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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90화 (590/648)

< 590화 > 지옥의 문 (4)

빅터에게 다음에도 부르면 곧바로 찾아와야 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보답은 이호연의 친필 사인.

만족스러운 거래를 끝낸 스칼렛은 집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여성진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눌 생각이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죠?"

그러나 거실의 꼴을 본 스칼렛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레베카랑 남다은은 테이블에 엎드린 채 숨을 허덕이고 있고, 릴리아나는 이호연에게 안긴 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스, 스칼렛 양. 오랜만이네… 마중 나가지 못해서 미안."

"아니. 그런 건 괜찮습니다. 레베카 님. 상황 설명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릴리아나가 갑자기 쓰러지길래… 평소처럼 이상한 짓을 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릴리아나를 주변으로 파앙- 하더니, 그 뒤로 기억이 없어…."

"저도 비슷해요…."

남다은은 다희를 안은 채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릴리아나와 가까이 있었기에 레베카보다 회복이 느렸다.

'릴리아나 님이 또 사고를 친 건가?'

스칼렛은 고개를 돌려 이호연을 바라봤다.

이호연은 바닥에 누워있던 릴리아나를 안고 흔들고 있었다.

"릴리아나. 릴리아나? 정신 차려봐."

"으, 왜 그래. 하으으으음. 엥? 뭐야! 언제 왔어?!"

"하아… 정신이 들어?"

눈을 뜬 릴리아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이호연을 보며 깜짝 놀랐다.

프랑스에서 온다는 메시지는 봤지만, 벌써 도착하다니.

잠을 너무 잔 모양이다.

근데 너무하네. 레베카나 다은이가 날 안깨워주다니.

"하으으웅. 언제 잠들었지?"

릴리아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몸이 찌뿌둥하다.

근데, 주변의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응? 뭐야. 다들 왜 날 보고 있어."

어색한 침묵.

릴리아나는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고 슬쩍 어깨를 움츠렸다.

이런 기분은 익숙하다.

며칠 전, 15끼 연속으로 치킨을 주문했을 때와 비슷한 표정이다.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시간이 지나면 화도 풀린다.

릴리아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으음… 졸려."

"릴리아나. 자지말고 일어나 봐."

"왜, 왜 그래…?"

이호연은 자는 척하려고 하는 릴리아나를 다시 깨웠다.

릴리아나에겐 아무 기억도 없어보인다.

이미 남다은과 레베카에게 사정은 들었으니 여기서 릴리아나를 다그칠 생각은 없다.

그녀의 잘못도 아니고, 저번에도 실수를 하는 바람에 릴리아나가 방에 틀어박혔던 적이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릴리아나의 모습을 보는 건 이호연도 싫었다.

이호연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릴리아나. 기억나는 거 없어? 네 지옥의 마력이 폭주한 것 같아."

"폭주…? 으, 음…."

릴리아나는 기억을 되짚었다.

분명 밥을 먹고 곧바로 누워서 낮잠을 잤다.

그때 꿈을 꾸긴 했던 것 같은데….

"아, 아읏…. 윽…."

릴리아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드렸다.

이상한 기억과 두통이 릴리아나를 머릿속을 들쑤시는 것 같았다.

"릴리아나 님?!"

"잠시만 기다려. 스칼렛."

이호연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 지옥의 문 때문인가?'

릴리아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건 곧 그녀의 금제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

분명 루시퍼가 강한 마력을 쏟아냈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정확히 몇 시간 전.

지옥의 문이 생기면서 지구와 지옥의 연결이 강화되었다.

그게 릴리아나의 금제에 영향을 준 것 같다.

"개안. 심(心)."

이호연의 눈이 금빛으로 빛났다.

──『 개안. 심(心)』 ──

▶ 고유 스킬

▶ 이호연이 원하는 순간 마나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고 마나의 격을 뛰어넘는다.

───────

이호연은 릴리아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알베도가 말하길, 릴리아나가 말한 금제는 서큐버스 퀸이 직접 사용한 서큐버스의 비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릴리아나의 금제는 이호연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이호연의 금빛 눈이 릴리아나의 금제를 바라본다.

신의 영역에 발을 걸친 이호연의 마법은 서큐버스 퀸의 금제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역시나 릴리아나의 금제가 조금 풀어져있었다.

아마도 지옥의 문 때문이겠지. 이게 릴리아나의 폭주를 만든 원인이다.

'건드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이호연은 금제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금제는 봉인술의 한 가지였다.

역산은 이호연의 전문 분야.

마음먹는다면 풀어낼 수 있겠지만, 그 여파가 그대로 릴리아나에게 전해진다.

'기억에 대한 금제는 위험해.'

기억이라는 건 단순한 게 아니다.

특히, 릴리아나는 단순히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수준이 아니다.

그녀의 성격은 지옥에서 더욱 더러웠던 것 같으니까.

금제를 함부로 풀었다가 이호연이 알던 릴리아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 아… 으, 으아…."

"조금만 참아. 릴리아나."

점점 릴리아나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심해진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금제를 잠글 수밖에 없다.

이호연은 지옥의 마력을 조종하며 릴리아나의 머릿속에 있는 금제의 틈을 매웠다.

임시방편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일단 릴리아나의 고통을 없애야했다.

다른 조치는 천천히 생각해봐야한다.

"됐어. 이제… 큭?!"

릴리아나의 금제를 마력으로 덮은 순간.

이호연의 머릿속으로 처음 보는 기억이 파고들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칼리오페는 서큐버스니까요. 서큐버스가 가지기에 너무나 강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 … 딸이 네 년의 자리를 넘볼까 겁내는 것은 아니고?

