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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79화 (579/648)

< 579화 > 가장 쉬운 방법 (1)

스칼렛의 숙소.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호연은 방 안을 붕붕 날아다니는 릴리아나와 스칼렛의 대화를 구경했다.

[스카웃. 내 방송에 게스트로 나올래?]

"릴리아나 님께 도움이 된다면 괜찮습니다."

[이호연! 너도 이제 슬슬 나와도 되잖아!]

"나중에 생각해 볼게."

이호연은 허공에 떠있는 릴리아나를 보며 익숙하게 말을 이었다.

릴리아나의 몸은 신기하게도 반투명 상태였다.

[흥. 나중에 나와달라고 부탁해도 안되니까. 요즘 내 방송은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다구.]

"… 그럼 가서 방송이나 해. 강령술은 멈추고."

[너 지금 서큐버스의 비기를 무시하는 거야?]

"너랑 대화를 하려고 한 내 잘못이구나."

강령술.

보통 강령술이라고 하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오는 흑마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릴리아나가 익힌 건 조금 달랐다.

소위 말하는 유체이탈이었다.

이름이 왜 강령술인 지는 나도 모른다.

"처음 봤을 땐 엄청나게 어색했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네."

[그게 서큐버스의 무서움이야.]

"그래도 릴리아나 님이 직접 오는 것보단 이게 낫지 않습니까? 릴리아나 님에겐 그런 기술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 직접 오면 내쫓는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온 거 아니야."

[바보야. 프랑스에는 치킨이 없어서 어차피 안 갈려고 했거든?]

어젯밤, 스칼렛의 숙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내 가슴에서 릴리아나가 튀어나왔다.

자신과 주종관계기 때문에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금제가 풀린 뒤에 또 이상한 걸 알아낸 모양이다.

[스카웃. 근데 언제 돌아오는 거야. 나 너무 심심해.]

"이제 3일 정도 남았습니다. 릴리아나 님."

이호연은 스칼렛이 준 커피를 마시며 입맛을 다셨다.

그나저나 시간이 꽤 늦었다. 슬슬 보내줘야겠네.

"… 릴리아나. 나 이제 일하러 가야 하니까 슬슬 돌아가. 내일 또 보자."

[벌써?! 이제 30분 밖에 안 됐잖아! 이 나쁜 놈! 일이 먼저야. 가정이 먼저야!]

"당연히 일이지."

[흑흑…. 인간은 너무해.]

릴리아나는 불만을 표하면서도 뿅! 하더니 사라졌다.

사람이 셋에서 둘로 줄었는데 이렇게 조용해지는구나.

"릴리아나는 말이 진짜 많네."

"그게 매력이니까요. 그런데 지금부터 쉬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오늘 업무는 끝났을 텐데요."

"… 절제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붙잡혀 있을걸."

다른 히로인들과 오래 연락하지 않는 이유도 같다.

자신도 마음 같아선 스마트 워치로 영상통화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조금씩만 통화해도 이호연이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다.

그녀들도 뉴스를 보고 이호연이 얼마나 바쁜 지 아니까 이해해 주는 거다.

… 릴리아나는 별 생각이 없으니 저렇게 행동하지만, 그녀만 받아줄 순 없는 거니까.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하고 나면 또 하고 싶어 진다는 것.

나태해지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슬슬 가봐야겠어. 너도 잘 자. 스칼렛."

"당신도 좋은 밤 보내시길."

시간이 늦었다.

스칼렛에게 인사를 한 이호연은 숙소 밖으로 나왔다.

"아. 다은이 보고 싶네. 루시랑 루미도…."

이호연은 하품을 하며 엘리스의 숙소로 향했다.

오늘 밤공기는 유난히 씁쓸했다.

*

꾹-.

"기분이 어떠세요. 손님."

"으음…."

손님에게서 답은 없었지만, 이호연은 마사지를 이어갔다.

"오늘도 피곤했나봐."

"당연하지. 네가 말한 지옥의 마력을 설득하려면 루시퍼의 시체로 직접 마력을 느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절차가 복잡해져."

침대에 엎드려있는 손님은 당연히 엘리스였다.

엘리스의 숙소에서 같이 지낸 지 나흘 째. 매일같이 이 마사지를 하고 있다.

이호연은 등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래서 루시퍼의 시체를 나눈 거 아니야?"

"전 세계에 설득해야 할 단체가 한 두 개인 줄 알아? 10개로는 턱없이 부족해."

"쩝. 고생이 많다. 엘리스."

"으음… 흐응. 당연하지."

이호연은 엘리스의 몸에 마력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스가 힘들 수밖에 없겠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옥의 마력에 대한 의식을 바꾸려면 자신이 직접 뿜어낸 지옥의 마력을 경험해야 했다.

가짜 던전 마법진에도 적용이 되었으면 훨씬 편했겠지만, 결국 마법진의 시전자가 루시퍼라 그런지 갇혔던 사람들은 지옥의 마력을 눈치채지 못했다.

