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91화 (591/648)

< 591화 > 지옥의 문 (5)

다음날 아침.

냠냠.

릴리아나는 티비를 보며 커피땅콩을 집어먹었다.

이호연이 프랑스에서 선물로 가져온 초콜릿은 이미 다 먹었고, 이건 남다희 몰래 사놓은 간식이었다.

남다희에게 들키면 무조건 나눠줘야 하기 때문에, 그녀가 다은이랑 놀 때만 슬쩍 꺼내먹곤 했다.

"릴리아나 언니! 나도 커피땅콩 먹을래!"

"젠장, 들켰다! 도망쳐!"

"커피땅콩이 뭐라고… 다희 좀 나눠주라니까."

이호연은 도망치는 릴리아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둘이 뛰어다니는 걸 보니 내 기운이 다 빠지는 것 같다.

저 안에 지옥을 벌벌 떨게한 릴리아나 칼리오페가 있다는 게 전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레베카 씨. 뉴스 틀어도 괜찮죠?"

"그 정도는 애기 아빠 마음대로 해~."

릴리아나가 보던 예능 대신 뉴스를 틀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생긴 의문의 섬은 엄청난 속도로 면적을 넓히고 있습니다. 그중 날개가 달린 괴생명체들은 가까이 다가간 드론을 습격하기도 하는….]

당연한 일이지만 세상은 하루 만에 또 난리가 났다.

아이리스 길드가 지옥의 문에 대한 정보를 전부 공개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나타난 지옥의 문은 점점 영역을 넓혔다.

바다는 어둠에 물들어 단단한 섬으로 변했고, 그 섬에는 지옥의 괴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다른 이상현상과 다르게 저것들은 실제로 인간을 덮쳤다.

아직까진 가까이 다가간 비행물체를 격추하는 수준이지만, 지구를 파악하고 나면 날개가 있는 놈들은 전부 대륙으로 날아올 거다. 그중엔 다른 괴수를 매달고 오는 놈도 있을 거고.

점점 넓어지는 섬이 태평양을 뒤덮고 대륙들과 맞닿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섬 주변을 봉쇄하는 건 안됩니까?]

[불가능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기에 병력을 투입하기 어렵고, 그 어둠의 섬은 무서운 속도로 크기를 늘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요? 그들은 이럴 때 대체 뭘 하고 있는….]

딱히 영양가 있는 정보는 없네.

전부 이호연도 알만한 정보들이었다.

'아직 제대로 된 습격을 받지도 않았는데 정보를 기대하는 게 이상한 건가.'

이호연은 싸우는 패널들을 보며 레베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적발을 보니 왠지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레베카 씨. 저랑 지옥의 마력 특훈이나 해요. 어제도 말했지만, 이 세상에 부숴야 할 검은 기둥이 너무 많다니까요."

"임솔 마법사 님하고 같이 하는 그거 말이지…? 으음. 글쎄. 내가 도움이 될까?"

"이호연 특제 훈련이면 금방 적응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애기 아빠가 그렇다면 괜찮겠지. 알겠어 해볼게."

이미 지옥의 문이 등장해 버렸지만, 검은 기둥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부수러 다녀야 한다.

검은 기둥도 지구와 지옥의 동화를 앞당기는 구조물이니까.

문제는 이호연 혼자서 부수기에 검은 기둥이 너무 많다는 것.

레베카와 임솔이 같이 돌아다니며 이호연만큼만 일을 해줘도 2배나 빨라진다.

'사실 레베카 씨랑 솔이가 따로 다니는 게 제일 좋긴 한데….'

문제는 레베카와 임솔의 안위다.

아이리스 길드를 붙이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검은 기둥과 관련된 일은 이호연이 정말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싶었다.

게다가 그들은 지옥의 마력을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검은 기둥 옆에서 싸움이 발생해도 지원하지 못한다.

'지옥의 마력을 익힐 정도로 재능과 실력이 뛰어나면서, 내가 신뢰할 수 있고, 세뇌에 걸렸는지 꾸준히 확인할 수 있는 사람….'

고민에 빠지려던 그때, 눈앞에 찻잔이 나타났다.

고개를 돌리자 옅은 미소를 지은 남다은이 있었다.

"호연아. 차라도 한 잔 마셔."

