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58화 (558/648)

< 558화 > 어긋난 것 (4)

조용한 임솔의 연구실 안 쪽.

촉촉하게 비벼지는 물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쪼옥- 쫍.

아이스크림을 핥는 것 같은 음란한 소리.

끝없이 이어지던 소리를 깨트린 건 이호연의 목소리였다.

"솔아, 아… 이제 그만해."

몸을 부르르 떤 이호연은 임솔의 어깨를 살며시 밀어냈다.

자신의 사타구니에서 입을 뗀 임솔의 붉은 혀가 뱀처럼 꿈틀거렸다.

임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호연과 눈을 마주쳤다.

"호연아, 벌써?"

"벌써라니. 지금이 몇 번째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이호연은 온몸에 힘을 다 짜내서 말했다.

너무 민감해진 하반신의 자극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대련이 끝난 직후보다 진이 빠진 것 같았다.

'조교한테 문단속을 시켰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임솔과의 사랑 충전은 체감상 쌍둥이와 보드게임을 한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 물론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몸이 붕 떠있는 느낌을 계속 받다 보니 기분은 좋아도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흐음. 알겠어."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한가?

쩝. 입맛을 다신 임솔은 손가락을 튕겨 클린 마법을 사용했다.

"사랑을 확인하는 거치곤 너무 과격했어요."

이호연은 보송보송한 하반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임솔과 사랑을 나눌 때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당연히 싫은 건 아니지만, 항상 끌려다니는 느낌이다.

"싫었어?"

"싫은 건 아니죠."

누워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임솔을 보며 확실하게 말 했다.

기분은 정말 좋았다.

"오늘도 몇 번이나 쌌잖아. 엄청 좋아 보이던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약간…."

"궁금한 게, 우리 제자는 좋으면서 왜 맨날 튕기는 거야? 시간이 아깝잖아."

"……."

주섬주섬.

이호연은 입을 꾹 다문 채 바지를 올렸다.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해오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래. 엄청 좋긴 했지.

매일 같이 사용하다 보니 소중함을 물랐던 걸까. 약간 쉬었다고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이야.

입 안에서 몇 번이나 짜내 져 버렸다.

"크흠. 이리 와 봐. 솔아."

이호연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며 양팔을 벌렸다.

성적인 사랑 보충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스킨십도 중요한 거 아닐까.

"후훗. 귀엽네. 우리 호연이."

임솔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이호연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가슴이 임솔의 가슴에 맞닿았다.

여러모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제자가 오늘따라 귀여워 보였다.

"… 아아. 맞아. 지옥의 마력에 대해서 말할 게 있었지. 까먹을 뻔했네. 하하."

"응. 그랬어?"

끄응.

임솔을 꾸욱 안아준 이호연은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침대에 등을 기댔다.

"일어날 수 있는 거야?"

"네. 괜찮아요."

"안 괜찮은 거 같은데."

사실 조금 더 쉬는 게 좋겠지만, 이대로 누워있을 순 없었다.

가만히 누워서 짜내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임솔의 아래에 안겨있다 보니 뭔가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임솔이 어떻게 느끼는 진 모르겠지만, 남자로서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튼… 저도 짐작 가는 게 있단 말이죠. 천재 마법사 임솔이 어째서 지옥의 마력을 신경 쓰지 않았냐."

전 세계에 나타난 검은 기둥과 던전의 폭주 현상.

그 둘의 공통점은 지옥의 마력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

전 세계의 마법사와 학자들이 달라붙었으니 당연히 연구가 진행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상한 건 교수 님뿐만이 아니에요. 수상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요. 검은 기둥을 연구한 사람들도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건 이상하지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나 자신이 그 존재들을 무시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어."

"…."

아무리 생각해도 괴상한 사건이지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조금 더 먼저 눈치챘어야 했는데. 쯧.'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

현재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상하다면, 그것에 대한 원인도 존재한다.

전 세계 마법사들의 이목을 속일만한 능력을 가진 존재.