'시체 한 구로는 부족하니까 타협한 게 10개로 나누는 거였지.'

루시퍼의 시체를 100 등분해서 전 세계에 뿌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했다간 충분한 지옥의 마력을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10개로 나눈 것도 이호연이 직접 자르겠다고 고집해서 간신히 해낸 거다.

'루시퍼 시체는 솔이한테 마법 연구 재료로 제공하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세계의 멸망을 막기 위해 사용한 거니 우리 교수님도 이해해 주겠지.

그때, 이호연에게 마사지를 받던 엘리스가 흠칫하고 놀랐다.

"자, 잠시만."

"왜 그래, 엘리스?"

"… 알면서 그러는 거지?"

"미안."

부끄러운 듯 볼을 붉히며 자신을 바라보는 엘리스의 눈을 피했다.

조심스럽게 마력을 아랫배 쪽으로 보내고 있었는데, 벌써 눈치챈 모양이다.

"말했잖아. 오늘은 마사지만 받고 안 할 거야. 너무 피곤해."

"마사지만 하고 그냥 자야 하는 내 입장도 생각해 줘."

"우리 집에서 일주일 간 숙박을 왜 하고 있는지 기억 안 나?"

"…."

4명과 동거하는 걸 걸려서 그랬다.

이호연은 조심스럽게 마력을 움직여 엘리스의 마나 회로에 넓게 퍼트렸다.

"하아… 시원해."

"다행입니다. 손님."

"응. 이 감각에 중독된 것 같아."

선천적 마력 장애를 치료한 마나마사지.

이호연의 마력이 엘리스의 마나회로를 넓히며 자극을 준다는 얼토당토않은 방법이었지만, 이호연의 마나 감응력은 그것을 진짜 치료법으로 만들었다.

선천적 마력 장애가 완벽히 치료되었으니 더 이상 마사지를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엘리스는 그 기분 좋은 감각에 중독되어 버렸다.

굳이 야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이 마사지에 몸을 맡기면 그날 피로가 풀리고 잠이 솔솔 온다.

"요즘 아이린 씨한테 무슨 일 있어?"

"… 언니는 왜?"

"아까 길드장실에서 소리 지르면서 싸우고 있길래 아는 거 있나 해서."

"하아."

언니가 아빠와 싸우는 이유.

당연히 엘리스 때문이다.

'전에는 허락한다 해놓고 또 왜 저러는 거야.'

엘리스가 아이리스 길드의 후계자가 되었을 때만 해도 우리 동생이 드디어 어른이 되었느니 뭐니 하던 사람이, 일주일 연락을 안 받았다고 저렇게 태도를 바꿔버렸다.

누가보면 아직도 내가 10살인 줄 알겠어.

"나도 몰라. 언니는 내버려 두면 알아서 식을 거야. 아니면 네가 찾아가서 좀 달래주던가."

"내가?"

"응. 아이리스 길드에 와서 언니랑 이상한 짓 안 했어?"

"당연히 안 했지. 엘리스 네가 허락 안 하면 아이린 씨는 나랑 손도 못 잡잖아."

"난 당연히 변태 이호연이 몰래 접근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 잘했어."

"…."

이런 걸로 칭찬을 받은 건가?

집에서 키우는 개가 된 기분이네.

솔직히 내심 나쁘진 않다.

"후우. 됐어. 이제 자자."

그 뒤로도 잡담을 나누며 마사지에 집중하고 있는데, 엘리스가 먼저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그녀는 기지개를 켜며 잠옷을 여몄고, 이호연은 나라 잃은 표정으로 엘리스를 바라봤다.

"진짜 그냥 잘 거야?"

"피곤하다니까. 이리 와. 안고 잘 거니까."

"… 응."

안고 자기는 간단했다.

이호연이 엘리스의 옆에 가서 시체처럼 눕는다.

그럼 엘리스는 이호연을 배게처럼 끌어안는 거다.

남자로서 굉장히 참기 힘든 자세였다.

"내일 언니한테 가보던가. 언니도 널 오래 못 봐서 스트레스가 쌓인 걸 수도 있지."

"응. 상태 확인 정도는 해볼게."

"한 번 정도는 풀어줘도…."

색- 색-

엘리스는 그 말만 남기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곧바로 잠드는 걸 보니 정말 피곤하긴 했나보네.

그래도 아이린이랑 야한 걸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긴 했다. (아마도)

이제 난 어떻게 자야할까.

엘리스를 마사지하며 한껏 흥분했지만, 정작 엘리스는 잠들어버렸다.

혼자 성욕을 풀기엔 혹여나 안겨있는 엘리스가 깰 수도 있다.

'… 그냥 자야지 뭐 어떡해.'

이호연은 빳빳한 정자세를 유지하며 눈을 감았다.

