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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72화 (572/648)

< 572화 > 세 번째 만남 (3)

탁.

이호연은 허공에서 나풀거리는 종이를 낚아챘다.

겉으로 보기엔 릴리아나가 지옥과 연락하는 편지와 비슷해 보였다.

근데 그게 왜 나한테 나타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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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이네. 안부라도 묻고 싶지만 공간이 적어서 짧게 말할게. 방금 네가 펼친 마법은 인간을 영역을 벗어난 신의 영역이야. 이걸 건드리면 특전을 준 내가 공정성을 어긴 게 되어버려. 그러니 그만둬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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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만 편지 같은 쪽지를 보며 이호연은 눈을 찌푸렸다.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머리는 차갑게 돌아갔다.

이런 메시지를 보낼 사람은 이 세계에 단 한 명 밖에 없다.

"내기의 신?"

이호연은 헛웃음을 지으며 쪽지의 뒤를 확인했지만, 뒤를 봐도 아무 내용이 없었다.

"세계의 법칙. 신의 영역. 공정성…."

무슨 개소리야 이게.

이호연은 천천히 단어들을 조합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중간에 쪽지가 끊기긴 해도 그렇게 어려운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마법이 너무 뛰어나서 [세계의 법칙]이라는 걸 건드렸고, 겨우 인간인 내가 신의 영역에 다다르는 게 공정하지가 않다?'

쉽게 생각하면 그런 뜻이겠지.

그리고 아마 내 예상이 맞을거다.

멍하니 쪽지를 보다가 눈을 감은 이호연은 생각했다.

'지랄하고 있네.'

이호연은 입술을 깨물고 마력을 다시 일으켰다.

세계의 법칙이고 신의 영역이고.

저 쪽이 먼저 룰을 어겼는데 왜 나만 감수해야 하는데?

이호연의 마력이 다시 조합하며 마법진을 그리던 그때.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질적인 압박감에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고개를 위로 치켜들자, 세상이 뒤집히며 주변의 공간이 뒤바뀌었다.

잠시 후.

이호연이 마주한 공간은 vip 숙소가 아니었다.

책장에 꽂혀있는 만화책과 전공책.

먹다 남은 비타민과 정돈되지 않은 책상.

'그래. 항상 이곳에서 만나더라.'

이 세계에 떨어지기 전, 자신이 지내던 작은 자취방이다.

"다음엔 정말 다 끝나고 만나자고 했는데… 설마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익숙하면서도 듣기 좋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온몸에 화려한 황금 장식이 붙어있는 금발의 사내가 보였다.

온몸에서 내뿜어지는 신성한 아우라와 특유의 분위기.

내기의 신이었다.

"오랜만인데 차라도 한 잔…."

"이번엔 진짜예요?"

"첫인사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 당신의 모습을 한 마왕을 만났거든요."

"응?"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내기의 신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들어 이호연의 다음 말을 막았다.

"잠시만. 거기까지만 말해도 괜찮아."

갑자기 눈을 감은 내기의 신을 보며 이호연도 무릎을 피고 주변 의자에 앉았다.

잠시 집중하던 내기의 신은 곧 눈을 뜨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으음.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오히려 좋네. 설명할 시간이 줄었어. 아무튼, 당황했을 텐데 미안해. 짐작하겠지만, 내가 널 부른 이유는 그 마법 때문이야."

"현월의 전당이요?"

"그래. 이대로 내버려 두면 네가 세계의 법칙을 어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힘을 좀 썼어."

"… 세계의 법칙이란 게 뭐길래 그래요."

"세계의 법칙은 말 그대로 세계의 법칙이야. 인간의 언어로 뭐라고 설명하긴 애매하지만… 이 세계를 구성하는 법칙이지. 물리법칙? 자연법칙? 이런 것과 비슷한 거야."

"그래서 그게 왜 문제인 거예요. 신의 영역? 그거랑 내기의 공정성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세계의 법칙이 뭔 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내기의 신이 보낸 쪽지를 봤을 때부터 대충 어떤 의미인 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문제냐는 거다. 얼마나 큰 일이길래 내기의 신이 직접 등장하는 거냐고.

"현월의 전당이라고 했었지? 네가 만들어낸 마법의 이름."

"네. 일대를 제 꿈의 공간으로 만드는 마법이에요. 그 안에서 저는 꿈을 구현할 수 있고요."

"너도 그 마법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알고 있을 거야. 인간이 신의 영역에 침범하는 건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그걸 너 혼자서 해낸 거니까."

내기의 신은 내게 캔커피를 내밀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까지 없었는데 이건 대체 언제 만든 거지?

"하지만… 그렇기에 위험해. 이 세계의 신에게 무조건 들킬 거야."

