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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야겜에 빙의했다-556화 (556/648)

< 556화 > 어긋난 것 (2)

[안전 모드 가동. 고통 수치 조절 없음.]

이호연은 훈련장의 알림을 들으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몸을 채운 마력이 대련장을 채우고, 임솔의 마력과 맞닿는다.

갑작스러운 대련이지만 전투태세에 문제는 없었다.

이호연은 기분 좋은 긴장과 함께 임솔을 바라봤다.

'… 살살해주겠지?'

말로는 컨디션이 좋다고 하지만, 이호연은 느낄 수 있었다.

임솔의 회복력은 자신보다 아래.

그녀는 루시퍼와 전투의 여파를 아직 떨쳐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14시간 동안 마법 연구를 하던 게 말이 안 되긴 하네.'

하여튼 마법에 대한 열정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

이호연은 마력을 끌어올린 채 대련을 준비하는 임솔에게 말을 건넸다.

"마음 같아선 대련 전에 대화를 좀 하고 싶은데요."

임솔이 말했던 위화감.

이호연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지옥의 마력. 던전의 폭주 현상과 검은 기둥.

악의 집단 판데믹이 소환하려는 마왕의 정체가 이 세계의 신이라는 사실.

이 세계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의심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신이 개입한 이상 어떤 것이라도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임솔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대련에 집중하고 싶어. 네 마력을 느끼면 감을 잡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하아. 예예."

지옥의 마력을 보고 싶다면 얼마든지 보여줄 텐데.

왜 굳이 이런 방식을 쓰는 거냐고.

'근데 임솔은 어떻게 감을 잡은 건 지 모르겠네.'

이호연과 다르게 임솔은 정보가 부족했다.

자신은 여러 뒷 사정을 알고 있으니 어긋난 부분을 느낄 수 있었지만, 임솔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확실히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마법 쪽에 관해서는 감이 엄청났다.

"마천궁은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겠지."

어디까지나 가벼운 대련일 뿐이다.

지금은 몸에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마천궁까지 사용하면 자신도 모르던 후유증이 재발할 수도 있다.

그건 임솔도 마찬가지일 테니, 적당히 지옥의 마력을 펼치면 될 거다.

스르륵-

이호연의 몸을 감싸던 푸른 마력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든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도록 어두운 마력.

임솔이 요구하던 지옥의 마력이었다.

솔직히 이걸 사용한다고 무엇을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교수님이 원하고 있으니 맞춰줘야겠지.

"자, 간다. 솔아."

옅은 미소를 보내며 가벼운 마법진을 그려냈다.

시커먼 지옥의 마력 화살들이 임솔을 향해 쇄도했다.

"천공검."

임솔이 속삭이듯 말한 시동어와 동시에.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나타났다.

번개가 서린 검은 검은 화살을 가볍게 찢어발기고 이호연을 향해 떨어졌다.

콰아아앙-!

번개의 검은 엄청난 연기를 만들어내며 순식간에 바닥에 꽂혔다.

연기가 걷어진 뒤 보인 이호연의 눈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니, 저기요. 천천히 하자니까!"

이호연은 방금까지 자신이 서있던 곳에 박혀있는 거대한 천둥의 검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순간적으로 개안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대련이 시작하자마자 저 거대한 검에 짓눌려 쥐포가 되었겠지.

가벼운 대련에서 저런 흉기를 소환하는 게 어디 있냐고.

"천염화(天炎花)."

들리지 않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이호연의 불만을 뒤로한 임솔의 주변에 수많은 불꽃의 꽃이 떠올랐다.

무시무시한 마력을 담고 있는 꽃은 임솔의 주변을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이 씨, 진짜."

피부에 직접 느껴지는 엄청난 압박.

불꽃으로 이루어진 꽃 하나하나가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를 입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이호연은 혀를 찼다.

'이러면 나도 진심을 다해야 하잖아.'

임솔의 고위 마법을 마천궁도 없이 받아낼 순 없다.

엄청난 위력이 담겨있는 마법이지만, 임솔도 풀컨디션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도 저런 기행을 벌이고 있는 거다.