*

다음날 아침.

파리에서 꽤 거리가 있는 교외.

아이리스 길드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꽤 멀리까지 산책을 나왔다.

"빨리 끝내려면 내가 일을 해야지…."

이호연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기둥을 보며 중얼거렸다.

검은 기둥.

여전히 불길한 마력을 쏟아내는 그것은 오늘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지옥의 문이 나왔다고 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아이리스 길드가 도와준 뒤로 지옥의 마력에 대한 일은 일사천리였다.

아이작이 '밤의 황제.'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순식간에 세계 곳곳의 주요 길드나 협회들이 이호연의 의견을 지지해 줬으니까.

역시 능력 있는 여자가 최고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검은 기둥에 대한 조사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거다.

이호연도 개인적으로 조사를 계속했지만 이게 어떻게 지옥의 동화작용을 하는 건 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으, 으읏. 이호연 마법사님. 저희는 여기까지가 한계 같습니다."

"네. 저 혼자 갔다 올 테니까 뒤에서 쉬고 있으세요."

이호연은 아이리스 길드원들을 내버려 두고 검은 기둥에 다가갔다.

억지로 뜯어낸 나무껍질같은 이상한 질감이었다.

멀리서도 이상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욱 기분이 나쁘다.

"신이 직접 조작한 일이라 그런가. 아무리 찾아도 증거가 없어."

마력을 사용하진 못했지만, 길드원들과 다르게 이호연은 꽤나 멀쩡했다.

루시퍼와 사선을 넘는 전투 이후로 지옥의 마력을 제어하는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월의 전당]을 만들었을 때의 마법적 성취까지 있었으니, 이제 검은 기둥에 딱 붙어도 두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 대단해. 저렇게까지 가까이 가고도 마력을 일으키다니."

"이호연 마법사는 천재잖아. 어우, 두통이야. 난 더 뒤로 갈래."

이호연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한 채 기둥에 손을 얹었다.

뾰족한 나무 조각이 손을 찌르는 느낌. 그와 동시에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이게 모든 악의 근원인 건 확실한데."

퉁. 퉁.

안이 텅 빈 걸까. 아니면 지구에 없는 물질이라 이런 소리가 나는 걸까.

검은 기둥을 건드리던 이호연은 문득 생각했다.

여기서 나오는 지옥의 마력과 불길한 에너지.

… 이거 기둥을 부숴버려도 계속 나오는거야?

검은 기둥에 손을 얹은 이호연은 천천히 지옥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많은 마력이 응축되어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견고하다.

하지만, 부수지 못할 것도 없다.

지금 이호연의 마법적 성취는 극에 달해있었다.

지금까지 왜 이걸 부수려는 시도는 안 해봤지?

"… 가까이 가면 심한 두통과 함께 마력이 흐트러지니까."

이 세상이 무협지도 아니고, 아무리 능력자라도 마력없이 이 기둥을 부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조사 과정이 험난했고, 가까이 가더라도 금방 정신을 잃었기에 부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이호연도 마법적 성취가 오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까이서 마력을 일으킬 생각은 못했을거다.

'마음만 먹으면 부술 수 있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호연이라면, 검은 기둥의 영역에서 마력을 쓸 수 있다.

[스파이럴.]

웅- 웅-

주변의 바람을 빨아들이는 검은 폭풍이 이호연의 손안에 만들어진다.

일단은 이거다.

이걸로 부족하다면, 더 강한 마법을 계속 때려박으면 된다.

'… 부셔버려도 되겠지?'

잠시 생각해 봤지만 딱히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손을 뒤로 젖힌 이호연은, 고민없이 검은 기둥을 향해 스파이럴을 때려 박았다.

콰아아아앙-!

폭탄이라도 터지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엄청난 잔해물과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이호연은 손가락을 튕겨 시야를 가리는 연기를 몰아냈다.

"이게 부서지긴하는구나."

눈앞에는 쓰러진 검은 기둥과 잔해가 흩뿌려져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거대한 나무가 잘리는 장면과 비슷했다.

"이, 이호연 마법사 님!"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죠!"

"거, 검은 기둥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이리스 길드원들도 깜짝 놀라 달려왔다.

이호연은 다가온 길드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때요?"

"예, 예? 그야 당연히 대단한 마법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역시 천재마법사…."

"그거 말고. 가까이 왔는데 두통 없어요?"

"어…? 어?!"

"마력도 쓸 수 있어!"

길드원들을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몸을 마구 더듬었다.

서로의 몸을 만지며 마력을 일으키는 건 별로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이호연은 부서진 검은 기둥의 파편을 하나 집어들었다.

녹슨 금속같이 생긴 파편에서는 불길한 기운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쉬운 일을 이제야 떠올렸구나.

조사고 나발이고… 전부 부숴버리면 된다.

이호연은 파편을 내려 놓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길드장 님한테 협조문 좀 다시 써달라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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