"들킨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세계의 신은 마왕의 몸에 강림해 있어. 직접적으로 널 막기 위해서 말이야. 아마 지금쯤 똥줄이 타겠지. 심심풀이로 납치한 인간이 자신의 목 아래까지 쫓아왔으니까. 얼마나 화가 나면 신이 직접 강림하겠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라니까요. 그 새끼가 먼저 공정하지 않았는데 왜 저는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거예요."

내기의 신을 보면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이거다.

그는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왕에게 직접 강림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잖아.

"아니야. 너도 억울하겠지만… 이 세계의 신도 억울할 거야. 내가 준 특전이 아니었다면 넌 진작 루시퍼에게 개죽음을 당했을테니까."

스읍-

내기의 신은 커피를 한 입에 털어 넣고 말을 이었다.

"문제는 네가 너무 뛰어난 탓에 내가 몰래 넣어준 특전을 들켰다는 거지. 그래서 이 세계의 신에게도 어느 정도 메리트를 제공했어야했는데, 내 생각보다 이 세계의 신이 가진 권한이 크더라고. 내기도 꽤나 유의미하게 개입할 수 있었어. 그게 네가 본 마왕이지."

"… 그러니까 내가 너무 빠르게 강해져서 특전을 받은 걸 들켰고, 이 세계의 신이 그만큼의 공정성을 받기 위해서 직접 강림했다는 거네요. 지옥에 마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것도 그 탓이고요."

"맞아. 너에게 준 특전이 워낙 강력했으니까. 나는 중재자로서 이 세계의 신에게 메리트를 줬어야 했거든."

"하지만 내기 자체가 불공정한거잖아요. 그래서 내기의 신님도 저한테 특전을 준 거 아니에요? 클리어 확률도 겨우 6%였잖아요."

"처음 클리어 확률이 몇 퍼센트였는 지 기억 못하는 거야? 기억 보완 능력이 있잖아."

"… 0.002%였죠."

"이제 얼마나 대단한 걸 줬는 지 알겠지?"

이해하지 못하던 실마리가 풀린다.

내가 받은 특전이 뒤늦게 들키고, 내기의 공정성을 위해 이 세계의 신도 그만큼 특전을 받아 직접 강림했다는 거다.

거기다가 여러 이상한 짓까지 하고 있는거고.

이렇게 배배 꼬여있는데 나 혼자 생각해봤자 답이 나올리가 없지.

진작 좀 나타나줬으면 머리 아플 게 없잖아.

"네가 만든 현월의 전당은 신의 영역에 다다른 마법이지만, 결국 내가 준 특전에서 벗어날 순 없어. 즉 이 세계의 신에게 다른 공정성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야."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신의 영역까지 갈 수 있는 재능을 받았으니 할 말이 없네요. 신 님 말대로 특전이 없었으면 루시퍼를 이기지도 못 했을 거예요."

"꼭 그런 건 아니야. 그 마법에 대해서 말인데. 내가 준 특전 [마력 감응]의 한계는 인간이었어. 네가 신의 영역까지 다다른 건… 엄청난 우연과 기연. 그리고 노력의 산물이지. 솔직히 대단하다고 생각해."

"칭찬은 고맙네요. 쓸모는 없지만."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글쎄다.

신을 이기기 위해 신의 영역에 발을 걸쳤더니 곧바로 쫓겨나버렸으니 지금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어. 이 세계의 신이 마왕의 몸에 직접 강림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필멸자의 육체. 머리를 뜯어내고 심장을 도려내면 결국 죽기 마련이야."

"… 그럼 이 마법은 어떡해요. 제 모든 걸 담은 역작인데."

"아쉽지만 좋은 경험을 한 셈 쳐야지."

"내기의 신님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요? 맞아. 요즘 상태창도 안 뜨고 히로인 공략 시스템도 안 나와요. 이것도 특전의 일부였잖아요."

"너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마왕이 빙의했을 때와 같은 타이밍이었어. 너한테 통하는 지원을 할 수가 없었거든."

어쩐지.

갑자기 상태창이 안되었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히로인 공략에 대한 보상도 처음에만 조금 있었지 나중에는 없어졌으니까.

"입을 열 때마다 안 좋은 말밖에 없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만나는 게 좋았을텐데."

"미안. 사실 시간도 많지 않아. 저번에 얘기했었지? 네가 히로인들을 공략한 만큼 이 세계에 틈이 생기기 때문에 널 만날 수 있는 건데, 그 포인트를 두 번째 만남 때 거의 다 써버렸거든. 지금도 굉장히 무리하는 거야."