"진짜 우리 교수님은 꽉 막혀 있는 건지 너무 오픈마인드인 지 모르겠네."

마법과 관련된 일에서는 너무 답답한데, 또 갑자기 당 충전이 필요하다며 바지를 벗으라는 걸 보면 너무 열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전투 감각이 활성화되었다.

그만큼 임솔이 이호연에게 위협적이라는 뜻이다.

'대화만 하려고 온 건데.'

그냥 대화를 먼저 하면 안 되나? 응?

스마트워치 연락도 안 받고. 기껏 찾아왔더니 대화도 안 해주는 게 어딨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도구 사용도 안하고 의사소통도 못하면 짐승이랑 뭐가 다른 거냐고.

"… 마천궁 전개."

속으로 불만을 내뱉던 이호연은 씁쓸한 마음으로 마천궁을 펼쳤다.

그래. 저렇게 다 쏟아내고 편안해지면 그때 불만을 표출하면 된다.

저래 보여도 합당한 불만은 들어주긴 한다. 들어주는 것과 수용하는 건 다른 이야기지만.

촤아악-

온 몸에 마력이 빠르게 회전한다.

그래도 마천궁을 펼치자 한결 마음이 편했다.

천 개의 꽃이 임솔의 주변을 돌고 있지만, 결국 맞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스톰 퀘이커."

이호연의 몸 주위로 바람이 휘몰아친다.

저 꽃들을 하나 씩 격추하는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 한 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다.

"우리 제자도 진심인 걸 보니 사실 싸우고 싶었구나."

"방금 그 대사는 화나네요."

"확실히 비슷하면서도 너무 달라. 이런 마력은… 역시 부딪쳐봐야 아는 건가?"

"이제 내 말은 무시하는구나."

혼자 중얼대던 임솔은 흩날리던 천염화의 방향을 바꾸었다.

첫눈처럼 하늘을 가득 채운 천염화가 이호연을 향해 떨어졌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이호연은 더욱 마력을 끌어올렸다.

쿠우우웅-!

이호연의 몸을 중심으로 어느새 대련장 절반 가량을 채운 마력 폭풍이 천염화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끝없이 떨어지는 천염화를 삼키는 폭풍은 점점 거대해졌다.

"이건 마력의 특징은 아니야. 하지만… 확실히 직접 부딪힐 때마다 파악하는 게 많아지네."

임솔은 천염화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이호연이 뿜어내는 지옥의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낙뢰의 진."

천염화가 폭풍에 삼켜져도 임솔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간을 끄는 동안 수 십 개의 마법진을 하늘에 흩뿌린다. 번개의 기운이 담긴 마법진은 수십 줄기의 번개를 뿜어냈다.

"대련이라기보단… 지옥의 마력을 느끼고 싶은 건가."

이호연은 연구자의 눈으로 바뀐 임솔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걸 하고 싶으면 그냥 자신에게 말하면 되는 거잖아.

다 좋은데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의사소통 방법 강의 같은 걸 해줘야겠어.'

임솔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저런 독불장군이 된 걸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특히 그녀가 미쳐있는 마법이라서 더욱 심한 것이니 이제부터 자신이 알려주면 된다.

"일단 적당히 맞춰주다가 대련을 끝내… 큽?!"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전투 감각의 전조와는 조금 달랐다.

느껴지는 건 찢어지는 듯한 고통.

"큭, 크읍…."

장기를 칼로 난자하는 것 같은 고통에 주변을 장악하던 마력이 흔들린다.

이호연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천궁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 아읏…. 잠시만. 잠시만요. 솔아. 아니, 임솔 교수님."

이호연은 자신의 몸 내부를 살폈다.

분명 괜찮았는데. 어디가 잘못된 거지?

빠르게 마력을 회전시킨다.

마력 회로는 정상. 하지만 심장 부근에 있는 마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 몸상태를 내가 모르고 있었네.'

오늘 아침만 해도 이상이 전혀 없어보였는데, 자신의 몸이라고 너무 대충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직접 마력을 움직여보면서 몸 구석구석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아니, 애초에 대련을 안 했으면 된 거잖아.'