답은 의외로 쉬웠다.

그 정도의 일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건 단 한 명뿐이다.

'이 세계의 신.'

이호연을 이 세계로 불러들인 장본인.

지옥의 마왕이 되어있는 이 세계의 신.

인간을 뛰어넘은 존재인 '신'이라면.

전 세계 마법사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 따위 쉬운 일이겠지.

'… 근데 그게 말이 되는 거냐고.'

이호연은 내기의 신에게 공평한 내기를 보장받았다.

특전을 비롯한 여러 능력들은 모두 공평한 내기를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공평한 내기가 아니잖아.

"쯧. 답답하네."

어쩌면 이 세계의 신과 관련이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호연이 생각하지 못한 다른 이유에서 벌어진 일일지도 모르지. 물론 그게 더욱 귀찮은 일이다.

차라리 내기의 신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물어볼 게 정말 많을 텐데.

이 세계의 신이 마왕으로 나타난 것도 이상한데 이런 일까지 벌어지다니. 답답함에 뭐라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호연이 너는 짐작 가는 게 있는 거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아직 증거는 없지만…."

"그럴지도 몰라."

"네?"

"증거라면 네 눈앞에 있거든. 다른 가능성이 전부 틀렸다면 호연이의 말이 맞겠지."

임솔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지금 일어난 일도 터무니없기에는 마찬가지다.

임솔은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

자신이 마법이라는 영역에서 실수를 할 가능성은 없다.

가능성이 없는 것과 조금이라도 있는 쪽.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를 골라야겠지.

"마법… 은 아닐 거야. 내가 눈치채지 못했으니까. 신기하게도 말을 할수록 갈피를 잡기 힘든 느낌이네."

임솔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곰곰이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제게 생각이 있어요."

이호연의 주변에 지옥의 마력을 연구하는 마법사는 딱 두 명 있다.

임솔. 그리고 레베카.

둘의 공통점은 이호연에게 지옥의 마력을 경험했다는 것.

그 전에는 다른 마법사들과 비슷한 상태였다.

'어쩌면 지옥의 마력을 제대로 경험해야 경각심을 느낄 수도 있어.'

아직 가설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일류 마법사와 하급 마법사의 마력이 다른 것처럼.

이호연이 펼치는 지옥의 마력과 검은 기둥에서 나오는 지옥의 마력은 격이 다르다.

아직 지구의 인간들은 제대로 된 지옥의 마력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옥의 마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뀐다면….'

이 세계의 신이 개입했다는 것은 확실해진다.

지옥의 마력이 가진 특징이라고 보기엔 이호연의 인식이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이다.

"먼저 아서 씨에게 연락해서 검은 기둥과 던전의 폭주 현상에 대한 조사를 다시 요청할 생각이에요. 저랑 교수님이 말한다면 더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겠죠."

"하지만 다시 조사를 한다고 해서 바뀔 것 같진 않아. 이미 몇 번이고 조사했지만 바뀌지 않았잖아."

"그것도 생각이 있어요."

해결법은 쉽다.

이호연이 직접 찾아가면 된다. 지옥의 마력을 조사해야할 이유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

루시퍼와 전투에서 얻은 위험한 마력이라고 말하면 들어주겠지.

그걸 빌미로 검은 기둥과 던전 폭주 현상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킬 생각이다.

"… 그걸로 될까?"

이호연의 계획을 들은 임솔은 눈을 깜박거렸다.

얼핏 듣기엔 나쁘지 않은 계획이지만, 뭐라고 할까.

계획이 엉성하다고 해야 하나. 허접하다고 해야 하나.

"괜찮아요. 저랑 교수 님이 밀어붙이면 안 될게 어딨겠어요."

이호연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미국의 마법 학회장 아서.

그와 만든 친분은 두터웠다. 자신과 임솔이 막무가내로 부탁하면 당연히 들어주겠지.

'안 들어주면 임솔을 마법 협회에서 뺀다고 하면 되지 않으려나.'