"고마워 다은아."

남다은이 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따뜻한 홍차가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기분이다.

"역시 다은이… 응?"

이호연은 고개를 올려 남다은과 눈을 마주쳤다.

갑자기 뚫어져라 쳐다보자 남다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여기 있었네."

실력이 뛰어나면서 이호연이 신뢰하고 세뇌에 걸렸는지 꾸준히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여자들은 이호연의 주변에 많이 있었다.

*

"아침 운동을 너무 과하게 했나."

이호연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아침부터 아카데미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검은 기둥을 박살내고 왔더니 몸이 뜨거웠다.

저벅. 저벅.

이호연은 오랜만에 아카데미 부지를 걸었다.

프랑스로 출발할 때만 해도 상태가 안 좋은 건물이 많았는데 이제 루시퍼 습격의 여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카데미도 슬슬 재가동하려나?'

복구가 끝나자마자 지옥의 문이 열리다니 타이밍 참 안 좋네.

이러다가 졸업 못하는 거 아니야?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주변을 구경하며 걷던 그때.

"이호여어언!"

"호연 씨이…!"

옆에서 달려온 쌍둥이들이 이호연에게 안겼다.

오랜만에 루시와 루미를 보니 이호연의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둘 다 잘 지냈어?"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으ㅡ."

"미안. 일이 많아서. 그래도 제일 먼저 보러 왔으니까 봐줘."

"… 그렇지만 데이트가 아니잖아."

루시의 말대로 오늘은 데이트가 아니라 임솔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이호연도 마음 같아선 여유로운 데이트를 하고 싶지만, 워낙 할 일이 많았다.

"교수 님 보고 나서 밥이라도 먹으러 가면 되지."

"진짜? 그럼 케이크 먹자."

"호연 씨…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무리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일단 교수님 먼저 보러 가자."

이호연은 루미의 볼을 손가락으로 비비며 웃었다.

임솔에겐 검은 기둥에 대해서 부탁할 것도 있고, 쌍둥이를 데려가 마법 교육도 좀 받게 할 생각이었다.

'루시랑 루미도 더 강해지면 좋으니까.'

이호연의 히로인들은 다들 원작에 비해 강해졌다.

선천적 마력 장애를 극복한 엘리스, 스토킹 트라우마를 이겨낸 문수린, 한계를 뛰어넘은 임솔, 바이어 길드에서 일찍 벗어난 남다은까지.

루시와 루미도 이호연에게 마법을 배우며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은 좀 부족한 느낌이다.

마도관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아카데미가 휴교 중이다 보니 출근하지 않은 교수가 많은 모양이다.

상관없다. 어차피 임솔은 2층에 있을 거다.

띵동-

이호연은 쌍둥이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왔다.

임솔의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강렬한 마력.

쾅- 파앙-!

쿵쿵 울리는 연구실.

루시와 루미는 당황한 듯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호연은 익숙하게 웃었다.

"원래 여긴 이래. 훈련실 쪽으로 가자."

임솔의 연구실이 조용하면 실험 중인 거고, 시끄러우면 훈련 중인 거다.

조금 걷자 훈련실이 보였다.

"우와…."

"호, 호연 씨. 저기. 임솔 교수님이 있어요."

안을 비추는 유리에 루시와 루미가 딱 달라붙는다.

훈련실 내부는 임솔의 마법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의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고, 번개가 지면을 강타하며 잔해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먼 곳에서 일어난 거대한 파도는 임솔을 덮쳤고, 눈부신 섬광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임솔 전용 커리큘럼이네.'

왜 혼자서 자연재해랑 싸우고 있는 거야.

남들이 보면 얼마나 놀라겠어.

실제로 루시와 루미도 입을 벌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올 때마다 참 한결같으시네.'

이호연은 루시와 루미를 달래준 뒤 훈련실에 들어가서 손을 흔들었다.

"임솔 교수님!"

훈련의 집중을 깨는 반가운 목소리.

임솔은 땀에 젖은 머리를 털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에 보는 이호연이었으니 훈련은 멈출 생각이었다.

"우리 제자가 드디어 왔구나아…?"

임솔은 제자의 뒤에 붙어있는 루시와 루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눈을 감은 루시의 머리 위에 불꽃 화살이 떠오른다.