생각해보니 대련만 아니었으면 마천궁을 펼칠 일도 없었다.

당장 루시퍼와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대련을 한 임솔이 비정상 아니야?

왜 다들 체력이 그렇게 남아도는거지?

이호연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임솔을 노려봤다.

하지만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임솔의 번개는 멈추질 않았다.

"그만 좀… 아악."

이호연이 펼쳤던 폭풍이 점점 약해진다.

푸른 번개가 하나둘씩 이호연의 주변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을 찌푸린 이호연은 심장에 손을 얹은 채 짜내듯 외쳤다.

"하아. 좀, 좀 그만하라고! 항복! 항복이라고!"

파앙-

이호연의 몸 내부에서 마력이 쑤욱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대련장을 채우던 폭풍과 번개들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 음?"

임솔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펼쳤던 마법이 아무 전조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치이이익-

[이호연 생도의 대련 중지 의사를 확인했습니다. 대련을 종료합니다.]

대련이 끝났다는 알림창이 생겼지만 임솔의 생각은 멈추지않았다.

"방금 그건 뭐였을까? 지옥의 마력이 아니었는데."

지옥의 마력을 보기 위해서 대련을 하는 거였으니 방금 이호연의 행동은 대련의 의도와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방금 이호연이 펼친 마법이 더욱 이상했다.

빠르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임솔은 아예 마력의 움직임조차 읽지 못했다.

"제자야. 방금 그건 뭐…."

마법 연구 모드가 꺼진 임솔은 그제야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호연을 발견했다.

아주 잠깐, 등골이 서늘해졌다.

"우리 제자. 아니, 호연아. 왜 그래. … 괜찮니?"

재빠르게 이호연에게 다가간 임솔은 이호연의 머리를 든 채 상태를 확인했다.

겉으로 보기에 상처가 심해 보이진 않았다. 마력 회로를 확인해봐도 이상은 없어 보였다.

"… 내상인가? 혹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거야?"

"딱 보면 모르십니까. 그만하라니까 왜 멈추질 않는 거예요."

"미안. 못 들었어."

"그러다 번개라도 맞았으면 어쩌려고. 하아…."

이호연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임솔이 내미는 손을 붙잡았다.

처음엔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마천궁이 없어진 후에는 고통이 많이 줄어들었다.

"어차피 대련장이라 안 죽잖아. 왜 그래."

"그게 중요해요? 저걸 맞으면 얼마나 아픈데!"

이 사람은 감정도 없는 건가.

항상 대련을 실전처럼 해야 한다면서 고통 수치 조절도 안 하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다니.

게다가 번개를 맞지 않았지만 지금도 더럽게 아프다고.

이호연의 표정을 본 임솔은 뒤늦게 반성하는 표정을 지었다.

"음… 내가 너무 흥분했나? 미안. 무언가 잡힐 것 같아서 제자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네. 스승으로서 불합격이야."

임솔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저 시무룩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맨날 아프니까 적응하는 것도 문제야.'

아픔에 적응한 게 왠지 억울하다.

이런 고통을 자주 겪다 보니 이 정도 아픔으로는 저런 얼굴만 봐도 화가 금방 풀려버린다.

"일단 일으켜주세요.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심장 부근에 문제가 있는 모양.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선 명상이라도 하면서 휴식에 집중해야 한다.

그 다음에 화를 내든 뭘 하든 해야지.

움직이거나 마법을 펼치는 데에 이상은 없었으니 마천궁을 펼치는 등 무리를 하지만 않으면 될 것 같은데.

"응. 연구실에 간이침대가 있어. 부축해줄게."

"걷는 건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임솔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이호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에 그건 뭐였지?'

임솔의 마법을 항상 욕하지만 이호연도 마법사였다.

마지막에 자신이 펼친 '무언가'는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건 연구해볼 가치가 있겠네.

"…."

이호연의 뒷모습을 보며 걷던 임솔은 무언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약해진 제자의 모습을 보니 가슴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막 챙겨줘야 할 것 같고, 더 잘해줘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

임솔은 조용히 스마트워치를 건드려 조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이제 퇴근해.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 잠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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