- 아무리 당신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시죠. 혈연을 소중히 하는 서큐버스에게 모욕이니까요

아름답고 매혹적인 외모의 여성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신기할 정도로 길쭉한 꼬리가 이호연의 기억에 남았다.

빠르게 장면이 넘어간다.

무릎꿇은 주변의 마수.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겁먹는 지옥의 생명체들.

릴리아나의 시점이었다.

이호연은 자신에게 들어온 기억에 당황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것은 폭주한 금제의 틈을 막으며 생긴 마법적 현상이다.

마천궁과 개안 심을 발동하고 있는 이상, 이호연에게 마법은 위협이 되지않는다.

"아, 으. 뭐, 뭐야."

"릴리아나, 괜찮아?"

이호연은 머리를 뒤집는 기억을 털어내고 릴리아나의 상태를 살폈다.

"아야야… 머리 아팡."

릴리아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고통은 없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호연은 릴리아나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말을 이었다.

"릴리아나. 마력 쓸 수 있겠어?"

"마력?"

"응. 달라진 게 없나 확인해봐야 해."

다행히 금제가 폭주하는 건 막았지만 이미 일어난 폭주에 대한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다.

지옥의 마력을 각성했던 것처럼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일 수도 있다.

화악-

릴리아나의 손에 마력이 피어오른다.

이호연도 놀랄 정도로 강한 마력이었다.

"똑같은데?"

"그럼 기억나는 건 없어?"

"기억…."

릴리아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루시퍼를 만났을 때부터 흐릿하게 보이던 기억들은 여전했다.

그 사이에 있던 엄마의 얼굴도….

"아…?"

그때, 무언가 느껴졌다.

익숙한 지옥의 마력.

관능적인 공기와 욕망을 자극하는 아우라.

"… 엄마."

엄마의 기운이 느껴진다.

저 먼 곳에서.

*

그날 저녁 시간.

이호연은 테이블에 앉은 채 음식들을 구경했다.

그의 옆에는 남다희와 릴리아나가 앉아있었다.

"언니. 나도 오빠랑 같이 밥 먹을래."

"응. 오빠랑 릴리아나 씨랑 같이 앉아있어."

"배고파 죽겠어. 밥! 밥!"

"밥! 밥!"

이호연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쿵쿵 때리는 릴리아나와 남다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맨날 볼 때는 어이가 없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귀엽네.

참고로 이호연도 식사 준비를 도우려 했지만, 많이 움직여서 피곤할 테니 잠시 쉬라는 남다은의 말에 테이블에 앉았다.

이호연은 고기를 보며 침을 흘리는 릴리아나를 보며 아까 봤던 기억을 되짚었다.

그녀는 금방 괜찮아졌지만, 분명 속으로 신경쓰고 있을거다.

'서큐버스 퀸이 릴리아나를 견제해서 힘을 봉인한 건가?'

서큐버스 퀸. 릴리아나의 엄마가 릴리아나를 봉인했다면 말이 된다.

하지만 그건 이상했다.

자신의 딸이 두려웠다면 그냥 죽이면 될 일이다.

만약 릴리아나의 힘이 너무 강해서 금제를 거는 것이 최선이었다면, 그대로 지하 깊은 곳에 처박아두면 된다.

서큐버스 퀸은 그렇게 하지않았다. 오히려 15년간 릴리아나를 직접 키웠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건 분명해.'

봉인이 잘 작동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아니면 금제 위에 다른 기억을 덮기 위해서?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이호연은 자신이 생각할 수 없는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릴리아나의 기억에서 본 퀸은 정말 엄마의 모습이었어.'

게다가 이호연은 알베도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

- 마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마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지옥의 질서를 위해서는 이레귤러를 빠르게 제거해야 한다. 그런 소문이었습니다. 분명 그 소문을 듣고 나서 얼마 후에 릴리아나 님이 사라졌습니다.

마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마력을 가진 돌연변이.

그것이 릴리아나라면, 마왕이 그를 내버려 뒀을 리가 없다.

릴리아나.

그녀에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많았다.

'서큐버스 퀸을 찾는 것도 노력해야겠네.'

할 일은 많아졌지만, 이호연은 결의를 다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릴리아나의 편을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애기 아빠. 무슨 고민 있어?"

"네? 아. 미안해요."

이호연은 그제야 식사 준비가 끝난 테이블을 확인했다.

릴리아나와 다희는 이미 밥을 먹고 있었고, 준비를 마친 레베카와 남다은이 테이블에 앉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연아. 고민이 있으면 얘기해 줘."

"으응.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스칼렛은?"

"스칼렛 씨는 한국 지부장님과 식사 약속이 있다고 하셨어."

"아하…."

이호연은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릴리아나에 대한 일을 계속 숨길 생각은 없다.

레베카와 남다은이 릴리아나의 폭주때문에 피해를 보기도 했고, 그녀들도 릴리아나의 일을 도와주고 싶을거다.

'근데 내가 먼저 말할 주제는 아니야.'

릴리아나가 준비가 되면 그녀에게 직접 말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때까진 조용히 있자.

[저 어둠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생긴 의문의 현상입니다. 어둠에 감염된 것 같은 바다는 땅처럼 굳어서 새로운 섬을 형성하고 있습….]

때마침 뉴스에서 나오는 지옥의 문에 대한 보도.

이호연은 주제를 돌리기 위해 박수를 치며 레베카에게 말을 건넸다.

"맞아. 레베카 씨한테 말할 게 있었어요."

"응? 나한테?"

전세계에 퍼져있는 검은 기둥.

혼자 부수기엔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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