수 백개의 화살은 루시의 손에 따라 물에서 흐르듯 움직이며 허공을 유영했다.

이호연은 루시의 성장에 미소를 지었다.

화살에 담긴 열과 에너지는 꽤 신경 써서 막아야 할 정도로 강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 교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루시 생도. 네가 잘하는 것에 집중해. 더 맹렬하게 불태우고, 힘을 확실하게 통제해. 화살이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잖아."

"아, 알겠습니다."

"루미 생도도 마찬가지. 호연이한테 핵심 술식을 잘 배우긴 했지만, 아직 부족해. 상대가 루시퍼였다면 그 정도 방어막으로 막지 못했을 거야."

"… 네, 넷."

수업이 힘들긴 하지만, 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거다.

루시와 루미의 재능은 훨씬 높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원작보다 지옥의 문이 빨리 열렸지만, 그녀들도 이호연과 임솔의 가르침을 제대로 흡수한다면 충분히 1인분을 할 수 있다.

"좋아. 아까보다 훨씬 안정적이야. 이번엔 훈련 시스템을 작동해 볼게. 내가 평소에 훈련할 때 쓰는 거지만, 1단계니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임솔은 훈련실의 시스템을 조종해 [임솔 특제 커리큘럼 1번]을 실행했다.

루시와 루미의 재능은 확실히 엄청났다.

이호연보다는 아래지만, 마법사 협회에서 떵떵거리던 늙은이들과 비교하면 고래와 멸치 수준의 차이.

스승이자 루시퍼와 맞서 싸운 동료로서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다.

[임솔 특제 커리큘럼 1번을 실행합니다.]

"너희는 함께일 때 더욱 강하다는 걸 잊지말고. 고통 수치는 그대로 할테니까 조심해.'

"으읏… 루미!"

"으, 응. 같이 있어야 해."

루시와 루미는 곧바로 둘이 딱 달라붙은 채 마력을 일으켰다.

각자 공격과 방어에 특화된 쌍둥이들은 둘이 합쳐야 더욱 강해졌다.

'물론 저렇게 딱 붙을 필요는 없는데… 알아서 하겠지.'

이호연은 이 쪽으로 다가오는 임솔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교수님이야. 나보다 훨씬 잘 가르치네."

"응. 근데, 이호연 생도?"

"네? 으읏?!"

털썩-

이호연 생도라는 어색한 호칭에 놀라기도 잠시.

임솔에게 밀쳐진 이호연은 소파에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을 깜박거리고 있다 보니, 임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려 2주 만에 스승님을 보러 오는데, 다른 여자를 둘이나 끼고 왔구나."

"교수 님. 아니. 솔아. 분명 전에 루시랑 루미를 데려오라고 해서…."

"…."

"그때 분명 일이 끝나자마자 데려온다고…."

"…."

"네. 죄송합니다."

이호연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임솔의 눈을 보다 보니 사과가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조금 억울하긴 했다. 분명 아이리스 길드에 대한 일처리가 끝나면 루시랑 루미를 데리고 오기로 했으니까.

'그래도… 신경을 못 쓴 건 맞지.'

솔직히 루시, 루미와 임솔을 동시에 보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워낙 바쁘다 보니 한 명 한 명 찾아가다간 지옥의 문에 대처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임솔은 평소에 쿨한 이미지라 넘어가줄 줄 알았는데.

이번엔 아니었구나.

"미안해. 솔아. 아, 맞아. 프랑스에서 사 온 선물 줄까?"

임솔을 위해 특제 마력 퍼즐을 사 왔다.

무의미하고 규칙 없는 마력 패턴을 가진 퍼즐은 자신도 5분 이상 걸리는 고급품이다.

하지만 퍼즐을 풀면 예쁜 눈이 내리는 큐브로 변하기 때문에 임솔도 나름 좋아할….

"벗어."

"… 네?"

이호연은 범죄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임솔이 오늘따라 무서웠다.

"우리 제자, 바지 벗으라니까."

"… 뒤에 루시랑 루미가 있는데요."

"훈련에 집중하고 있으니 괜찮아. 네 결계를 가볍게 치면 못 알아볼 거야."

"아니 결계도 내가 치면, 아니. 잠시만."

이호연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임솔은 이호연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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