"… 내기의 신 님. 특전이든 기연이든 정 안되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면 좋겠는데요. 저 진짜 힘들어요. 하는 말마다 나쁜 말만 있으면 의욕이 다 사라지잖아요."

"음. 아까 네 기억을 읽으면서 확인했는데, 그래도 지금 하는 방식이 맞다는 말은 해주고 싶어. 이 세계의 신은 네 예상대로 이 세계에서 지옥의 마력에 대한 인식을 뒤바꿨지만,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던 너라는 존재는 예상하지 못했어. 네가 펼치는 지옥의 마력은 다른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잡기에 충분해. 만약 마왕의 계획을 망가뜨린다면 그의 전력을 깎는데도 도움이 되겠지."

"… 그건 고마운 충고네요."

드디어 처음으로 긍정적인 말이 나왔다.

프랑스에서 하는 일이 헛고생은 아니라 다행이네.

"나도 최대한으로 힘써서 막고 막은 게 이거야. 맞아. 이거라도 해줄게."

스르륵-

내기의 신의 손가락이 이호연을 가리키고, 그 끝에서 작은 빛 하나가 날아왔다.

자신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빛을 본 이호연은 멍하니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게 뭐예요. 생각해 보니 저번에도 이런 거 하지 않았어요?"

"응. 그 빛은 내 의지야. 내기의 신의 의지를 가슴에 품고 있으니, 공정성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상태로든 알아챌 수 있을 거야."

"지금이 딱 그 상태인데요."

"그건 지금까지 말해줬잖아. 너에게 준 특전 자체가 공정성을 위반한 일이었다고. 애초에 너에게 굉장히 불리한 내기였으니까."

"… 그래서 다른 도움은 없는 거예요?"

"마음 같아선 더 도와주고 싶지만, 난 어디까지나 중재인이거든. 지금 너와 만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야."

"에휴. 예.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며 의자에 등을 맡겼다.

그때, 이 공간 전체가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기의 신의 모습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별의 시간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너를 막는 세계의 법칙은 마왕의 몸에 강림해 있는 이 세계의 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니까."

"… 예."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결국 현월의 전당은 내 마음속에 봉인해야 하는 거니까.

이런 일이었다면 내기의 신을 안 보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름이 현월의 전당이라고 했었지?"

"왜요?"

점점 형체가 사라지는 내기의 신이 마지막 말을 건넸다.

"좋은 이름이라서. 그 마법도 분명히 쓸 기회가 올 거야. 장담할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묻기도 전에.

이호연의 시야가 천천히 암전 되었다.

*

"허읍…!"

눈을 뜨자 처음 보는 천장… 은 아니었다.

며칠이나 봤던 vip숙소와 푹신한 침대.

전 세계의 자취방과는 비교도 안되는 잠자리다.

"하아. 진짜 돌아왔구나."

이호연은 손을 쥐었다 피며 마력을 일으켰다.

내기의 신은 사라졌고,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그 말은 [현월의 전당]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

슬픈 현실에 한숨이 나온다.

"돌아왔다니, 그 짧은 시간동안 이 세계라도 다녀오셨습니까."

"으악!"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스칼렛의 얼굴이 보였다.

스칼렛은 이호연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까딱하더니 말을 이었다.

"우당탕탕 하는 소리 때문에 들어왔는데 연구실에 쓰러져계시더군요. 제가 침대로 옮겨놨습니다."

"아… 응. 미안해. 나 혹시 오래 누워있었어?"

내기의 신과 대화가 워낙 충격이라 침대에서 눕지 않았다는 사실도 망각했다.

그래. 누군가 침대로 옮겼다면 당연히 스칼렛이겠지.

"아니요. 정확히 2 시간 35분 만에 꺠어나셨습니다. 호흡도 편안하셨고요. 잠든 것 같아서 의료진을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잘했어. 연구 중에 피곤해서 잠들었거든."

이호연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며칠간 쫄쫄 굶으며 마법 연구에 몰입하고, 내기의 신까지 만났는데도 피곤함은 없었다.

겨우 두 시간 정도밖에 못 잤는데 이 상태라니. 확실히 내 몸이 사기긴 해.

"피곤하지 않으시면 준비하고 나오시죠."

"왜? 배고파?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러 갈까."

"그것도 좋겠지만, 길드장 님과 엘리스 아가씨가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아직 마법 연구중이라고 말해놨는데 컨디션이 괜찮으면 바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잘했네. 바로 가야지."

내기의 신을 보자마자 엘리스도 돌아왔다니.

이것도 운명인가.

안 좋은 이야기만 들은 데다가 [현월의 전당]은 봉인당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

이 정도의 시련에 포기할 거였다면 진작 포기했을거다.

이호연은 몸 안에 남아있는 잠을 몰아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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