

"…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문수린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분노를 어떻게든 잠재우며 말을 꺼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었지만, 말끝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학생회장. 이상하지 않습니까?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영역을 넓히는 지옥의 문을 보세요. 그곳에 있는 괴수들은 너무나 강하고, 던전이라는 공간에 갇혀있지도 않죠. 언제 괴물들이 우리들의 집 앞까지 쳐들어 올 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런 현상은 없었어요."

말을 이어가는 협회장은 문수린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내고 주변을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한국의 대형 길드장들 혹은 업계 중요 인물들이 대부분 모인 회의였다.

이곳에서의 발언 하나하나가 굉장한 무게감을 가졌다.

"지옥의 문이 나타났을 때, 마침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일이 무엇이었나요? 예. 이호연 생도가 검은 기둥을 부순 일입니다."

그곳에서도 가장 입김이 강한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표와 헌터 협회의 대표가 대립하고 있었으니 직접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백아영이 있었다면 그녀도 눈치보지않고 이호연의 편에 섰겠지만, 오늘은 그녀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 안에서도 협회장 쪽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표라도 학생회장 문수린은 아직 20대 소녀였다.

내심 '협회장의 말이 맞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 두 사건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에요. 협회장님의 주장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이호연 생도가 검은 기둥을 부수자마자 지옥의 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검은 기둥과 지옥의 문은 똑같은 지옥의 마력을 펼치고 있죠. 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겁니까?"

문수린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협회장이 펼치는 주장은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이다.

검은 기둥과 지옥의 문.

두 구조물에서 지옥의 마력이 흘러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검은 기둥을 부숴서 지옥의 문이 등장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논리의 비약이다.

문수린이 더욱 화나는 점은 저딴 주장을 받아들이는 인간들이 이 회의장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싶으신거죠? 지옥의 문은 이미 나타났고, 아이리스 길드의 말대로 전 세계적인 대응을 구축하는 게 우선 아닐까요?"

"우선적으로 이호연 생도의 만행을 멈춰야한다는 뜻입니다. 지옥의 문이 영역을 늘리는 게 검은 기둥을 부수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 그 점에 대해선 아이리스 길드에서 제공한 정보에 쓰여있습니다. 실제로 이호연 생도는 프랑스 정부의 허락을 맡고 프랑스의 검은 기둥을 대부분 제거하기도 했고요."

"일개 테러단체가 전세계의 이상현상을 주도하고 있다는 정보 말인가요?"

협회장은 주변을 둘러봤다.

직접 눈을 마주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한 마디라도 보태야했다.

그리고 그 말은 대부분 협회장에게 긍정적이었다.

"크흠. 학생회장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협회장의 말대로 의심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이호연 마법사는 오늘도 한국의 검은 기둥을 부쉈습니다. 법으로 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행동을 하고 다니는 건…." 

문수린의 가슴 속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세상이 자신과 이호연을 방해하기 위해 작정한 것 같았다.

전세계 최고의 정보 길드인 아이리스 길드가 제공한 정보를 의심하다니.

마치 단체로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 호연이는 내가 지킬거야.'

문수린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의견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아카데미는 이호연 생도를 끝까지 두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 내부 회의를 위해 오늘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이 이상으로 회의를 진행해봤자 다른 참석자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는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며 화가 난 모습을 보이고 회의를 파해버리는 편이 낫다. 

저들도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이호연에게 압박을 가할 순 없을 거다.

살짝 목례한 문수린은 서류를 챙기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다른 참석자들은 협회장의 눈치를 보며 문수린이 떠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하아…. 죄송합니다. 못 보여드릴 꼴을 보여드렸군요. 회의는 여기서 파하겠습니다. 지옥의 문에 대한 안건은 며칠 뒤 다시 소집하겠습니다."

협회장의 말에 참석자들은 눈치를 보며 하나 둘 씩 방을 빠져나갔다.

문수린의 의도대로 이호연에 대한 일은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아마 그들도 아직까지 어느 한 쪽 편에 서지 않겠지.

모두가 빠져나간 텅 빈 회의실에는 협회장 혼자 남았다.

그는 테이블에 앉은 채 허공을 바라봤다.

'… 내가 방금까지 뭘 하고 있었더라.'

잠시 후.

혼자 남은 협회장의 눈이 멍하게 변했다.

*

집에서 나온 이호연은 아카데미로 향했다.

지금 가야 할 곳은 수린 누나가 있는 학생회실.

안 그래도 수린 누나의 스케줄이 끝나는 대로 얼굴을 볼 생각이었는데, 검은 기둥에 대한 고민을 끝내자마자 이런 메시지가 왔다.

- 수린 누나 : 호연아. 지금 당장 학생회실로 와줄 수 있어? 

이호연은 답장을 보내는 동시에 집에서 빠져나왔다.

지옥의 문에서 튀어나올 괴수의 습격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인간들이 협력하며 결속해야 한다.

원작에서는 그 과정이 비교적 빨랐다.

이미 던전의 폭주 현상으로 인해 세계적인 비상사태가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옥의 괴수가 등장하자마자 세계가 협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루빨리 세계적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거다.

그걸 위해서 마법사 협회와 아이리스 길드의 협력을 받는거다. 당연히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도움도 필요하겠지.

이호연은 동아리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겼다.

루시와 루미는 기숙사에서 쉬는 중이라고 했으니, 오늘은 수린 누나와 대화를 길게 해 볼 생각이다.

띠링- 

문이 열리자 텅 빈 학생회실이 보였다.

학생회 선배들이 안보였지만 상관없다. 이호연은 안쪽에 앉아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책상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좁히는 수린 누나가 보였다. 

2주 만에 보는 얼굴이라 더 반가웠다.

"수린 누나. 저 왔어요."

이호연은 인사를 건네며 문을 열었다.

"호연아!"

동시에 작업하던 서류를 밀어놓은 문수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호연의 얼굴을 보자마자 방금까지 그녀를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누나는 2주 만에 봤는데도 예뻐졌네요."

"호연아아…. 흐, 하아아…."

문수린은 옅은 미소를 짓는 이호연을 와락 끌어안고 떨리는 숨을 뱉었다.

그의 품에서 심신의 안정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방금까지 회의장에서 받은 시선들이 떠오른다.

그녀는 빅토리아 아카데미의 대표지만 한 명의 여자였다.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도 가끔은 이호연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게다가 그를 걱정하고 있는 만큼, 빠르게 소식을 전해줘야 했다.

"… 수린아. 무슨 일 있었어?"

다행히 이호연은 문수린의 변화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상태창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게 눈에 보였다.

★ 히로인 상태창 

[문수린] 

- [ 호감도 : 100 ] ( + 0.9 ) 

- [ 성욕 : 70 ] 

- [ 식욕 : 45 ] 

- [ 피로도 : 80 ] 

현재 상태 : 호연이는 내가 지켜야해. 끝까지 지켜야해.

[호감도 100 달성시 이호연에 대한 의존이 심해짐.] 

'역시 무슨 일이 있구나.'

이호연은 문수린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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