설마 안 들어줄 것 같진 않지만 정 안되면 필살기를 꺼내면 된다.

"그럼 학회 쪽에는 내가 연락할까?"

"네. 저는 또 연락할 곳이 있거든요."

아이리스 길드.

일개 길드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거기 가지고 있는 친분도 써먹어야지.

'예전에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보람이 있긴 하네.'

특히 거기 있는 지옥 출신 놈들하고 할 말도 있다.

이왕 가는 김에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하지 뭐. 물어볼 게 아주 많거든.

"으응. 알겠어. 내가 이야기해볼게."

"네. 일단 그렇게 하죠. 자세한 계획은 더 생각해보면 되니까."

이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 세계의 신에 대한 일은 개인적으로 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하아. 저는 일단 가볼게요. 할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네."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전에 아영 씨는 한 번 볼 생각이에요."

"내가 미리 이야기해줘?"

"네?"

"아영이라면 내가 설득을 도와줄 수 있어. 아영이는 마음이 약하니까 상처를 받을지도 몰라."

자신에게 찾아왔고 그다음이 백아영이라면 당연히 백아영에게도 진실을 말하러 간다는 뜻이다.

임솔은 이호연의 의도를 눈치챘지만, 이호연은 고개를 저었다.

"… 괜찮아요. 제가 말할 거니까."

임솔의 도움을 받으면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지만, 백아영에게는 직접 말하고 싶었다.

그녀는 가장 처음 공략한 히로인인만큼 관계가 조금 더 특별했기 때문이다.

헛기침을 한 이호연은 대화의 빠르게 주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루시랑 루미 말인데요. 그때 진심으로 한 말 맞죠?"

"…? 그럼 당연히 진심이지. 둘의 재능은 엄청나."

하긴 이 사람이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성격은 아니지.

"둘도 제가 일 처리만 하면 같이 데리고 올게요."

"그 아이들은 마치 너를 보는 것 같았어. 성장도 정말 빨랐고…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도 너랑 비슷했거든."

"제가 직접 알려줬으니까 그렇죠."

이호연의 특훈과 마력 강의는 돈 주고도 못 받는 고급 강의다.

원래부터 둘의 재능은 최상위다. 그 상태에서 이호연의 강의를 매일 같이 들었으니 당연히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그럼 루시와 루미는 제자의 제자네?"

"뭐 그렇게도 볼 수 있죠?"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보다 자신에게 배운 게 더 많을거다.

"흐음. 제자의 제자라면 나는 스승의 스승…."

스승의 스승.

뭔가 마음에 드는 울림인지 임솔은 기분 좋아 보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아까 대련에서 사용했던 마법은 뭐였어? 마지막에 내 마법이 지워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임솔은 뒤늦게 이호연이 마지막에 펼쳤던 마법을 떠올렸다.

자신의 마법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그런 마법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아.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짜증 나서 좀 그만하라고 했는데 갑자기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갔거든요."

마력 운용에는 자신이 있었으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 마력이 이호연도 당황스러웠다.

'… 그게 아닌가?'

어쩌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빠르게 알아챈 것은 아닐까.

이건 나중에 다시 확인해봐야 한다.

"그러고보니 10시간 쯤 전에 마법을 하나 만들었는데, 이건 어떤 지 확인해볼 수 있어?"

"예예. 당연히 되죠."

주제를 돌리기 위해 잠깐 말했던 마법 이야기였지만, 임솔의 주도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법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들어 갔다.

마법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미소가 배어나오는 걸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다.

… '사랑 충전'을 할 때보다 더욱 신난 것 같아서 약간 서운하네.

나만 받아서 그런걸까. 다음엔 나도 충전을 좀 해야겠다.

"마법진은 아직 불안정하지만 구성은 끝냈어. 지옥의 마력에 대한 분석도 거의…."

그래도 이게 임솔 교수의 매력이겠지.

이호연은 임솔의 마법 토론에 기쁘게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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