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99화 (599/648)

Chapter 599 - 599. 범인은 이호연이었습니다. (8)

스칼렛은 천재였다. 

아니, 천재인 줄 알았다.

어린 나이에 길드장에게 거둬지고 정보원으로 교육받았을 때부터.

스칼렛에겐 그렇게 생각할만한 재능이 있었다.

정보원으로서 필요한 재능은 은신과 마력을 숨기는 것.

스칼렛은 그런 쪽에서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실력을 늘렸다.

[대단한 재능이구나 스칼렛.]

스칼렛은 실력을 인정받고 어린 나이부터 길드장의 신임을 받고 임무에 참여했다.

성과가 나왔으니 아이리스 길드에서도 그녀를 존중했다.

[… 겨우 20살에 팀장을 이겼다고?]

스칼렛은 현역 활동 몇 년 만에 아이리스 길드의 핵심 간부가 되었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남들을 무시하진 않았지만, 천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작의 개인적인 욕심일 수도 있지만…. 

스칼렛은 여자 정보원들이 받는 성고문 대비도 받지 않았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준 것이다.

그 정도로 실력 있는 길드원이었으니 한국까지 출장을 나온 것이다.

길드장이 딸바보인 건 아이리스 길드원이라면 전부 아는 사실이다.

엘리스를 위해 파견한 게 스칼렛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실력은 보장되어 있다는 뜻.

처음엔 생도 하나를 조사하기 위해 한국까지 온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길드장의 명령이었기에 스칼렛은 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쩌다보니 그 생도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타앙-

스칼렛은 눈앞의 검을 튕겨내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마주하고 있는 건 흑발의 여생도 남다은.

같이 지내고 있는 마음씨 착한 귀여운 소녀다.

하지만 검을 들고 있는 지금은 눈빛부터 180도 달랐다. 

'… 손이 떨리기 시작했어.'

웅웅-

남다은의 검을 받아낸 것만으로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정도 차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남다희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고 나서, 남다은은 매일같이 이상할 정도로 강해졌다.

쯧. 스칼렛은 떨리는 손을 숨기고 자세를 잡았다. 

"다시 가겠습니다. 다은 양."

"네."

스윽-

남다은은 자세를 낮추며 눈으로 스칼렛을 쫓았다.

스칼렛의 강점은 은신과 스피드.

언제 덮칠지 모르는 그녀의 모습을 놓치는 순간 대처하기가 힘들어진다.

'… 지금.'

카앙!

남다은은 다가오는 기세를 떨쳐냈다.

공간을 지배하는 그녀의 마력은 스칼렛과 상성이나 마찬가지였다.

"흣…!"

튕겨난 스칼렛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까지나 가벼운 대련이었다.

그녀도 진심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고, 은신과 기습에 특화된 스칼렛에게 이런 대련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얼마나 대련을 할 수 있을까.'

문제는 날이 갈수록 그녀의 재능을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점점 강해지는 남다은의 공격을 이제는 받아내기가 힘들었다.

그것을 알아챈 계기는 루시퍼와의 전투였다.

루시퍼는 괴물이었다.

그 전에도 강한 적은 자주 만났지만, 루시퍼는 그 이상이었다.

단 한 번의 공격만 허용해도 목숨이 위험한 방심할 수 없는 목숨을 건 전투.

세계 최강의 길드인 아이리스 길드가 전력을 쏟아부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강한 괴물.

하지만 그런 괴물을 상대로 열 명 남짓한 인원이 한 시간을 버텼다.

그때 스칼렛은 진짜 천재들을 보았다.

선두에서 자신과 합을 맞췄던 엘리스와 아이린 자매.

그녀들이 길드장의 딸이고, 어릴 적부터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합을 맞춰본 그녀들은 자신과 다른 '진짜 천재'였다.

루시퍼의 공격은 빗맞기만 해도 엄청난 충격이 온다.

스칼렛은 전투 시작부터 끝까지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와 다르게 두 자매는 공격에 점점 적응해가며 나중에는 공격을 받아치는 수준까지 갔다.

싸움 도중에 점점 성장하는, 소설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스칼렛 씨?"

대련 중에 검을 내린 자신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녀. 남다은.

공간을 베어내는 그녀의 공격은 루시퍼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줬다.

만약 방금 대련에서 공간참을 맞았다면 스칼렛은 몇 합 만에 두 동강 났겠지.

그뿐만이 아니다.

레베카와 문수린의 전장을 지휘하는 능력은 그녀를 몇 번이나 구해줬다.

임솔과 쌍둥이 자매의 마법은 루시퍼에게 상처를 누적했다.

그 전투에서 가장 약하고 재능이 없던 건 스칼렛이었다.

그녀는 천재가 아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다은 양."

"고생하셨어요. 스칼렛 씨."

"… 예. 다은 양. 오늘도 고마웠습니다."

"아니에요. 편할 때 불러주세요."

스칼렛은 남다은에게 고개를 숙이고 검을 갈무리했다.

착잡한 감정이 그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게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줄 모르겠네.'

스칼렛도 알고 있다. 

그녀는 재능이 없는 게 아니다. 

이번에 아이리스 길드에 갔을 때, 길드원들과 비교한 자신의 무력은 여전히 뛰어났다.

그 전투에서 보았던 여자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것이다.

애초에 재능이 없다고 살아가는 데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스칼렛은 강함을 갈구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냥 원인 모를 이유로 마음이 답답할 뿐이다.

"먼저 올라가 보겠습니다. 식사라도 준비해야겠군요."

"아, 네. 그럼 저는 조금만 더 있다 갈게요."

꾸벅.

살짝 고개를 숙인 스칼렛은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 남자와 서큐버스를 마주했다.

"스칼렛?"

스칼렛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항상 멍청한 소리를 하지만 가끔씩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

이호연.

그를 마주친 자신은 왜 흠칫 놀란걸까.

크흠. 헛기침을 한 스칼렛은 이호연에게 말을 건넸다.

"호연 님이시군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훈련하러 왔지. 릴리아나 마력을 좀 확인해보려고."

"… 그렇군요."

릴리아나의 마력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그녀에게 서큐버스로서 봉인된 무언가가 있다고 알고 있다.

이 남자의 곁에 있다 보면 평생 겪어본 적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아."

"아?"

이제야 깨달았다.

스칼렛의 마음이 복잡했던 이유.

그녀가 겨우 재능 따위로 답답했던 이유.

전부 이 남자 때문이었다.

이호연의 주변에는 매일같이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서큐버스.

숨겨진 룬의 일족.

판데믹의 테러.

지옥의 마력.

루시퍼의 습격.

검은 기둥.

이호연은 자신의 힘으로. 혹은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려 사건을 해결한다.

그는 쉬는 날도 없이 매일매일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 흐름에 탑승하기 위해선 이호연에게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평범한 재능으로는 이호연의 옆에 서있을 수 없다.

스칼렛은 그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스칼렛.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은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훈련은 끝났으니 훈련장을 사용하시죠."

스칼렛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답답한 마음의 원인을 알았지만, 원인을 알았기에 더욱 답답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1층으로 향했다.

*

훈련실의 입구에서 스칼렛과 마주친 뒤.

이호연에게 잡혀있던 릴리아나는 급하게 1층으로 올라가는 스칼렛을 보며 입을 열었다.

"스카웃이 배고픈가 봐. 급해보이넹." 

"… 그건 아닐걸."

스칼렛의 표정이 이상했다.

가끔 저런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오늘은 좀 더 심했다.

"그럼 그날인가?"

"닥쳐. 이 미친 서큐버스야."

"아. 아아악!"

이호연은 헛소리하는 릴리아나의 목덜미를 다시 붙잡고, 훈련실의 입구를 바라봤다.

이미 스칼렛은 없었지만, 그녀의 미묘한 표정은 이호연의 기억에 새겨졌다.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네."

"안돼. 스카웃도 여자라니까. 그날에는…."

"제발 조용히 해."

이호연은 릴리아나를 질질 끌고 훈련실로 들어갔다.

"흐읏!"

콰앙-

그리고 굉음과 함께 박살나는 훈련실의 벽과 마주했다.

깜짝 놀란 릴리아나는 이호연의 손을 떨쳐내고 훈련장에 서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헉. 다은이가 벽을 부쉈어!"

"릴리아나 씨? 아, 호연아!"

스칼렛과의 대련에서 사용하지 못한 공간참을 테스트해보던 남다은은, 이호연을 보자마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내려놨다.

이제 막 몸이 뜨거워지긴 했지만, 이호연이 온 게 훨씬 중요했다.

릴리아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남다은을 책망했다.

"다은아! 너 이거 수리비가 얼만지 알아?"

"릴리아나. 훈련하는 중에 생기는 파손은 마법진으로 전부 복구할 수 있어. 너 훈련실에 진짜 안 오는 구나?"

"아, 구랭?"

허리에 손을 얹었던 릴리아나가 슬쩍 손을 내린다.

또 가장이니 뭐니 하면서 시비 걸 생각이었겠지.

"호연아."

"응응."

이호연은 다가오는 남다은을 살짝 안아줬다.

훈련 중에 땀에 젖은 머리가 볼에 달라붙는 게 참 예뻐 보였다.

"스칼렛하고 같이 훈련 중이었어?"

"가벼운 대련을 해달라고 해서 도와주고 있었어."

"그랬구나. 흠. 스칼렛…."

스칼렛의 표정이 계속 표정이 마음에 걸린다. 무언가 고민이 있어보이네.

이호연은 스칼렛에 대한 것을 머리 한쪽에 메모해놨다.

지금은 릴리아나의 마력을 보러 온 거니 일단 그쪽에 집중할 생각이다.

"호연이도 훈련이야? 오랜만에 대련할까?"

"조금 이따가 하자. 지금은 릴리아나 일로 온 거거든."

"아하…. 릴리아나 씨는 그냥 구경하러 온 줄 알았는데."

남다은은 릴리아나를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가끔씩 집에 아무도 없어서 놀러 오는 거 빼면 아예 안 왔나 보네.

"릴리아나. 마력 한 번 일으켜봐. 테스트 좀 해보자."

릴리아나의 마력에 관해서 당장 알아야 할 건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알베도가 말해줬던 소문.

릴리아나의 마력이 정말로 마왕에게 대항할 힘이 있는지에 대해서다.

하지만, 마왕이 눈 앞에 없으니 지금은 그 사실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두 번째.

대체 릴리아나가 얼마나 강한지.

그걸 테스트할 생각이다.

"귀찮은뎅…."

"오늘 저녁에 같이 치킨 먹어줄 테니까."

"흐아앗!"

멍하니 서있던 릴리아나는 이호연의 말을 듣자마자 몸 안에 있는 지옥의 마력을 펼쳤다.

단순히 마력을 방출하는 것만으로 몸이 오싹할 정도의 기세가 터져 나왔다.

이호연은 남다은과 자신을 보호하는 룬의 결계를 펼치고 헛웃음을 지었다.

"… 야, 너 왜 이렇게 강하냐."

"서큐버스는 최강이야!"

"아니. 전보다 훨씬 강한 거 같은데."

루시퍼와 전투에서 본 릴리아나보다 더 강했다.

그때도 이 정도로 강했다면 전투가 더 편했을 텐데.

"실은 엊그제부터 힘이 더 강해졌어."

"엊그제? 아, 지옥의 문인가보네."

지옥의 문이 열리고 릴리아나가 폭주했을 때.

그때 마력이 다시 개방된 걸까.

아니면 이호연이 강해지면서 릴리아나의 힘이 풀렸을지도 모른다.

"오케이. 일단 대련이라도 해보자. 다은아. 잠시만 비켜줄 수 있어?"

"응. 당연하지." 

"대련은 진짜 귀찮은데…."

"네가 이기면 일주일간 치킨만 먹을게."

"하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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